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륵에 살던 수메르인

우륵 시기(기원전 4000 – 3100년)는 메소포타미아에서 도시 국가 우륵(Uruk)이 전성하던 시기이다. 이때에 수메르인이 도시 생활에 맛을 들인 시대인 듯하다. 이 시기 뒤에는 북쪽의 젬넷 나스르(Jemdet Nasr)로 중심이 옮아 간다. 아랍 사람들이 바빌론을 알 이락(al-Iraq) 이라고 부르는데, 이 이름은 우룩에서 온 것이다.

전성기 (기원전 2900년)에 우륵의 인구는 8만 정도 되었으리라 한다. 문명의 중심이 차츰 북쪽으로 옮아 갔고, 서기 3세기에 대체로 우륵은 버려진 도시가 되었다. William Kennett Loftus가 1849년에 이 옛 도시를 다시 발견하였고, 1900년대 초에 독일 고고학자들이 발굴에 착수하여 유물을 얼마큼 발견하였다.

1912년에 발굴팀이 묘사한 우륵의 모습.

1. 우륵에 살던 수메르인의 모습

수메르인 남자의 모습.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나뭇잎으로 아랫도리를 가렸다.

수메르인 여자의 옷차림. Ishtar Temple. 마찬가지로 나뭇잎으로 치마를 해 입었다.

2. 우륵의 출토품

돌로 만든 (생명나무)꽃. 기원전 3300-3000년. 수메르인은 인류의 어느 종족보다 생명나무의 전통을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다. 아직 셈 족이 메소포타미아에 많이 흘러들어오기 전이다.



돌 화분에 새겨진 생명나무 꽃. 기원전 3300-3000년.



우륵기의 돌 송아지. 우르에서 발굴.



우륵기의 석판(복사품). 키시(Kish)에서 발굴. 쐐기 문자가 초기에는 그림글자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5일 동안의 배급 품목. 시장 경제가 아니고 임금이 물품을 배급했던 듯하다.







우륵의 Eanna 성전을 장식하던 기둥, 기원전 1413년, 모자익이 박혀 있다. 후일에 로마인은 모자익을 많이 발달시켰지만, 수메르인에게서 배운 것이다.

최은관

 

 
Tagged 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