아케나톤이 인류 역사에 미친 공헌

아케나톤이 젊었을 때의 모습. 루브르 박물관

아케나톤(Akhenaton)은 고대 에집트 제18왕조의 파라오였다. 아버지는 아멘호텝 3세였고, 그의 이름을 따서 태어날 때 이름은 아멘호텝(Amenhotep) 4세였다. 기원전 1350년에 테베에서 왕위에 올랐고 치세 5년에 아케나톤(아톤에게 유용한 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334년까지 16년 동안 에집트를 다스렸다. 모세보다 약 1백년을 앞선다.

에집트인에게 유일신 사상을 처음으로 섬기는 것을 가르쳤다. 몽매한 에집트인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믿으라는 가르침이 먹혀들지 않았을 터이니, 아케나톤은 태양이 유일신이라고 가르쳤다. 이 유일신 사상은 아텐에게 바치는 찬송가 에 적혀 있다, 유대인이 적은 시편 104편에 그 형체가 조금 남아 있다. 일신교 사상은 당시에 너무 진보적 사상이어서 서민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궁전에 있는 사람들이나 겨우 이해하였다.

치세 첫해부터 니페르티티(Nifertiti)를 왕비로 맞았고, 딸이 여섯이나 되었다. 다른 여인(아마도 키야, Kiya)이 아케나톤에게 아들을 낳아주었다. 이 사람이 투탕카텐 (나중에는 투탕카문)이었는데, 현대의 DNA 분석은 Tutankamun이 아케나톤의 아들인 것을 입증한다. 그러나 투탕카문이 자랄 때 궁전에서 왕자의 대접을 받지 못했고, 딸 앙케세나문(13살)에게 장가를 들어 투탕카멘(8살)은 어릴 때 아케나톤의 사위로 파라오가 되었다.

왕비 니페르티티가 여왕이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치세 14년에 니페르티티가 죽었고, 죽을 때 신분은 왕비였다고 한다. 에집트와 왕래가 많았던 힛 족속(Hittites) 왕국의 기록에는 에집트로부터 역병이 들어와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치세 12년에 아케나톤의 어머니와 세 딸이 죽었다. 학자들은 이런 전염병이 당시에 에집트에 돌았으니 이 역병 때문이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아케나톤도 치세 17년째에 죽었고, 딸 메리타텐이 이어받아 3년간 통치했으나 죽었고 그 뒤에 투탕카문이 몇 년 동안 통치했다. 투탕카문은 어릴 때부터 무릎에 병이 있어 잘 걷지 못했고, 지팡이에 의지했다. 아마도 왕궁의 음식에, 의도했던 그렇지 않았던, 독이 들어 있었던 듯하다. 투탕카문과 앙케세나문은 아이를 둘 낳았으나 등골이 기형으로 모두가 사산되었다.

미망인 앙케세나문(Ankhesenamun)은 힛 족속 임금 수필루류마스(Suppiluliumas)와 연락하여 그쪽의 왕자와 결혼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한다. 결국 (아마도 나이 많은) 장관 아이(Ay)와 결혼하여, 그가 파라오가 되었다. 그 뒤에 반년이 지나자 앙케세나문도 죽었고, 아이는 다시 옛 아내 테이(Tey)를 왕비로 맞았다. 그러나 치세 4년에 그도 죽었다. 투탕카문 일족이 아이에게 모두 독살되었을 가능성은 있으나 아직까지 과학적 증거는 없다고 한다.

유대인이 에집트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에 정착할 때(기원전 1250년 경)는 henotheism (다신교이나 자기 종족의 신이 다른 종족의 신보다 위에 있다는 신앙, 흔히 단일신교라 잘못 번역이 되어 있으나, 최고신교가 더 알맞을 듯)을 지지하였다. (아람 왕의 신하들이 왕께 아뢰되 그들의 신[야웨]은 산의 신이므로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였거니와 우리가 만일 평지에서 그들과 싸우면 반드시 그들보다 강할지라, 열왕기상 20:23)

일신교는 태어난 곳 에집트에서는 명맥이 끊겨 사라졌으나, 에집트에 이민 왔던 유대인이 이 유일신 사상을 배워서 팔레스타인으로 가져가 발전시켰다. 그래도 여전히 야웨는 질투가 많고, 성이 나면 인류를 홍수로 휩쓸어 죽일 생각을 하며, 머리가 명석치 못해서 후회하기도 한다. 예수의 시절이 와서야 인류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그의 가르침을 듣는다.

이런 까닭으로 유대인과 이슬람 교도와 기독교인은 아케나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1. 아버지 아멘호텝 3세 (치세: 기원전 1390-1352년), 제 18왕조

 

아버지는 아멘호텝 3세였고, 어머니는 티에(Tiye)였다. 기원전 1400년

2. 젊었을 때의 아케나톤

아케나톤의 옆모습. 머리통이 길다.

3. 니페르티티 왕비

니페르티티(Nifertiti) 왕비.

아케나톤과 니페르티티.

4. 아케나톤의 치세

치세 동안에 일신교를 퍼뜨리기 위하여 치세 5년에 테베에서 아마르나로 수도를 옮겼다. 신 아문을 숭배하던 사제들이 불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전염병이 돌아 사람들이 많이 죽자, 아문 사제들은 신들의 벌이라고 소문을 퍼뜨려 아케나톤의 평판이 대단히 나빠졌다. 사위이자 아들 투탕카문은 아이 장관의 말을 따라서 옛 아문 숭배로 돌아갔다.

그래도 아케나톤의 일생은 헛수고는 아니었다. 이민온 유대인들이 그의 일신교 사상을 배워 갔고, 예수의 제자들은 이것을 서양 세계로 가져갔다.

 

아케나톤 왕의 浮彫, 붉은 왕관을 쓰고 있는데, 이것은 에집트의 북부 (Lower Egypt)를 다스리는 임금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아케나톤이 태양신에게 경배드리는 예식의 모습. 설명서에는 태양신에게 드리는 찬송가의 일부(시편 104편과 비슷한 구절)가 인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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