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7 편, 최상위 하나님

글쓴이: 유란시아에서 잠시 머무르는 한 막강한 사자

1934년

최상위 하나님은 하나님의 총 의지 최대의 유한한 명시가 되고 있다.

대우주에 사는 존재들이 모두 하나님의 뜻을 충실히 행한다면, 시공의 창조들이 빛과 생명 속에 안정된다. 그때 최상위의 잠재성인 전능자는 최상위의 성격이 솟아나면서 사실이 된다.

진화하는 우주가 중앙 우주처럼 안정될 때, 필사 인격자가 깃드는 조절자의 이끄심에 조율이 될 때, 최상위의 사실성은 한 눈금만큼 더 현실이 된다.

대우주의 부분과 개인들은 최상위의 총 진화의 반영으로서 진화하며, 최상위는 대우주 진화의 누적 합계이다.

1. 최상 존재의 성품

최상위는 대우주의 대혼(大魂)이요, 유한한 실체의 완성이요, 창조자와 인간의 체험이 성격화된 것이다.

최상 창조자들의 몸을 입고서 신들이 파라다이스로부터 시공 영토로 내려왔으니, 이는 아버지를 찾아서 올라갈 인간을 창조하고 진화시키려는 것이다.

대우주의 존재는 삼위일체의 창조 행위의 결과이다.

창조자의 뜻과 인간의 뜻은 질적으로 다르지만, 체험적으로 비슷하다. 사람은 하나님과 연결하여 일할 수 있고, 이렇게 영원한 최후자를 함께 창조한다.

최상 존재의 경우에, 창조자와 인간은 신 안에서 뭉치며, 최상위의 뜻은 인간이나 창조자의 뜻보다 더 큰 무엇이다.

최상위 안에서 지은 자의 신분과 지음받은 자의 신분이 한 몸이 된다.

최상위 하나님은 진실이요 아름다움이요 선이니, 이러한 신성 개념이 체험의 유한한 최대치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신성의 이 삼자일치 품질의 근원은 유한 초월 수준에 있지만, 인간은 그러한 근원을 초월적 진실ㆍ초월적 아름다움ㆍ초월적 선으로만 겨우 파악할 수 있다.

미가엘은 아버지가 인간 자녀들에게 품는 신의 사랑을 드러냈다. 사람은 이렇게 사랑을 받았으니까, 육체를 입은 동포에게 이 사랑을 드러낼 수 있다.

첫째 근원 중심은 세 절대자 안에서 (신ㆍ우주ㆍ무제한 절대자) 잠재하며, 파라다이스ㆍ아들ㆍ영 안에서 실재한다. 그러나 최상위는 실재하면서 잠재한다.

2. 진화적 성장의 근원

최상위는 시간 지역에 있는 하나님이다. 모든 성장의 마지막 결과는 최상 존재이다.

필사 인간에게 존재는 성장과 마찬가지이다. 현재 시대에 인간 존재의 성장은 최상위의 한 기능이라고 본다.

인간이 삼자일체 체험으로 낳은 아들들의 지위를 생각해 보아라. 그들은 지성ㆍ영과 함께, 성격을 가졌고 체험을 하지만, 하늘 가는 자처럼 자라지 않는다. 이들은 현재 우주 시대에 있지만, 다음 우주 시대의 출신이라고 우리는 이해한다. 현재 우주 시대의 체험에 참여하지 않는다.

[인간이 삼자일체로 낳은 아들에는 3 부류가 있다: (i) 파라다이스ㆍ하보나에 있는 완전한 인간들이 낳은 아들, (ii) 진화 체험을 거쳐서 하늘 가는, 불완전한 두 인간이 삼자일체화로 낳은 아들, (iii) 튀기, 즉 파라다이스ㆍ하보나 시민과 필사자가 삼자일체화로 낳은 아들.]

막강한 사자들은 삼위일체의 품에 안겼으니까, 현재 우주 시대의 성장에 참여하지 않는다. 우리[막강한 사자]의 지위는 삼위일체의 품에 안김으로 고정되었고,체험은 이제 더 성장을 낳지 않는다.

너희는 지구에서 지금 살며 파라다이스에 이르고 최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최상위의 성장에 참여한다.

언젠가 최상위의 성장이 끝나고 그의 지위는 확정될 것이다. 최상위의 진화가 그칠 때 인간의 진화도 끝난다. 바깥 공간자들이 최상위의 성장으로 혜택을 받지 못한 결핍을 메워주는 것이 대우주의 진화 시민들의 역할일 것이다.

현재 우주 시대가 끝나면 최상 존재는 대우주에서 체험적 군주로 활동할 것이다. 바깥 공간자들은 초우주 이후의 성장 잠재성을 가진다.

최상위의 불완전함은 미덕으로 보아도 좋으니, 인간의 성장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어 있는 것은 미덕이 있으니, 빈 것이 체험으로 채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과 우주들은 최상위 안에서 진화하고 있다.

3. 우주의 인간에 대한 최상위의 중요성

최상 존재는 최상위 하나님, 전능한 최상위라고도 부른다.

최상위는 공간에서 삼극일치들의 무한이 흐르는 경로이다.

예수가 하나님께 올라가는 생명의 길인 것 같이, 최상위는 의식을 초월하고 초한 통찰력을 얻는 생명의 길이다.

너희의 창조 아들은 인간이 신에 이르는 경로일 수 있으니, 그가 사람의 아들로서 파라다이스 신에 이르기까지 진보하는 길을 몸소 거쳤기 때문이다.

물리적 관점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모습을 닮지 않았으나, 조절자와 연락하여 불사의 혼이 자란다.

최상 존재는 신이요 인간은 지음받은 자이니까 최상 존재와 똑같지 않지만, 사람의 진화는 어떤 면에서 최상 존재의 성장과 비슷하다. 일단 혼이 생기면, 혼은 저절로 자란다.

최상위를 창조자가 진화시키고 삼위일체가 파생시켰을 뿐 아니라, 최상위는 스스로 진화하고 유래한다. 최상위 자신이 의도하여 창조에 참여한 자이다.

파라다이스 에너지를 조종하고 이를 최상위에 반응하도록 만드는 데 아버지는 합동 행위자와 더불어 일한다. 창조 아들들을 낳기 위하여 아버지는 영원한 아들과 함께 일하며, 이들의 활동은 최상위의 통치권을 성취할 것이다.

신은 통일성이요, 삼위일체로서 실존적이고, 최상위로서 체험하며, 필사자의 경우에는 조절자와 융합한다.

사람의 불멸하는 혼은 아버지의 계심과 교제함으로, 그리고 인격의 결정에 따라서, 자기의 영원한 운명을 진화시킨다. 삼위일체와 최상위의 관계는 조절자와 진화 인간과 같다.

시공의 창조 대리자들이 유한 행동 가능성을 소모한 경우를 제외하고, 현재 우주 시대에 최상 존재는 창조자로서 직접 활동할 수 없는 듯하다.

최상 존재는 사람을 창조하지 않았지만, 사람은 최상위의 잠재성으로부터 창조되고 생명은 거기서부터 파생되었다.

최상위는 최초의 원인 작용을 비롯할 수 없는 듯하지만, 성장의 촉매인 듯하다. 아버지는 유한한 우주 개념을 비롯하신다. 창조 아들과 영들은 시공에서 이 개념을 사실로 만든다. 최상위는 유한자 총체를 완성한다.

4. 유한한 하나님

최상위는 유한한 신이며, 진화 세계에서 우리가 벌이는 싸움은 최상위가 통치권을 얻으려고 기울이는 노력을 반영한다.

하늘 가는 필사자의 생애를 통해서 유한한 하나님의 체험적 통치권이 커진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므로, 신다운 성품의 한 조각을 인간의 손에도 맡긴다. 조절자의 계심을 파괴할 수 없지만, 진화하는 자아는 멸망할 수 있다.

인격은 인간의 개성을 파괴할 수 있고, 파괴된 개성은 개별 인간으로서 지속하지 않는다. 최상위는 여러 우주의 인간들 속에서 다시 표현을 찾지만, 같은 인격자로서 다시 표현되지 않는다.

유한자의 인격이 고립된 행동을 하더라도 최상위는 궁극에 출현한다. 개별 필사자의 인격은 최상위 앞에 하찮은 것이지만, 각 사람의 인격은 갈아치울 수 없는 가치를 대표한다.

우리가 자아를 표현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최상위는 우리와 함께 신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인류는 수고도 하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지 않는다. 총명하게 활동하지 않고는 최상위도 진화하지 않는다. 사람은 수동적 태도로 완전을 얻지 않으며, 최상위도 유한한 창조에 봉사를 베풀지 않고 전능자가 될 수 없다.

필사 승천자가 불멸하는 신다운 인품을 얻는 것은 최상위에게 달려 있다.

인격을 영적으로 변화시키는 조절자의 진보는 최상위의 통치권을 확대한다. 인간은 최상위 없이 진화할 수 없지만, 모든 인간의 진화가 완성되지 않고서 최상위의 진화가 완전해질 수도 없다.

필사 인간의 도전은 이것이다: 우주의 체험할 수 있는 가치 의미를 자기 재산으로 만들려고 결심할 것인가? 아니면 살아남기를 거절하고 최상위가 다른 사람을 기다리도록 버려둘 것인가?

현 시대에 큰 싸움은 잠재하는 것과 실재하는 것 사이에 있다. 자아가 파라다이스로 올라가기를 거절하는 한, 최상위의 표현은 대우주에서 늦어진다.

아버지는 필사 인간에게 조절자를 맡겼을 뿐 아니라, 최상위 미래의 극미 부분의 운명을 통제하는 권한도 맡겼다.

너는 너의 결정에 의존하는, 시간 세계의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릴 것인가? 동물처럼 게으름으로 최상위의 기대를 저버릴 것인가?

하나님은 먼저 사람을 사랑하고 그에게 불사의 잠재성을 수여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함에 따라서, 사람은 사실로 영원하게 된다.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신분보다 더 위대하게 만든다.

5. 창조의 대혼

최상위는 대우주에서 우주적 대혼(大魂)이다. 최상위는 또한 현실화되고 있는 신이다.

유한자의 지적 자아는 셋째 근원 중심으로부터 태어난다. 사람이 창조자의 뜻에 복종할 때, 자아를 잃는 것이 아니라 신의 모험에 참여함으로 점진적으로 커진다.

불멸의 혼은 물질 지성과 조절자가 함께 창조한 것이며 그 자격으로 파라다이스까지 올라간다.

아버지가 땅에서 예수의 일생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최상위는 하늘 가는 사람의 혼 속에서 현실이 될 것이다.

사람은 최상위와 하나되어 인격 신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의 체험적 반응은 최상위 체험의 일부가 된다.

사람이 행동할 때 최상위가 반응하며, 이 거래는 사실로 진보가 된다.

인간의 지능은 보조 지성 영들의 맥박 안에 거하며, 죽고 나서 인간의 자아는 보조자 회로에서 영구히 떨어져 나간다.

영적 회로의 경우에도 그렇다: 여러 우주를 올라가면서 사람은 이 회로들을 이용하지만, 인격의 일부로서 회로를 소유하지 않는다.

성령과 진실의 영은 지역 우주에서 베푸는 봉사이지만, 이러한 안내는 거기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네가 지역 우주의 영토를 떠날 때, 최상 존재의 영이 베푸는 봉사를 통해서, 지도하는 영이 여전히 너를 안내할 것이다.

이 다양한 회로들이 어떻게 최상위 안에 진화로 얻은 체험을 기록하는가? 최상 창조자들의 몸을 통해서 이러한 기록이 일어난다고 우리는 믿는다.

체험을 겪음에 따라서 조절자는 최상위와 비슷해지며, 진화하는 혼이 최상위 안에서 창조된다.

아버지께로 올라가는 동안, 사람들은 다만 유한한 것의 질과 양을 이용한다.

사람이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길 때, 사람은 체험하며, 그 체험의 의미는 언제까지나 그의 영원한 인품의 일부이다.

인간은 아버지에게 도달할 수 있지만, 그 지성이 유한하니까, 정말로 아버지를 이해할 능력이 없다. 유한자는 자체 안에 영원의 씨앗을 품고 있다. 진화로 성장 능력이 소모되었을 때, 유한자 총체는 궁극위를 찾아서 초한 단계를 시작하리라고 우리는 가르침을 받았다.

6. 최상위를 찾기

우리는 여러 우주에서 최상위를 찾지만, 찾아내지 못한다.

하나님이 너희의 신다운 아버지인 것 같이, 최상위는 너희의 신다운 어머니이다.

미가엘과 네바돈의 관계는 최상위와 유한 우주의 관계와 같다.

인간이 창조자의 뜻을 행하려는 행위는 우주적 가치가 있고, 어떤 조정 세력이 즉시 반응할 중요성이 있다.

진화하는 필사자의 혼은 조절자의 행위에서 생긴 아들이요, 최상 존재의 반응에서 생긴 자식이다.

최상위가 어머니로서 주는 유산이 아버지의 조절자 유산과 동시화될 때까지, 최후자의 생애에서 자아 실현이 계속될 듯하다.

일곱째이자 마지막 단계인 영 지위에 들어가고 나서, 신성을 깨닫는 시대가 뒤따를 것이다.

혼을 얻은 인간은 글자 그대로, 아버지 하나님과 최상 존재(어머니 하나님)이 낳은 진화의 아들이다.

인간의 존재에서 하나님이 가장 큰 체험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자주 잊어버린다. 하나님을 찾을 때, 사람들은 모든 것을 찾고 있다.

모든 참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체험을 통하지 않고서 최상위에게 가까이 가는 길은 없다. 현재 우주 시대에는 인간이 최상위에게 다가가는 길이 세 가지 있다:

(i) 파라다이스 시민은 하보나를 거쳐서 내려 오며, 최상 창조 성격자들의 다양한 활동을 연구함으로 최상위를 이해하는 능력을 얻는다.

(ii) 시공의 승천자들은 하보나를 거치면서 최상위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iii) 하보나 원주민은 파라다이스에서 내려오는 순례자와 일곱 초우주에서 올라가는 순례자들과 접촉함으로 최상위를 이해하게 된다.

진화 인간에게는 아버지께 접근하는 일곱 가지 접근법이 있고, 이 길은 각각 한 으뜸 영을 통과한다.

사람이 유한한 하나님을 찾지 못하게 막는 것은 사람의 한계 뿐 아니라 우주의 불완전함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최상위를 발견할 때까지, 어느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최상위를 발견하지 못한다.

너희는 아버지와 아들과 영을 발견할 수 있다. 최상위를 개인적으로 발견할 수 없어도, 너희는 최상위가 우주에서 활동하심을 차츰 인식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언젠가 최상위에 도달하는 것은 파라다이스 신의 영(조절자)과 융합하는 결과로 가능하다. 조절자가 앞날에 일곱째 단계의 최후자에게 드러낼 것은 최상위의 신성일 것이라 우리는 추측한다.

최상위는 무한하지 않지만, 유한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무한성 모두를 품는다.

체험으로 창조된 모든 것은 서로 의존하여 운명을 실현한다. 하보나와 일곱 초우주는 최대의 유한한 달성을 위하여 서로 필요하다.

하늘 가는 사람은 아버지를 발견할 수 있고, 하나님은 실존적이다. 그러나 모든 승천자가 동시에 최상위를 발견할 만큼 성숙해질 때까지, 하늘 가는 사람이 혼자서 최상위를 찾아낼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최상위도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사람은 마음 속에서 아버지를 발견할 수 있지만, 모든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서 최상위를 탐구해야 할 것이다.

모든 인격자가 완전해진 자아를 실현하는 것은 최상위에 도달하는 것과 동등하다. 모든 유한한 가능성을 소모하는 것은 마침내 최상위에 이르게 한다.

지진이 바위를 쪼개듯, 사람들은 갑자기 볼 만하게 최상위를 발견하지 않는다. 천천히, 참을성 있게 발견한다.

네가 아버지를 발견할 때 영적으로 올라가는 큰 원인을 발견할 것이다. 최상위를 찾아낼 때, 너는 파라다이스로 올라가는 생애의 큰 결과를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어떤 필사자도 나그네 길에 쓸쓸하지 않을 터이니, 걸음걸음 아버지가 옆에서 걷고, 거쳐 가는 길이 최상위의 계신 앞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7. 최상위의 앞날

최상위가 전능한 신으로서 마침내 솟아나면, 최상위는 영원한 아들처럼 성격화되고 파라다이스처럼 동력화되고 합동 행위자처럼 완벽하게 통일되리라 우리는 믿는다.

최상위의 앞날에 대하여 다음에 주의를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i) 최상위의 무제한 감독자들은 최상위가 진화를 마치기 전에 도저히 신이 될 수 없다. 그래도 빛과 생명 속에 안정된 우주들에 대하여 어느 정도 최상의 통치권을 행사한다.

(ii) 최상위의 지위가 완성된 사실이 될 때까지, 그는 궁극 삼자일체 안에서 활동할 수 없다. 그래도 궁극 삼자일체는 (최상위ㆍ최상 창조자들ㆍ총우주 건축가들) 지금도 제한된 실체이다.

(iii) 최상위는 우주 생물에게 완벽한 현실이 아니지만, 그는 칠중 신에게 현실이라고 추론할 이유가 많다.

유한자의 위쪽 한계에서 시간은 초월 시간과 합쳐지며, 거기서 순서가 얼마큼 흐려질지 모른다. 최상위는 그의 계심을 이 시간 초월 수준까지 예측하고 창조된 수준까지 반영하여 어느 정도 앞날의 진화를 예상하는지 모른다.

최후자 군단에 입단 허가를 받을 때, 필사 승천자는 삼위일체에게 선서하고, 이것으로 최상위에게 영원한 충절을 서약하는 것이다.

최상 존재가 분명히 나타날 때 세 가지 유한 초월 가능성을 품는다.

(i) 첫째 체험적 삼자일체에서 초한 공동 작업.

(ii) 둘째 체험적 삼자일체에서 공동 절대적 관계.

(iii) 가장 높은 삼자일체에서 공동으로 참여. 이것이 정말로 무엇을 뜻하는가 흡족한 개념이 없다.

이것이 최상위의 앞날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가설이다.

여러 초우주의 현재 목표는 잠재성 안에서 완전하게 되는 것이다. 다가올 시대에 불화(不和), 그릇된 조절, 잘못 적응하는 가능성은 초우주에서 궁극에는 없어지리라고 믿어진다.

아득히 먼 미래에, 최상위의 영 성격과 전능자의 권능은 나란히 발전했을 터이고, 이 둘은 최상 존재로서 사실이 되리라 추측된다.

현재 삼위일체의 행정가(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이 그의 대행(代行)이 되는 것이 아주 가능성이 있지만, 일곱 초우주 사이의 현재 경계는 차츰 사라질 것이다.

이때 아마 최상위는 유버르사에 몸소 거할지 모르고 대우주의 행정을 지휘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 미래 시절에 완전해진 대우주는 현재의 처지와 방대하게 다를 것이다. 아마도 어느 공간에 휴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래 쉬지 않는다! 궁극위 하나님의 수수께끼가 완전하게 된 이 시민들에게 도전할 것이다.

   
Tagged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