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단(天壇)의 제사는 한국인이 중국인에게 가르친 것인가?

前門大街는 북쪽에 정양문(正陽門) 전루에서 천단로까지 남북으로 이어진 거리이다.

북경의 천단은 937년 요(遼)나라에서 건설했다고 하며, 천단 공원은 1420년 명나라의 영락 대제가 건설했다. 현재의 것은 1896년에 재건된 것이라 한다.

천단 공원은 유네스코의 문화재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대지 면적은 273만 평방미터로 자금성의 4배이다.

천단 공원은 원구단, 황궁우, 기년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구단의 출입문은 소향문을 들어서면 동심원으로 제단이 있고, 앞에는 동물을 잡는 제단이 있다.

물론 고종황제가 이를 본따서 원구단을 만들고 한 구석에 황궁우를 지었다. 이 건물은 위에서 보면 세 개의 팔각형으로 되어 있다.


천단(天壇) 공원 입구.

 

1. 기년전

기년전(祈年殿)은 위에서 보면 세 개의 동심원으로 되어 있다. 기년전은 다시 3개의 동심원 벽에 둘러 싸여 있다.

기년전을 둘러싸는 동그라미.

기년전의 내부. 호천상제(하늘에 계시는 상제)를 모시는 위패가 있다. 12 기둥(龍井柱)은 12달을 상징.

여기서 모형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황소들이 희생된다.

기년전 자체는 3개의 둥근 지붕의 건물이며, 3개의 동심원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고, 사방에서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중국의 황제들은 천자, 즉 상제의 아들이라고 자칭하고 하늘에 제사를 드림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권리를 정당화하였다. 중국의 천단은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난징(남경)에 大祀殿을 짓고나서 천지에 제사를 시작했고, 영락제 때에 북경으로 천도하여 1420년에 천단을 만들었다.

 

2. 황궁우

황궁우(皇穹宇) 출입문


황궁우 속


황궁우. 한국의 종묘처럼 역대 황제들의 신주를 모신 사당. 이 주위를 회음벽이 둘러싼다.

동배전. 여기는 태양, 북두칠성 및 화성,수성, 목성, 금성, 토성의 신을 모시는 위패가 있는 곳. 회음벽(echo wall)이 둘러싸고 있다. 작은 소리만 내도 반대쪽 벽까지 소리가 울린다고, 물론 모두가 조용할 때 그렇겠지.

황궁우

황궁우 내부. 못을 쓰지 않았다.

 

3. 원구단 (圓丘壇)

밑에서 본 모습

원구단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곳, 우리나라에서 농경문화가 형성되면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삼국 시대부터는 국가의 제천의식으로 시행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성종 8년 (982-997년)에 원구단을 만들었다. 지신(地神)에게 제사하는 단이 방형(方形)이나, 천신에게 제사하는 단은 원형으로 쌓았기 때문에, 원구단 또는 환구단으로 부른다. 고려 말 배원친명정책 이후 황제만이 하늘에 제를 지낼 수 있다 하여 폐지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천단과 단군 신화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한국인이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을 중국인에게 가르쳤는가 아니면 그들로부터 배웠는가 하는 문제이다.

단군신화에 따르면, 환웅천왕이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신시(神市)에 갔다고 한다. 바람과 비와 구름을 비는 제사를 거행하는 사제 또는 무당을 거느렸다는 이야기이다. 이 때는 제정 일치의 시대, 곧 사제가 임금이 시대였다.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은 곰 토템 부족과 호랑이 토템 부족이 환웅 족과 같은 편이 되고 싶어 했다고 말이다. 게다가 환웅 부족, 곰 토템 부족, 호랑이 토템 부족이 모두 옛 조선어로 의사를 통하는 부족이라는 뜻이다.

구약에는 하나님의 명대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 땅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죽이라고 명령했다 (신명기 7장) 하지만 여호수아가 여러 마을은 전멸했다고 하지만, 유대인들은 가나안 땅에 도착한 뒤에 가나안 사람과 무역하고 그들로부터 글을 배워 히브리 알파벳까지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호랑이 토템 부족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들이 원주민이었고, 곰 부족은 새로 이주민이라고 한다. (한단고기)

결국, 환웅 부족과 곰 부족이 합쳐서, 평안도 또는 그 부근의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어 고조선을 만들었고, 호랑이 부족은 따로 흩어져 후일에 예맥의 족속을 이루었다는 것이고 이들도 나중에 고구려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공자가 쓴 서경(書經)의 요전(堯典)에는 순(舜)임금 (기원전 2230년 경) 상제(또는 상디, 上帝)에게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서민호 교수) 이 외에도 시경(詩經)과 예기(禮記)에도 상제가 많이 나온다.

오소운 씨에 따르면,

“태조 3년 (1394년)에 삼국 시대 이래로 원구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기곡과 기우를 행한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경솔하게 폐할 수 없습니다. 사전에 기록하여 옛날 제도를 회복하되 이름을 원단이라 고쳐 부르기 바랍니다“고 하여 임금이 그대로 천제를 지냈으나 중국의 압력으로 결국은 1464년에 원구제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원구단이 하늘에 제사지내는 장소이고 유교의 조상숭배와 이념이 달랐음을 가리킨다. 제사 대상은 동방청제(靑帝), 남방 적제(赤帝), 중앙 황제(黃帝), 서방백제(白帝), 북방흑제(黑帝), 그리고 전체를 주관하는 호천상제(昊天上帝, 하늘의 상제, 또는 옥황상제)

오소운씨는 또한 하늘에 제사 지내는 풍습은 고조선에서 중국으로 흘러갔다고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일리가 있는 말이다.

8개의 동심의 띠로 되어 있고, 맨 가운데의 동그라미는 천심석이라고 한다.

정원

천심석(天心石). 동심원 중에서 맨 가운데 돌. 여기서 축문(기도문)을 드리면 소리가 잘 퍼지므로, 상제도 응답을 잘 할 것이라고. 오직 천자만 하늘에 제사를 드릴 수 있다 하고, 명대에 와서 중국은 한국에서 상제에게 제사지내는 것을 금지하여 결국은 이 제사가 폐지된다.
첫 테의 돌은 9개, 둘째 테의 돌은 18개, 셋째 테는 27개, 이런 식으로 돌의 숫자가 늘어난다.

황궁우와 기년전을 잇는 길.

원구단으로 들어가는 문.

靈星門

문을 지나면 원구단(圓丘壇, 세 개의 동심원)이 보인다.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장소이다. 1530년에 만들었다.

제단. 황소를 여기서 도살한 것 같다.

 

4. 상제에게 제사드리는 풍습은 중국인이 한국에서 배웠는가?
한국인이 하늘 님을 믿었듯이, 중국인은 상제(上帝)를 믿었다. 공자가 쓴 서경(書經)의 요전(堯典)에는 순(舜)임금 (기원전 2230년 경) 상제(또는 상디, 上帝)에게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서민호 교수) 이 외에도 시경(詩經)과 예기(禮記)에도 상제가 많이 나온다.

물론 우리는 하늘 님 또는 하느님이라 불렀고, 한자가 들어온 뒤에 이를 상제, 또는 옥황상제라 하였다. 오소운 씨에 따르면 상제 개념은 중국인이 한국인에게서 배운 것이라 한다. 그러나 고조선인이 믿은 것은 삼신일체 상제이다. 天神, 地神, 人神이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기독교 식으로, 하나님과 땅에 내린 성령과 사람의 아들이 된 예수가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그러나 三神一體 또는 삼위일체는 기독교가 생기기 이전에, 기원전 2700년부터 수메르 사람들이 믿었다. 아누(Anu)는 하늘의 첫째 신, 아버지 또는 신들 중에 제일 높은 이이다. 아누는 두 아들이 있는데, 하나는 엔릴 (Enlil), 곧 공기와 땅의 신, 창조하는 신, 그리고 엔키(Enki, 또는 Ea)는 물의 신, 지혜의 신이다. 이것은 고조선의 天神, 地神, 人神과 대체로 비슷하다. 몇 천년 동안 한반도까지 오면서 先古朝鮮 사람들은 삼신일체 개념을 다듬은 것 같다. 이론적으로 수메르인들의 것보다 더 낫다. 수메르인들은 길자메시 서사시(Epic of Glagamesh)에서 홍수 이야기를 하고 이것은 구약에 나오는 노아 홍수 이야기와 줄거리가 비슷하지만 1천년이나 앞선다.

안창범 교수에 따르면, 수메르어는 우리 말과 어순이 같다고 한다. 주어 다음에 목적어, 그리고 동사가 끝에 나온다. 안교수는 또한 공통으로 쓰이는 낱말을 많이 지적한다. 예를 들면: GUR=굴, NAR =노래, GAM MAL = 검은 말, KAL = 칼, MAL = 마을, BIL = 불, DINGIR =딩기르(몽고족 신), 단군, BIR =빌어, ABI =아비, 아버지, UMMA = 엄마, KI =(여)기, (저)기, BUKKU = 북, AKA-R = 아가 (딸), DAM = 닮아, ADUR =아들, GAL = 가람(강). 아비와 엄마가 같은 것은 우연히 그럴 수도 있다.

나머지 단어들은 접촉하여 빌려오지 않고서 우연이 같을 확률은 1억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것은 선고조선 시대에 우리가 서방에서 (우랄산 근처에서) 수메르 인과 접촉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옛날의 고조선 사람이 제사를 드리면서, 삼신일체 이론을 말이 통하지 않는 중국인에게 자상하게 설명했을리는 없다. 그러니 중국인은 한국인이 상제에게 제사드리는 것을 보고 흉내내기만 했고, 하늘을 우러러 중얼중얼 기도하는 것을 보고 하늘 님에게 제사드리는 것을 배웠으나, 삼신일체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제사에 쓰는 그릇은 商나라의 세 발이 달린 토기, 청동기를 사용했다. 중국인의 상제는 그저 하늘에 계신 상제요, 고조선의 상제는 삼신일체 상제였다. 이것은 고조선인으로부터 옛 중국인이 상제 사상을 반쯤 배웠다는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백만년 전서부터 중국인이 중국에서 진화했다든가 한국인이 한국 땅에서 진화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중국인이나 한국인 모두가 서방으로부터 몇천 년에 걸쳐서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각자 지금의 중국과 한반도에 정착한 것이다. 중국인에게 삼신일체 사상이 없다는 것은 중국인과 수메르인 사이에 접촉이 없었다는 것을 가리키고, 한국인이 삼신일체 상제를 믿었다는 것은 고조선 이전의 한국인이 수메르인과 접촉을 가졌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선고조선 시대의 한국인은 수메르인으로부터 하나님 개념을 배워서 중국인에게 상제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

최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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