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왕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삼았고 (기원전 1천년) , 그 아들 솔로몬이 첫째 성전을 여기에 지었다. 그러나 그 성전이 있었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 없다고 한다. 멜기세덱이 살렘(평화라는 뜻)에서 왕이었기 때문에, 후일에 그곳을 예루살렘이라 한 것 같다. 솔로몬이 죽은 뒤에 북쪽에는 이스라엘, 남쪽에는 유다 왕국으로 나라가 갈라졌다. 기원전 722년에 이스라엘이 먼저 멸망했고, 남쪽의 유다는 586년에 바빌론의 침공을 받아 멸망했다.
로마 시대에는 유대인이 독립 전쟁을 일으켰으나 서기 68년에 로마의 장군 타이투스가 이 운동을 진압하고 성전을 파괴하였다. 다시 서기 132년에 바르 코크바 (Bar Kokhba)가 독립 전생을 일으켰으나, 하드리안 (Hadrian) 황제가 이를 진압하고 유대인을 예루살렘에서 내쫓았다. 이후부터 유대인은 나라를 잃고 유럽의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
영국 정부가 2차 대전 이후 1948년에 이스라엘을 독립시켰고, 예루살렘은 수도가 되었다.
오늘날 옛도시는 4개 구역으로 갈라져 있다. 아르메니아 구역, 기독교도 구역, 유대 구역, 이슬람 (아랍) 구역이다. 성묘 교회는 기독교도 구역 안에 있다. 동산 교회는 도시 바깥에, 다마스커스 문 북쪽에 있다.
아랍 구역의 출입은 싸움이 자주 일어나므로 통제된다. |
첫째 역은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던 빌라도의 재판정. 이곳은 확실한데, 이 슬픔의 길이 어디를 경유해서 어디서 끝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끝나는 곳이 예수님의 무덤일 터이니까.
다섯째 역 (Station 5). 전통에 따르면 여기가 쿠레네인 (아프리카인)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곳이라고. 마지막 역은 성묘교회에서 끝난다. 매년 성금요일 (Good Friday, 십자가를 지시던 금요일)에 이 슬픔의 길을 따라서 세계 각국에서 온 50여 행렬이 지나가며 예배를 본다. 영어 행렬은 하나 있으면 다행. 대부분, 그리고 가장 큰 것은 예루살렘에서 사는 아랍 사람들의 행렬.
최은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