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과 천진의 공자(孔子) 사당

1. 북경의 공묘
북경을 방문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곳이 공자의 사당이다. 공묘(孔廟)는 원, 명, 청 시대에 공자에게 제사를 드리던 곳이며, 현재 국자감과 통합되어 있다. 선사문(정문), 대성문, 대성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나라 성조 때 (서기 1302년)에 완공. 영락제 때 (1404년) 국자감으로 명칭 변경.



국자감에 있는 유리패방(琉璃牌坊).



시험 합격을 비는 기도문이 즐비하게 걸려 있다. 글쎄, 누구에게 빌었을까?



청대의 중국 최고학부 국자감의 교육 모습. 수나라 이후에 장안, 낙양, 개봉, 남경에 국자감이 설치되었고, 청대에는 북경에도 설치되었다.



공묘의 축소판.



進士題名脾. 시험에 급제하면 진사 명패에 이름이 올라간다.



과거시험에 대한 설명.

진사 시험에 1등이 되면 장원, 2등은 방안(榜眼), 3등은 심화(深花)이다.



과거보는 학생들이 만는 노트, 타이완의 어느 박물관.



과거 보는 학생들이 만든 컨닝 종이, 타이완의 어느 박물관.



공자 조각상



大成門
 

2. 천진의 공자 사당(祠堂)
천진의 문묘(文廟)는 서기 1436년에 세워졌고, 중국 전역에 공자의 문묘가 200여 개 있다지만, 천진의 문묘가 제일 잘 되어 있다는 소문이다.






공자 석상과 시험에 붙게 해 달라는 기도문



溫故知新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는 동양인의 정신에 불을 붙였는가 아니면 그 싹을 잘랐는가?







공자의 가르침을 그림으로 풀이한 것.



아버지를 세 살에 여이고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구하였다.



공자의 周遊天下圖.
기원전 497년 봄에 공자는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14년의 직업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큰 수확이 없어, 기원전 484년에 64세가 된 공자는 노나라에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친다.



주유천하시 공자의 수레는 이렇게 생겼다. 아마도 햇빛과 비를 막기 위하여 수레에 덮개가 있었던 듯하다.



공자가 역경(易經)을 읽으면서 책 끈이 세번 끊어졌다고.



孔子家語에 나오는 이야기. 공량유(公良 孺)는 공자의 제자였는데, 다섯 수레를 이끌고 공자를 수행하였다. 공자가 포(蒲) 땅을 지나갈 때, 공숙씨(公叔氏)가 반란을 일으키자 포 사람들이 공자의 길을 가로막았다. 공량유가 용감히 싸운 덕에, 포 사람들은 공자가 위나라로 가지 않으면 길을 비키겠다고 하여 공자는 그리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를 어기고 위(衛)나라로 갔다. 자공(子貢)이 왜 약속을 어기는가 묻자, 공자는 “강요로 맺어진 약속은 신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대답했다고 한다 (위키백과).

공자는 신(神)을 믿었을 터이지만, 신에 대한 가르침은 거의 없다. 자공은 옆질러 절받기로 공자에게서 신에 대한 논평을 얻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