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5 편, 갈릴리 북부를 거쳐서 달아나다

글쓴이: 중도자 위원회

서기 29년 5월 22일 – 6월 9일

갈릴리 북부

이 일요일에 게레사 근처에 배를 댄 뒤에,예수와 스물네 사람은 벳세다 줄리아스 남쪽에 어느 공원에서 밤을 지샜다.

1. 어째서 이교도가 격분하느냐?

예수는 시편의 저자가 이 시절에 대하여 어떻게 말했는가 기억하라고 했다.

‘어째서 이교도가 격분하고 민족들이 헛되이 음모를 꾸미는가?’

"오늘날 너희는 이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보느니라. 그러나 시편 저자의 나머지 예언이 이루어짐을 구경하지 못할지니, 그가 사람의 아들에 대하여, 그리고 땅에서 이룰 그의 사명에 대하여 잘못된 생각을 품었음이라.

시편의 저자는 ‘두려움으로 주를 섬기라’고 너희에게 훈계하였느니라.

나는 너희가 믿음으로 신의 아들이 되는 높은 특권을 받으라 이르노라.

"어째서 이교도가 격분하느냐? 저희가 진실을 모르는 까닭이라. 어찌하여 너희는 쓸데없이 꿈을 꾸며 시드느냐? 너희가 진실에 복종하지 않는 까닭이라.

"그리스인을 생각해보라. 저희는 종교 없이 과학을 가졌으나 유대인은 과학이 없이 종교를 가졌도다.

"진실을 추구하는 자가 너희에게 마음이 끌리는 만큼, 너희가 올바른 것을 가리키느니라.

2. 전도사들이 코라진에서

5월 23일에, 예수는 베드로에게 열두 전도사와 함께 코라진으로 가라고 지시했고 그는 열한 사도와 함께 케자리아 빌립비를 향하여 떠났다.

베드로와 전도사들은 코라진에서 2주 동안 머무르면서 작은 무리의 신자들에게 하늘나라 복음을 전도했다.

베드로의 지시대로, 열두 전도사는 치유에 대하여 말을 별로 하지 않았고, 영적 진실을 열심히 전도하였다.

이 2주 동안은 전도사들에게 가장 보람없는 기간이었다.

6월 7일에 베드로는 전도사들을 한데 부르고 케자리아 빌립비를 향하여 떠났다.

수요일 저녁에 예수는 일생의 사업에서 실패로 보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많이 가르쳤다.

3. 케자리아 빌립비에서

케자리아 빌립비에서 2주 머무르는 동안에 사도들은 조용한 저녁 모임을 많이 열었고, 많은 신자들이 주와 이야기하려고 야영지로 왔다.

사도들은 새 국면이 시작되는 것을 깨달았다.

"하늘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신의 아들임을 받아들이는 영적 기쁨을 깨닫는 것"임을 알아듣기 시작했다.

케자리아 빌립비에서 머무른 것은 열한 사도에게 시험이었고, 이들은 베드로가 없어서 서운했다.

2주 동안 전향자를 거의 얻지 못했어도, 주와 날마다 회의를 하면서 유익한 것을 많이 얻었다.

진실을 구체적 신조로 만들었기 때문에, 유대인이 영적으로 침체되고 죽어간다는 것을 사도들은 깨달았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제를 사랑하기를 먼저 배움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인도하는 것이 최선임을 배웠다.

"내 형제 가운데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만큼 너희는 그렇게 나에게 행한 것이니라."

한 모임에서, 참된 종교는 사람이 가장 참된 확신에 진심으로 충성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얻었다.

종교적 열망이 겨우 물질적이면, 과학 지식이 늘어남에 따라서, 궁극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빼앗으리라, 그러한 종교가 영적이면 과학의 진보는 신앙을 흔들 수 없다고 예수는 훈계하였다.

참된 종교는 존재에서 생기는 긴장을 줄이고, 나날이 사심없이 봉사하는 믿음을 방출한다.

어떤 문명도 종교의 최선을 잃고는 오래 지속할 수 없다고 사도들에게 가르쳤다.

4. 페니키아로 가는 길

6월 9일, 벳세다에서 다윗의 사자들이 가져온 소식을 받은 뒤에 25명의 일행은 페니키아 해안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룻츠 가까이서 점심을 먹으려고 멈추었을 때, 시몬 베드로가 예수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우리가 적들의 위협을 받고 도망치나이까?"

토마스가 물었다: "우리 적들의 종교에 무슨 잘못이 있는가 알고 싶나이다."

5. 참 종교에 대한 말씀

이 강론은 현대의 말로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세계의 종교들은 두 가지 기원―자연의 기원과 계시적 기원―이 있지만, 어느 시대나 세 가지 형태로 종교적 욕구가 나타난다.

(i) 원시 종교. 본능적으로 물리적 자연을 믿는 종교.

(ii) 문명의 종교. 종교적 전통의 권위를 가진 지적 신학.

(iii) 참된 종교―계시 종교. 하늘 아버지가 선한 것을 깨닫는 것, 영의 종교.

원시 형태의 예배가 총명한 종족들의 종교에서 너무 많이 지속하는 사실을 그는 한탄하였다.

지적 종교는 교회의 권위로 버티지만, 영적 종교는 인간의 체험에 바탕을 둔다.

인류가 영적 체험을 널리 인정하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지적 동의(同意)만 요구하는 권위적 종교를 개인적으로 더 좋아하는 성향을 계속 보일 것이다.

권위를 내세우는 전통적 종교는 영적 충동에 대하여 쉬운 해결책이다. 그런 종교는 확신을 얻는 값으로, 신자들에게 시키는 대로 지적(知的) 동의를 요구한다.

이러한 종교적 위로를 좋아할 사람들이 땅에서 오랫동안 살 것이다.

이들은 사람이 혼자 힘으로, 하나님을 찾다가 찾아내는 모험을 포기한다.

권위를 내세우는 신학은 신자들에게 노력ㆍ투쟁ㆍ결심ㆍ진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선지자들의 신조를 권위의 종교로 만들었다.

우리는 새 종교를 선언하리니, 전통의 종교와 목숨을 건 싸움에 들어가려 한다.

너희 중에 누가 새 종교를 선포하면서 박해를 견디겠느냐? 아니면 확립된 종교에 순응하는 쉬운 길을 택하겠느냐?

말씀을 듣던 스물네 사람이 모두 일어나서, 충성을 표시하려 했다.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너희의 아버지께 용감히 대답하라."

안드레가 이들을 불러 모으자 예수는 말했다: "여행을 다시 떠나자."

오후 3시에 멈추었고, 베드로는 말했다: "우리는 더 듣고자 하나이다."

6. 종교에 대한 둘째 강론

이들이 산허리의 그늘에서 멈춘 동안 예수는 계속 가르쳤다.

너희의 동료들은 안전을 바라고 전통에 순응하기를 더 좋아하느니라.

내 아버지는 한 시대에 진리의 말씀을 주고 다른 시대에는 허락하지 않으면서 민족이나 세대를 차별하지 않느니라.

나는 너희에게 다시 태어나라 요구하였노라.

너희는 물려받은 민족의 신앙을 버리고 개인적 신앙을 얻을 것이요, 참된 영의 종교에 이를 것이라.

너희의 종교는 생생한 믿음을 얻는 실제 체험으로 바뀌리라.

권위의 종교는 안전한 느낌을 줄지 모르지만, 큰 대가를 치르느니라.

거짓 종교 선생들은 새로운 발견이 있을 때마다 놀라고, 진리가 새롭게 계시될 때마다 당황하느니라.

항상 옛 선지자들을 인용하고 이스라엘의 영웅들을 찬양하는 관습을 버리라. 어찌하여 인간의 존재에서 최대의 모험, 하나님을 너 혼자서 찾아내는 모험을 버려야 하느냐?

지성의 종교는 종족의 여러 가지 관점에 충실해야 하니까 결코 통일될 수 없고, 형제 정신은 오직 영의 종교를 위에서 부여함으로 이루어질 수 있느니라.

권위의 종교는 오직 사람들이 대립하게 만들며, 영의 종교는 사람들을 한데 모으느니라.

권위의 종교는 사람들에게 같은 신조를 요구하지만, 이것은 현재 세계에서 실현이 불가능하니라.

영의 종교는 같은 관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통찰력을 요구하느니라.

권위의 종교는 굳어진 신조로 변하며, 영의 종교는 사랑으로 봉사하고 자비를 베푸는 행위로 이끄느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이 전통적으로 무기력하게 되었다고, 누구도 이를 가벼이 여기지 말라. 모세로부터 아모스와 호세아 시절까지, 우리의 조상은 영원한 하나님의 그림을 늘 드러냈느니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만족스러운 모험이 하나 있으니, 신의 뜻을 행하려고 애쓰는 체험이라. 무슨 직업을 가져도,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음을 기억하라.

너희는 오래된 책에서만 하나님의 뜻을 찾지 말라. 영에게서 태어난 자는, 기원과 상관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릴지니라.

다수가 하나님에 관한 이론을 받아들이는 머리가 있어도, 영적으로 하나님의 계심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이것이 어린아이의 영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친 까닭이다.

너희 혼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면, 당장 다른 사람들의 혼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모든 인간과 창조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리라.

그러나 너희가 하나님을 찾아냈다고 사람들에게 증명하려고 애쓰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두 가지 증거가 너희가 하나님을 안다는 사실을 보여주느니라:

(i) 일상 생활에서 하나님 영의 열매를 맺는 것.

(ii) 전 생애의 계획이 하나님의 발견을 추구하면서, 너의 모든 것을 건다는 사실. 너는 하나님의 계심을 미리 맛보았느니라.

내 아버지는 꺼질 듯 가물거리는 가냘픈 믿음에도 늘 반응하시리라.

너희는 내 사도요, 너희의 종교는 신학적 피난처가 되지 말고, 체험하는 사실이 될지니라.

예수는 안드레에게 손짓하고 페니키아 방향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갈 길을 재촉하자."

   
Tagged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