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종교의 진화 (3FR)

  82편, 결혼의 진화 (세라핌의 우두머리)

83편, 결혼 제도 (세라핌의 우두머리)

84편, 결혼과 가족 생활 (세라핌의 우두머리)

85편, 숭배의 기원 (찬란한 저녁별)

86편, 종교의 초기 진화 (찬란한 저녁별)

87편, 귀신 종파 (찬란한 저녁별)

88편, 주물과 부적과 마술 (찬란한 저녁별)

89편, 죄와 희생과 속죄 (찬란한 저녁별)

90편, 주술 신앙―주술사와 사제 (멜기세덱)

91편, 기도의 진화 (중도자 우두머리)

 

82편부터 91편까지 이 열 편의 논문은 인류 사회에서 두 가지 기본적 제도(가족과 종교)의 진화를 묘사한다.

82편, 83편, 84편은 혼자서 사냥하던 원시인이 어떻게 강가에 정착하여 가족을 이루게 되었는가 세라핌의 우두머리가 설명한다. 원시 사회의 안정을 위하여 금기를 만들어야 했고, 율법을 제정함으로 안전한 결혼과 가족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85편에서 89편까지 이 다섯 편의 논문은 원시인의 종교가 어떻게 진화했는가 어느 찬란한 저녁별이 설명한다. 준비 되지 않은 원시인에게 높은 진리를 강제할 수 없고, 계시가 내리는 것은 인간의 성장을 기다려야 한다.

사람의 죽음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원시인은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영 나라에 가기 전에, 사람들을 해치려고 한다고 생각하여 귀신을 무서워하게 되었고, 이들을 달래려고 원시인은 희생물을 바쳤다. 나중에는 귀신 사회도 분업이 생겨 좋은 귀신과 나쁜 귀신이 있다고 생각되었고, 사람들은 귀신에게 뇌물을 바침으로 불운을 막으려 했다.

영들이 자연을 통제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좋은 영들의 태도를 바꾸려고 희생물을 바치는 소극적 풍습이 시작되었고, 나중에는 복을 받으려는 적극적 형태로, 찬송과 예배가 따랐다.

원시인에게 자의식이 생기자 타아를 의식하게 되었고, 타아는 높은 영, 나중에는 신으로 발전했으며, 둘 사이의 대화는 기도로 변하였다. 원시인은 주로 물질적인 기도를 드렸다.

진화된 종교는 자체를 수정할 방법이 없다. 외부에서 진화된 종교의 교리를 수정할 수 있는 두 가지 수단이 있는데, 하나는 도덕 관습의 압력이요 다른 하나는 신기원의 계시이다.

  82편, 결혼의 진화
  결혼은 남녀를 구별함으로 생겨난다. 결혼은 오래 버티고 있다.

결혼은 모든 사회적 진화에 기초이며, 어떤 형태로 계속 존재할 것이 확실하다.

결혼은 인류에게 가정을 주었고, 가정은 벅찬 진화적 투쟁에서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

가족은 사람을 문명화시키는 으뜸 세력이다. 어린아이는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인생의 기본의 대부분을 배운다.

과거 문명의 대부분은 가정이 효과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계속 진화했다는 것을 너희는 깨달아야 한다.

하나의 교육 기관으로서 가족은 유지되어야 한다.

1. 짝짓는 본능 남자와 여자 사이에 큰 성격 차이가 있는데도, 성욕은 종(種)의 번식을 위하여 남녀의 결합을 보장하기에 충분하다.

짝짓기는 타고난 성향이며, 결혼은 짝짓기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다.

원시 종족들은 성욕(性慾)이 지배적 정열이 아니었다. 번식하는 체험 전부가 상상으로 아름답게 치장되지 않았다.

높이 문명화된 민족들이 느끼는 정열은 주로 종족이 섞였기 때문이다.

결혼에 따르는 성의 규제는 다음을 가리킨다:

(i) 문명은 도덕 관습을 지키면서 성욕을 만족시킬 것을 요구한다.

(ii) 각 민족에 안드 혈통이 얼마나 있는가.

짝짓는 본능은 사람을 지배하는 육체적 추진력이다. 개인의 편안보다 종족의 영속을 더 중요시하게 만드는 감정, 이기적인 사람을 실질적으로 속이는 감정이다.

결혼 제도는 예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아를 존속시키려는 생물학적 성향이 사회에서 어떻게 진화했는가 묘사한다.

야만인에게는 먹을 것을 마련하는 것이 중대한 동기이지만, 문명이 풍부한 식량을 보장할 때, 성욕은 흔히 지배하는 충동이 된다. 따라서, 늘 사회의 규제가 필요하다.

성욕의 충동을 영리하게 규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한 문명이 살아남는 것을 재는 최고의 시험이 된다.

2. 제한하는 금기 결혼의 진화에 관한 이야기는 사회와 종교와 국가가 압력으로 성을 통제하던 역사이다.

자연은 번식을 강제하지만, 그에 따라 생기는 문제를 사회가 해결하라고 버려둔다.

기본적 본능과 진화하는 윤리 사이에 끝없이 싸움이 벌어진다.

여자는 언제나 남자보다 더 엄격하게 금기에 지배되었다.

3. 옛날의 결혼 관습 결혼은 끊임없는 번식 욕구에 사회가 제도로 반응하는 것이다.

단순한 사회가 복잡한 사회로 진화하는 동안, 짝짓기 관습이 진화하고 결혼 제도가 생겨났다.

결혼을 높이고 실천한 종족들은 더 높은 수준으로 진화했고, 큰 수가 살아남았다.

많은 원시 부족은 훔치는 공적을 결혼 자격으로 요구했다. 후일에는 약탈 대신에, 운동 경쟁으로 대체하였고, 이긴 자에게는 1등상, 신부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주었다.

어떤 부족들은 남자들의 결혼 시험을 여자들에게 맡겼다. 이 결혼 시험은 사냥, 투쟁, 가족을 먹여 살리는 능력을 포함했다.

아내의 자격은 고된 일을 해내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이었다. 결혼하기 전에 아이를 낳으면, 그 여자는 더군다나 값이 있었으니, 생산 능력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후일의 종족들 사이에는 사춘기가 보통 결혼하는 나이였으나, 문명이 진보하자 결혼하는 나이가 늦어졌다.

많은 부족이 신부가 결혼하는 날 바로 전에, 통치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신부와 성관계 가지는 것을 허락했다. 이들은 각자 소녀에게 선물을 주곤 했고, 이처럼 결혼 선물을 주는 관습이 시작되었다.

어떤 부족들은 젊은 남자를 과부와 늙은 여자에게 결혼시켰고, 나중에 홀아비가 되었을 때, 젊은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허락했다.

많은 원시 부족은 여자가 아이를 배기까지 연습 결혼을 인가했고, 아이를 가졌을 때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아내가 아이를 못 낳으면, 부모는 그 여자를 돌려받아야 했고, 결혼은 취소되었다.

4. 재산 관습과 결혼 결혼은 언제나 재산ㆍ종교와 가깝게 연결되어 왔다. 재산은 결혼을 안정시키고, 종교는 결혼에 도덕성을 부과하였다.

재산 관습이 결혼 제도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많은 현대 민족보다 초기의 부족들 사이에서 결혼이 더 오래 갔다는 사실로 입증된다.

간통은 남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 여겼다.

여자는 아버지의 재산으로서 시작했고, 아버지는 이 재산을 딸의 남편에게 넘겨주었다.

남자는 아내를 친구나 손님에게 빌려줄 권리를 가졌고, 이 관습은 아직도 어떤 종족들 사이에서 유행한다.

원시의 남자는 아내를 잃을까 경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제 재산을 지켰다.

남편보다 아내에게 더 정절을 요구하는 것은 아내의 부정(不淨)이 자손과 상속에 관계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여자만 간통으로 벌을 받았다. 오랜 세월 동안, 피해자인 남편이나 아버지는 재산을 침해한 남자를 죽일 권리가 있었다.

처녀성 시험은 자동으로 창녀 계급을 낳았는데, 이들은 퇴짜맞은 신부, 처녀가 아닌 것이 신랑의 어머니한테 들킨 여자들이었다.

5. 동족 결혼과 족외혼 족외 결혼으로 생긴 사람들은 더 능력이 있고, 냉혹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능력이 더 컸다.

종교는 오랫동안 족외 결혼을 막았다. 많은 종교가 신도가 아닌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여자는 보통, 족내 결혼, 남자는 족외 결혼 풍습을 더 좋아했다.

재산을 씨족 안에서 보존하려고 아버지의 부족 안에서 남편을 고르라고 여자에게 강요하는 관습이 생겼다. 또한 기술의 비밀을 지키려고, 안에서 짝짓는 관습을 지켰다.

놋 족속은 15만 년이 넘도록 부족 안에서 결혼하는 집단이었다.

족내 결혼 관습은 보라 인종의 전통에 크게 영향을 받았는데, 보라 인종의 처음 짝짓기는 어쩔 수 없이 형제와 자매 사이의 결혼이었다.

형제 자매 사이의 결혼은 다처(多妻) 관습 때문에 없어졌는데, 이는 누이인 아내가 다른 아내나 아내들을 도도하게 지배했기 때문이다.

남자가 두둔했기 때문에 족외 결혼이 마침내 이겼다. 친숙은 경멸을 낳는다.

자기 토템의 여자와 결혼하지 못하게 하는 금기는 이웃 부족으로부터 여자를 훔치는 관습을 촉진하였다.

이웃의 집단들과 평화롭게 사는 것을 배우기까지, 족외 결혼은 유행할 수 없었다.

족외 결혼 자체가 평화를 추진한다. 족외 결혼은 부족들의 군사(軍事) 연합으로 이끌었다. 힘을 키워 주기 때문에 족외 결혼이 지배하게 되었고, 족외 결혼이 국가를 세웠다.

6. 종족의 혼합 오늘날 세상에 순수한 민족은 하나도 없다.

옛날에 진화된 최초의 유색 민족들 중에, 황인과 흑인이 지속하고 있다. 이 두 종족조차 멸망한 유색 민족들과 많이 섞여 있다.

비록 1차 종족―청인ㆍ홍인ㆍ황인―이 여러 면에서 세 2차 종족보다 우수했어도, 이 2차 종족은 많은 바람직한 특성이 있었고, 그들 가운데 상급 핏줄을 흡수했더라면 1차 민족들이 어지간히 향상되었으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수한 이질 혈통의 교배는 새롭고 더 활력 있는 핏줄을 창조하는 비결이다. 혼혈은 활력을 증가시키고 생식 능력을 높인다.

여러 민족의 평균이나 우수한 층에서 종족의 혼합은, 미국의 현재 인구에서 보다시피, 창조 잠재성을 크게 증가시킨다.

몇천 년 동안보다 지난 1백 년 동안에 지구에서 종족 혼합이 더 많이 일어나고 있다.

1차 산긱 종족이 2차 산긱 종족과 혼합할 때, 전자가 희생함으로 후자는 어지간히 개량된다. 작은 규모로―오랜 기간에 연장될 때―1차 종족이 2차 집단의 개량을 위해서 그렇게 희생적으로 기여하는 데 심각한 반대가 거의 있을 수 없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2차 산긱들은 어떤 면에서 1차 종족들보다 우수했다.

인종의 진짜 위협은 종족의 교배가 아니라, 문명화된 여러 종족 중에 열등하고 퇴화된 핏줄이 마구 번식하는 데 있다.

   
  83편, 결혼 제도
생명 운반자가 인간이 포유동물로 진화하게 만든 목적 결혼은 집단의 난잡한 교배로부터 시작하여, 궁극에 부부가 짝으로 결혼하게 만든 결혼 기준이 나타나기까지 진보해 왔다.

부부로 짝짓는 것은 가정을 세우려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합하는 것이다.

결혼 관습이 지속된 것은 재산과 종교에 상당히 많이 의존했지만, 결혼과 가정을 보호하는 진짜 영향력은 남자와 여자가 혼자 살고 싶어하지 않는 생물학적 사실이다.


성욕 때문에, 이기적인 사람은 동물보다 나은 존재가 되도록 유도되었다.

자아를 돌보고, 자아를 만족시키는 성관계에는 이타적 임무와 종족에 유리한 가정 책임을 맡는 것을 보장한다.

이 성(性) 충동은 어김없이 사람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만들고 남을 사랑하도록 이끈다.

1. 사회 제도인 결혼 결혼은 하나의 사회 제도로서 두 방향에서 작용한다.

(i) 개인의 성관계를 규제한다.

(ii) 자손ㆍ상속ㆍ계승, 그리고 사회 질서를 규제한다.

결혼에서 생겨나는 가족 자체가 결혼 제도의 안정 장치이다.

결혼을 안정시키는 다른 유력한 요소는 자부심ㆍ허영심ㆍ기사도ㆍ의무, 종교적 확신이다.

원시의 결혼은 1차적으로 산업이었다. 현대에도 결혼은 흔히 사업이다.

안드 핏줄의 영향을 통해서, 천천히 결혼에 낭만ㆍ사랑ㆍ윤리가 있게 되고 있다.

2. 구혼과 약혼 원시의 결혼은 반드시 소년과 소녀의 부모가 계획하였고, 나중에는 젊은이들이 자유로 상대를 선택하게 되었다.

과도기에는 전문 중매인이 등장한다. 중매인은 처음에 이발사였고, 후일에는 사제였다.

여자를 사로 잡아 결혼하는 것이 계약 결혼을 앞섰다.

여자들은 다른 부족에서 온 제 또래의 남자 손에 굴러떨어지는 것을 더 좋아했다.

초기 형태의 결혼식은 탈출하는 흉내, 일종의 도망 연습이었다.

나중에는 생포를 흉내내는 것이 정상 결혼식의 일부가 되었다.

현대의 소녀가 “사로잡히는 데” 저항하는 체하는 것, 결혼에 대하여 말하기 싫어하는 것은 다 옛 관습의 유물이다.

여자에게는 결혼한 동안, 자기 뜻대로 처신하는 자유가 오랫동안 주어지지 않으나, 총명한 여자들은 머리를 써서 이 제한을 피할 수 있었다. 여자는 은밀하게, 또는 공식으로 결혼을 개시하였다.

문명이 진보함에 따라서, 구혼과 결혼에서 여자의 역할이 늘어났다.

구혼 기간에 사랑과 낭만, 개인의 선택이 늘어난 것은 안드 족속의 공헌이다.

옛 민족들 사이에서는 약혼 기간에 성관계를 가지는 것이 관습이었다.

최근에는 종교가 결혼 전의 성관계를 막는 금기를 만들었다.

3. 아내 사들이기와 지참금 옛날 사람들은 사랑과 약속을 믿지 않았다. 오래 가는 결혼은 재산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내 사는 값은 아내를 버릴 경우에 남편이 잃게 되는 보증금으로 여겼다.

신부(新婦) 구경은 신부가 아내로서 더 높은 값을 받을 생각으로 대중에게 전시하기 위하여 딸을 잘 입히고 치장하는 계제이다.

다른 면에서 바람직한 남편이 제 아내의 값을 치를 수 없으면, 여자의 아버지를 위하여 일하고 데릴 사위가 될 수 있었다.

가난한 남자가 욕심 많은 아버지가 달라는 값을 치를 수 없으면, 장로들이 그 아버지에게 압력을 넣었고, 값을 내리지 않으면, 눈이 맞아 도망치는 일이 생길 수 있었다.

문명이 더 진보하자, 아버지들은 딸을 파는 것처럼 보이기 싫었고, 그래서 신부 값을 계속 받는 한편, 그 값과 대충 같은 값으로 그 쌍에게 선물을 주는 관습을 시작했다.

신부 값 치르기가 나중에 중지되자, 이 선물은 신부의 지참금이 되었다.

남자는 지참금을 완전히 돌려주지 않고서 아내와 이혼할 수 없었다.

4. 결혼식 결혼 예식은 결혼이 두 사람의 결정이 맺은 열매일 뿐 아니라, 공동체의 일이었다는 사실에서 생겨났다.

초기의 결혼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재산의 한 요인이었고, 따라서 법적 예식이 필요했다.

원시인은 아무런 기록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결혼 예식을 구경해야 했다.

사람들은 아이 낳지 못하는 것을 크게 두려워했고, 불임은 영이 장난치는 때문이라 믿었기 때문에, 다산(多産)을 보장하려는 노력은 또한 결혼을 어떤 요술이나 종교 의식과 관련 짓게 되었다.

불과 물은 귀신을 방지하는 좋은 수단으로 생각되었다. 따라서 결혼식 때, 제단에 불을 지피고 촛불을 켜곤 했다. 오랫동안 가짜 결혼일을 정하고, 귀신과 영들을 쫓아내려고 감자기 그 행사를 연기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귀신의 질투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귀신의 눈에 불쌍하게 보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었다.

귀신이 신부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름다운 신부를 못 보게 감추려고 신부를 가장(假裝)하려고 베일을 씌웠다.

신부의 발은 예식이 있기 바로 전에, 땅에 닿아서는 안 되었다.

20 세기에도 차량이 내리는 데서부터 교회의 제단까지 카펫을 까는 것이 아직도 관습이다.

5. 여럿과 결혼하기 결혼의 역사 초기에,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은 부족의 남자들에 속했다.

나중에, 한 여자는 일시에 남편이 오직 하나 있었다.

일시에 한 남자와 사는 이 관습은 그 집단의 난교(亂交)로부터 첫걸음을 내디딘 발전이었다.

이것은 무리를 지어 살던 시대에서 짝을 지어 사는 방향으로 가는 첫걸음이었다.

결혼의 진화에서 다음 단계는 집단 결혼이었다. 이 과도기는 부부의 결합을 안정시키기에는 결혼 관습이 튼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가족의 다섯 형제가 다른 가족의 다섯 자매와 결혼하곤 했다.

집단 결혼은 대체로 토템 관습의 지배를 받았고, 이러한 규제가 부족의 생존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일부 다처(一夫多妻)와 일처 다부(一妻多夫)―의 관습이 자리를 잡자, 집단 결혼은 차츰 사라졌다. 일처다부는 널리 퍼지지 않았고, 여왕이나 부유한 여인들에게 국한되었다.

카스트와 경제적 이유로, 때때로 여러 남자가 한 아내로 만족해야 했다.

일부다처 제도는 4 종류의 아내를 인정했다:

(i) 합법적 아내.
(ii) 사랑하고 허락된 아내.
(iii) 첩, 계약한 아내.
(iv) 노예 아내.

복혼의 경우에도, 신분이 있는 아내가 가정을 지배했다.

신분이 있는 아내는 반드시 사랑하는 아내(애인)가 아니었다.

진화 부족들이 놋 족속과 아담 족속과 섞이기까지, 사랑하는 아내는 등장하지 않았다.

첩 제도는 일부일처에 이르는 디딤돌이요, 복혼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었다.

아이를 배거나 젖을 먹이는 아내와 성관계를 하지 말라는 금기는 일부다처제를 권하는 경향이 컸다.

원시의 여자들은 고된 일과 더불어 자주 임신했기 때문이 일찍 늙었다. 그러한 아내는 지쳤고, 아이 낳는 일과 집안 일을 도울 수 있는 아내를 얻으라고 남편에게 부탁하곤 했다.

아내들의 수는 남자의 경제 능력에 따라서 제한되었다.

6. 참 일부일처제―부부의 결혼 일부일처제는 독점이다. 이 상태에 도달하는 자에게 좋지만, 일부일처제는 그렇지 못한 자에게 생물학적 어려움을 주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에게는 일부일처제가 가장 좋다.

이상적 부부 관계는 독점 성관계와 비슷한 것이며, 혼자 사는 차가움 속에서 외톨이로 남은 자에게 불가피하게 어려움을 안겨 준다.

참된 부부 생활이라는 이상에는 극기가 따르며, 자제력이 모자라서 실패하는 일이 흔하다.

일부일처제는 사회의 문명을 유지하고 계속 발전시키는 데 필수이다.

남편의 사랑을 얻으려는 경쟁에 말려든 동안에 여자는 결코 이상적인 어머니가 될 수 없다.

7. 혼인의 취소 결혼 관습이 초기에 진화할 때, 결혼은 언제나 깨어질 수 있는 허술한 연합이었고, 아이들은 언제나 어머니를 따랐다.

어머니와 아이 사이의 끈은 본능적이고, 도덕의 발전과 상관 없이 작용했다.

원시 민족들 사이에서는 결혼의 약 절반이 지속되었다.

이별의 가장 큰 원인은 아이가 없는 것이고, 이를 언제나 아내의 탓으로 돌렸다.

개인적 사랑의 동기가 오래된 재산 동기를 갑자기 대체한 것은 결혼 제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어느 사회에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큰 집단으로 존재하는 것은 도덕 관습이 붕괴하거나 과도기에 있음을 가리킨다.

사회가 어린아이와 젊은이를 교육하지 못하고 사회가 결혼 전 훈련을 마련하지 못하는 한, 이혼이 유행할 것이다. 그런 경우에 이혼은 사회에 안전 밸브로서 작용해야 하며, 이것은 더욱 나쁜 상황을 방지한다.

현대 사회의 큰 모순은 사랑과 결혼을 이상적으로 생각하면서, 이 두 가지를 철저히 검사하지 않은 것이다.

8. 결혼의 이상화 가정을 만드는 결혼은 사람이 만든 가장 고귀한 제도이지만, 그 본질은 인간적이다.

인간의 관계를 신의 관계와 비교하는 것은 유감스럽다.

남편과 아내의 결합은 진화 세계에서 필사자의 물질적 기능이다.

결혼 생활을 함으로 영적 진보가 일어날 수도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결혼이 신성함을 뜻하지 않는다.

결혼이 신의 행위로 맺어졌다고 어떤 집단의 필사자들이 상상한 것도 또한 유감이다.

그런 믿음은 당사자의 상황이나 소망과 상관 없이, 결혼이 취소될 수 없다는 개념으로 이끈다.

그러나 결혼이 취소되는 사실 자체가 신이 그러한 연합에 관련된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두 사람을 일단 합쳐 놓았다면, 그들은 그러한 결혼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어떤 결혼이 하나님의 승인을 받고 어떤 결혼이 승인받지 못한다고 누가 감히 판단을 내리겠는가?

결혼은 언제나 이상적인 현세에 대하여 사람이 가진 최고의 꿈이었고, 아직도 그렇다.

이 아름다운 꿈이 다 실현되는 일이 드물어도, 이 이상은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노력하도록 인류를 늘 유혹한다.

젊은 마음에 이상으로 생각한 것은 어느 정도 결혼 전의 실망으로 현실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젊은이가 결혼을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을 나무라서는 안 된다. 그러한 꿈은 가족 생활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결혼의 이상은 요즈음에 크게 진보했다. 어떤 민족들 사이에서는 여자와 남자가 동등한 권한을 누린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사회적 협동 관계이며, 당대의 도덕 관습 밑에서 작용하고, 사회의 법과 규제를 받는다.

여자의 자유가 갑자기 늘어나서 가정 제도가 벅찬 시련을 겪고 있는데도, 20세기의 결혼은 지난 시대에 여자가 오랫동안 누리지 못했던 권리를 주었다.

   
  84편, 결혼과 가족 생활
  물질적 필요는 결혼의 기초가 되었고, 성욕은 결혼을 아름답게 꾸몄으며, 종교는 결혼을 인가하고 국가는 결혼을 요구하고 규제하였다.

가정을 만드는 것은 모든 교육하는 노력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가정은 사회학적 제도이다.

결혼은 자아 유지에 협동하고, 자아 영속에 협조하여 생겨났으며, 자아 충족 요소는 대체로 결혼에 부수되는 것이었다.

1. 원시의 부부 결합 결혼은 원시적 남자에게 필요하지 않았고, 남자는 아내와 아이들과 가정을 책임지지 않고 마음대로 성욕을 채웠다.

여자는 자식에게 애착을 가졌기 때문에 남자와 협동하였다.

아무런 생물학적 욕구가 남자를 결혼으로 이끌지 않았다. 남자가 결혼에 이끌린 것은 사랑이 아니라 배고픔이었다. 배가 고파서, 처음에 여자가 아이들과 나누어 쓰는 원시 오두막으로 야만인 남자가 이끌렸다.

원시인은 성욕을 채우는 것과 아이의 출생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임신은 영, 즉 진화하는 귀신이 여자에게 들어간 결과라고 믿었다.
초기의 많은 민족은 귀신을 바다와 결부시켰고, 따라서 처녀들은 목욕하는 관습에 제한을 받았다.

젊은 여자들은 성관계를 가지는 것보다 밀물이 있을 때 바다에서 몸 적시는 것을 더 무서워했다.

어머니 사랑은 본능이며, 결혼처럼 도덕 관습에서 생기지 않았다. 모든 포유 동물의 어머니 사랑은 (지역 우주의) 보조 지성 영들에게서 받은 자질이며, 그 강도는 그 종(種)의 무력한 유아기가 얼마나 긴가에 정비례한다.

어머니의 사랑은 남자와 벌이는 모든 싸움에서 언제나 여자를 불리하게 만드는 감정이다. 그렇다 해도 인간종에서 모성 본능은 지배하지는 않으며, 포부나 이기심으로 꺾일 수도 있다.
초기 부부들의 결합은 허술했어도, 살아남는 확률은 이 협동으로 인하여 크게 개선되었다.

협동하는 남자와 여자는, 두 남자나 두 여자보다, 대부분의 경우에 엄청나게 우수하다.

남녀가 짝짓는 것은 많은 사람을 살아남게 하였고, 이것이 인간 사회의 시작이다.
남녀의 노동 분화는 편안을 가져왔고, 사람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었다.

2. 옛날의 모계 가족 옛 시절에 모든 후손은 여자의 핏줄로 계산하였고, 원시의 가족은 불가피하게 모계 가족이었다.

모계 가족은 자연스럽고 생물학적이었고, 부계 가족은 사회ㆍ경제ㆍ정치적인 것이었다.

초기의 종족들은 자식을 낳는 데 아버지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몰랐고, 아이가 전적으로 어머니로부터 생긴다고 보았다.

나중에는 모계 가족에서 부계(父系) 가족으로 넘어갔을 때, 아이를 낳은 공을 아버지가 전부 가졌으며, 임신한 여자에 대한 많은 금기(禁忌)는 나중에 그 남편에게 연장되었다.

아이를 기대하는 아버지는 해산할 때가 가까워오자 일을 그만두었고, 아이가 태어날 때 침대로 가서 아내와 함께 며칠이나 남아서 쉬었다. 아내는 그 다음 날 일어나서 고된 일에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남편은 축하를 받으려고, 침대에 남아 있었다.

사냥을 그만두고, 남자가 짐승을 길러 식량 공급을 좌우하게 되었을 때, 모계 가족은 끝이 났다.

여자는 아이를 배고 집안의 권력을 행사하는 두 가지 과제에 힘이 부치었다.

3. 아버지의 지배 하에 있는 가족 전원 생활은 부계 사회를 촉진하는 경향이 있었다. 짐승을 기르고 농사를 짓는 관습 하에서 족장이 독재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하는 말이 증언하다시피, 히브리 족장들은 모두 목자였다.

여자는 비상시에 활동하지 않았고, 모성애는 부족을 방어할 때 여자에게 장애물이 되었다.
무사를 추켜세운 것은 남자의 자존심을 높였고, 그만큼 여자의 자존심을 낮추었다.
남자는 전쟁터에서, 그리고 사냥할 때, 여자의 상관이었다. 그러나 집에서 여자는 아주 원시적인 남자들을 술책으로 이겼다.

원시의 남자는 흙을 피했고, 농업은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여자는 언제나 일해야 했다. 현대에 이르기 직전까지, 여자는 생산자였다.
남자는 보통, 더 쉬운 길을 택했고, 이 불평등은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존재하였다.
남자가 농사짓는 데 찬성했을 때, 여자의 첫 해방이 왔다.

남자 포로를 죽이지 않고 농사짓는 노예가 된 것은 크게 전진하는 발걸음이었다. 이것은 여자의 해방을 가져왔고, 그래서 여자는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기르는 데 시간을 더 쓸 수 있었다.

우유를 마련한 것은 아기들이 일찍 젖을 떼게 만들었고, 아기의 사망률을 크게 줄였다.
원시 전쟁이 줄어들자, 남녀의 노동 분업 불균형이 줄어들었다.

대체로 농업의 시작은 여자의 품위와 사회적 지위를 높였다.

4. 옛 사회에서 여자의 지위 일반적으로, 여자의 지위는 하나의 사회 제도로서 결혼이 얼마나 진보했는가를 재는 공평한 기준이다.

한편 결혼의 진보는 인간의 문명이 얼마나 진보했는가를 기록하는 상당히 정확한 척도이다.

여자는 언제나 남자의 강한 성욕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했다.

옛날의 여자는 친구나 협동자가 아니라, 재산, 하녀나 종이었고, 나중에는 경제적 협동자요 아이 낳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만족스러운 성관계에는 여자가 협조해야 했고, 이것은 영리한 여자들의 개인적 지위에 영향을 미쳤다.

남자는 여자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발견했다.

부족의 전통은 고난을 이브나 판도라, 또는 다른 여성 대표의 탓으로 돌렸다. 이 모두가 한때 여자를 보편적으로 불신한 것을 가리킨다.

옛날에는 여자와 처음 성관계 가지는 것을 두려워했고, 따라서 사제가 처녀와 첫 성교를 가지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

여러 부족의 관습이, 아이가 태어난 뒤에 어머니가 긴 정화(淨化) 의식을 거쳐야 한다고 선포했다. 해산하는 자리에 남편이 있은 집단을 제외하고, 사람들은 출산을 앞둔 어머니를 혼자 버려두었다.

옛날 사람들은 집안에서 아이를 낳는 것조차 피했다. 마침내 늙은 여자들이 어머니를 보살피는 것이 허락되었고, 이 관습은 산파라는 직업을 낳았다.

사춘기로부터 출산기의 끝까지, 한 주 동안 여자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격리되었다. 여자가 만진 모든 것은 “더러워졌다.”

달마다 월경이 끝난 뒤에 악령을 몸에서 몰아낸다고 소녀를 무자비하게 때리는 것이 오랫동안 관습이었다.

아무리 어리석었어도, 이 옛 개념들은 좋은 일을 했는데, 과로한 여자들에게, 적어도 젊었을 때, 한 달에 한 주 동안 휴식과 명상 시간을 주었기 때문이다.

남자가 마음대로 제 아내를 죽일 권리를 빼앗겼을 때 큰 진보가 이루어졌다. 후일에는 여자가 재산을 소유하고 처분하는 권리를 얻었다.

그러나 여자는 교회나 국가에서 공직을 가질 권리를 오랫동안 빼앗겼다.

진보된 민족들 사이에서도, 남자가 여자를 보호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남자가 우수함을 말없이 주장하는 것이었다.

5. 발전하는 도덕 관습 하에서 여자의 지위 자아를 유지하는 협동 관계에서 여자는 불리하게 수고한다. 이 모성(母性)의 장애는 오로지, 문명화된 관습으로, 그리고 남자가 늘어나는 공평 감각을 얻어야 겨우 보상할 수 있다.

자연은 전혀 공평을 모른다. 여자 혼자서 분만의 아픔을 견디게 만든다.

남녀 평등 관념은 자연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여자의 사회적 지위는 대체로 어느 나라나 어느 시대에도, 군사주의의 정도에 반비례하여 변하였다.

아담 족속과 놋 족속은 여자를 더 많이 인정했고, 이주하는 안드 족속의 영향을 받은 집단은 여자의 사회적 신분에 관한 에덴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다.

초기의 중국인과 그리스인은 다른 대부분의 부족들보다 여자를 낫게 대우했다.
그러나 히브리인은 지나치게 여자를 불신했다.

서양에서는 바울의 교리 때문에, 여자는 고생하게 되었다.
마호메트교에서는 여자의 지위 하락으로 거의 희망이 없고, 몇 동양 종교에서 여자는 더군다나 운이 나쁘다.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 정말로 여자를 해방했다.

집의 울타리에서 여자를 해방한 것은 현대의 공장이었다. 이제 남자의 신체적 능력은 필수 요소가 되지 않았다.

산업 사회는 집안의 노예 신세로부터 여자를 해방하는 경향이 있었고, 여자는 남자와 같이 개인의 자유와 성교의 결정권을 이제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산업은 여자의 사회ㆍ경제적 해방을 위하여, 뜻하지 않게 싸워서 이겼다.

산업화된 민족들 사이에서 여자는 거의 모든 권한을 받았고, 군대 복무와 같은 의무로부터 면제된다.

여자는 마침내 인정(認定)ㆍ위엄ㆍ독립ㆍ평등ㆍ교육을 얻어냈다. 그러나 여자가 새롭고 전례 없는 성취를 누릴 자격이 있는지 입증될 것인가?

남자가 여자의 권리를 가지고 성장할 수 없는 것처럼, 여자도 남자의 권리를 가지고 번성할 수 없다.

여자가 글자 그대로 남자의 권리를 모두 가지고 싶어한다면, 머지 않아 동정심 없이 벌어지는 경쟁이 남자들의 기사도 정신과 특별 배려를 없애버릴 것이다.

대대로 도덕 관습은 변해도, 본능은 그렇지 않다. 타고난 모성애는 해방된 여자가 산업에서 남자와 심각하게 경쟁하도록 두지 않는다.

6. 남자와 여자의 협동 번식의 욕구는 남자와 여자를 모이게 하지만, 그것만으로 가정 안에 함께 있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정열은 남녀가 한데 모일 것을 보장하지만, 부모 본능과 사회의 관습이 이들을 함께 붙들어 놓는다.

관점과 반응이 본질적으로 달라서, 남녀는 서로를 이해할 능력이 도무지 없다.

여자는 남자보다 직감이 좋으나 또한 논리가 덜한 듯하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생각과 관점의 차이는, 집단으로 인류에게 유익하다.

사람, 물질 아들, 중간 한계자 중에서 이 차이는 암컷과 수컷으로 묘사된다.
세라핌, 케루빔, 상물질 동반자 사이에서는 적극적 성질과 수줍은 성질로 묘사된다. 그러한 2중 관계는 융통성을 높이고 선천적 한계를 이겨낸다.

남자와 여자는 필사 생애뿐 아니라, 상물질 생애와 영적 생애에도 서로 필요하다.
남녀 사이에 관점의 차이는 첫 생명을 지나서, 초우주를 올라가도 내내 지속된다.
최후자 군단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성향을 지울 수 없다.

결혼은 모든 인간 제도의 근원이요, 가정을 일으키며, 가정은 사회 구조의 기초이다.

7. 가족 생활의 이상 남녀가 짝짓는 것은 본능이요, 아이들은 자연스런 결과이며, 따라서 가족은 자동으로 존재하게 된다.

한 종족이나 국가의 가족들이 어떠하면, 그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유대 민족과 중국 민족의 문화가 안정된 것은 그들의 가족 집단이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성적 연합은 자연스럽지만, 결혼은 사회적인 것이며, 반드시 도덕 관습에 규제를 받아 왔다.

예전에는 여자가 재산이었으니까 남자가 여자를 보호했고,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했다. 장단점에 상관 없이, 이 체계는 안정을 가져왔다.

지금은 여자를 더 이상 재산으로 여기지 않고, 새로운 도덕 관습이 솟아나고 있다.

(i) 종교의 새 기능. 부모의 체험이 필수라는 가르침.
(ii) 과학의 새 기능. 출산은 자원하는 것이 된다.
(iii) 쾌락 유혹의 새 기능. 현대인은 아이를 낳으려 하지 않는다.
(iv) 부모 본능의 향상. 각 세대는 부모 본능이 강하지 않아서 아이 낳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종족 번식의 흐름에서 제외하는 경향이 있다.

가정을 세우고 남자와 여자가 협동하는 제도는 약 5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담 족속 이전에는 가족 생활은 자랑할 것이 못 되었다.

아담과 이브는 동산에서 같이 일함으로 온 인류에게 오래 가는 영향을 미쳤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거의 보편적이다.
동물은 제 새끼를 사랑하지만, 문명화된 사람은 손자ㆍ손녀를 사랑한다.

다음 이유로 아이들이 많은 것이 바람직했다:

(i) 아이들은 일꾼이 되었다.
(ii) 아이들은 노령 보험이었다.
(iii) 딸을 팔 수 있었다.
(iv) 가족의 자부심은 이름 남기기를 요구한다.
(v) 아이들은 보호와 방어가 되었다.
(vi) 귀신이 무서워 은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웠다.
(vii) 어떤 종교들은 자손을 요구했다.

에스키모인, 홍인과 황인의 아이들은 다루기 쉽다. 그러나 안드 족속 중에서는 아이들이 차분하지 않다.

아이들의 훈련은 다음 이유로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

(i) 종족이 상당히 혼합된 것.
(ii) 겉핥기 교육.
(iii) 부모가 가정을 자주 비워서 아이가 부모를 모방할 수 없는 것.

현재의 산업 시대에 결혼 제도는 경제 노선을 따라서 진화한다. 예전에 재산이었던 아이들은 부채가 되었다.

부모의 책임을 국가나 교회에 떠맡기려 하는 것은 문명의 자살 행위인 것이 입증될 것이다.

가족은 근본적 친교 단위이며, 그 안에서 부모와 아이들은 참을성ㆍ이타주의ㆍ너그러움ㆍ인내심을 배우며, 이것은 형제 정신의 실현에 긴요하다.

가족 생활은 참된 도덕의 선구자이다. 참된 부모는 파라다이 부모의 사랑을 드러내는 과정의 첫걸음을 자식들에게 보여준다.

8. 자아 욕구 충족의 위험 가족 생활의 큰 위험은 자아 욕구의 충족, 쾌락을 추구하는 물결이다.

자아 유지에 기초를 둔 결혼은 자아의 존속으로 이끌었고, 동시에 바람직한 형태로 자아 욕구의 충족을 마련해 주었다.

결혼은 살려고 하는 세 가지 큰 동기를 포함하는, 인간 사회의 유일한 제도이다.

최초에 재산은 자아를 유지하는 기본 제도였고, 한편 결혼은 자아를 존속시키는 제도였다.

지나친 탐닉, 쾌락의 추구는 가정을 노리는 가장 큰 위협이다.

보라 인종은 유머 감각과 함께 놀이 본능을 인류의 체험에 도입하였다.

배를 채우는 것을 제쳐놓고, 기본적 욕구는 성욕을 채우는 것이며, 이 육체적 쾌락은 산긱과 안드 족속이 혼합됨으로 엄청나게 높아졌다.

혼의 갈증은 육체의 쾌락으로 채울 수 없다.

기분을 전환하고 사람을 격려하는 놀이는 모두 건전하다. 시합, 이야기를 듣는 것, 맛있는 것을 먹는 것조차 자아 욕구의 충족하는 방편으로서 쓸모가 있을지 모른다.

너희가 소금을 쓸 때, 거의 1백만 년 동안 먹을 것을 재 속에 넣어야 소금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라.

오늘날 사람이 누리는 얼마큼의 쾌락은 수고하여 잘 얻은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운명의 목표를 잘 보아라!

쾌락이 자아 유지의 도구인 재산을 파괴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자살이다. 쾌락의 추구가 결혼의 파탄, 가정의 파괴를 가져온다면, 치명적 값을 치르는 것이다.

가정은 사람이 진화로 얻은 최고의 열매이며, 문명이 살아남을 유일한 희망이다.

   
  85편, 숭배의 기원
글쓴이: 네바돈의 어느 찬란한 저녁별

1934년

도덕과 영적 영향을 제외하면, 원시 종교는 자연스럽게 진화로 발전한 것이다.

(인간을 제외한) 고등 동물은 무서움을 알지만 환상이 없고 따라서 종교가 없다.

사람의 머리가 지금 인생과 다음 세상에 관하여 복잡한 개념을 형성하기도 전에 원시적 숭배가 나타났다.

자연 숭배가 발달함에 따라서, 사람은 초인간 세계에 분업이 있다고 상상했다.

비, 호수나 나무, 그리고 수백 가지 자연 현상을 대표하는 영들이 있었다.

인생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일을 아직도 “하나님의 행위”(천재지변)라고 언급한다.

1. 돌과 산을 숭배하기 진화하는 사람이 처음으로 숭배한 대상은 돌이었다.

야곱이 돌 위에서 잔 것은 돌을 공경했기 때문이다. 라헬은 제 천막에 신성한 돌을 몇 개 숨겼다.

원시인에게 깊은 영향을 준 것은 운석이었고, 운석이 타오르면서 대기 속으로 돌진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운석들을 발견했을 때, 그 현상을 숭배하게 된 것은 놀랍지 않다.

로마인은 주피터를 부를 때 공중에 돌을 던졌다.

옛날 사람들은 돌에 있는 구멍을 특이하게 생각했다. 돌을 달고 다니려고 귀에 구멍을 뚫은 것이 아니라, 귀의 구멍을 열린 채로 두려고 돌을 집어 넣었다.

돌 숭배는 지금도 온 세계에 퍼져 있다.

돌 숭배 뒤에 산 숭배가 따랐다.

2. 식물 및 나무 숭배 사람을 취하게 하는 술이 식물에서 나왔기 때문에 사람은 식물을 숭배했다.

원시인은 술에 취하면 사람이 신답게 된다고 믿었다. 현대에도 알코올은 주정(酒精, spirit)”이라고 알려져 있다.

나무 숭배 종파는 아주 오래 된 집단이다. 옛날의 결혼식은 나무 밑에서 올렸고, 여자들은 아이를 낳고 싶어 나무를 껴안았다.

5월제 기둥, 크리스마스 나무, 나무를 톡톡 두드리는 관습은 옛 풍습의 잔재이다.

3. 동물 숭배 원시인들은 어떤 동물의 날카로운 후각과 멀리 보는 눈은 영의 안내를 받는 것을 가리킨다고 믿었다.

히브리인은 히스기아 왕의 시절까지 뱀을 숭배했다. 중국인의 용(龍) 숭배는 뱀교가 살아남은 것이다. 뱀의 지혜는 그리스 의술의 상징이었고, 현대의 의사들이 아직도 이를 사용한다.

진화 종교에서 일찍부터 양은 희생 동물의 전형이 되었고,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4. 자연력 숭배 인류는 땅ㆍ공기ㆍ물ㆍ불을 숭배해 왔다.

세례는 바빌론에서 종교 의식이 되었고, 그리스인은 해마다 목욕 의식을 거행하였다.

옛날 사람들은 성난 격류에 영들이 거한다고 상상했고, 어떤 때는 강의 신을 성나게 할까 두려워, 물에 빠지는 사람을 구하려고 손길을 뻗지 않으려 했다.

모세의 시절에도 자연 영들을 믿었기 때문에, 이 영들이 히브리 신학에서 불ㆍ물ㆍ공기의 천사로 지속되는 것을 보장했다.

불의 숭배는 페르시아에서 절정에 이르렀고, 거기서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베스타 여신을 섬기는 처녀들은 신성한 불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고, 20세기에 예배 의식의 일부로서 사람들은 아직도 촛불을 켠다.

5. 천체 숭배 바위ㆍ산ㆍ나무ㆍ동물의 숭배는 자연히 성장해서, 자연력을 두렵게 섬기는 단계를 거치고, 해ㆍ달ㆍ별을 신으로 만들기까지 발전했다.

달 숭배는 태양 숭배를 앞섰다. 달의 숭배는 사냥 시대에 극성했고, 한편 태양 숭배는 농업 시대에 주요한 종교 예식이 되었다.

6. 사람 숭배 땅과 하늘에 있는 모든 다른 것을 숭배했으니까, 사람은 서슴지 않고 자신을 찬미하기 시작했다.

시초의 인간은 특별한 사람을 초인간으로 여겼고, 옛날의 거룩한 자들이 신에게서 영감을 받는다고 우러러보았다.

부족의 추장들은 죽고 나서 신으로 대접받았다. 탁월한 사람들도 죽고 나서 성인(聖人)이 되었다.

사람을 숭배하는 것은 세상의 통치자들이 그러한 숭배를 요구하면서, 그들이 신으로부터 내려왔다고 했을 때 절정에 이르었다.

7. 예배 보조자와 지혜 보조자 자연 숭배는 원시인의 머리 속에서 저절로 생겨났다. 그러나 그동안에 이 원시인의 머리 속에서 여섯째 보조 영이 작용하고 있었고, 이 민족들에게 이전에 수여되었다.

이 예배 영은 그 첫 표현이 아무리 원시적이라도, 인간종의 예배 욕구를 항상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예배의 욕구가 지혜 영의 지도를 받을 때, 그때 이 욕구는 진정한 종교 현상으로 발전한다.

일곱 째 보조 영 (지혜의 영)이 효과적으로 봉사할 때, 사람은 만물의 창조자에게 비로소 고개를 돌린다.

   
  86편, 종교의 초기 진화
  여섯째와 일곱째 지성 영의 영향 하에, 인간의 지성이 정상으로 작용하면, 원시적 예배 욕구로부터 종교가 진화한다.

자연이 인격화되고, 영이 되고, 결국 신(神)이 됨에 따라서, 종교가 있기 전의 두려움은 차츰 종교성을 띠게 되었다.

1. 우연: 행운과 불운 진화 종교의 뿌리는 인간이 우연―이른바 운(運), 보통 일어나는 일―을 체험한 데 기원이 있다.

원시인은 먹을거리를 사냥하는 사람이었다. 사냥의 결과는 늘 변하고, 사람을 이것을 행운이나 불운이라고 해석한다. 불운은 아슬아슬하고 시달리는 삶을 항상 살던 남녀의 인생에서 큰 요인이었다.

현대 유란시아인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하여 분투하지만, 원시인은 살기 위하여 싸웠고, 그들의 인생에서 운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미신을 믿는 야만인은 행운이 이어지는 것을 두려워했고, 그런 행운은 재난이 다가올 전조(前兆)라고 생각했다.

생각 없는 사람들은 행운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잊지만, 불운은 뼈저리게 기억한다.

최근에도 솔로몬의 지혜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내가 돌아와서 보니, 빠른 자가 달리기에 이기지 않고, 힘센 자가 전쟁에 이기지도 않으며, 지혜로운 자가 빵을 얻지도 않고, 명철한 사람이 부를 얻지도 않으며, 기술 있는 사람이 은혜를 받지도 않도다.”

2. 우연의 의인화 원시인은 끊임없이 물었다, “누가 나를 괴롭히는가?”

알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경외함으로부터 종교가 태어났다.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을 따르면, 야만인은 이것들이 원인과 결과라고 보았다.

야만인은 만질 수 없고 추상적인 것을 모두 의인화하려고 애쓰며, 자연과 우연은 귀신으로, 나중에는 신으로서 인격화된다.

야만인은 자연이 살아 있다고, 자연 속에 무엇이 들어 있다고 보았다.

원시인은 어떤 것도 우연이라 여기지 않았고, 모든 일에 반드시 의도가 있다고 생각했다.

3. 죽음―설명할 수 없는 것 죽음은 진화하는 인간에게 최고의 충격이었다. 죽음의 충격으로 두려움이 생겼고, 이처럼 효과적으로 종교가 육성되었다.

원시인이 죽음이 불가피한 것을 깨닫는 데 기나긴 세월이 걸렸다.

모든 종족은 죽지 않는 사람들에 관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병과 자연사는 처음에 영의 영향 때문이라고 믿었다. 이 모든 것이 원죄와 인간의 타락과 같은 교리를 낳았다.

4. 죽음과 생존의 개념 초물질 세계가 있다는 개념은 일상 생활과 귀신 꿈을 연결지어 생겨났다.

돌아가신 추장의 꿈을 몇 사람이 동시에 꾸는 것은 늙은 추장이 정말로 돌아온 것을 확신하게 하는 증거인 것처럼 보였다.

앞날의 생명에 대한 이 새 개념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생각을 없애기 시작했다.

생명의 호흡은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별하는 유일한 현상으로 간주되었다.

인간의 혼에 대한 원시적 개념, 즉 귀신은, 호흡과 꿈 개념으로부터 생겨났다.

결국 야만인은 자신이 몸과 호흡이라고 생각했다. 숨에서 몸을 빼면 귀신이 되었다.

죽음 뒤에 살아남는다는 원시의 신조는 불멸을 믿는 것은 아니었다. 스물을 넘어 셀 수 없는 존재들은 도저히 무한과 영원을 상상할 수 없다. 이들은 거듭 육신화하는 것을 생각했다.

원시인은 지옥이나 앞날의 벌에 대한 관념이 없었다. 야만인은 미래의 인생은 악운만 빼고, 꼭 이 인생과 같다고 보았다.

그리스인은 약한 사람이 약한 혼을 가졌다고 믿었고, 핏기 없는 혼을 받는 장소로 하데스(지옥)을 발명했다.

5. 몸이 없는 혼 개념 사람의 비물질 부분을 귀신ㆍ영ㆍ그림자ㆍ유령ㆍ망령, 나중에는 혼이라고 불렀다.

만질 수 없는 것을 제쳐놓고, 혼은 필사자와 모든 면에서 똑같았다.

몸이 없는 혼의 소리를 듣고 그 혼을 볼 수도 있지만, 만질 수는 없었다.

마침내 죽음은 “귀신을 버리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필사자의 지성과 조절자가 혼을 창조한다는 것을 깨달으려면 사람은 계시와 종교적 체험에 의존한다.

옛날 사람들은 사람에게 깃드는 영, 그리고 진화 성질을 가진 혼, 이 두 개념을 구별하지 못했다.

이들은 혼이 여러 방법으로 몸을 떠날 수 있다고 믿었다:

1. 잠시 기절할 때.
2. 꿈을 꿀 때.
3. 혼수 상태와 무의식에 빠졌을 때.
4. 죽을 때.

야만인은 재채기를 혼이 몸을 떠나려 하다가 그만둔 것으로 보았다. 깨어 있으면, 혼이 도망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히브리인은 하나님이 꿈 속에서 그들에게 말한다고 믿었다. 평범한 꿈은 영 성격자들이 물질 존재와 교통할 때 쓰는 방법이 아니다.

원시인은 혼이 숨과 결합되어 있고, 숨을 불어 혼의 성질을 나누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맏아들이 죽어가는 아버지의 마지막 숨을 붙잡으려고 애쓰는 것이 오랫동안 풍습이었다.

나중에는 숨과 똑같이 그림자를 존중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미신으로 거울을 다루었다.

6. 귀신과 영이 있는 환경 사람은 자연 환경을 물려받고, 사회 환경을 익히고, 귀신에 둘러싸인 환경을 상상했다.

국가는 사람이 자연 환경에 대한 반응이요, 가정은 사회 환경에 대한 반응, 교회는 사람이 귀신에 둘러싸여 있다는 망상에 대한 반응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일찍부터, 공상(空想) 세계가 현실이라고 보편적으로 믿었고, 새롭게 상상한 이 영 세계는 원시 사회에서 권력이 되었다. 온 인류의 정신 및 도덕 생활은 인간의 생각에서 이 새 요소가 나타남으로 영구히 달라졌다.

영 귀신이 성날 때 불운을 쏟아 붓고 기쁠 때 행운을 던져 준다면, 인간의 행동을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개념이 마침내 진화했고, 땅에서 어떤 계시도 내리기 전에 그렇게 되었다.

이 개념이 고개를 들자, 늘 기분이 상한 영을 달래려는 오랜 싸움, 무덤과 성전, 사제들에게 희생물을 바치는 낭비가 시작되었다.

끔찍한 값을 치렀으나, 치러도 좋았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서 사람은 옳고 그른 것을 의식했고 윤리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7. 원시 종교의 기능 야만인은 보험의 필요성을 느꼈고, 보험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미신을 믿고 사제에게 선물을 기꺼이 바쳤다.

원시 종교는 단지 숲에서 사는 위험에 대하여 보험을 사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종교의 영역으로부터 보험 장사를 빼앗고 있고, 이것을 경제학 분야에서 다룬다.

현대인, 적어도 생각이 있는 자는, 운을 통제하려고 이제 더 물 쓰듯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

원시 종교는 사람에게 귀신의 행동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 인간의 운명을 통제하는 초물질 세계가 있다는 생각을 주입하였다.

원시 종교는 생각 조절자의 수여를 위해서 원시인의 지성을 준비시킨다.

신다운 조절자는 그 이후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태도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태도로 바꾸려고 수고해 왔다. 진화는 느릴지 몰라도 틀림없이 효과가 있다.

   
  87편, 귀신 숭배
  귀신 숭배는 불운을 방지하는 수단으로서 진화했다.

이 초기의 종교는 신을 인식하거나 초인간을 존경하는 것과 상관이 없었다.

의식(儀式)은 귀신을 피하거나 내쫓거나 강제하려고 고안되었다.

이 귀신 두려움이 생기고 나서 진정한 하나님 개념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상상력은 계속 진보할 것이다.

1. 귀신 공포증 사람이 죽을 때마다 또 하나의 귀신이 해방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죽음을 무서워했다.

죽음의 장면을 떠나서, 귀신이 죽은 자의 땅으로 빨리 떠나게 유인하려고 옛날 사람들은 안달하였다.

귀신이 초자연의 능력이 있다고 믿었어도, 야만인은 귀신이 머리가 좋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귀신들을 속이려고 많은 전술이 쓰였다. 문명화된 사람은 겉으로 경건을 표시하면, 전지(全知)한 신조차 속일 것이라고 믿어 본다.

죽음이 일어난 집은 보통 부수어 버렸다. 이 두려움 때문에 원시인은 튼튼한 거처를 지으려 하지 않았다. 귀신 두려움은 또한 영구한 촌락이나 도시의 건설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모든 민족이 죽은 자와 접촉한 뒤에 정화(淨化) 예식을 치렀다.

20세기에도 죽은 사람의 방에서 아직도 촛불을 켜며, 사람들은 아직도 죽은 자와 함께 깨어 있다.

조객(弔客)들은 또한 귀신이 따라오지 않도록 장례식으로부터 다른 길로 돌아갔다. 귀신이 무덤에서 되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장하려고, 뒷걸음질과 수십 가지 다른 전략이 쓰였다.

남녀는 귀신을 속이려고 흔히 옷을 바꾸어 입었다.

상복(喪服)은 살아남은 사람들을 변장시키려고, 후일에는 죽은 자에게 존경을 표시하고, 그래서 귀신을 달래려고 고안되었다.

2. 귀신 달래기 영에게 강요하고 부탁하는 단계 이전에 귀신을 달래는 소극적 단계가 오랫동안 앞섰다.

현대인은 화재에 대비하여 보험을 든다. 마찬가지로, 야만인은 귀신이 불운을 일으키지 않도록 미리 방지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했다.

귀신을 눕히는 의식을 치를 때 잘못을 저지르면 귀신이 불쾌하게 생각하고 재난을 일으킨다고 생각되었다.

장례식은 귀신이 미래의 집을 향하여 떠나라고 유인하려는 예식이었다. 장례식의 설교는 최초에, 새 귀신이 어떻게 거기에 가는가 가르치려고 고안되었다.

귀신의 나그네 길에 먹을 것과 옷가지를 마련해 주는 것이 풍습이었고, 이 물건들을 무덤 안에 놓았다. 야만인은 “귀신을 눕히는” 데, 사흘에서 1년이 걸린다고 믿었다.

귀신이 마음을 바꾸어 돌아오지 않도록 침묵을 지키거나 애도하였다. 자학(自虐)―몸에 상처내기―는 보통의 애도 형태였다.

저승으로 떠나기 전, 무덤 근처에 숨어 있는 과도기에, 귀신은 산 사람이 고통을 받아야 기뻐한다고 생각되었다.

오랫동안 애도하고 활동하지 않는 기간은 문명의 진보에 큰 장애물이었다.

옛날 사람들은 빨리 귀신을 쫓아버리고 싶어서, 그들이 갖고 싶어하는 것을 귀신에게 내밀었다. 살림이 넉넉한 야만인은 죽을 때 적어도 노예 아내 하나가 산 채로 파묻히기를 기대하였다. 보르네오인은 아직도 안내하는 동반자를 마련한다.

귀신은 먹을 것의 냄새를 좋아한다고 생각되었다. 장례식 잔치에 먹을 것을 바치는 것은 한때 풍습이었다. 먹기 전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원시 방법은 주문을 중얼거리며 불속에 먹을 것을 던져 영들을 달래는 것이었다.

재산도 태우거나 파묻어 희생하였고, 옛날 장례식의 낭비는 엄청났다.

후일의 종족들은 종이 모형을 만들어서, 진짜 물건과 사람 대신에 바쳤다.

친척의 재산 상속이 재산 태우는 것을 대체했을 때, 문명이 크게 진보하였다. 땅에 있는 많은 재산이 아직도 장례식에 소모된다.

3. 조상 숭배 귀신 숭배가 깊어지자 조상 숭배가 불가피하게 되었는데, 조상 숭배가 상급 영들의 숭배로 이끄는 과도기 단계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부족들은 1년에 한 번, 귀신들을 위한 잔치를 시작하였다. 로마인은 1년의 반을 옛 종파들과 연결된 예식에 바쳤다. 어느 로마 황제는 축제일을 1년에 135일로 줄여 이 풍습을 개혁하려고 애썼다.

4. 좋은 귀신과 나쁜 귀신 오랜 세월 동안 많은 부족이 귀신은 한 종류라는 옛 관념에 집착하였다. 귀신이 기뻐하면 사람의 운이 좋고, 귀신이 성날 때는 운이 나쁘다고 가르쳤다.

두 종류의 영 귀신이 있다는 개념은 느리게, 세계 전역에서 따로 솟아났다.

초기의 일영(一靈) 사상은 차츰 이영 사상으로 진화했고, 두 종류 사이에서, 불운을 가져오는 집단은 행운을 가져오는 집단보다 더 활발하고 수가 많다고 믿었다.

진화 종교는 이영 사상을 얻으려고 끔찍한 값을 치렀으니, 종교가들이 우주의 통일성을 파악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화목하지 않은 영은 칼리가스티아 반란이 있을 때까지 생기지 않았고, 그것도 오순절까지만 계속하였다.

선과 악이 대등하다는 개념은 20세기에도 인간의 철학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5. 진보하는 귀신 숭배

 

원시인은 영과 귀신이 거의 무제한의 권리를 가졌으나 아무런 의무가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사람은 여러 가지 의무가 있지만 아무 권리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인류는 귀신이 인간사에 간섭하지 않는 값으로 귀신 섬기는 세금을 부과한다고 믿었다.

산업 조직과 군사 조직은 자연 및 사회 환경에 대한 조정이었다.

좋은 영들은 인간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고 야만인은 생각한다. 기분이 좋은 상태로 두어야 하는 것은 나쁜 귀신과 영들이었다.

따라서 원시 민족들은 호의를 가진 영보다 악의가 있는 귀신들을 더 주목하였다.

인간의 번영은 악한 영들의 질투를 일으킨다고 생각되었고, 악령은 인간 대리자를 통해서, 그리고 악한 눈의 기술로 앙갚음한다고 믿었다. 악한 눈을 무서워하는 것은 거의 세계적으로 퍼졌다.

아름다운 여인들은 악한 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베일을 썼다.

나중에는 아름다운 사람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뭇 여인이 이 관습을 따랐다.

코란은 한 장 전체를 악한 눈에 배당하며, 유대인은 이를 믿었다.

생식 기관은 악한 눈을 힘 없게 만드는 유일한 주물로 생각되었다.

영들이 인간의 번영을 질투하는 것을 막으려고 채용한 방법은 많이 사랑받는 물건이나 사람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이었다.

자신이나 가족에게 칭찬하는 말을 깎아내리는 관습은 여기에서 기원을 가졌고, 결국 문명화된 겸손ㆍ자제ㆍ예의로 진화했다.

같은 취지로, 못나게 보이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그래서 야만인은 못난 이름을 찾았다. 이 유행은 예술의 진보에 큰 장애가 되었고, 세계를 오랫동안 보기 싫게 만들었다.

귀신 숭배 전체가 가장된 뇌물을 통해서 영들을 달래고 매수하려고 고안된 장치였다.

새로운 세계 철학이 다음과 같이 성장했다.

(i) 의무. 영들을 기분 좋게, 적어도 중립 상태로 두기 위해서 할 일.
(ii) 권리.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영들을 설득하려고 고안된 행위와 예식.
(iii) 진실. 영들을 똑똑히 이해하는 것.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

옛날 사람들은 불운을 피하고 싶어했다. 점치기는 다만 곤경을 피하려는 시도였다.

6. 강제와 귀신 쫓아내기 사람들이 귀신만 믿었을 때 종교 의식은 체계가 없었지만, 높은 영들을 인식하게 되자 이들을 다루려고 “높은 영적 방법”이 필요하게 되었다.

원시인의 귀신 숭배는 달래기, 곧 뇌물로 불행을 피하려는 시도에 국한되었다.

좋은 영이 있다는 개념에 이르기까지 진보하면서, 이 예식은 행운을 얻으려는 노력으로 바뀌었다.

사람의 첫 방어 노력은 귀신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시대가 지남에 따라서, 귀신을 놀라게 하고 쫓아버리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여러 기술이 개발되었다.

(i) 목을 자르고 몸을 무덤에 묶어 놓기.
(ii) 죽음이 있던 집에 돌 던지기.
(iii) 시체를 거세하거나 다리를 분지르기.
(iv) 돌 밑에 묻기. 현대 묘비의 기원.
(v) 화장. 귀신 문제를 방지하려고 후일에 발명한 것.
(vi) 시체를 바다에 던지기.
(vii) 시체를 야생 동물이 먹도로 버려두기.

귀신은 시끄러운 소리에 놀란다고 생각되었다. 종 소리, 북 소리는 귀신을 쫓아냈다. 죽은 자를 위하여 “밤 샘”할 때, 이 관습은 아직도 유행한다.

귀신이 가까이 있을 때, 수탉이 운다고 믿었다. 풍향계로서 수탉을 쓰는 것은 이 미신의 잔재이다.

귀신을 막는 데는 물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생각되었다. 로마인은 시체 둘레에 물을 세 번 날랐고, 20세기에 몸에 신성한 물을 뿌리고 공동 묘지에서 손 씻는 것은 아직도 유대인의 의식이다.

그러나 사람은 귀신을 강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옛날의 관습을 지킴으로 영과 반신반인들의 행동을 강요할 수 있다고 믿었다.

너희는 서로에게 보통 말을 쓰지만, 기도할 때는 오래 된 말씨에 의존한다.

다음에 의식에서 서약하는 관습이 왔다. 맹세에는 자학, 나중에는 단식과 기도가 뒤따랐다.

현대인은 드러내놓고 영들을 강요하려고 하지 않지만, 아직도 신과 협상하려는 성향을 나타낸다.

7. 종파 예배의 본질 종파와 같은 사회 조직은 도덕 감각과 종교적 충성을 자극하는 어떤 상징을 마련했기 때문에 지속했다.

초기 기독교의 예배는 일찍이 고안된 어떤 의식 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이었으나, 과학 시대에 많은 기초적 개념을 잃어버림으로 활력을 잃었다.

의미 없는 예배 의식은 철학을 대체하고 논리를 예속시키려 할 때 종교를 망친다.

진실이 새롭게 계시될 때마다 새 종파가 생겼고, 예수의 종교를 다시 진술하는 것조차도 새로운 상징을 개발해야 한다.

상급 문명의 이 상징은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개념에 근거를 두고 사람이 형제라는 이상을 담고 있어야 한다.

새 종파는 영적 진보를 수월하게 하고, 도덕적 가치를 키우고, 사회 발전을 격려하며, 개인에게 높은 종교 생활을 자극해야 한다.

어떤 종파도 가정의 생물학ㆍ사회학ㆍ종교적 의미에 기초를 두지 않으면 오래 지속하고 문명의 진보와 영적 달성에 이바지할 수 없다.

어떤 종파도, 어떤 멋진 신비를 담고, 성취할 수 없는 어떤 값진 것을 감추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한 종파는―의식(儀式)이나 표어나 목표와 같은 상징이―너무 복잡하면 작용할 수 없다. 그리고 헌신, 충성을 요구해야 한다.

어떤 종파도 도덕적 성장을 지체하고 영적 진보를 촉진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88편, 주물과 부적과 마술
  생명이 없는 사물이나, 동물, 또는 사람 속으로 영이 들어간다는 개념은 존중받을 믿음이며, 종교의 진화가 시작될 때부터 유행하였다.

신에 들린다는 교리는 주물 숭배임이 틀림없다.

야만인은 주물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영을 숭배하였다.

1. 주물을 믿는 신앙 원시인은 특별한 것은 무엇이나 주물(呪物)로 만들고 싶어했다.

구슬 목거리는 한때 신성한 돌의 수집이요 부적을 모은 것이었다.

불과 물도 초기의 주물이었고, 거룩한 물과 함께 불의 숭배는 아직도 남아 있다.

식물과 과일이 주물이 되었을 때, 이것들은 먹지 못하는 금기가 되었다. 레반트 민족들은 사과를 먹지 않는다.

동물이 주물이 되었을 때, 그 동물의 고기를 먹지 말라는 금기가 생겼다.

가축이나 소유물을 세는 것은 운이 나쁘다고 생각되었다. 옛 사람들은 “사람들의 수를 세는 것”을 반대했다.

침은 효력 있는 주물이었다. 두개골 주물을 믿는 관념은 후일에 머리 사냥을 설명한다.

주물 인간은 사람보다 높다고 생각되었고, 신답고 잘못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추장ㆍ임금ㆍ사제ㆍ선지자, 교회 지도자들은 결국, 큰 힘을 쓰고 한없는 권한을 행사한다.

2. 주물의 진화 옛날 사람들은 언제나 지도자의 뼈를 숭앙하였고, 아직도 많은 사람이 성자(聖者)와 영웅의 유골을 미신으로 두렵게 여긴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위인의 무덤을 순례한다.

유품을 믿는 것은 옛적 주물 숭배의 부산물이다.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나님의 집이 될지니라.” (창세기 28:22)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이 그러한 돌 제단에 거한다고 참으로 믿었고, 돌 제단은 실제로 주물이었다.

뛰어난 죽은 사람을 기억하려고 최초의 형상들이 만들어졌다.

우상은 주물 숭배를 다듬은 것이다.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거나 아래로 땅에 있거나, 또는 지상의 바다에 있는 어떤 것이라도 그 새긴 형상이나 모습을 만들지 말지니라.

제2 계명은 유대인 사이에서 예술을 발전을 늦추었지만, 주물 숭배를 줄였다.

다양한 신자들은 신성한 책에 기록된 것은 모두 진실일 뿐 아니라, 모든 진실이 그 책에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책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말하면, 오랜 세월이 지나도, 다른 면에서 멀쩡한 남녀들이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성서를 열어 눈이 떨어지는 한 구절로 중대한 결정이나 사업을 좌우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주물 숭배에 지나지 않는다. “신성한 책”을 놓고 선서하는 것도 세련된 주물 숭배이다.

주물이 되려면, 안에 있는 말씀은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되어야 했고, 신에게서 영감을 받아 썼다고 말씀을 인용하는 것은 교회의 권한을 확립하였다.

3. 토템 신앙 주물 숭배는 돌의 숭상을 비롯하여, 우상 숭배, 식인 풍습, 토템 신앙에 이르기까지, 모든 원시 종교에 침투한다.

토템은 집단의 상징이자 그들이 믿는 신의 상징이었다. 토템 신앙은 개인적 종교를 사회적 종교로 만들려는 시도였다. 토템은 결국 현대 민족들의 깃발, 나라의 상징으로 진화하였다.

주물 자루는 귀신이 들어 있는 물건들을 담은 자루였다. 옛날의 주술사는 주물 자루가 땅에 닿게 하지 않았다. 20세기에 문명화된 민족들도 국기가 결코 땅에 닿지 않도록 처리한다.

주물이 된 임금은 “신이 준 권한”으로 다스렸다.

사람들은 또한 민주주의를 주물로 만들었고, “여론”이라고 불렀을 때, 보통 사람의 생각을 찬양한다. 한 사람의 의견은 그다지 값지게 여기지 않지만, 여러 사람이 판단할 때, 이 평범한 판단은 올바름의 표준이라고 여긴다.

4. 마술 문명화된 사람은 과학으로 실재하는 환경 문제를 해결한다.

야만인은 마술로 환상적 귀신 환경에 실재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마술ㆍ마법ㆍ강신술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i) 미래를 보는 통찰력을 얻기 위하여.
(ii) 유리하게 환경에 영향을 미치려고.

과학의 목적은 마술의 목적과 똑같다.

오랜 체험을 통해서 인류는 마술에서 과학으로 진보하고 있다.

사람은 잘못하여 시작하고, 잘못하면서 진보하고, 마침내 진실의 문턱에 다다른다.

원시인은 실험하든지 아니면 멸망해야 했다.

원시적 미신에는 두려움과 호기심이 있었다. 이러한 미신은 행성의 환경을 알고 통제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태어난 것을 가리켰다.

야만인은 자연사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마술은 야만인에게 위력을 가졌다.

마술 퇴치가 어려운 것은 두려움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에서 생긴다.

5. 마법의 부적 몸에서 생긴 것은 무엇이나 주물이 되었고, 가장 옛적의 마술은 머리카락ㆍ손톱ㆍ발톱을 사용하였다. 몸에서 나온 배설물은 해로운 마술에 쓰일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조심스럽게 파묻었다.

형상이 마술에 효력이 있다고 생각되었고, 형상을 어떻게 다루면 똑같은 효과가 진짜 몸에 일어난다고 믿었다.

물건을 살 때, 미신 믿는 사람들은 파는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려고 단단한 나무 조각을 씹곤 했다.

원시인은 신들의 이름을 존중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름은 혼과 그림자와 똑같이 존중되었다.

돈을 빌릴 때 이름을 전당 잡혔으며, 빌린 돈을 치르고 다시 찾기까지, 사람은 제 이름을 쓸 수 없었다.

오늘날 사람은 증서에 제 이름을 서명한다.

병을 고치거나 불운을 그치게 만들려고 이름을 갈기도 했다.

사람들은 아직도 직함과 학위에 투자한다.

6. 마술의 풍습 “주술”은 치료가 아니라 신비를 뜻한다.

마술에는 대중 단계와 개인 단계가 있었다.

주술사나 샤먼이나 사제가 행하는 것은 부족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생각되었다.

마술사들은 이기적인 마술을 시행했고, 이것은 적에게 불운을 가져오는 강제 방법으로 쓰였다.

찬송가와 주문이 사용되는 의식은 어지간한 마술이었다.

초기의 주문은 마침내 기도로 진화했다. 흉내내는 마술이 시행되었다. 연출로 기도를 표현하였다.

기도는 희생 예식에 부수되어, 차츰 마술을 대신하였다.

마술은 진화 종교에서 가지쳐 나왔고, 결국 과학 시대라는 열매를 맺었다.

점성술을 믿는 것은 천문학의 발전으로 이끌었다.

미개한 시절에 많이 아는 것은 위험했고, 언제나 흑(黑) 마술사로서 사형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옛적의 마술은 현대 과학을 낳은 고치이며, 그 시대에 불가결했으나 지금은 더 쓸모가 없다.

세계의 절반이 진실의 빛과 사실을 움켜쥐었고, 나머지 반은 옛적의 미신과 마술에 안겨 시들고 있다.

   
  89편, 죄와 희생과 속죄
  원시인은 자신이 영들에게 빚졌다고 생각했다.
야만인이 보건대, 공평하자면, 영들은 훨씬 더 많은 불운을 그에게 퍼부을 수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이 개념은 죄와 구원의 교리로 발전되었다.
야만인은 영들이 사람의 빈곤ㆍ고통ㆍ굴욕을 구경함으로 만족한다는 생각에 젖어 있었다.

처음에 사람은 저지른 죄에만 아랑곳했으나, 나중에는 (예식에서 무언가) 빠뜨리는 죄를 걱정하게 되었다.
신을 달래는 것은 앞날에 축복을 얻기 위한 투자가 아니라, 당장의 불운을 막는 보험이었다.

1. 금기 금기(禁忌)를 지키는 것은 영 귀신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금기는 처음에 종교적인 것이 아니었으나 금기는 예식 기준의 근원이요, 원시적 자제(自制)의 시초였다.

금기는 처음에 불운을 겪었기 때문에 생겨났다. 나중에는 추장과 샤먼이 금기를 제안했다.
일찍부터 있었던 금지 사항은 여자와 기타 재산에 손대지 말라는 제한이었다.

금기의 진화에서 종교가 큰 역할을 하게 되자, 금지된 물건을 더럽다, 나중에는 거룩하지 않다고 여겼다.
히브리인의 기록은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않은 것을 가득히 언급한다.

히브리인의 십계뿐 아니라, 달라마시아와 에덴의 일곱 계명은 금기였고, 모두가 부정 (하지 말라는)형태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계명은 이전에 있던 수천 가지 금기를 대신했으므로 발전된 것이었다.

먹을 것에 대한 금기는 주물 숭배로부터 생겨났다.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에집트인의 금기는 히브리와 이슬람 종교에서 지속되었다.
먹는 방법이 금기가 되었고, 그래서 고대와 현대의 식탁 예절이 생겨났다.

2. 죄의 개념 원시인은 불운을 방지하는 수단으로 원시 종교를 발명하게 되었다.
원시 종교는 마술과 귀신의 단계로부터 주물을 거쳐 금기로 진화하였다.
원시 부족마다 “무엇을 하지 말라”는 금기가 있었다.

계시된 종교가 미처 나타나기 전에, 세상에서 죄에 대한 개념은 확립되었다.

죄는 금기를 어기는 것이요, 죽음은 죄에 대한 벌이었다.
에덴 동산의 전통은 또한 개벽 시절에 황금 시기가 있었다는 전설을 낳았다.

특별 창조가 있을 때 사람이 기원을 가졌고, 사람은 완전한 상태로 생애를 시작했으나, 금기를 어긴 때문에, 곤경에 빠졌다는 신앙을 표현하였다.

금기를 버릇처럼 어기는 것은 악덕이었다. 원시 율법은 악덕을 범죄로 다루었으나 종교는 악덕을 죄로 만들었다.

옛 부족들은 올바른 자가 번영한다고 믿었다. 악한 자가 번영하는 것이 너무 걱정되어서, 금기를 위반하는 자를 벌하려고 지옥을 발명하는 것이 필요했다.

죄의 고백과 용서의 관념은 원시 종교에서 일찍부터 나타났다.
사람들은 다음 週에 저지를 죄 때문에, 대중 집회에서 용서를 부탁하곤 했다.

고백은 용서하는 의식이었고, 정화(淨化)하는 절차가 뒤따랐다.

3. 극기와 굴욕 종교의 진화에서 극기 단계가 다가왔다.

금식은 보통 관습이었고, 성적(性的) 성질을 가진 쾌락을 그만두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 굶는 의식은 여러 고대 종교에 뿌리 깊이 박혀 있다.
죽은 자와 함께 재산을 태우는 낭비적 관습에서 야만인이 회복할 무렵이 되자, 극기를 부르짖는 교리가 나타났다.

물질의 소유가 영적으로 위험하다는 개념은 빌로와 바울의 시절에 유행하였고, 그 뒤로 유럽의 철학에 두드러지게 영향을 주었다.
극기와 자제는 초기의 진화 종교에서 얻은 두 가지 큰 사회적 이득이었다.

자제는 이기적 만족이라는 분자를 늘이려고 애쓰는 대신에, 개인적 요구인 분모를 낮춤으로 인생의 분수(分數)를 높이는 기술을 사람에게 가르쳤다.

극기와 굴욕을 부르짖는 종파는 자연히 성욕에 눈을 돌렸다. 성욕을 절제하는 종파가 의식으로서 생겨났다. 기독교가 이 교리에 두드러지게 영향을 받았다.

바울은 이 개인적 관점을 이렇게 표현했다.

“남자가 여자에게 손대지 않는 것이 좋으니라.” “모든 사람이 바로 나와 같기를 바라노라.” “그러므로 결혼하지 않은 자와 과부들에게 내가 이르노니, 나처럼 지내는 것이 저희에게 좋으니라.”

천막을 만드는 그 선생의 조언을 널리 순종한다면, 인류는 갑자기 종말에 이를 것이다. 예수는 추종자들에게 이런 부당한 관점을 가르치지 않았다.
언젠가 사람은 방종하지 않고 자유를, 포식하지 않고 영양을, 방탕하지 않고 즐거움을 누리는가 배워야 한다.

4. 희생의 기원 종교적 의미에서 희생물을 바치는 것은 한 가지 기원을 가지지 않았다.

원시인은 희생의 값을 고통으로 쟀다. 종교 의식으로서 희생물 바치는 관습이 시작되었을 때, 아픔을 낳지 않는 헌물을 고려되지 않았다.
처음 희생물은 머리카락을 뽑고, 살을 베어내고, 이를 쳐서 뽑고, 손가락을 잘라 버리는 것과 같은 행위였다.
이러한 투박한 희생 개념은 자기 절제, 금욕주의ㆍ금식ㆍ궁핍의 수준으로, 나중에는 고통, 정욕(情慾)을 억제하는 기독교 교리까지 발전했다.

일찍부터 두 가지 희생 개념이 존재했다. 선물 바치는 것은 추수를 감사하는 태도를 암시했고, 희생물을 죄값으로 바쳤다. 나중에는 (실물 대신에) 대용품 개념이 발전되었다.
희생물은 신의 콧구멍에 향기가 된다고 생각되었다. 이렇게 향을 피우는 관습이 시작되었고, 그 의식은 희생물 바치는 잔치로 발전되었다.

최초의 희생 관념은 조상의 영들이 마땅한 세금을 부과한다는 개념이었고, 나중에야 속죄 관념이 개발되었다.

개인이 저지른 죄 때문에 희생물 바치는 것은 나중에 종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희생물 바치는 교리로 진화하였다.

원죄 교리, 곧 종족이 날 때부터 죄가 있다는 교리는 사람마다 영들에게 무거운 빚을 지고 인생을 살게 만들었다.

선물이나 뇌물을 사람들에게 주지만, 신들에게 주었을 때, 그러한 선물을 거룩하게 된다고 이야기했고, 이를 희생물이라고 불렀다.
극기는 소극적 형태로 신을 달래는 것이었고, 희생물 바치는 것은 적극적 형태가 되었다.

신을 달래는 행위는, 신을 찬송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을 포함하였다.
오늘날의 예배 형태는 다만 적극적으로 신을 달래고 희생물을 바치는 옛 기술을 의식으로 만든 것이다.

동물 바치는 것은 원시인에게 중요했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은 약삭빨라졌고, 일하는 동물 바치기를 그쳤다.
어떤 에집트 통치자는 노예를 10만 명 이상, 송아지를 거의 50만 마리를 바쳤다. 이렇게 하려고 그는 백성들에게 무서운 세금을 부과했다.

5. 희생물과 식인 풍습 옛적에 사람을 잡아먹던 풍습에 대한 현대의 개념은 틀리다. 식인 풍습은 옛 사회의 도덕 관습의 일부였다.

원시 인간은 식인자였고, 사람의 고기를 즐겼다. 따라서 원시적 신들에게 먹는 선물로서 사람의 고기를 바쳤다. 귀신은 단지 사람의 모습이 변한 것이었고, 사람에게 먹을 것이 가장 큰 필요였기 때문에, 귀신도 먹을 것이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산긱 종족들은 모두 식인종이었으나, 최초에 안돈 족속은 그렇지 않았고, 놋 족속과 아담 족속도 그렇지 않았다. 진화 종족들과 크게 섞이기까지, 안드 족속도 식인종이 아니었다.

사람 고기에 맛을 들이면, 그 입맛은 자란다.
사람을 먹는 일은 식량이 모자라서 생겼다. 그러나 이것이 근본적 이유였던 적은 드물다.
한때는 원시의 어머니가 아이를 배느라고 잃어버린 기운을 되찾으려고 제 아이를 잡아먹는 것이 일반 풍습이었다.

식인 풍습은 대체로 진화 종족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사람의 고기를 먹는 것은 엄숙한 복수 예식의 일부가 되었다.
어떤 부족들 사이에서 늙은 부모는 자식들에게 먹히려고 애썼고, 다른 부족들 사이에서는 가까운 친척 잡아먹기를 삼갔다.
병이나 전쟁이 인구를 통제하지 못할 때, 남는 사람은 예식도 차리지 않고 잡아먹혔다.

식인 풍습은 다음 영향으로 차츰 사라지고 있었다.

(i) 식인 풍습이 공동체의 예식이 되었다.”
(ii)
귀신 공포증이 반드시 식인 풍습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iii) 식인 풍습은 몸에서 겨우 어떤 부분이나 내장을 먹는 것으로 진보했다. 이것들은 혼이나 영을 담고 있다고 생각된 부분이었다.
(iv) 남자에게 국한되었고, 여자는 사람 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되었다.
(v) 다음에는 추장ㆍ사제ㆍ주술사에게 국한되었다.
(vi) 식인 풍습은 상급 부족들 사이에서 금기가 되었다.

사람을 먹지 말라는 금기는 달라마시아에서 시작되었고, 천천히 세계에 펴졌다. 시체를 파내서 먹는 것이 흔한 관습이었기 때문에, 놋 족속은 식인 풍습을 퇴치하기 위하여 화장(火葬)을 권장했다.
(vii)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식인 풍습에 종지부를 찍었다.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관습이 자리잡았을 때, 사람 잡아먹는 것은 금기가 되었다.

마침내 동물 대용품이 널리 쓰이게 되었고, 뒤처진 부족들 사이에서도 개 잡아먹기는 사람 잡아먹기를 크게 줄였다.

6. 사람 바치기의 진화 어느 때인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관습에 빠지지 않은 민족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안돈ㆍ놋ㆍ아담 족속은 식인 풍습에 가장 적게 물들었다.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거의 보편적이었다. 이 풍습은 중국인ㆍ힌두인ㆍ에집트인ㆍ히브리인ㆍ메소포타미아인ㆍ그리스인ㆍ로마인의 종교 관습에서 지속하였고, 아프리카와 오스트랄리아이 부족들 사이에서 요즘까지도 지속되었다.

약 2천 년 전에, 마음씨 고운 어느 황제는 사람을 잡아 바치는 대신에 진흙 형상을 바치게 하였다.

예붓다와 외동딸에 관한 히브리인의 이야기보다 더 비극인 이야기는 남아 있지 않다. 좋은 의도를 가진 이 사람은 “전쟁의 신”과 협상하였고, 그를 맞이하려고 집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자를 바치겠다고 어리석게 서약하였다.

예붓다는 충실한 종 하나가 집에서 나오리라 생각했으나, 알고 보니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 그를 맞이하려고 나왔다. 문명화되었다고 생각된 민족 사이에서, 두 달 동안 제 운명을 슬퍼한 뒤에 이 아름다운 소녀를 제물로 실제로 바쳤다.

남자와 여자는 바보 같은 맹세를 하는 데 빠지며, 옛날 사람들은 그러한 서약을 무척 거룩하게 여겼다.

옛 시절에는 중요한 건물을 짓기 시작할 때, “기초에 넣는 제물”로서 사람을 죽여 바치는 것이 풍습이었다.
중국인은 종소리를 좋게 만들려고 소녀 하나를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뽑힌 소녀는 산 채로 녹은 쇳물 속으로 던져졌다.

모세는 건물의 기초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금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가 죽고 나서 이 풍습으로 돌아갔다.

첫 아이를 제물로 바친다는 생각은 페니키아인 사이에서 널리 퍼졌다. 이들은 제물을 바치면서 “목숨 대신에 목숨을”하고 말하곤 했다. 이제는 사람이 죽었을 때, 너희는 “티끌에서 티끌로”하고 말한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치는 광경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새롭거나 이상한 관념이 아니었다. 드문 일이 생겼을 때 사람을 제물로 바쳐야한다는 관념이 한때 널리 퍼졌다.

7. 사람 제물의 수정 모세는 사람을 바치는 대신에 몸값 내는 관습을 시작하였다.
요금(속전)을 내면, 땅과 재산과 아이들을 구제할 수 있었고, 이 요금을 사제들에게 낼 수 있었다.

첫 아이 잡아바치기를 그만둔 무리들은 뒤처진 이웃보다 크게 유리했다. 뒤떨어진 부족들은 아이들을 이렇게 잃었기 때문에, 크게 약화되었다.
대부분의 집단이 아이들을 잡아죽이는 의식을 그만둔 뒤에도, 갓난아기를 광야나 강물에 작은 배 속에 버려두는 것이 풍습이었다.

사르곤ㆍ모세ㆍ싸이러스ㆍ로물루스의 경우와 같이, 아이가 살아남으면, 신들이 그를 살리려고 간섭했다고 믿었다.
그리고 나서 아이들이 자라도록 버려두고, 다음에 죽이는 것에 준하여 그들을 추방하는 관습이 뒤따랐다. 이것이 식민지가 생긴 기원이었다.

성(性)의 문란으로 생긴 특이한 관계는 사람을 바치는 것과 관련하여 기원이 생겼다. 옛날에는, 여자가 머리 사냥꾼을 만났을 때, 몸을 제공함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나중에는 신들에게 희생물로서 성스럽게 바친 소녀는 몸을 일생 동안 성전에서 신성한 성교 서비스에 바침으로 제 목숨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방법으로 그 여자는 몸 찾는 돈을 벌 수 있었다. 이렇게 몸값을 치르는 데 종사하는 여인과 성관계를 가지는 것은 사람을 무척 고상하게 만드는 일로 여겼다.

성전의 매춘은 결국 남부 유럽과 아시아에 두루 퍼졌다. 상급 여인들의 상당수가 성전에서 몸 파는 서비스로 지참금을 모았고,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런 여자를 아내로 가지기를 더 좋아했다.

8. 되찾기와 약속 죄값을 치르기 위한 희생물 바치기와 성전 매춘은 실제로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의 변종이었다. 다음에는 딸들을 바치는 예식이 따랐는데, 일생 동안 처녀성을 지키고 방혈(防血)하는 것이 요구되었다. 이것은 이전의 성전 매춘에 대한 도덕적 반작용이었다. 후일에는 처녀들이 성전의 불을 지키는 봉사에 헌신하였다.

사람을 완전히 제물로 바치지 않고 몸의 어떤 부분을 대신 바치는 풍습이 따랐다.

머리카락ㆍ손발톱ㆍ피를 바쳤다.
옛 할례 의식은 부분을 희생하는 의식(儀式)의 산물이었다. 순전한 희생이었고, 거기에 위생을 지키려는 생각이 따라붙지 않았다. 남자들은 할례를 받았고, 여자들은 귀에 구멍을 뚫었다.

내시(內侍)를 만드는 것은 처음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생각을 고친 것이었다. 코와 입술 뚫기는 아직도 아프리카에서 실행되고 있고, 문신(文身)은 예전에, 상스럽게 몸에 상처를 입히는 풍습이 진화한 것이다.

희생물 바치는 관습은 결국 약속 관념과 연결되었다.
마침내 신들이 사람과 진짜 협정을 맺는다고 생각되었고, 이것은 종교를 안정시키는 큰 걸음이었다.

율법, 곧 계약이 운ㆍ두려움ㆍ미신의 자리를 대신한다.

사람이 초기에 가졌던 하나님 관념은 너무 인간을 닮아서, 자신이 비교적 믿을 만하고, 윤리가 있게 될 때까지, 사람은 의지할 수 있는 신을 상상할 수 없었다.
진화하는 인간은 결국 신들과 주제넘게 협상하는 수준까지 도덕적 위엄을 얻었다.

이 모두가 불운에 대비하여 보험을 드는 조치, 아니 번영을 더 확실히 사들이는 기술이었다.
이 옛날의 제물이 신들에게 거저 드리는 선물, 고맙다거나 추수를 감사하는 표시로 자진해서 드리는 것이라는 그릇된 생각을 품지 말라.

원시 형태의 기도는 영들과 협상하는 것, 신들과 따지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발전하는 상업은 무역 정신을 불러일으켰고, 물물 교환하는 눈치를 개발하였다.

어떤 사람은 남보다 더 기도를 잘하는 자로 생각되었다. 올바른 사람은 신들에게 모든 의식(儀式) 의무를 충분히 끝낸 사람이었다.

초기의 기도는 건강ㆍ재산ㆍ목숨을 위하여 협상하는 탄원이었다. 여러 면에서, 기도는 시대가 지남에 따라서 별로 바뀌지 않았다. 기도를 아직도 책에서 읽어치우고, 형식으로 외우고, 적어서 바퀴에 붙이고 나무에 걸어 놓으며, 지나가는 바람은 후― 하고 부는 수고를 덜어준다고 생각하였다.

9. 제물과 성찬 유란시아에서 의식(儀式)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장사로부터 더 높은 상징적 수준으로 발전되었다. 희생물을 바치는 초기의 의식은 후일에 성찬 예식을 낳았다.

멕시코와 기타 장소에서, 사람을 바치는 예식에 있는 피와 살을 대신하여, 케이크와 포도주를 드는 성찬이 이용되었다. 히브리인은 유월절 예식의 일부로서 이 의식을 오랫동안 지켰고, 이로부터 나중에 기독교의 성찬식이 생겼다.

사도 바울은 피와 희생물 이론으로 기독교를 번거롭게 만들기는 했어도, 인간이나 동물을 바쳐서 속죄한다는 교리를 한숨에 끝내버렸다. 바울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마지막 사람 제물이 되었다. 신성한 재판관은 이것으로 영원히 만족한다고 생각되었다.

현대 종교는 사람을 잡아서 바치는 예식과 더 오래된 사람 잡아먹는 의식, 이 두 가지를 정통으로 이어받았다. 많은 사람이 아직도 구원을 받으려고 피에 의존하지만, 적어도 그것은 상징이 되었다.

10. 죄의 용서 옛날 사람은 희생물을 바치고서 겨우 하나님의 은혜를 의식하였다.
죄의식은 필사자의 머리 속에 남아 있지만, 구원받는다는 생각은 케케묵었다.

죄는 의도하여 신에게 불충하는 것이라고 다시 정의를 내려야 한다.

불충에는 정도 차이가 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부분적 불충, 갈등으로 충성을 두 군데 바치는 것, 무관심으로 죽어가는 충성, 신이 없는 이상에 헌신하는, 죽은 충성심이 있다.

죄를 지었다는 느낌은 도덕 관습을 어긴 것을 의식하는 것이요, 그것이 반드시 죄는 아니다. 의식하면서 신에게 불충하지 않을 때 진짜 죄는 없다.

죄책감을 깨닫는 가능성은 인류에게 탁월성이 있다는 표시이다.
죄책감은 사람의 비열함이 아니라, 오히려 위대하게 될 잠재성이 있음을 표시한다.

그러한 모자란다는 느낌은 시초의 자극이며, 이것은 믿음으로 도덕적으로 고귀한 수준, 영적 생활을 하는 수준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이처럼 인간의 존재에서 의미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일에서 영원한 수준으로, 인간다운 것으로부터 신다운 것으로 높아진다.

죄의 고백, 죄의 성질을 진지하게 인정하는 것은 종교적 성장에 필수이다.

용서를 찾을 필요는 없다. 용서는 사람과 창조자 사이에 충성스러운 관계가 다시 세워짐을 의식함으로 얻는다.

   
  90편, 주술 신앙―주술사와 사제
  종교적 관습은 처음에 귀신을 구슬리고, 회피하고 쫓아내려는 단계로부터, 죄지은 값 물어내기, 값을 치르고 되찾기에 이르기까지 진보하였다.

의식이 복잡해지자, 불가피하게 주술사ㆍ샤먼ㆍ사제들이 의식을 지배하게 되었다.

영들은 특별한 남자나 여자의 말을 듣는다고 생각되어, 종교는 차츰차츰 남의 손을 빌리는 새 국면에 접어든다.

반드시 주술사나 사제가 신자와 숭배받는 자 사이에 끼어든다.

오늘날 유란시아의 조직된 종교는 이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다. (목사와 신부 등)

샤먼이나 주술사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중개자ㆍ통역자ㆍ중재자로서 주제넘게 자리를 차지한다.

1. 처음 샤먼―주술사 많은 집단에서 샤먼은 전쟁 추장보다 높았는데, 이것은 교회가 국가를 지배하는 시대가 시작됨을 알린다. 많은 경우에 샤먼의 직책은 상속되었다.

사소한 문제에서 속임수를 썼을지 모르지만, 대다수의 샤먼은 그들이 신들렸다는 사실을 믿었다.

많은 샤먼은 눈치 빠르고 유능한 사기꾼이었다.

풋내기는 주술사 자격을 얻기 위해서 10년의 세월을 견습생으로 일하는 것이 요구되었다.

샤먼은 어떤 신비스런 신체적 상태를 유도하려고 흔히 마약을 이용했다.

약삭빠른 사제들은 복화술을 이용하고, 옛날 샤먼은 최면에 익숙하게 되었다.

샤먼이 실패했을 때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을 수 없으면, 강등되거나 죽음을 당했다.

이처럼 정직한 샤먼은 일찍 이슬로 사라졌고, 눈치 빠른 배우들만 살아남았다.

눈치 빠른 자, 선견이 있는 자가 부족 사무를 지휘하게 되었다.

2. 주술 관습 영을 불러내는 것은 까다로운 절차였고, 옛날 말로 행해지는 오늘날의 교회 의식과 견줄 만하다.

인류는 일찍부터 계시를 추구하였고, 사람들은 샤먼이 그러한 계시를 받는다고 믿었다.

샤먼 계급이 발전되자, 비 부르기, 병 고치기, 범죄 찾아내기와 같은 직종으로 전문화하기 시작했다.

고대에 종교나 속세에서 쓰인 흑마술은 사제나 샤먼이 썼을 때 백마술이라 불렀다. 흑마술을 쓰는 자는 마법사로 불렀다.

샤먼들은 우연이 영들의 뜻을 드러낸다고 믿었다. 이들은 제비를 뽑아서 자주 결정을 내렸다.

주술사는 징조와 전조를 믿었다.

일찍부터 샤먼들은 별에 눈을 돌렸고, 점성술과 꿈풀이는 널리 퍼졌다.

옛날 사람들은 샤먼이 비를 내리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었지만, 실패했을 때 그럴듯한 핑계를 댈 수 없으면, 그를 죽이는 것이 풍습이었다.

로마의 황제들은 점성가들을 추방했지만, 대중이 그들의 힘을 믿었기 때문에 점성가들은 되돌아 왔다.

총명하다고 생각되는 많은 사람이 행운이나 불운의 별자리에서 태어난다고 믿으며, 천체들이 한 줄로 서 있는 것은 땅에서 모험의 결과를 좌우한다고 아직도 믿는다.

샤먼이나 사제가 대중 교육을 반대하고 과학의 진보를 막으려고 애쓰더라도, 참된 선생들은 늘 나타날 것이다.

사제와 주술사들은 영들에게 바치는 제물을 축적하여 흔히 부유하게 되었다.

부자가 죽고 나면, 그의 재산을 샤먼과 공익 사업이나 자선에 똑같이 나누는 풍습이 아직도 티벳의 어떤 구석에서 있는데, 거기에는 남자 인구의 절반이 이렇게 비생산자에 속한다.

샤먼은 아내를 보통 몇명이나 거느렸다. 그들은 최초의 귀족이었고, 흔히 권력을 가진 자리에 올라서 추장이나 임금을 지배할 수 있었다.

3. 병과 죽음에 대한 샤먼 이론 원시인은 귀신이나 신들이 생명과 물질을 통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원시인은 초인간 매개자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하였다.

모든 병과 죽음을 영적 현상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샤먼은 사제로 활동하면서 또한 불가피하게 의사로 수고해야 했다.

원시인은 사실을 모르는 단점이 있었지만, 논리가 있었다. 샤먼과 과학자는 다음의 원인이 고통을 일으킨다고 주창하였다.

(i) 귀신

영들이 혼이 몸을 떠나도록 유혹하여 병을 일으키며, 혼이 몸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죽음이 따른다고 생각되었다. 옛날 사람들은 귀신을 너무 무서워해서, 아픈 사람에게 먹을 것이나 물도 주지 않고 버려두었다. 이 관념은 병자를 실질적으로 격리하여 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막았다.

(ii) 폭력

폭력으로 인한 죽음은 확인하기 쉬웠고, 귀신의 책임이 아니었다. 그래도 자연 요인이 발견되지 않으면, 귀신들이 여전히 병과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다가 죽으면, 그 아이는 즉시 목 졸려 죽음을 당했다.

(iii) 마술

많은 질병이 악한 눈이나 마술 활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되었다. 아직도 손가락질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된다. 시체를 해부하고 죽음의 원인이 발견되지 않으면, 요술의 책임으로 돌렸고, 따라서 책임 있는 마녀를 죽였다.

(iv) 죄

근래에 이르러 질병은 개인이나 종족이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이라고 믿었다. 신이 성난 결과로 질병이 생긴다는 이론은 문명화되었다고 소문난 집단 사이에서 아직도 유행한다.

4. 샤먼이 쓰던 의술 옛날 사람은 질병을 예방하느라고 마음을 다하였다. 종교는 흔히 질병을 예방하는 기술이었다.

이론은 잘못 되었어도, 이들은 치료 방법을 신뢰하였고, 이것은 그 자체로서 강력한 치료법이었다.

원시 부족들은 아픈 사람을 무서워했고, 오랜 세월 동안 아픈 사람을 피하고 소홀히 하였다.

샤먼 직책이 진화되어 사제와 주술사가 질병을 고치겠다고 나섰을 때, 인도 주의가 크게 진보하였다.

질병을 진찰하느라고 보통 쓰이는 방법은 동물의 창자를 검사하는 것이었다.

높은 소리를 지르고, 환자에게 입김을 불어넣어 여러 방법으로 병으로 치료하였다.

후일에는 성전에서 잠자는 풍습이 생겼고, 자는 동안에 치료가 일어난다고 생각되었다.

두통 귀신이 도망가라고 머리뼈에 구멍을 뚫는 수술이 있었다.

여자 샤먼은 또한 산파 노릇에 숙달하게 되었다.

약초와 진짜 약들이 소개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방혈과 함께 상처난 부분을 빨아 피를 뽑아내는 것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물이 주물이 되어 여러 가지 병을 고치는 데 이용되었다. 천연 온천은 원시 요양지로 번창하였다.

초기의 인간은 열이 아픔을 덜어주는 것을 알아냈고, 햇빛과 뜨거운 진흙, 뜨거운 돌은 아직도 이용된다.

동물이 일으키는 모든 질병에는 유익한 식물(植物) 치료법이 존재한다는 관념을 낳았다. 홍인은 식물이 보편적 치료약이라는 이론에 특별히 집착했다.

피와 오줌은 일찍부터 약으로 쓰였다. 샤먼들은 냄새가 나쁘고 맛이 좋지 않은 약으로 질병 귀신을 몸에서 쫓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스인과 에집트인은 다 유프라테스 강 유역으로부터 의학 지식을 받았다.

5. 사제와 의식 의식(儀式)의 요점은 연기의 완벽성에 있다. 야만인 사이에서 의식은 아주 정밀하게 실행해야 한다.

의식을 올바르게 치렀을 때에야 그 예식이 영들에게 강요하는 힘을 소유한다. 의식에 흠이 있으면, 다만 신들을 성나게 하고 노엽게 만들 뿐이다.

따라서 초기의 샤먼이 사제로 진화하는 것은 불가피했다.

거룩한 성소까지 순례하는 것은 오래 된 의식이다.

의식은 마침내 현대 종류의 사회 예식과 종교적 예배, 곧 기도와 노래, 화답하는 글 읽기, 그리고 영적 헌신을 포함하는 예배로 진화되었다.

사제직은 샤먼으로부터 신탁을 받는 사제, 점쟁이, 기우사, 성전 관리자, 점치는 자를 거쳐서, 종교적 예배를 지휘하는 자의 신분까지 진화했다. 결국 그 직책은 상속하게 되었고, 사제 계급이 생겼다.

사제직은 더욱 진화하여, 기도하는 자, 제사하는 자, 나중에는 설교자가 생겨났고, 이들은 “하늘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우겼다.

자신들의 경건성과 권한을 높이려고 옛날 말로 종교 의식을 거행하고, 잡다한 마술의 속임수로 사제들은 서민을 감동시키려고 애써 왔다.

사제가 목에 매달린 맷돌처럼 무거운 짐이었던 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참된 종교 지도자는 더 높은 실체에 도달하는 길을 인도하는 데 귀중하였다.

   
  91편, 기도의 진화
  기도는 예전에 종교적 의미가 없이 뱉는 혼잣말과 대화로부터 진화했다.

원시인이 자의식을 가지게 되자, 남을 의식하게 되었고, 이로부터 불가피하게 두 가지 결과가 생겼으니, 하나는 사회에 대한 반응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깨닫는 가능성이다.

초창기의 기도(祈禱)는 (하나님 개념이 아직 생기지 않았으니까) 신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표현은 큰 일을 시작할 때 친구에게 “내게 행운을 빌어주렴”하는 말과 비슷했다.

행운을 비는 말은 처음에 혼잣말이었다.

사람들은 친구와 가족에게 행운 빌어주기를 부탁하였고, 이내 씨족이나 부족 전체를 포함하는 예식이 거행되곤 하였다.

귀신과 영 개념이 진화되자, 이러한 간청은 인간을 초월하는 연설이 되었고, 신들을 의식하게 되자, 이것은 진정한 기도의 수준에 이르렀다.

인도의 토다 부족은 어떤 특정한 이에게 향하지 않고 기도하는 관습을 지금도 지킨다.

초기 진화의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주물ㆍ부적ㆍ귀신ㆍ통치자에게, 그리고 보통 사람에게 기도를 올렸다.

1. 최초의 기도 초기 종교의 기능은 필수인 사회적ㆍ도덕적ㆍ영적 가치 기준을 보존하고 확대하는 것이다.

종교의 이러한 임무는 주로 기도의 기능이다.

기도하는 관습은 상급의 가치를 보존하려는 집단적 노력을 가리킨다.

종교의 으뜸 매체는 기도이며, 사회에 인식된 가치 기준과 연결되어 있다.

원시인이 염치없이 이기적 포부를 채우려할 때, 그는 종교적 위안을 얻지 못하고 기도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따라서 기도는 일찍부터 사회의 진화, 도덕의 진보, 영적 달성을 장려하는 수단이 되었다.

초기의 인간은 물질적인 것이 기도의 분야가 아닌 것을 깨닫지 못했다.

생각이 단순한 원시인은 먹을 것과 기타 물질의 축복을 얻으려고 빌기 시작했다.

그러한 기도의 타락은 한 민족의 영적 가치를 낮추지만, 그래도 경제ㆍ사회ㆍ윤리적 관습을 직접 향상하였다.

가장 원시 종류의 지성에게 기도는 혼잣말일 뿐이다.

기도는 일찍부터 대화가 되고, 집단 예배의 수준으로 확대된다.

종교의 효력이 개인적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참된 기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기도는 물활론과 상관이 없다.

현대에는 많은 사람이 그들이 죄가 많다고 생각될 만큼 기도에 너무 많은 시간을 바치는 것 같지 않다.

2. 진화하는 기도 사람이 처음 드린 기도는 단지 소망을 말로 표현한 것이었다.

다음에 기도는 영이 협조하도록 설득하는 기술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 기도는 종교를 돕는 높은 기능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때때로 너무나 물질적 기도를 드렸고, 그래서 기도는 노력하지 않고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마술 기법으로 굴러떨어졌다.

기도가 신들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기도는 간청이 되었다.

참된 기도는 사람과 창조주 사이의 교통이다.

어떤 종교에서도 희생물을 바치는 것은 사람이 물질 재산 드리기를 추구하므로 기도의 효력을 어김없이 떨어뜨린다.

종교가 성격을 가진 하나님을 잃어버릴 때, 기도는 신학과 철학 수준으로 변질된다.

참된 기도는 반드시 사람이, 성격을 가진 우수한 존재와 교통함을 나타낸다.

보통 필사자의 일상 체험에서 기도는 잠재 의식과 대화하는 현상과 가깝지만, 깃드는 생각 조절자와 접촉하는 수준의 기도가 있다.

3. 기도와 타아 아이들은 언어를 배울 때, 듣는 사람이 없어도 생각을 말로 해보는 경향이 있다.

상상력이 싹이 트면, 아이들은 상상의 동무들과 이야기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이 방법으로 싹트는 자아는 가상(假想)하는 타아(他我)와 교통하기를 추구한다.

이 기법으로 그 아이는 일찍부터 혼잣말을 가짜 대화로 바꾸기를 배우고, 이 대화 속에서 타아는 말로 하는 그의 생각, 바람을 표현한 것에 대답한다.

어른의 생각에서 상당한 부분이 대화 형태로 머리 속에서 이루어진다.

원시 형태의 기도는 오늘날 토다 부족의 마술로 쓰이는 암송, 어느 누구에게 향하지 않은 기도와 비슷했다.

이러한 기도는 타아의 관념이 태어나면서 대화 형태로 진화하는 경향이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기도는 더 진화하여 윤리적 기도 수준으로 진화한다.

대대로 기도하는 필사자들이 깨달은 바와 같이, 타아는 다신교의 신들을 거쳐서, 궁극에는 유일한 하나님에 이르기까지 진화한다.

이처럼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의 가장 높은 가치와 이상을 보존하는 대단히 유력한 매체로서 작용한다.

가상하던 타아와 가졌던 대화는 무한자와 교통하는 수준까지 높아진다.

물질적 도움을 얻기 위하여 하의식 수준을 보고, 영감을 얻기 위해서는 조절자와 접촉하는 상의식(上意識)의 경계를 보라고 기도는 자아를 유도한다.

깨우침을 얻은 기도는 바깥에 계시고 성격을 가진 하나님 뿐 아니라, 또한 안에 있고 비성격인 조절자를 헤아려 보아야 한다.

4. 윤리에 맞는 기도 간청하는 자가 이기적으로 동료보다 이점을 찾을 때는 기도가 윤리적일 수 없다.

이기적이고 물질을 추구하는 기도는 윤리적 종교와 양립할 수 없다.

기도는 행동을 대신하는 정도까지 타락해서는 안 된다.

어떤 기도를 드리더라도 공정하여라.

하나님이 편애를 보이고, 이웃, 아니 적보다도 너희를 더 사랑하기를 기대하지 말라.

그러나 진화된 종교에서 처음 드리는 기도는 후일의 계시된 종교처럼 윤리가 있지는 않다.

기도는 이기적이나 이타적일 수 있다.

기도가 기도자를 위해서나 동료를 위해서 아무것도 구하지 않을 때, 그러한 태도는 참된 예배의 수준으로 올라간다.

용서를 구하고 자제를 위한 지혜를 찾을 때, 기도는 더 윤리가 있다.

물질적 기도는 실망을 주고 궁극에 환상에서 깨어나게 만든다.

민족이나 개인이 어릴 때에는 이기적 기도를 드리는 특징이 있지만, 어느 정도까지 그런 부탁은 응답을 받는 방향으로 수고하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효력이 있다.

믿음으로 드리는 진정한 기도는 영적 가치가 없더라도, 사는 기법을 터득하는 데 반드시 이바지한다.

그러나 영적으로 앞선 사람은 미숙한 자가 그렇게 기도하는 것을 말려서는 안 된다.

기도가 비록 하나님을 바꾸지 않더라도,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 속에서 흔히 오래 가는 변화를 일으킨다.

5. 기도의 사회적 영향 기도는 신의 이상을 추구하도록 이끈다.

기도의 결과는 인품을 높이고 통일한다.

집단이나 집회에서 하는 기도는 사회에 영향이 퍼지므로 효과적이다.

너희가 어떤 친구를 비난하는 버릇을 고치고 싶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날마다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버릇을 가지는 것이다.

기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두 가지 조건에 달려 있다:

(i) 누구를 위하여 기도할 때, 그 사람이 이를 알아야 한다.
(ii) 누구를 위하여 기도할 때, 기도자가 그 사람과 가까운 사회적 접촉을 가져야 한다.

시간이 되면, 기도는 2차적 매체와 결합되는데, 사제, 신성한 책, 예배 의식과 같이 더러는 유익하고 더러는 해롭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상징이 없어도 하나님을 의식하는 자는, 예식이 없이 신을 숭배하기가 어려운 자에게 예식을 무시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

6. 기도의 범위 한 영역에서 영적 세력의 뜻과 연결되지 않으면, 기도는 사람의 물리적 환경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기도는 유기체의 질병을 고치는 기술이 아니지만, 정신 및 신경의 질병을 고치는 데 이바지했다.

믿음으로 성실하게 드리는 기도는 개인의 행복과 자제를 높이는 데 막강한 힘인 것을 잊지 말라.

충분히 곤경에 빠지면,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도움의 근원에게 기도를 드리고 싶어한다.

너의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고 하나님께 부탁할 정도로 게으름을 피우지 말지어다.

그러나 각오하고 닥친 문제에 용감히 달려들면서, 지혜와 영적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부탁하여라.

예수가 제자들을 가르친 것 같이, 정직하게, 사심 없이, 공평하게, 의심하지 말고 기도하라.

필사자의 업적와 상관 없이, 누구나 창조주와 교통할 수 있고, 생각 조절자와 접촉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

7. 신비주의와 황홀경과 영감 신비주의는 하나님이 앞에 계시다는 의식을 가지는 좋은 기법이라고 칭찬할 수 있지만, 그런 풍습이 사회적 고립과 종교적 광신으로 이끌 때 비난을 받아야 한다.

흥분한 신비주의자가 신의 영감으로 받았다는 생각은 흔히 자신의 머리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위대한 종교 스승과 선지자들은 신비주의자가 아니었다.

예수는 자주 사도들을 외딴 곳으로 데리고 가서 기도하게 했지만, 대체로 사도들이 군중과 접촉하게 하였다.

사람의 혼은 영적 영양 뿐 아니라, 영적 운동이 필요하다.

종교적인 사람은 강렬한 감동의 체험을 모두 신의 계시라 여겨서는 안 된다.

신비주의에 빠지는 열심과 종교적 황홀경은 영감을 받았다는 증명은 아니다.

이상한 종교적 체험이 진정한가는 이 현상이 개인을 어떻게 만드는가를 살펴보아 알 수 있다:

(i) 건강이 나아지는가.
(ii) 더 효과 있게 활동하게 되는가.
(iii) 개인의 종교적 체험을 즐겁게 사회와 연결시키는가.
(iv) 나날의 생활을 영적으로 더 낫게 변화시키는가.
(v)
진실ㆍ아름다움ㆍ선을 개인이 더욱 사랑하게 되는가.
(vi)
인정된 사회적ㆍ도덕적ㆍ윤리적ㆍ영적 가치 기준을 보존하게 하는가.
(vii) 하나님 의식을 높이는가.

기도는 이러한 종교적 체험과 아무 관계가 없다.

기도가 지나치게 미학으로 흐를 때, 기도는 친교적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신비주의와 고립으로 이끈다. 집단 기도와 공동 예배가 이를 고치고 예방한다.

8. 기도는 몸소 겪는 체험 원시인은 두 가지 상황에서 비는 버릇이 있었다:

끔찍한 곤경에 빠졌을 때와 큰 기쁜 일이 있을 때였다.

기도와 마술은 따로 생겨났다.

마술은 신을 형편에 맞게 적응시키려는 시도였고, 기도는 사람을 신의 뜻에 맞게 조정하려는 노력이다.

참된 기도는 도덕과 종교성이 있지만, 마술은 도덕도 종교성도 없다.

많은 사람은 남이 기도하기 때문에 기도한다. 더러는 때맞추어 기도하지 않으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까 두려워 기도한다.

때때로 기도는 영적 목마름의 표현이고, 때때로 경건한 구절을 뻔뻔히 외치는 것이다.

불가능한 것을 어린아이처럼 드리는 부탁일 수도 있다.

기도는 하나님의 생각을 바꾸려는 희망의 표현일 수도 있고, 자아를 변화시키는 기법일 수도 있다.

현대인은 기도가 하나님과 여러 가지를 의논하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압력을 받고서 비상시에야 기도한다.

사람은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을 어려워해서는 안 되지만, 오직 영적 어린이가 하나님의 생각을 주제넘께 바꾸려 할 것이다.

참된 기도는 실체에 이른다. 어떤 새든지 날개를 펴지 않고는 날아오를 수 없다.

기도는 영적 기류를 타고 날아오르는 기법이다.

기도는 인간을 초월하는 가치를 얻으려고 손을 뻗는 것이다.

말은 기도와 상관이 없다. 하나님은 사람의 태도에 응답하고 말에 응답하지 않는다.

물건이 아니라 오직 가치 있는 것을 위하여,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장을 위하여 기도할진저.

9. 효과 있는 기도의 요건 효과 있는 기도를 드리고 싶다면, 다음의 법칙을 마음 속에 새겨야 한다.

(i) 현실의 문제에 성실하게 맞섬으로 기도자의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ii) 사람으로서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iii) 너희는 영적 성장에 모든 희망을 기울이어야 한다.

(iv) 신의 뜻을 마음을 다하여 선택해야 한다.

(v)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데, 조건 없이 헌신했어야 한다.

(vi) 기도는 특정한 문제를 푸는 신의 지혜를 추구해야 한다.

(vii) 팔팔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92편, 후일의 종교의 진화
  진화 종교는 야만인 및 문명인을 보살피는 다음 영향력을 통해서 천천히 생겼다.

1. 예배 보조자. 동물의 의식에서 신을 찾는 원초적 본능이 나타나는 것은 이 보조자의 영향을 가리킨다.

2. 지혜 보조자. 신이 실체라는 깨달음이 생기는 것.

3. 성령. 성령은 지성을 초월하는 선물이다. 인격의 체험으로서 인간이 살아남는다는 깨달음이 생긴다.

이 세 가지 보살피는 영향은 진화 종교의 성장에 충분하다. 나중에, 생각 조절자ㆍ세라핌ㆍ진실의 영이 종교의 성장을 더욱 촉진한다.

1. 종교의 진화적 성질 처음에는 귀신을 두려워하다가, 영들을 강제하고 구슬리려고 노력하고 나중에 진화 종교가 어떻게 성장하는가 살펴보았다.

부족의 주물은 나중에 토템과 부족 신이 되었고, 마술의 주문은 현대의 기도가 되었으며, 희생 행위였던 할례는 나중에 위생 절차가 되었다.

인류는 참 종교, 진실을 계시받기 위하여 성숙해지고 있다.

종교는 한 민족 안에서 좀처럼 멸망하거나 바뀌지 않는다.

두려움은 언제나 종교적 자극제였다.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서, 두려움은 경외ㆍ찬미ㆍ존경ㆍ동정심으로 인하여 수정되고 조절된다.

가장 높은 부류의 종교 생활을 계시한 예수는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선언했다.

2. 종교와 도덕 관습 종교는 인간의 모든 제도 중에서 가장 신축성이 없지만, 변하는 사회에 뒤처져 적응한다.

진화된 종교는 변하는 도덕 관습을 반영한다.

이미 있던 것은 오래 되었고, 신성하다고 생각된다.

이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나에게 돌로 된 제단을 만들고자 하거든 너희는 깎은 돌로 세우지 말지니, 만드는 데 연장을 쓰면, 너희는 제단을 더럽혔느니라.”

온갖 종류의 사회 관행, 법 절차까지도 옛 모습에 집착한다.

종교의 성장을 갑자기 가속하려고 애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사회의 도덕은 진화된 종교에 좌우되지 않는다. 오히려 종족의 도덕이 종교의 형태를 결정한다.

사람들은 이상하고 새로운 종교를 겉으로만 받아들인다.

종교는 온갖 종류의 모순되는 행위를 인가한 적이 있고, 지금 부도덕하다고 여기는 거의 모든 것을 한때는 인정했다.

논리의 도움을 받지 않은 양심은 인간의 행위에 안내자가 될 수 없다.

양심은 인간의 혼에게 말씀하는 신의 목소리가 아니다. 단지 인간답게 생각한 이상적 반응일 뿐이다.

3. 진화된 종교의 성질 옛 종교와 신화는 민족들의 신앙과 전통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

종교는 그 민족이 선택 받은 백성이라는 망상에 보통 물들어 있다.

희생물 바치기ㆍ기도ㆍ죄 고백ㆍ예배ㆍ정화(淨化)ㆍ예언ㆍ원죄(原罪)와 같은 기본적 종교 관념은 원시의 귀신 공포증이 있었던 옛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화된 종교는 추종자들이 그 종교가 “유일한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존경을 받는다.

과학과 달리, 진화된 종교는 자체를 수정하기 위한 대책이 없다.

오직 두 가지 영향이 진화된 종교의 교리를 수정할 수 있는데, 하나는 서서히 변하는 도덕 관습의 압력이요, 다른 하나는 신기원의 계시이다.

숭배 집단은 오랜 세월에 걸쳐 느리게 진보한다.

종교는 여러 가지로 사회의 발전에 장애가 되었지만, 종교가 없이는 지속되는 도덕이나 가치 있는 문명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종교는 많은 비종교 문화의 어머니가 되었다: 조각은 우상 만들기가 발전된 것, 건축은 성전 짓기에서 시작되었고, 음악은 예배하는 노래에서, 춤은 철마다 예배하는 잔치에서 비롯되었다.

종교가 문명의 발전에 필수였지만, 자연 종교는 또한 그 문명을 방해하려고 많이 애썼다는 것을 적어야 한다.

종교는 산업 활동과 경제 발전을 방해했다. 노동을 헤프게 쓰고 자본을 낭비했다.

종교는 때때로 교육을 게을리하였고 과학의 성장을 더디게 만들었다.

죽음을 부유하게 꾸미려고 삶을 빈곤하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종교는 사회의 단결을 유지했고, 계시된 종교는 진화적 결점을 보강할 수 있게 만든다.

진화된 종교는 사람에게 비싸게 먹힌 제도였지만, 비할 수 없이 효과가 있었다.

사람이 진화로 발전하지 않았다면, 그러한 종교의 발전 과정을 정당화할 수 없을 것이다.

종교는 자본의 축적을 용이하게 하였다. 사제들의 여가는 예술과 지식을 권장했다.

샤먼에게 많은 비용을 치렀어도, 그들은 제 값을 충분히 했다.

종교는 문명을 육성하고, 세세토록 도덕을 유지하는 경찰력이 되었다.

종교는 진화에서 효과 있는 채찍이요, 인류를 더 높은 지혜의 수준으로 사정 없이 몬다.

동물로서 올라감으로 얻은 진화된 종교를 계시된 종교와 진정한 과학으로 단련해야 한다.

4. 사람에게 내린 계시 진화된 종교들을 검열하는 것이 계시의 사명이다.

계시가 진화된 종교들을 개선하려면, 그러한 신의 방문은 그 시대의 생각과 너무 동떨어지지 않은 가르침이어야 한다.

따라서 계시된 종교는 반드시 받는 사람의 능력에 제한을 받는다.

계시된 종교는 반드시, 죽은 뒤에 인격 신분이 살아남는다는 개념을 가진다.

진화된 종교는 논리가 없다. 가상하는 귀신 세계에 대한 사람의 반응이다.

실재하는 영적 세계는 계시 종교를 제시한다.

계시 종교는 신들을 믿고 의지하려는 필사자의 갈망에 우주가 반응하는 것이다.

종교적 계시가 여러 번 있었지만, 신기원의 중요성을 가진 것은 다섯 뿐이다.

 

(i) 달라마시아의 가르침.

칼리가스티아 영주의 참모진(1백 명)이 첫째 근원 중심 개념을 처음으로 유란시아에 선포하였다.

(ii) 에덴의 가르침.

아담과 이브는 진화된 민족들에게 만물의 아버지 개념을 다시 가르쳤다.

(iii) 살렘의 멜기세덱.

그는 네바돈의 비상시 아들이었고, 세 번째로 진실을 계시했다. 믿는 행위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얻는다고 선포했다.

(iv)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우주의 아버지라는 개념을 유란시아에서 네 번째로 발표했다.

(v) 유란시아 논문집.

이 글은 이 논문집에 속한 글인데, 이것은 유란시아 필사자들에게 주는 최근의 발표이다. 이 논문집은 이전의 계시와 다른데, 한 성격자의 작품이 아니라 여러 존재의 종합 발표이기 때문이다.

5. 위대한 종교 지도자 계시의 가르침과 진화의 산물이 혼합되어 생긴 신앙의 경우에 하나님 개념은 다음의 혼합이다.

(i) 진화 종파들의 선재하는 관념.

(ii) 계시된 종교의 숭고한 이상.

(iii) 위대한 종교 지도자들의 관점.

 

대부분의 큰 종교 시기는 뛰어난 인물의 일생과 가르침으로 개시되었다.

사람들은 지도자를 존경해도 그 가르침을 무시하고, 인물을 경외해도 그가 가르친 진실을 놓치는 경향이 있다.

진화 인간의 가슴 속에는, 위로부터 도움을 찾는 본능적 소망이 있다.

많은 민족이 지도자가 처녀로부터 태어나고 그에게 기적 같은 사건들이 헤프게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지난 1백만 년 동안 7대 종교 시대가 있었다.

 

(i) 셋 족속 시대.

셋 족속 사제들은 아담 이후에 큰 선생이 되었다.

(ii) 멜기세덱 선교사 시대.

예수보다 거의 2천 년 전에 마키벤타 멜기세덱이 살렘에서 살면서 가르쳤다.

(iii) 멜기세덱 이후 시대.

아메니모프와 이크나톤이 이 시기에 가르쳤지만, 모세는 히브리 종교의 창시자였다.

(iv) 기원전 6세기.

이 시기에 고타마ㆍ공자ㆍ노자ㆍ조로아스터, 그리고 자이나교 선생들이 일어났다.

(v) 서기 1세기.

종교 스승으로서 나사렛의 예수는 금식과 형식을 피하여 종교의 수준을 높였다. 예수를 제외하고, 바울과 빌로는 이 시대에 가장 위대한 선생이었다.

(vi) 서기 6세기.

모하메드가 뛰어난 종교를 창시했다.

(vii) 서기 15세기. 이 시기에 서양에서 기독교가 분열되었고, 동양에서는 새 종교 (시크교)가 합성되었다.

미래에는 하나님이 아버지이고 사람이 형제인 것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등장할 것이다.

종교 사이에 장벽을 높이는 데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미래 선지자들이 종교적 형제 정신을 기르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Hagia Sophia (이스탄불의 이슬람 사원)

6. 복합 종교 20세기의 유란시아 종교들은 신을 숭배하려는 충동이 어떻게 사회에서 진화했는가 보여준다.

많은 종교가 귀신을 숭배하던 시절 이후로 거의 진보하지 않았다.

유란시아에서 진화 종교와 계시 종교는 나란히 진보하고 있다.

(i) 힌두교는 가장 오래 되었다.

(ii) 히브리 종교.

(iii) 불교

(iv) 공자의 가르침.

(v) 도교.

(vi) 조로아스터교.

(vii) 신도(神道).

(viii) 자이나교.

(ix) 기독교.

(x) 이슬람교.

(xi) 시크교.

고대에 가장 진보된 종교는 유대교와 힌두교였다. 힌두인과 히브리인은 자기네 종교가 영감과 계시를 받았다고 믿었다.

국제적인 큰 신앙은 히브리교ㆍ불교ㆍ기독교ㆍ이슬람교이다.

히브리교는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철학을 담고 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일생과 가르침에 관한 종교이며, 빌로ㆍ베드로ㆍ바울, 이 세 사람이 이를 형성했다.

이슬람은 북 아프리카, 레반트, 동남 아시아의 종교 문화가 되었다. 모하메드의 추종자들은 삼위일체 가르침을 믿기가 어려웠다.

사람은 진화로 생긴 인간이며, 대체로 진화 기법으로 종교를 얻어야 한다.

서양에서 조상 숭배는 종족의 영웅을 존경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태도는 영어를 쓰는 민족의 이름난 대학과 산업 공동체에서 발견된다.

“민족 종교”는 로마 초기의 황제 숭배로, 그리고 신도(神道)로―국가의 황제 가족 숭배로―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7. 종교의 계속된 진화 종교는 결코 과학적 사실이 될 수 없다.

종교는 진화된 것이 되든지, 계시된 것이 되든지, 아니면 이 둘의 조합으로 남을 것이다.

새 종교는 발명될 수 없다.

새 종교는 진화되든지 아니면 갑자기 계시된다.

어떤 집단이라도 그들의 교리가 유일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한 태도는 확실한 믿음이 아니라, 오만한 신학을 가졌음을 말해 준다.

다른 종교를 연구함으로 소득을 얻을 수 없는 종교는 유란시아에 하나도 없다.

다음이 종교의 품질을 가리킨다.

 

(i) 수준 가치, 충성심

(ii) 의미 있는 것들을 개인이 민감하게 이해하는 것.

(iii) 신성한 가치 기준에 헌신하는 정도.

(iv) 하나님의 아들이요, 진보하는 시민인 것을 깨닫는 것.

어린아이의 종교적 체험은 부모와 자식 관계가 두려움 또는 사랑이 지배했는가에 달려 있다.

교육받은 사람은 신과 교통하는 데 중개인에게 의존하려는 성향을 벗어나야 한다.

사람은 신 개념 뿐 아니라 영웅들의 인품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숭배하는 자들이 영웅 요수아(예수)를 놓치고 못보았다는 것은 유감이다.

참된 종교는 문명의 기초이자 안내하는 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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