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 이야기 (1T)

  1편, 우주의 아버지

2편, 하나님의 성품

3편, 하나님의 속성

4편, 하나님과 우주의 관계

5편,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

6편, 영원한 아들

7편, 영원한 아들과 우주의 관계

8편, 무한한 영

9편, 무한한 영과 우주의 관계

10편, 파라다이스 삼위일체

1편에서 10편까지 이 열 편의 논문은 삼위(아버지ㆍ아들ㆍ영) 사이의 관계, 각 세 분과 우주 및 개인의 관계, 그리고 어떻게 세 분의 신이 일체, 하나가 되어 활동하는가를 설명한다.

삼위의 역할은 진화된 종교가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요, 따라서 이처럼 계시로서 사람이 알아듣도록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너무 진화된 종교보다 너무 앞서 갈 수 없으므로, 인류의 지능이 얼마큼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계시자들은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기독교를 포함한 어떤 진화된 종교에서도, 여기에 담긴 것보다 삼위일체에 관하여 더 자세한 설명은 없는 듯이 보인다.

  1편, 우주의 아버지
글쓴이: 신성한 조언자

1934년

우주의 아버지는 모든 사물과 존재의 첫째 근원 중심이다.

먼저 하나님을 창조자로 생각하라,

다음에 만물을 통제하는 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물의 무한한 지원자로 생각하라.

온 우주는 하나님의 작품이요, 그의 다채로운 생물이 사는 곳이다.

시간 세계 자녀들의 초월적 목표는 영원한 하나님을 찾아내고, 신의 성품을 이해하고, 우주의 아버지를 헤아리는 것이다.

인간의 최고의 포부, 온 몸을 불태우는 열망이 꼭 하나 있으니, 하나님을 닮는 것이다.

영원에 거하는 우주의 아버지로부터 최고의 명령이 떨어졌다, “내가 완전한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신처럼 완전하게 되도록 애쓰라고 하는, 이 훌륭한 명령은 투쟁하는 모든 인간의 첫째가는 의무, 가장 높은 포부가 되어야 한다.

신처럼 완전하게 되는 이 가능성은, 사람의 마지막이자 확실한 운명이다.

유란시아의 필사자는 무한한 의미에서, 도저히 완전하기를 바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필사(必死) 인간을 위하여 예비한 신성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하다.

의지가 신답고, 인격자의 동기가 완전하고, 하나님을 의식하는 모든 유한한 면에서 최종이요 완벽하다.

이것이 “내가 완전한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고 신이 내린 명령의 참 뜻이다. 우주들을 만든 하나님을 이렇게 숭고하게 찾는 것은, 모든 시공의 거주민이 겪는 최상의 모험이다.

1. 아버지의 이름 하나님은 온 우주에서 온갖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 첫째 근원 중심이 가장 빈번하다.

그 이름은 인간의 창조자 개념에 달려 있다.

우리가 그의 자녀인 것을 믿으면, 아버지라는 이름은 자연스럽다.

아버지는 형식적 예배나 수고를 강요하지 않는다.

저절로 마음에 우러나서 아버지를 알아보고 자원하여 예배해야 한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는 선택 이외에 사람은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다.

2. 하나님의 실체 하나님은 영 세계에서 근본적인 실체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가장 고귀한 작품”이 아니다.

조절자는 사람의 필사 지성 속에 살면서, 거기서 영원히 살아남는 불사(不死)의 혼이 생성되는 것을 도우라고, 파라다이스로부터 파송된 영 훈계자이다.

세 가지 현상이 조절자의 계심을 드러낸다.

(i) 하나님을 아는 지적 능력―하나님을 의식하는 것.

(ii) 하나님을 찾으려는 영적 욕구―하나님을 추구하는 것.

(iii)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 행하기를 바라는 것.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은, 과학적 실험이나 이치를 따지는 순수 논리로 결코 증명할 수 없다.

오로지 인간이 체험하는 영역에서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다.

3. 하나님은 보편적 영 너희가 “하나님의 자손”이기는 하지만, 아버지의 형태나 모습이 너희와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피와 살이 있지 않더라도, 영 존재들은 실재한다.

하나님을 헤아리기 위해서, 육체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필요는 없다.

지성(知性)은 물질에 붙어 있다. 이렇게 물질과 연결된 지성은 사람이 죽은 뒤에 살아남을 수 없다.

인간이 살아남는 것은 인간의 의지를 조정하고 지능이 차츰차츰 영의 인도를 받는 데 달려 있다.

물질에 굴종하는 필사자의 지성은 갈수록 더 물질적이 되며, 그 결과로 궁극에 인격이 소멸될 운명을 가진다.

영에게 굴복한 지성은 갈수록 더 영적으로 변화되고, 살아남아서 안내하는 신다운 영과 궁극에 하나가 된다.

나(신성한 조언자)는 영원자로부터 나왔고, 우주의 아버지가 계신 앞에 거듭하여 돌아갔기 때문에, 그가 사실로 계신 것을 알고 있다.

4. 하나님의 신비 하나님의 신비 중에 가장 신비로운 것은 필사자의 지성 속에 그가 깃드는 현상이다.

필사자의 육체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너는 여기 아래에서 인생이 끝나고, 필사자의 천막을 구성하는 티끌이 “온 곳으로 되돌아갈 때,” 깃드는 “영은 그 영을 주신 하나님한테로 돌아갈지니라.”

믿음의 힘으로, 유한자가 무한자를 인식하는 기적(奇蹟)을 일으킬 수 있다.

5. 우주의 아버지의 성격 하나님은 무한한 성격자이다.

필사자는 하나님의 몸을 볼 수 없더라도, 그가 신격자인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우주의 아버지는 (지역 우주의) 창조 아들들 안에 신성하게 계신다.

원시 종교는 인격을 가진 신을 가정했고, 이 신들은 사람의 모습을 따라 만들어졌다.

(섭리 시대에 내리는) 계시(啓示)는 하나님이 성격자라는 개념이 타당함을 확인한다.

이 개념은 오직 첫째 근원이 있다고 과학적으로 가정해야 가능하며, 우주의 하나라는 철학 관념 속에 임시로 암시되었을 뿐이다.

오로지 성격자로서 접근함으로 누구나 하나님이 하나임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신을 깊이 생각할 때, 성격자 개념은 형체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

물질인 몸은, 사람이나 하나님의 성격에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형태가 있다는 잘못은 인간 철학의 두 극단에서 나타난다.

유물론에서는 사람이 죽을 때 몸을 잃어버리니까 사람이 성격자로서 존재하기를 그친다. 범신론에서 하나님은 육체가 없으니까, 따라서 성격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영원ㆍ무한하고 보편ㆍ절대적이니까, 하나님의 지식은 자라거나 지혜가 늘지 않는다.

하나님은 유한한 인간이 추측하거나 이해하는 것처럼 경험을 얻지 않는다.

6. 우주의 성격자 하나님은 과학에 대하여 원인,
철학에 대하여 개념,
종교에 대하여 성격자요, 사랑의 아버지이다.

하나님은 과학자에게 시초의 물력이요,
철학자에게 통일성의 가정이요,
신자에게는 살아 있는 영적 체험이다.

인간은 유한한 자리에서 무한한 것을 바라보면서 성격자를 보고 이해하며, 하나님은 무한한 자리에서 유한을 바라본다.

사람은 가장 낮은 종류의 성격을 소유하고, 하나님은 가장 높은 성격, 아니 최상ㆍ궁극ㆍ절대 성격을 소유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신다운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선된 관념, 특히 창조 아들 미가엘이 유란시아에서 인간답고 신다운 성격을 보여줄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했다.

하나님과 가지는 체험, 하나님 안에 있는 체험은 지적 논리를 초월하고, 지적 논리로 헤아릴 수 없다.

예수의 일생은 하나님의 성격을 이상적으로 계시한 표본이다. 그 이전이나 이후에 하나님의 성품을 더 낫게 보여준 사람이 없다.

7. 성격 개념의 영적 가치 신의 성품은 진선미로 생각할 수 있으나, 진실이나 아름다움의 개념은 성격과 상관 없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신이 선하다는 관념은 그가 성격자라는 것을 가정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

과학이나 철학이나 신학도 하나님이 성격을 가진 것을 입증할 수 없다.

(불교에서는 신에게 기도를 드리지 않는데, 이는 신이 신자와 교통할 수 있는 성격/인격을 가지지 않았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파라다이스의 삼위일체는 신이 하나가 되어 있다는 진리를 파괴하지 않는다. 세 분은 하나와 같다.

삼위가 일체가 되어 있다는 진실은 내 계급(신성한 조언자)에게도 완전히 명백하지는 않다. 너희가 승천하는 동안 이러한 개념은 차차 명료해질 것이다.

   
  2편, 하나님의 성품
글쓴이: 신성한 조언자

1934년

사람이 가진 최고의 하나님 개념은 최초의 무한한 성격자에 대한 인간의 이상 안에 포함되어 있다.

네바돈의 미가엘이 준 다양한 가르침과 육신을 입고 살았던 훌륭한 필사 생애에서 아버지의 성품을 드러낸 것을 보고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최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육신화된 미가엘의 일생을 배경으로 삼으면, 우주의 아버지의 성품을 인간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조절자가 우리 지성에 깃들고 진실의 영이 내리지 않았다면, 우리가 아무리 애써 보았자, 무익할 것이다.

1. 무한한 하나님 우주의 아버지는 처음부터 끝을 보며, 어떤 우주에, 어떤 세계ㆍ체계ㆍ별자리에 있는 어떤 하위 존재가 겪는 어떤 실험과 어떤 모험도, 실제로 알아차리고 이해한다.

하나님에게는 아무 일도 새롭지 않고, 어떤 우주의 사건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양한 생물과 접촉하기 위하여 세 가지를 주선하셨다.

(i)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모습을 입고 (예수의 경우처럼) 사람의 경험을 겪는다.

(ii) 천사 무리와 기타 존재들이 사람을 인도한다.

(iii) 하나님이 직접 생각 조절자를 보낸다.

2.아버지의 영원한 완전성 아버지는 생명을 주고 인간에게 영생을 준다.

인간은 영원이 얼마나 긴가 헤아릴 수 없다.

하나님의 성품은 본래부터 완전히 선하다. 자의식을 가진 인간 모두에게 스스로를 주신다.

하나님은 불완전을 몸소 체험으로 겪을 수 없다.

3. 응보와 공정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그의 변함없는 법령을 고치라고, 그래서 그의 현명한 자연 법칙, 그리고 올바른 영적 명령의 작용으로 생기는 마땅한 결과를 우리가 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철없이 호소하다니, 얼마나 쓸데없는 일인가!

하나님의 정부에 대항하는 잘못과 계획하여 반항한 것에 대한 가장 큰 벌은 (실제로는 피할 수 없는 결과인데) 그 정부에서 개별 백성의 존재를 잃는 것이다.

마음을 다하여 죄를 지은 마지막 결과는 소멸이다.

존재의 정지(停止)는 보통 그 영역, 또는 여러 영역에서 섭리 시대나 새 시대의 판결이 있을 때 공포된다. 유란시아와 같은 세계에서, 이 판결은 행성의 한 섭리 시대 끝에 온다.

행성 회의로부터 창조 아들의 법정을 거쳐서,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재판소에 이르기까지, 사법권을 가진 모든 법정이 나란히 행동함에 따라서, 존재의 정지가 그런 때에 공포될 수 있다.

영생(永生)을 보장했을 뻔했던 선택과 최종 결정을 그 인간이 내리지 못할 때, 계속하는 생명이 타고 다닐 몸을 잃어버린다.

실체의 여러 사실 수준에서 생기는 어떤 우주 경쟁에서도, 높은 수준의 성격자는 궁극에 낮은 수준의 성격자를 이긴다.

4. 신의 자비 결코 신의 자애심을 불러일으키려고 하나님한테 어떤 영향을 미칠 필요가 없다.

인간의 필요는 아버지의 자비가 흘러내릴 것을 보장하기에 온통 충분하다.

아버지는 선한 성품 때문에 우주에 있는 자녀들 가운데 어느 집단의 어떤 구성원에게나, 지혜롭게 자비 베푸는 것을 도저히 아까워하지 않는다.

5. 하나님의 사랑 하위의 생물이(사제) 중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나님이 선하다는 최대의 증거는 조절자를 우리에게 보내고, 그가 너와 하나되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크게 계시한 것은 미가엘(예수)의 지상 일생에서 볼 수 있다.

너희가 쓰는 “사랑”이라는 용어는 아버지의 애정을 나타내는 데 적당치 않다.

6. 하나님은 선하시다 사람은 하나님이 크다고 두려워할지 모르지만, 선한 하나님이라야 믿고 사랑한다.

예수는 하나님이 각 사람의 아버지라는 것을 드러냈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우리를 사랑한다.

하나님은 격노하거나 복수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을 구원하고 그의 법은 죄를 없애버린다.

7. 신성한 진실과 아름다움 인격자들은 오직 체험이 미치는 데까지만 확신할 수 있다.

유물론(唯物論)이란 거짓 과학은 필사 인간을 우주에서 버림받은 자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한 부분적 지식은 악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것은 선과 악, 두 가지로 이루어진 지식이다.

진실을 인식하고 나서 행복이 뒤따르는데, 이는 진실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 종교의 큰 잘못은 (진선미 중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았으나, 과학의 사실적 진실과 예술의 아름다움과 연결짓지 못한 것이다.

진실은 일관성이 있고, 아름다움은 사람을 끌어당기며, 선은 안정을 가져온다.

   
  3편, 하나님의 속성
글쓴이: 신성한 조언자

1934년

낮은 계급의 창조된 지적 존재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으며, 따라서 이들은 더 알아보기 어려운 아버지의 불가시성을 보상해 준다.

파라다스 신들이 본래부터 절대적이고 무한하기 때문에, 아버지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신의 성품 중에서 어느 한 특징이 다른 것보다 먼저 있었는지 우리도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만약에 하나가 먼저 있었다면, 신의 창조자 성품이 모든 다른 것보다 우선할 것이다.

이 논문은 하나님의 여섯 가지 속성을 살펴본다.

1.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심 모든 창조의 총합보다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이 더 크다.

우주는 결코 무한한 하나님 전체를 담을 수 없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 존재할 뿐 아니라, 하나님은 또한 인간 속에서 산다.

너희가 죄를 지을 때, 너희는 깃드는 하나님의 선물을 괴롭힌다.

그가 인간의 지성 속에 갇혀 있고, 함께 생각 조절자가 악한 생각의 결과를 반드시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두루 어디에나 계시고, 공간은 장벽이 되지 않는다.

중앙 우주에서만 남이 알아 볼 수 있게 계신다.

하보나를 도는 여러 우주에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우리 눈으로 지켜 볼 수 없다.

시공 우주의 창조자 및 통치자들의 특권을 인정하여, 하나님이 거기서 계심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성격 회로와 조절자는 시공 우주에서도 독자적으로 활동한다.

첫째 근원 중심은 무제한 절대자 안에 잠재적으로 계신다.

이 절대자는 영원한 미래 우주, 아직 빚어지지 않은 우주의 저장소이다.

첫째 근원 중심은 무한한 영의 지성 회로에 잠재하시고, 우주 절대자의 긴장 속에 잠재하신다.

인간 서열이 가진 지성은 무한한 영의 딸, 진화 우주에 있는 신성한 봉사자 (성령)이 수여한다.

행성이나 별자리나 지역 우주에 하나님이 계신 것은 최상 존재의 진화하는 계심을 재는 척도가 된다.

지역 우주에 하나님의 계심을 보호하기 위하여, (루시퍼 반란처럼) 어떤 행성이나 체계가 암흑에 빠질 때, 상위의 창조 단위와 교제하는 것이 차단된다.

아버지의 계심이 변동하는 것은 하나님이 변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마음 속에서 아버지의 영향을 직접 좌우한다.

2. 하나님의 무한한 힘 신의 성품에 어긋나지 않는 한, “하나님에게 만사가 가능하다.”

모든 속성 중에, 사람은 신의 전능을 가장 잘 이해한다.

물질 에너지, 지성 에너지, 영 에너지, 이 세 가지는 아버지와 가까운 곳에서는 구별할 수 없다.

전능한 창조자의 활동은 멋대로인 듯 보이는 때가 있지만, 그렇지 않음을 내(신성한 조언자)가 보장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모두 목적이 있고, 영원히 최선을 고려한다.

시간 시대에는 부분의 복지가 전체의 복지와 다른 듯 보일지 모르지만, 영원에서는 그렇게 명백한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상당히 물질을 중시하는 너희의 관점이 장애가 되기 때문에, 너희는 신의 지혜와 친절을 깨달을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동기를 오해하는 것은 인간의 선견이 한정되고, 이해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의 아버지가 행하지 않는 많을 일이 진화 세계에서 일어난다.

하나님의 힘이 영적으로 나타나는 세 가지 조건이 있으니,

(i) 진실하고 아름답고 선한 그의 성품에 따라서,

(ii) 우주 성격자들의 아버지이므로 자비를 베푸려는 그의 뜻에 따라서,

(iii) 삼위일체의 공정함을 따르는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서.

3. 하나님은 만물을 아신다 “만물이 벌거벗었고” 그의 눈에 열려 있다.

“네가 티끌인 것을 기억하시니라.”

그의 성격 회로는 모든 성격자를 포함한다.

인간에 관한 지식은 내려오는 신의 아들을 통해서 간접으로, 그리고 생각 조절자를 통해서 직접 보충된다.

하나님의 결코 놀라지 않는다.

4. 하나님은 한계가 없다 한계 없는 우주에 끝없는 물력과 힘을 부여한 뒤에, 무제한 절대자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다. 하나님은 여전히 똑같이 무한한 잠재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도 마찬가지다.

우주의 수가 늘어나고 높고 낮은 존재들에게 지성을 계속 수여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전적으로 지혜로운 지성을 가지고 계실 것이다.

시간 세계의 필사자에게는 앞날이 있으나 하나님은 영원에 거하신다.

(너희와 같은) 유한한 지성은 아버지의 무한성을 이해할 수 없지만, 무한한 아버지의 사랑을 실제로 느낄 수 있다.

하나님께 다가가는 가장 귀중한 방법은 사랑으로 접근하는 것이니, 하나님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5. 아버지의 최상 통치 하보나 이후에 생긴 창조들과 연락하는 것은 아버지가 직접 하지 않고, 그의 아들 및 하위 성격자들을 통해서 연락한다.

아버지는 아들들을 통해서 다스린다.

이 통치자들은 행성 영주에서 끝난다.

사람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경우에 아버지는 반드시 뜻대로 하지 못한다 (자유 의지 때문에)

그러나 신의 계획이 한 행성의 운영을 지배한다.

진화 인간의 생명은 불가피한 것들에 시달린다.

(i) 용기는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용기를 길러주기 위하여, 어려움에 부딪치고 실망을 이기는 것을 요구하는 환경 속에서 사람을 길러야 한다.

(ii) 이타심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인간은 불공평한 상황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iii) 희망은 바람직한가? 인간은 불안하고 확실치 않은 상황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iv) 믿음은 바람직한가? 머리가 계산하는 것보다 더 많이 믿을 수 있도록 어려운 곤경을 사람에게 마련해 주어야 한다.

(v)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잘못의 가능성이 언제나 있는 세상에서 자라야 한다.

(vi) 이상을 찾는 것은 바람직한가? 항상 더 나은 것을 향하도록 자극하는 환경이 있어야 한다.

(vii) 충성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배반 당하고 버림 받는 가능성 속에서 견디어야 한다.

(viii) 사심(私心) 없는 태도는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인정과 명예를 받으려고 외치는 자아의 소리를 항상 듣고서 이를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ix) 기쁨은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기쁨의 맛을 누리기 위하여, 고통의 가능성이 늘 있는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하보나에 있는 완전한 존재들은 이와 같이 비교가 되는 것들이 없어도 본래부터 완전하기 때문에, 선을 선택할 수 있다.

필사 인간이 얻는 신다운 것은 무엇이나 체험으로 얻는 것이다. 하보나 존재들의 선천적 올바름과 달리, 필사 인간이 얻는 것은 피땀흘려 얻은 올바름이다.

하보나의 완전한 인간들은 이상주의자이지만 그렇게 태어났다. (물질적) 유혹을 이기고 이상을 추구하는 인간의 기쁨을 도무지 모른다.

그들은 사욕(私慾)이 없지만, 사욕을 추구하는 자아를 당당하게 정복하는 기쁨을 알지 못한다.

6. 아버지의 수위성 사심없는 마음으로 우주의 아버지는 권력을 넘겨 주지만, 아버지는 수위(제일 먼저)이다.

기계론적 철학자는 우주에 보편적 최고 의지가 있다는 관념을 거부한다. 그러면서 그 최고 의지의 작용(자연 법칙)을 존중하니, 터무니 없는 철학이다.

하나님을 인간처럼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첫째 근원 중심을 기계로 보는 기계론자는 어리식다.

하나님이 고통을 받는다면, 어떻게 어떤 성질의 고통을 받는지 모른다.

우주의 아버지의 특성은 미가엘(예수)이 육신화하여 산 일생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고 아들은 사람에게 봉사한다.

   
  4편, 하나님과 우주의 관계
글쓴이: 신성한 조언자

1934년

완전한 하보나 우주는 신의 성품을 만족하기 위하여 지었다는 것을 깨닫기는 쉽다.

진화하는 시간 순례자들을 위한 최종 학교로서 쓰이는지 모른다.

필사자를 완전하게 만들고, 최후 군단에 이른 뒤에 미래의 과업을 위하여 이들을 훈련시키는 계획은 우주의 지적 존재들의 중요한 관심거리이지만, 이들은 그 외에도 다른 할 일이 많다.

시공 우주에서 일하는 자들이 불완전하고 실수하기 때문에, 자연은 무한한 하나님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1. 우주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 아버지는 그의 목적을 이루고 인간을 부양하려고 아낌없이 세력과 성격자들을 동원해도 좋다.

우주의 아버지는 놀고 있는 신이 아니다.

우주의 아버지, 영원한 아들, 무한한 영이 활동하신 결과로 생기는 모든 현상의 작용을 나는 쉽게 분별한다.

어떤 작용은 세 잠재 절대자의 활동으로 보인다.

우연한 사건들로 보이는 것은 이 절대자들의 탓으로 돌린다.

2. 하나님과 자연 자연은 두 가지 요인이 시공에서 일으키는 결과이다.

첫째는 변함없는 파라다이스 신이요,

둘째는 파라다이스 바깥의 시공 우주에서 일하는 자들이 불완전하여 실수로 자연이 영향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은 무한한 하나님을 적절히 표현하지 못한다.

너희 세계에서 자연은 완전한 법칙이 지역 우주에서 변경, 제한된 것이다.

자연 세계에 결점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성품에 티가 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자연은 하나님이 아니다. 경배 받을 대상이 아니다.

3. 하나님의 변치 않는 성질 오랫동안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와 비슷한 자로 생각해 왔다.

창조자인 아들은 사람이 온 땅의 통치지가 되라고 의도하였다.

나무ㆍ돌ㆍ금, 이기적 포부의 우상 앞에 사람이 절하는 광경이 사람을 위하여 경계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일찍이 하신 일, 이제 하시는 일, 앞으로 하실 일 중에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사람의 유한한 머리가 하나님의 성질을 이해하게 만들려면, 신의 성품이 인격화되어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어야 한다.

4. 하나님을 깨닫는 것 하나님은 창조하는 영이자 절대 의지이다.

스스로 존재하니까, 절대로 독립되어 있다.

하나님은 변할 수 없다.

불변성이 움직일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의지에 따라서 절대적 명시를 수정할 수 있다.

하나님은 완전한 하보나 우주를 지으셨고, 모든 다른 창조자들의 아버지이다.

미가엘 계급 아들의 창조 의지는 아버지의 지혜에 전적으로 제한되지 않으며, 따라서 이들의 창조 의지는 더욱 활발하다.

아버지는 무한ㆍ영원하지만, 의지로 자아를 제한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을 우주의 아버지로 묘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나님은

과학에서 첫째 근원이요,

종교에서 인자한 아버지요,

철학에서는 혼자 힘으로 계시는 한 분이다.

과학에서 첫째 근원, 철학에서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가 종교에서 하나님인 것을 사람이 스스로 깨닫기는 어렵고 (이와 같은) 계시가 있어야 한다.

5. 하나님에 관한 그릇된 관념 종교적 전통을 기록한 책들에는 하나님을 이해하는 사람들의 체험이 허술히 보존되어 있으나, 우주의 아버지에 관한 정보의 원천으로서는 믿을 만하지 않다.

너희의 거룩한 책들은 삼위일체를 비롯하여 여러 하늘 존재와 천사들을 혼동해 왔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성을 냈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을 구슬리고 기분 상한 주를 달래려고 애쓰며, 희생물을 바치고 고행함으로 신의 은혜를 얻으려는 생각은 유치한 원시 종교에서 생긴다.

노여움을 풀게 하기 위하여, 죄 있는 자들을 위하여 죄 없는 자의 피를 흘려야 한다고 우기거나 가르치는 것은 인류를 사랑하는 하나님에 대한 모욕이다.

히브리인은 “피를 흘리지 않고는 죄가 용서될 수 없다”고 믿었다.

흠없는 아들이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죽어가는 것을 볼 때까지 하나님의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았다고 가르치다니! (하나님을 그렇게 고약한 분으로 생각지 말라.)

지구인은 우주의 아버지의 성품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과 미신에서 벗어날 것이다.

   
  5편,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
글쓴이: 유버르사에 있는 어느 신성한 조언자

1934년

사람에게 깃드는 조절자는 영원한 신의 일부이다.

하나님은 동급의 여섯 절대자의 실존적 실체를 통해서 그의 무한성을 분배했으나, 선(先)인격 분신을 통해서, 창조의 어느 부분과도 친히 연락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성격을 수여하는 특권, 그리고 성격 회로를 통해서 부모로서 성격 존재와 연락하는 특권을 유보하였다.

1. 하나님께 다가가는 법 하등의 지적 존재들을 아버지 앞으로 데려간다 하더라도, 인간은 우주의 아버지가 앞에 계신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 앞으로 가까이 가는 것은 네가 최고의 유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너는 아버지가 수여한 영과 언제나 즉시 교통할 수 있다.

필사자들은 지적ㆍ사회적ㆍ경제적 기회, 아니 도덕적 기회에 차이가 있어도, 똑같이 조절자의 계심을 누린다.

정직하게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바라면, 어떤 세력도 그러한 혼이 파라다이스 입구까지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너희 하나하나가 하나님께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나님 앞에 이르는 데 방대한 시간이 들지만,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을 의심하지 말라.

조절자와 영원히 합친 자는 누구나 이 영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아버지의 마음이 자식들의 탄원 소리가 듣기 싫어 닫힌 적은 없다.

2. 하나님의 계심 영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누구나, 그 속에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
인격자는 누구나 아버지의 품에 다가갈 수 있다.

창공에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님을 꿈꾸는 것은 얼마나 큰 잘못인가!

신다운 조절자와 사귀는 사실은 개별 신자의 일생에서 영의 열매가 얼마나 좋은가, 얼마나 열리는가 이것이 증명한다.

신과 교통한다는 증거는 영의 열매를 맺음으로 장차 나타난다.

3. 참된 예배 예배를 받는 분은 아버지이다.

온갖 간청은 영원한 아들 및 아들의 조직에 속한다.

이러한 기도(祈禱)는 보통 한 창조 아들의 관할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예배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기도는 자신이나 인간의 이익 요소를 담고 있으며, 이것이 예배와 기도의 차이이다.

예배는 아무것도 요청하지 않고, 예배자를 위하여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일상 생활의 실무는 무한한 영의 대리자들을 통해서 처리된다.

“너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아들에게 기도하고, 무한한 영의 지적 존재들과 일생의 세부를 해결한다.”

하나님을 찾는 필사 지성과 불사의 조절자가 함께 혼을 창조한다.

4. 종교에 나타나는 하나님 진화 종교에 담긴 도덕은 (벌을 받을까 하는) 두려움의 추진력으로 사람을 앞으로 민다.

계시 종교는 하나님을 찾으라고 사람을 끌어당긴다.

다신교에서 일신교의 싹이 튼다.

철학과 예술은 인간의 비종교 활동과 종교 활동 사이에 끼어 있다.
어떤 종교도 신을 예배하라, 인간이 구원 받는다는 교리를 가르친다.

불교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약속한다.
유대교는 사람이 올바르면 번영할 것을 약속한다.
종교는 아름다움의 실현을 가르친다.

기독교는 죄에서 구원받는 것을 가르친다.
모하메드교는 유대교 및 기독교의 도덕 기준을 벗어나게 한다.
예수의 종교는 자아를 벗어나는 것이다.

히브리인의 종교는 선에, 그리스인의 종교는 아름다움에 기초를 둔다. 한편 두 종교가 진실을 추구했다.
조로아스터교는 도덕률을 가르쳤다.
힌두교는 형이상학의 종교요, 공자는 추종자에게 윤리를 가르쳤다.

예수는 봉사하는 종교를 실천했다.

그리스인의 종교: 너 자신을 알라.
히브리인의 종교: 하나님을 알라.
기독교인의 종교: 예수 그리스도를 알라.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라.

한 종교의 영적 지위는 신자가 어떤 성질의 기도를 드리는가로 측정해도 좋다.

인간답고 질투하는 하나님 개념은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넘어가는 불가피한 과도기 현상이다.
신을 인격화하는 개념은 진화 종교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이다.

기독교의 하나님 개념은 세 가지 가르침을 통합한다.

(i) 히브리인의 개념: 하나님은 올바르다.
(ii) 그리스인의 개념: 하나님은 통일한다.
(iii) 예수의 개념: 사랑의 아버지이다.

기독교의 교리에 일관성이 떨어진다. 초기 기독교 교리가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나사렛 예수, 타르수스의 바울의 종교적 체험에 기초를 두었기 때문이다.

예수가 죄 없다는 것보다 사랑으로 봉사한 것을 생각하라.

5.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 도덕은 동물 수준을 초월하지만 진화로 얻은 재산이다.
도덕은 이성의 가장 높은 분야에서 선택하기를 요구한다.

영적 체험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 그를 닮으려고 애쓰기를 요구한다.

종교는 도덕이 생긴 뒤에 인간의 성장을 겉으로 드러낸다. 네 수준에 침투한다:

자아를 보호하는 물리적 수준
친교하는 사회 수준.
이성이 활동하는 도덕 수준.
신을 예배하고 우주와 친교하는 영적 수준.

과학자는 하나님이 첫째 근원이라고 본다.
예술가는 하나님이 아름다움의 이상이라고 본다.
철학자는 하나님이 우주를 통일한다고 본다.
종교가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다.

사회에 봉사하는 것은 도덕적 생각과 종교적 생활에서 생기는 결과이다.

진화된 종교는 계시된 종교를 받아들이는 수준까지 사람을 이끌었다. 종교의 질은 다르지만, 전자는 생물학적 종교요, 후자는 시대적으로 계시되는 종교이다.

인간의 논리로 따지고 추리해도 신이 안에 계신다는 개념, 하나님이 모든 개인 안에 계시고 그 일부라는 개념을 신이 온 우주를 지배한다는 관념과 조화시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도 필사자는 종교적 체험에서 세 가지 만족을 얻는다:

(i) 지적 만족: 인간의 의식이 조화된다.

(ii) 철학적 만족: 사람의 이상이 실현되는 것을 즐긴다.

(iii) 영적 만족: 신이 동반하는 체험을 맛본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세 가지 요소.

(i) 지적 의식: 하나님 관념을 이해하는 것.
(ii) 혼 의식: 하나님의 이상을 깨우치는 것.
(iii) 영적 의식: 하나님이 영 실체인 것을 깨닫는 것.

지성이 하나님을 믿고, 혼이 하나님을 알고, 지성과 혼이 하나님을 바랄 때, 인간이 살아남는 것이 보장된다.

조절자가 깃드는 것이 시작이며, 불멸의 혼이 살아남는 것을 보장한다.

6. 성격자인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성격을 부여한다 (개체의 자의식이 시작된다)
아버지는 마찬가지로 신의 뜻을 행하기를 택하는 모든 유한 성격자가 돌아갈 운명이다.

성격은 신비 중의 하나이다. 성격의 여러 요소는 잘 알아도 우리는 그 본질이 무엇인가 잘 모른다.
지성 자질만으로 인격이 아니요, 영이나 물리적 에너지도 인격이 아니다.

인격이란 물질ㆍ지성ㆍ영 에너지가 결합되고 조정된, 이 살아 있는 조직에 아버지 하나님이 혼자 수여한, 우주 실체의 그 질과 가치이다.

인격은 점진적으로 얻는 것도 아니다. 물질 인격이거나 영적 인격일 수 있지만, 인격은 있든지 아니면 없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인격이 아닌 다른 것들은, 파라다이스 아버지가 직접 행위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결코 인격을 가진 자의 수준에 다다르지 못한다.

물질적 자아는 인격과 신분, 현세의 신분이 있으며, 선(先)인격 영 조절자는 영원한 신분이 있다.
하나님은 모든 수준의 성격자를 친히 의식하고 연락을 가진다.
하나님은 너희의 아버지요, 너희는 모두 행성에서 낳은 자식이다.

   
  6편, 영원한 아들
글쓴이: 어느 신성한 조언자
1934년
영원한 아들은 우주의 아버지의 “처음” 성격 개념과 절대 개념의 완전한 표현이다.

인간이 이해하기 쉽게 만들려는 목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처음” 생각이라고 말하지만, 영원한 아들은 시간적 기원이 없다.

우주의 아버지는 첫 생각이 있을 수 없고, 영원한 아들도 계시기 시작한 때가 있을 수 없다.

그렇기는 해도 필사자의 머리는 시간적 순서를 이해하므로, 영원에 있는 관계들을 시간적 순서로 설명하라고 나(신성한 조언자)는 지시를 받았다.

영원한 아들은 아버지의 절대 성격자 개념이 영으로 성격화한 것이다.

신들의 영원한 관계에 대하여 시간적 관점을 가진 인간이 알아듣도록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1. 영원한 아들의 신분 아들은 신의 둘째 분이며, 만물을 (아버지와) 공동으로 창조한 분이다.

아버지는 처음에 창조자이고 다음에 통제자이다.
아들은 처음에 공동 창조자이고 다음에 영적 행정가이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하지 않고는, 결코 창조자로서 몸소 활동하지 않는다.

영원한 아들의 한 아들(예수)이 유란시아에 온 적이 있다.

멜기세덱들은 그를 아들 중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유란시아에서는 이 영원한 아들과 네바돈의 미가엘(예수)를 혼동해 왔다.

2. 영원한 아들의 성품 영원한 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아들의 성품은 영 아버지와 온통 같다.

아들은 아버지처럼 초월적으로 올바를 뿐 아니라, 아버지의 거룩한 성질도 가지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가 가진 신의 특성과 영적 속성을 모두 소유한다.

두 분은 신성한 영을 무한한 영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준다.
두 분의 선한 정도에는 차이가 없다.

3. 아버지의 사랑의 직분 하나님이 사랑인 것처럼, 아들은 자비이다.

아들은 아버지보다 더 사랑할 수 없지만, 이 아들은 모든 아들이 가지는 아들 체험을 같이 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다.

아들은, 비천한 인간을 사랑하고 시간 세계의 신분 낮은 인간에게 자비를 보이라고 아버지를 설득하는 천한 일에 종사하지 않는다. (설득하려고 하지 않아도 이미 사람을 사랑한다.)

영원한 아들의 사랑은 어머니의 애정에 가깝다.

4. 영원한 아들의 속성 아들은 오직 영의 분야에서만 전능하다.

우주에서 필요 없는 기능의 중복은 없다.

영원한 아들은 영적으로 두루 계신다.

신비의 훈계자(조절자)처럼 네 안에 있지 않다.
아버지처럼 아들은 모든 것을 안다.

영원한 아들은 지역 우주에 있는 파라다이스 아들들과 똑같이 참을성 있고, 생각이 깊다.

아들의 속성을 이해하려면 아버지의 영적 속성을 보기만 하면 된다.

5. 영원한 아들의 한계 아들은 물리적 영토에서 친히 활동하지 않는다.

영원한 아들은 신 절대자의 무한에 본래 있는 영 잠재성을 침범하지 않는다. 이 잠재성이 현실화될 때, 아들의 영 인력 회로에 붙잡힌다.

아버지가 성격을 생물에게 주신다.

아버지나 영과 함께할 경우에만, 아들은 성격을 공동으로 창조한다.

아들은 아무에게도 성격을 주지 않고, 결코 혼자서 성격 존재를 창조하지도 않는다.
아들은 비성격 실체를 창조하는 능력이 있다.
아들은 창조자 특권을 물려주는 데 제한이 있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창조 아들들을 생산한다.

이 동급의 아들들이 생산되고 나서, 이 창조자 특권은 물려줄 수 없다.

영원한 아들은 그의 성품을 조각낼 수 없다.
아버지와 영처럼, 아들은 자아의 개별화된 부분을 다른 개체에게 수여할 수 없다.

신다운 절대 성격자는 부서지거나 조각날 수 없다.

6. 영 지성 유한ㆍ우주ㆍ물질ㆍ성격 수준에서 필사 인간은 (다른 자의) 지성을 깨닫는다.

사람은 또한 인격 이하 (동물) 수준에서 활동하는 살아 있는 유기체에서 지성 현상을 지켜보지만, 초물질 존재와 결합되었을 때, 그리고 순전한 영 성격자의 일부인 지성의 본질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지성에 해당하는 것, 즉 남을 인식하고 남에게 인식될 수 있는 능력은 신에게 저절로 생긴다.

아버지와 아들이 가진 지성의 가장 좋은 예는 생각 조절자의 선(先)지성이다.

영원한 아들의 영 성격을 이해하려면, 아마도 너희가 네바돈 지역 우주에서 상물질(上物質) 승천을 마치고 나서, 영 지위를 얻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7. 영원한 아들의 성격 아들은 절대 성격이요, 아버지는 아버지 성격이다.

성격 존재는 누구나 우주의 아버지로부터 성격을 얻는다.

아들의 하늘 같은 성격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인간의 머리가 알아듣게 전달하기는 불가능하다.

8. 영원한 아들의 현실화 아들이 어떤 분인가 이해하려면, 너희는 아버지가 어떤 분으로 계시되었는가 살펴야 한다.

낮은 계급의 지능은 이 두 분을 거의 구별할 수 없다.

우주 행정에서 두 분이 한데 얽혀 있으니 두 분을 구별하는 것이 반드시 가능하지는 않다.

하늘 대리자들의 도움을 받으면, 필사자는 분명히 파라다이스에 다다르고, 이 아들이 몸소 계신 앞에 설 것이다.

영원한 아들에 대한 개념보다, 한때 유란시아에서 육신화하여 살았던, 한 창조 아들(예수)의 성격에 대한 너희의 개념이 더 선명할 것이다.

창조 아들의 성격은 더 이해하기 쉽다.
물질적 체험과 상물질 체험을 겪고 하보나를 거치면, 아들을 더욱 이해하게 된다.

이 무한한 존재가 성격인 것을 깨닫는 것은 필사자의 물질 지능의 한계를 넘지만, 의심하지 말라.

나(신성한 조언자)는 이 아들의 신성한 계심 앞에 여러번 서 보았다.

   
  7편, 영원한 아들과 우주의 관계
글쓴이: 어느 신성한 조언자

1934년

영원한 아들은 동급의 아들 및 종속되는 아들들에게 가능한 모든 것을 주려고 애쓰니까, 아버지와 같다.

파라다이스 섬은 모든 물질을 훌륭하게 지원한다.

마찬가지로, 아들은 영 실체의 지원자로서, 파라다이스 섬의 평형추이다.

영원한 아들은 영적 실체들이 존재하는 광대한 창조를 지원하지만, (자유 의지 때문에) 영 성격자들의 행위에 몸소 책임을 지지 않는다.

1. 영 인력 회로 영원한 아들은 절대적ㆍ영적 통치권을 행사한다.

글자 그대로, 모든 영 실체, 그리고 영적으로 변화된 모든 가치를, 말하자면, 그의 손바닥에 쥐고 있다.
이 영적 인력 통제는 시간과 공간에 상관 없이 작용한다.

영 에너지는 전달하면서 줄어들지 않는다.
시간의 지연을 겪지 않고 공간을 지나면서 감소되지 않는다.

순전한 영 에너지가 시공을 초월하는 것은 아들의 절대성 때문이고, 무한한 영의 반인력(反引力) 때문이 아니다.

물질로 조직된 에너지가 물리적 인력에 민감한 것과 같이 영 알맹이는 영 인력에 민감하다.

아들의 영적 인력은 아들 계급에 약하게 본래부터 있다.

어느 세계ㆍ민족ㆍ국가, 또는 신자 집단에도, 영적 성격자와 영의 감화를 받은 성격자들은 영적 단결을 이룬다.

영원한 아들의 영적 계심의 작용은 예측할 수 있으나, 예측할 수 없는 현상이 생기는 것은 영적 잠재성 영역에서 신 절대자가 활동하기 때문이다.

영원한 아들은 실재하는 영적 분야를 지배하며,

신 절대자는 잠재 영적 분야를 지배한다.

영(靈)은 신 절대자의 잠재성으로부터 솟아나는 듯하다.
영의 마지막 운명은 아들의 영적 인력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것이다.

2. 영원한 아들의 행정 파라다이스로부터 하보나를 지나서 일곱 초우주 영역으로 가면서 영원한 아들이 친히 행하는 활동이 줄어드는 것을 우리는 탐지한다.

아들은 초우주에 몸소 살지 않는다.

여기서 영원한 아들은 파라다이스 아들(미가엘)들의 몸 안에 계신다.

3. 영원한 아들과 개인의 관계 하보나에서는 아들의 영이 감싸는 것을 승천자들이 의식하게 된다.

아들의 영은 시간 순례자의 지성이나 혼에 깃들지 않는다.

필사 지성은 하나의 물질적 장치로서 생애를 시작하며, 차츰차츰 영 인력에 민감하게 되고, 궁극에 영 존재가 되어 최후 군단에 소집된다.

최고의 영적 가치를 가진 생각이 너의 의식에서 표현되면, 영원한 아들에게 번개처럼 전해진다.

너의 기도가 이기적이고 물질적이면, 이를 영원한 아들에게 전할 기회가 없다.

동기가 되는 생각, 영적 내용이 바로 필사자의 간청을 정당하게 만든다. 말은 하나도 가치가 없다.

4. 사람을 완전하게 만드는 신의 계획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가 되어 이 거대한 계획을 작성하고 집행하며, 무한한 영의 협조를 얻는다.

(i) 점진적 달성 계획, 진화로 승천하는 방법.

(ii) 수여 계획, 영원한 아들 및 동격의 아들들이 아버지를 계시하는 사업. 반란이 있을 경우에 이 아들들이 구출자로 활동한다.

(iii) 자비 계획. 셋째 근원 중심의 성격자들 (천사 계급) 필사자들의 승천을 돕기 위하여 봉사한다.

영원한 아들은 이 하늘 사업을 무한한 영과 나누어 맡는다.

5. 수여되는 영 이 수여 계획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은 진화 인간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었다.

아버지가 선(先)인격 생각 조절자를 선사하여 연락하는 것처럼 영원한 아들은 인간과 바로 연락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 앞에 설 수 있을 때까지, 신의 아들이 되는 정도를 단계적으로 낮추어, 때로는 바로 사람이 되어, 지음받은 인격자들에게 가까이 간다.

아들의 본질, 순전한 성격인 본질은 조각낼 수 없다. 따라서 조절자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인간의 모습을 입고 육신화한 것처럼, 실제 인간으로 육신화해야 한다.

최초의 미가엘, 처음으로 낳은 창조 아들은 필사자 중에서 처음으로 그랜드판다가 하보나에 도달한 시절에, 필사자들과 함께, 한 회로에서 다른 회로로, 몸소 여행했다.

영원한 아들은 모든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영감이 된다.

6. 하나님의 파라다이스 아들 내려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영원한 아들의 성품을 보여주려고, 영원한 섬에서 바깥으로, 온 우주로 나간다.

우주의 아버지와 영원한 아들이, 새롭고 독창적인 성격 개념을 기획할 때마다, 바로 그 순간에 새로운 창조 아들이 성격화된다.

창조 아들은 시간 우주로 나가서, 무한한 영의 창조 대리자의 협조를 얻어, 한 지역 우주의 조직을 마친다.

이 아들들은 자기가 만들어내는 것만 관리한다.

아들과 영은 심판 아들을 성격화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영은 한데 뭉쳐서 또한 삼위일체 교육 아들을 성격화한다.

파라다이스 신에 기원이 있는 아들들은 모두 영원한 아들과 직접 교통한다. 공간에 제약을 받지만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7. 아버지를 최상으로 계시하는 것 아버지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모두 영원한 아들과 파라다이스 아들들로부터 나온다.

하나님의 성질은 아들의 몸 속에서 더 나아질 수 없다.

아들의 성질과 성격은 비성격인 것, 비영적인 것을 벗어버림으로 확대된다.

한때 인간이었던 존재에게는 아버지보다 영원한 아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한때 땅에서 사람의 아들이었던 하나님의 아들이 드러낸 신의 속성을 명상하면 너희는 영원한 아들의 성품을 더욱 이해할 것이다.

   
  8편, 무한한 영
글쓴이: 유버르사의 신성한 조언자
1934년
영원히 오래 전에, 우주의 아버지의 처음 생각은 아주 완전한 말씀을 영원한 아들 속에서 발견하신다.

생각 하나님과 말씀 하나님에게, 함께 행동할 무한한 대리자를 바라는 소망이 뒤이어 생긴다.

이제 우리는 무한한 영(신의 셋째 분)의 영원한 기원과 마주친다.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한 행동, 절대적 생각을 집행하는 것을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무한한 영이 완전히 성숙한 모습으로 솟아난다.

너희가 신들의 관계를 알아들을 수 있게 하려고 우리는 신들의 기원의 순서를 이렇게 늘어놓는다.

실제로 세 분 모두가 영원부터 존재하며, 따라서 실존적이다.

삼위는 비롯하거나 끝나는 날이 없는 분들이다.
지금 계시고, 언제나 계셔 왔고, 또 늘 계실 것이다.
뚜렷이 개별화되었지만, 영원히 연합된 세 분이다.

1. 행동의 하나님 무한한 영이 성격화됨으로, 신의 집합이 완벽하게 된다.

무한한 영의 첫 행위는 아버지와 아들을 알아보는 것이다.
영은 하나님에게 영원히 충성할 것을 서약하고 아들에게 언제까지나 의존함을 인정한다.

영원의 집단이 확립됨으로 삼위일체는 실존한다.

행동의 하나님이 움직이자, 고요하던 공간 저장소가 술렁인다.

10억 개의 완전한 구체들이 번쩍 생긴다.

영원히 아득한 이 (가정된) 시각에 물질 우주는 없지만, 10억 개의 세계가 물질화되는 순간에, 파라다이스의 영구한 손아귀에 이것들을 장악하는 인력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다.

영적 에너지가 번쩍 생기는 순간, 영원한 아들의 영적 인력에 붙잡힌다.
두 가지 인력 (물질 및 영)으로 둘러 싸인 우주는 무한의 에너지와 접촉하고 신의 영 속에 잠긴다.

지성이 의식하도록 생명을 심을 토양이 이처럼 마련된다.

하보나 우주에 존재 잠재성을 가진 씨앗들 위에 아버지가 행동하고 생물 성격자들이 생긴다.

무한한 영은 하보나 세계들의 탄생과 동시에 영원하게 된다.

이 풍운의 시절에 대하여 아무 기록이 없다.

무한한 영은 그가 성격과 의식하는 존재를 얻음과 동시에, 중앙 우주가 영원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뿐이다.

간추려 말하면, 무한한 영은 자기가 영원하니까 중앙 우주도 영원하다고 증언한다. 이것이 온 우주 역사의 전통적 출발점이다.

이 사건 건너에는 아무도 탐구할 수 없는 영원의 사건들과 무한의 연못이 깔려 있다.

잠시만 살고 공간에 제약 받는 필사 인간이 알아듣게 하기 위하여 하나의 친절을 베풀려고 우리는 무한한 영의 기원을 이렇게 묘사한다.

아들과 영은 아버지와 공동으로 영원하다고 우리는 모든 생물에게 가르친다.

영원에 계신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은 물질적으로 생각하는 너희에게 충분히 벅찬 일이다.

먼저 부모와 자식 관계를 통달하고, 이 개념을 확대하여 아이들은 현실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이가 자라면, 공동체ㆍ민족ㆍ세계에 적응할 수 있고 지역 우주와 초우주의 관계에도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2. 무한한 영의 성품 합동 창조자는 영원부터 계시며, 아버지와 아들과 하나이다.

여러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무한한 지성, 영 중의 영,

물질 인간은 물질을 기본 실체로 보며, 영과 지성은 물질에 뿌리를 둔 가설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무한한 영을 사람은 탐구할 수 없고,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영이 절대적인 것을 느끼려면, 아버지가 무한하고 아들이 영원한 것을 경외할 필요가 있다.

무한한 영은 아버지나 아들만큼 신비스럽지 않다.

합동 창조자는 아버지의 무한성을 놀랍게 드러낸다.

총우주가 무한히 확장된다 하더라도, 무한한 영의 영적 계심, 에너지 통제, 지성 잠재성은 적당할 것이다.

무한한 영은 영원한 아들의 자비 속성을 닮았으며, 삼위일체의 자비를 대우주에 베푼다.

신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 같이, 무한한 영은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낸다.

선(善)이 아버지에게서 기원을 가지니까, 영이 아버지보다 더 선할 수는 없다.

3. 영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아들은 아버지의 처음 생각이 말씀으로 표현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합동 행위자도 처음 창조 개념이 완전히 집행된 것이다.

셋째 근원 중심은 중앙 우주와 함께 동시에 영원하게 된다.

영이 성격화한 뒤로, 아버지는 더 이상 우주 창조에 친히 참여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될 수 있는 대로 모든 것을 아들에게 맡긴다.

아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모든 권능을 합동 창조자에게 수여한다.

아들과 합동 창조자는 하보나 이후에 존재하게 된 모든 우주를 계획하고 지었다.

아들의 한 창조 아들과 영의 한 창조 영이 너희의 지역 우주를 지었다.

인간을 완전에 도달하게 만드는 아버지의 계획을 아들이 받아들인 그 순간에, 승천 계획은 아버지와 아들의 계획이 되었고, 영은 이를 집행하는 합동 행정가가 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협력에 대한 모든 지식은 영을 통해서 얻는다.

아들은 우주의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유일한 길이며, 무한한 영은 영원한 아들 앞에 도달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하늘 가는 순례자는 무한한 영을 먼저 만나게 된다.

셋째 분은 둘째 분과 첫째 분을 덮는다.

따라서 아버지와 아들에게 인사드릴 자들은 모두 셋째 분을 먼저 알아보아야 한다.

4. 신성한 봉사의 영 물질 세계에서는 파라다이스의 인력이 만물을 함께 붙들어 둔다.

영적 세계는 이와 평행한다. 여기서 아들의 말씀이 육신화되었을 때, 이 아들들은 현세에서 자비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사랑이요, 아들은 자비요, 영은 봉사이다.

최초의 미가엘 아들이 하보나에서 일곱 번 수여할 때 무한한 영이 참여하였다. 어떤 시간 순례자에게도 이해심 있는 봉사자가 되었다.

한 창조 아들이 한 지역 우주를 창조하는 직분을 받아들일 때, 창조 딸은 그침없이 봉사하는 자로 일할 것을 그에게 서약한다.

지역 우주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육체를 입고 물질 민족들에게 내려 오지만, 무한한 영 및 동급의 영은 스스로를 낮추어 너희를 안내하는 천사로 나타난다.

영은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과 아들의 영원한 자비를 합쳐 놓은 모습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아라.

5. 하나님의 계심 무한한 영의 특징은 두루 계심이다.

이 영은 어디에나 있고, 신다운 지성의 계심과 비슷하다.

아버지는 무한하다. 따라서 오직 의지함으로 제한을 받는다.

아들과 함께, 영 안에 계신다.

너희의 성서에는 “하나님의 영”이 무한한 영과 지역 우주의 영(성령)을 가리키고 서로 교환할 수 있는 듯하다.

성령은 이 창조 딸이 계시는 영적 회로이고, 각 지역 우주에 토착인 회로이다 (한정되어 있다).

무한한 영은 두루, 어디에나 계신다.

무한한 영은 합동 행위자임을 기억하라. 아버지와 아들은 영 안에서, 이 영을 통해서 활동한다.

6. 무한한 영의 성격 무한한 영은 참되고 신다운 성격자이다.

아버지와 아들처럼, 실체이며 눈에 보인다. 더 잘 보인다.

아들을 통해서 아버지께 다가가기 전에, 승천자는 모두 영을 먼저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영은 지음받은 존재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니, “영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마다 하나님의 아들인 까닭이다.”

여러 우주를 관리하는 과제에서, 아버지ㆍ아들ㆍ영은 완전히, 영원히 서로 결합되어 있다.

   
  9편, 무한한 영과 우주의 관계
글쓴이: 유버르사의 신성한 조언자
1934년
아버지와 아들이 파라다이스 앞에서 뭉쳐서 자신들을 성격화하려 할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아무것도 무한한 영이 성격화할 것을 예시하지 않았다.

그의 출현은 완전의 사슬과 절대 성격의 속박으로부터 아버지를 완전히 해방한다.

아버지는 만물의 지원자이다.
아들은 만물에게 계시자이다.
파라다이스는 무한히 에너지를 지배하는, 우주의 안정 장치이다.

무한한 영은 다양한 에너지와 창조의 통일자이다.

합동 행위자의 대리자들은 공간의 물력과 에너지를 끊임없이 조종한다.

무한한 영은 영원의 궤도에 깃들고, 아버지와 아들처럼 변화가 없다.

1. 셋째 근원 중심의 속성 영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동위이다.

우주의 조종자요, 동력을 통제하는 생물의 시조(始祖)이다.

절대 지성으로서 우주에 두루 지능을 부여한다.

영의 어떤 속성은 아버지로부터, 어떤 속성은 아들로부터 얻지만, 기타 속성도 있다.

아버지는 최초의 창조자요, 아들은 영적 행정가, 셋째 근원 중심은 만물의 조정자이다.

아버지는 에너지 이전(以前), 영 이전, 성격의 분야를 주관하고, 영원한 아들은 영적 활동 분야를 지배하며, 파라다이스 섬은 물리적 에너지와 물질화하는 동력의 분야를 통일한다.

지성의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전지(全知) 능력을 공유한다.

그는 체험적 신들―최상위 하나님과 궁극위 하나님―의 불완전한 발육을 보충하는 듯하다.

너희가 태어난 우주는 응보와 고통 사이에 있는 쇠처럼 단련을 받지만, 그 망치를 휘두르는 자는 무한한 영의 자손이다.

2. 두루 계시는 영 하나님은 세 가지 의미에서 영이다:

바로 하나님이 영이다.

아들 안에서 조건 없는 영이다.

합동 행위자 안에서는 지성과 연합한 영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보완한다.

무한한 영은 영원한 아들을 보조한다.

3. 우주의 조종자 물력과 에너지는 무한한 영의 몸에 맡겨진다.

무한한 영은 독특한 힘―반인력(反引力)―을 가지고 있다. 이 힘은 아버지나 아들에게 기능적으로 (관측할 수 있도록) 존재하지 않는다. 이 독특한 특성은 영이 낳은 고급 성격자들에게 전해 줄 수 있다.

무한한 영은 에너지가 아니고, 그 근원도 운명도 아니다.

에너지 조종자이다.

셋째 근원 중심의 자식들은 물리 통제자, 동력 지휘자, 동력 중심 등이 있고, 이들은 에너지를 조절하고 안정시킨다. 이들은 영원한 섬을 존중하고 그에 의존한다.

파라다이스는 무한의 원본(原本)이다. 행위의 하나님은 그 원본을 활성화시키는 분이다.

4. 절대 지성 절대 지성은 셋째 분의 지성이며, 영 하나님의 성격과 분리할 수 없다.

생각하는 머리는 자생하지 않는다.

에너지는 지성을 받아들이고 지성에 민감하다.

에너지 위에 지성을 겹쳐 놓을 수 있으나, 의식(意識)은 순전한 물질 수준에 본래부터 있지 않다.

지성을 순수한 영 위에 덧붙여 놓을 필요는 없는데, 영이 날 때부터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합동 행위자는 지성 분야에서만 절대적이다.

무한한 지성은 시간을 무시하고, 궁극의 지성은 시간을 초월하며, 우주 지성은 시간에 제약을 받는다.

무한한 지성은 공간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무한 수준에서 (지역 우주의) 보조 수준까지 내려감에 따라서, 지능은 공간이 있다는 사실과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

5. 지성이 베푸는 봉사 무한한 영의 지성은 무한하다.

우주가 무한까지 성장하더라도, 그의 지성 잠재력은 무한한 수의 생물에게 지성을 부여하기에 넉넉할 것이다.

인간의 지성은 순전히 무한한 영에 기원을 가졌고, 그는 지성을 수여하는 분이다.

인간의 지성이 적당히 준비될 때까지, 아버지의 분신조차도 사람의 지성에 깃들기가 불가능하다.

무한한 영은 모든 구체의 온갖 지성에게 봉사한다.

물리 통제자를 통해서, 가장 낮고 체험하지 않는 개체에게도 봉사한다.

무한한 영이 지성의 근원이니까, 인간은 아들이나 아버지보다 무한한 영을 더 쉽게 이해한다.

셋째 분이 지성의 근원이라고 해서 지성의 모든 현상이 신성하다고 상상하지 말라.

너희를 지적으로 진화시키는 계획은 완전하지만, 육체 안에서 활동하는 동안에 지성은 이 목표에 못 미친다. 크게 칭찬 받을 대상이 될 수 없다.

6. 지성 인력의 회로 셋째 근원 중심은 모든 우주에 있는 각 지성을 친히 의식한다.

모든 지성 활동은 그의 지성 인력 회로에 붙잡히며, 무한한 영이 이를 친히 의식한다.

아버지는 모든 성격자를 잡아당긴다.

아들은 모든 영적 실체를 끌어당긴다.

마찬가지로, 합동 행위자는 모든 지성에게 인력을 행사한다.

비성격 존재의 경우에도, 지성을 부여하는 것은 개체가 생각할 자격을 갖추게 하며, 성격이 없더라도 의식(意識)을 부여한다.

성격을 가진 자아는, 인간이든 신이든, 불멸하든 불멸 가능성이 있든, 영이나 지성이나 물질에서 비롯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성격이 있는 자아를 수여한다.

순전한 물질 존재의 경우에 지성은 에너지와 결합되어 있다.

순전한 영적 성격자 경우에, 지성은 영과 연합되어 있다.

수많은 성격자 계급에서는 지성이 에너지와 영, 양자와 연합된다.

우주 지성은 에너지나 영과 연합되지 않을 때, 물질 회로나 영 회로에 지배되지 않는다.

순수한 지성은 오직 무한한 영의 인력에 지배된다.

영과 에너지의 사이가 벌어질수록, 지성의 기능이 커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우주 지성이 최대로 작용하는 곳은 시공 우주인 듯하다.

지성 회로와 평행하는 어떤 계심이 있는데, 그 기능은 예측할 수 없으며, 아마도 우주 절대자의 작용이라고 믿는다.

(사람과 같은) 유한한 지성에는 예측할 수 없는 면이 있는데, 최상 존재의 불완전 때문인지 모른다.

7. 우주의 거울 작용 초우주에 두루, 사건이 벌어짐에 따라서, 이를 보고 듣고 느끼고 이해하며, 모든 정보를 한 초점에 모으는 능력이 있으니, 거울 현상이다.

거울 작용은 각 초우주 본부 세계에서 완전히 입증된다. 초우주의 모든 지역에, 지역 우주의 테두리 안에서 작용하며, 거울 작용은 파라다이스에 집중된다.

영의 줄은 아들까지, 물리적 에너지의 줄은 파라다이스까지, 지성의 줄은 셋째 분까지 유래를 추적할 수 있다.

거울 작용은 우주 통치자들이 멀리 떨어진 곳의 상황을 순간적으로, 상황이 일어남과 동시에 알게 해준다.

세월이 시작될 때, 무한한 영이 최상위에게 체험적 지성을 수여했다고 한다.

최상위가 거울 작용에 관여한다고 볼 수 있다.
(최상 존재가 위엄자를 낳았다.)

체험적 유한자의 한계 안에서 거울 작용은 전지(全知)로 보인다. 거울 작용을 이용하는 것은 최상위의 의식과 접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8. 무한한 영의 성격자 무한한 영은 많은 능력을 동급 및 하위 성격자 및 대리자들에게 전해 준다.

초우주 본부에는 셋째 분을 대표하는 자가 없다.

일곱 초우주는 파라다이스의 한 으뜸 영에게 의존하며, 그는 초우주 서울에 자리잡은 일곱 거울 영을 통해서 활동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창조 아들을 낳을 때는 언제나 무한한 영이 창조 영을 낳으며, 그는 그 창조 아들의 동반자가 된다.

광대한 집단의 봉사하는 영들이 무한한 영을 대표하지만, 이들이 모두 성격자는 아니다.

유한한 생물의 성격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i) 주관적 자의식.
(ii) 아버지의 성격 회로에 대하여 객관적 반응이 있다.

창조하는 성격자(예를 들면 미가엘)와 창조된 성격자(인간)가 있고, 셋째 근원 중심 성격자들이 있다.

동력 지휘자와 같이 아버지의 성격 회로에 포함되지 않는 수많은 무리에게 무한한 영은 셋째 근원 성격을 수여한다.

첫째 근원 및 셋째 근원 성격자들은 성격을 부여받으며, 지성을 소유한다. 이들의 대다수는 영 존재들의 눈에 보인다.

셋째 근원 집단은 세 무리로 나누어진다.

(i) 최상 영

(a) 파라다이스의 일곱 으뜸 영,
(b) 초우주의 거울 영,
(c) 지역 우주의 창조 영.

(ii) 동력 지휘자

(iii) 무한한 영의 성격자

(a) 무한한 영의 고등 성격자
(b) 공간의 사자 무리
(c) 시간 세계에서 봉사하는 영(천사)

무한한 영의 방대한 가족에 속하는 영 성격자들은 살아 있는 사다리이며, 이것을 타고 필사 인간은 혼돈으로부터 영광이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10편, 파라다이스 삼위일체
글쓴이: 어느 우주 검열자

1934년

삼위일체는 아버지 성격의 절대성을 벗어나는 것을 용이하게 만든다.

영원한 아들 및 다양한 신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먼저이고, 완전ㆍ불변ㆍ영원하고, 절대적이고 무한한 데 본래부터 있는 한계로부터, 아버지를 해방시킨다.

삼위일체는 신의 성품을 표현하고 계시하는 길을 마련해 준다.

마찬가지로, 삼위일체의 고정된 아들들은 신의 응보를 계시할 수 있게 한다.

삼위일체는 아버지ㆍ아들ㆍ영이 하나 되는 기초에 의존한다.

영원을 통해서 우주의 사건 중에 유일한 필연성은 삼위일체이다.

나(우주 검열자)는 온 우주에서 이 외에 아무것도 불가피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거나 앞을 내다보거나, 삼위일체가 없이는 총우주를 생각할 수 없다.

삼위일체가 없다면, 신이 절대로 하나인데도 동위의 세 분으로 성격화할 수 있을까 상상할 수 없다.

어떤 다른 창조 개념도 삼위일체 기준, 신을 삼위로 성격화하는 데 의지를 완전히 해방해야 한다는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1. 첫째 근원의 자기 분배 아버지는 남에게 줄 수 없는 권능ㆍ권한만 남겨 놓고 모든 것을 벗어버렸다.

실제로, 각 지역 우주에 거하는 군주 아들들에게 모든 행정 권한을 양도하였다.

영원한 아들이 하보나 우주에서 완전한 것 같이, 지역 우주를 담당하는 창조 아들을 완전하게 길렀다.

중앙 우주를 제외한 모든 우주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어 주었다.

신의 성격은 자기 중심이 아니다.

신의 자아는 스스로 성격을 분배하고 나눠주고 싶어한다.

 

무한자의 성격은 아버지이며, 그는 동위 성격자인 아들 및 영과 더불어, 존재의 실체를 함께 가진다.

신의 셋째 분이 성격 존재로 솟아났을 때, 아버지는 무제한 성격자로 존재하기를 그만두었다.

무한한 영이 존재하게 되고 중앙 우주가 모습을 갖추자, 영원한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님은 절대 성격자인 자신을 아들에게 주셨다. 또한 두 분은 그들의 합동 성격을 무한한 영에게 수여했다.

인간은 아버지ㆍ아들ㆍ영에 관하여 믿을 만하고 신빙성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하여 이 파라다이스 아들들이 수여되기를 고대(苦待)해야 한다.

2. 신의 성격화 삼위일체화 기법으로 아버지는 무제한의 영 성격을 벗어버리는데, 그 영 성격이 아들이다.

이렇게 함으로 자신은 아들의 아버지가 되고, 의지(意志)를 가진 지적 인간의 신다운 아버지가 되는 한없는 능력을 소유한다.

성격을 가진 아버지는 다양한 지적 인간 무리에게 성격을 수여한다.

무한한 영이 솟아나면서, 신의 실존적 성격화가 끝난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는 데는 아들이 꼭 필요하다.
신의 친교에는 둘째 분과 셋째 분이 필수이다.

첫째 근원은 아버지 성격이다.
영원한 아들은 절대 성격, 즉 하나님의 성질을 완전히 계시한 자요,
무한한 영은 합동 성격, 아버지ㆍ아들이 영구히 연합한 결과로 생긴 독특한 성격이다.

첫째 근원의 성격은 무한한 성격에서 아들의 절대 성격을 뺀 것이다.

셋째 근원의 성격은 해방된 아버지 성격과 아들의 절대 성격을 더한 것보다 크다.

아버지ㆍ아들ㆍ영은 각자 고유하고, 모두 하나가 되어 있다.

아들은 자기가 아버지의 아들이요, 영에게는 아버지인 것을 의식한다.
아버지는 대등한 아들이 있지만, 먼저인 조상이 없다.

무한한 영은 두 성격 조상을 의식하지만, 어떤 신에게도 어버이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세 분의 신으로 성격화된 실존적 집단이 완성된다.

나(우주 검열자)는 아버지ㆍ아들ㆍ영이 존재하며, 세 분이 개별로, 또 여러 조합을 지어 활동하는 것을 분명히 안다.

일곱 가지 결합이 신의 조합 가능성을 소모하니까, 우주의 실체들이 일곱 가지 변종으로 나타나는 것이 불가피하다.

3. 세 분의 신 오직 하나의 신이 있어도, 세 분으로 성격화되어 있다.

삼위일체의 연합에서, 아들과 영은 아버지에 대하여 똑같고 대등한 관계를 유지한다고 우리는 가르침을 받아 왔다.

영원 속에서 그런 관계를 가진다.

시간 세계에서, 세 분은 다양한 관계를 드러낸다.

아버지ㆍ아들ㆍ영은 확실히 동일한 성품을 가졌고, 동위의 존재이다. 그러나 그들의 우주 활동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혼자서 활동할 때, 신 세 분은 각자 절대성이 제한된 듯하다.

아들과 영을 구성하는 속성을 벗기 전에, 아버지는 절대적이고 무한한 신이었던 듯이 보인다. 그러한 절대적 신이었다면, 아버지는 영원히 오래 전, 어느 순간에 혼자 존재했어야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렇게 혼자 계셨던 적이 없다.

아들과 영은 아버지와 함께 영원하다.

우리는 아버지가 오직 의지만 벗어버리지 않은 것을 지켜볼 수 있다.
무한한 의지는 첫째 근원에 영원히 본래부터 있었음이 틀림없다.

영원한 아들에게 절대 성격을 수여하면서, 아버지의 성격은 절대성의 사슬을 벗어난다. 그렇게 하면서, 아버지는 절대 성격자로서 혼자 행동하는 것이 영원히 불가능하게 된다.

무한한 영이 성격화하면서, 세 분 사이에 삼자일체가 되는 상호 의존성이 생긴다.

하나님은 모든 성격자에게 아버지 절대자이다.
시공 우주에서, 삼위일체의 경우를 제외하고, 아버지는 절대적인 것이 식별되지 않는다.

하보나 바깥에서 아버지의 활동은 다음과 같다:

(i) 창조자로서, 창조 아들들을 통해서
(ii) 통제자로서, 파라다이스의 인력을 통해서
(iii) 영으로서, 영원한 아들을 통해서
(iv) 지성으로서, 합동 창조자를 통해서
(v) 아버지로서, 성격 회로를 통해서
(vi) 성격자로서, 생각 조절자를 통해서 인간 속에서
(vii) 총체적 신으로서, 오직 삼위일체 안에서만 활동한다.

아버지는 자유 의지로, 이 우주 권한의 제한을 받아들인다.

선(先)인격 활동을 제외하고, 모든 영적 면에서, 영원한 아들은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서 활동하는 듯하다.

절대적인 아들은 영적 우주 분야에서만 활동한다.

지성ㆍ물질ㆍ영의 분야에서 행동한다.

4. 신의 삼위일체 연합 파라다이스 삼위일체는 성격을 가진 신의 결합이다.

영원한 신이 완전히 통일되어 있다. 그런데도 개별화된 신 세 분이 계신다.

삼위일체는 성격자들의 결합이지만, 성격에 손상을 입히지 않고서 비성격 자격으로 활동한다.

예는 투박하지만 아버지ㆍ아들ㆍ손자가 함께, 인격자가 아닌 법인, 그런데도 각자의 개인 의지에 지배되는 법인(法人)을 만드는 것과 같다.

파라다이스 삼위일체는 실재한다.

삼위일체는 아버지ㆍ아들ㆍ영, 이렇게 신의 연합으로서 존재한다.

그래도 아버지나 아들이나 영, 아니면 이 중에 어느 두 분도 이 동일한 삼위일체와 관련되어 활동할 수 있다. 성격자로서, 세 분은 뜻하는 대로 함께 일할 수 있지만, 그것은 삼위일체가 아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를 밝히려 애쓰는 것은 무익할 것이다: 한 분과 같은 세 분, 또한 한 분 안에 계시는 세 분이며, 한 분이 두 분으로서, 또한 두 분을 위해서 행동한다.

삼위일체는 우주의 모든 수준에서 활동하며, 필사 인간은 유한 수준에 국한되어 있다. 따라서 사람은 유한 삼위일체 개념이 삼위일체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5. 삼위일체의 기능 삼위일체는 단순한 산술 합계로 늘어나지 않는다. 집단의 잠재성은 구성원들의 속성을 합한 것보다 더 크다.

(i) 유한자에 대한 태도

삼위일체가 최대로 자체를 제한한 것은 유한자에 대한 태도이다. 유한자에 대한 삼위일체를 최상 삼위일체라고 한다. 삼위일체는 성격자가 아니다.

(ii) 초한자에 대한 태도

절대 이하의 존재, 초한자에 대한 태도는 궁극성 삼위일체라 부른다. 궁극위도 최상위도 삼위일체를 온전히 대표하지 않는다.

(iii) 절대적 태도는 절대 존재들과 관련된다.

무한 삼위일체는 인격자가 파악하기 힘들다.

6. 삼위일체의 고정된 아들 모든 법칙은 첫째 근원 중심에 기원을 가진다. 그는 법칙이다.

영적 법칙의 행정은 둘째 근원에서 생긴다.

법칙의 계시는 셋째 근원의 기능이다.

법의 응용(판결)은 삼위일체의 분야에 속하며, 삼위일체의 어떤 아들들이 판결을 담당한다.

응보는 삼위일체의 우주 통치권에 본래부터 생긴다.

응보는 아버지나 아들이나 영의 태도가 아니다. 이 성격자들이 삼위일체로서 가지는 태도이다.

응보는 결코 개인의 태도가 아니다. 언제나 다수의 기능이다.

증거는 공정의 기초이다. 셋째 근원의 성격자들이 증거를 제공한다.

심판은 무한한 영의 성격자들이 제공한 증거에 따라서 재판을 시행하는 것이고, 고정된 아들들이 이를 담당한다.

삼위일체의 아들 집단은 다음과 같다:

(i) 삼위일체가 낳은 최상위의 신비
(ii) 영원부터 늘 계신 이.
(iii) 옛적부터 늘 계신 이.
(iv) 늘 완전한 이.
(v) 요즘부터 늘 계신 이.
(vi) 늘 하나된 이.
(vii) 늘 충실한 이.
(viii) 지혜 완성자.
(ix) 신성한 조언자.
(x) 우주 검열자.

우리는 세 신의 자손이요, 우주 검열자에 속하기 때문이다.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 그리고 삼위일체 기원을 가진 그 동료들은 초우주에 공정한 판결을 내린다.

재판은 올바른 것에 관한 집단의 생각이다.

신은 공정의 정신으로 판결을 내린다.

삼위일체가 내리는 응보와 아버지의 사랑은 일치한다.

그러나 사람은 신의 응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7. 최상위의 전반적 통제 처음 분, 둘째 분, 셋째 분은 서로 대등하며, 세 분은 하나이다.

유한 수준에서 필사자의 눈에 보이다시피, 삼위일체는 최상 존재와 마찬가지로, 오직 총체(행성 전체, 우주 전체, 초우주 전체, 대우주 전체)에 관심을 가진다.

최상 존재는 유한한 우주에서 활동하며, 삼위일체보다 작은 무엇이다.

최상 존재는 진화하는 신이요, 최상 삼위일체의 태도를 나타내는 듯하다.

아버지ㆍ아들ㆍ영은 최상 존재와 함께 친히 활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분들은 삼위일체로서 최상위와 협력한다.

궁극위와도 비슷한 관계를 유지한다.

최상위의 전반적 통제는 예측이 가능하지 않다. 최상위의 유한한 반응이 불완전함을 가리킨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행적 속에 사랑의 손길을 헤아릴 수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활동이 각 필사자의 복지에 이바지하는 것을 반드시 이해할 수는 없다.

8. 유한을 넘는 삼위일체 궁극위 하나님은 초월자들이 이해하는, 삼위일체의 명시이다.

총우주가 통일되는 것은 삼위일체의 초한적 통제의 어떤 단계를 반영한다고 믿고 싶다.

삼위 중에 어느 한 분도 신의 모든 잠재력을 충족시키지 않지만, 집단으로서 세 분은 그렇게 한다.

우리는 아버지ㆍ아들ㆍ영이 성격자인 것을 알지만, 신 절대자를 개인적으로 모른다.

나는 한때 어느 우주에 살았는데, 거기서는 영원 속에서 최후자들이 궁극에 신 절대자의 자녀가 되리라고 가르쳤다. 나는 이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최후 군단은 완전을 성취한 시공의 필사자를 포함한다.

이 최후자들은 유한을 초월하는 아버지를 찾는 일을 언젠가 시작해야 한다. 이를 도달할 수 있는가는 영원이 밝혀줄 것이다.

최후자는 부분적으로 신 절대자에게 도달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른다.

오로지 무한이 아버지 무한자를 밝혀줄 것이다.

   
Tagged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