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3 편, 사마리아를 거쳐서

글쓴이: 중도자 위원회

시기: 서기 27년 6월말 – 8월 중순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의 반대가 커져서, 예수와 열두 사도는 텐트와 기타 소지품을 베다니의 나사로 집에 저장하고 예루살렘을 떠났다.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 사도들은 사마리아인에 대하여 많은 편견을 버리게 되었다.

1. 아켈라이스에서 전도하다

아켈라이스와 파사엘리스에서 본부를 차리고 이방인들에게 전도하려고 애썼다.

빌립이 말했다: 이방인들이 당신의 종교는 이 세상에 맞지 않고 사람들은 당신이 가르치는 대로 살 수 없다고 주장하나이다.

이방인들에게 무어라 이르리이까?

예수: "요한이 허약자 같더냐? 너희는 내가 두려움에 노예가 된 것을 보느냐?

이 세대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이 복음을 전도받은 것이 참말이라. 이 세상의 종교들은 가난한 자를 소홀히 여겼으나, 내 아버지는 사람을 차별하는 분이 아니라.

"게다가 오늘날의 가난한 자는, 뉘우치고 아들인 것을 받아들이라는 부름을 먼저 주목하는 자이니라. 하늘나라 복음은 모든 사람―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인과 로마인, 부자와 가난한 자, 자유로운 자와 매인 자―에게, 그리고 젊은이와 늙은이, 남자와 여자에게 똑같이 전파되어야 하느니라.

"너희와 충성스러운 너희의 후계자들은 좋은 소식―하나님이 아버지요 사람들이 형제인 것―을 외치며 온 세계로 떠나가리니, 저희가 장래에 보일 것보다 세계의 어느 군대도 더 큰 용기와 용감을 보인 적이 없느니라. 육체의 용기는 가장 낮은 형태의 용감이라.

바로 그날부터 그들이 전하는 소식에는 새로이 용감한 음성이 담겨 있었다.

2. 자제에 대한 교훈

안드레: "요한은 금욕을 가르치고, 당신은 자제를 가르치는데, 이 두 가르침이 어떻게 다르니이까?"

예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자아를 다스리는 자는 한 도시를 점령하는 자보다 크니라.

금욕에 노예가 되는 옛 율법 대신에, 새 영적 율법은 자제로 너희에게 해방을 부여하느니라.

이제부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너희가 완전을 추구하는 동안, 스스로 정신과 육체에서 모든 악을 깨끗이 없애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오히려 높은 특권이라.

금욕 생활에 매인 처지에서 벗어나, 영의 열매를 맺는 것은 자제로 이끄느니라.

3. 오락과 휴식

요한의 제자들과 순탄한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안드레야, 사람들이 그렇게 몰두한 단계에 이를 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격한 감정을 가지고 관여할 때, 말로 사람들을 곤경에서 구해낼 수 없느니라. 네 요청을 들어줄 수 없노라―나는 개인의 사회적 문제에 끼어 들지 아니하리라―그러나 사흘 동안 쉬고 긴장을 풀면서 너희와 함께 즐기리라.

농부들의 휴식

너희 형제들에게 가서, 모두가 나와 함께 사르타바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알리라, 거기서 내가 하루나 이틀 동안 쉬기를 바라노라.

산 꼭대기에 다다르자 예수는 둘레에 그들을 앉히면서 말했다: “형제들아, 너희는 모두 휴식의 가치와 긴장 풀기의 효능을 배워야 하느니라. 어떤 뒤얽힌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이를 한동안 버려두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느니라.

두 그리스 풍의 도시, 아켈라이스와 파사엘리스에서, 많지 않은 이방인이 복음을 믿었지만, 처음으로 열두 사도는 이번에 순전한 이방 인구와 함께 널리 일하면서 값진 체험을 얻었다.

4.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 이 반감은 이런 식으로 생겼다:

기원전 7백 년 무렵에, 아씨리아의 임금 사르곤은 팔레스타인 중부에서 일어난 폭동을 진압하면서,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유대인을 2만5천 명이 넘게 포로로 데려갔다. 그 자리에 거의 같은 수의 여러 이민족을 정착하게 하였다.

바빌로니아에서 포로 생활이 끝나고 유대인이 돌아올 때,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의 재건을 방해하는 일을 하였다.

그들은 나중에 알렉산더의 군대를 친절히 도와줌으로 유대인들의 기분을 건드렸다. 이 친절에 대한 보답으로 알렉산더는 사마리아인들이 게리짐 산에 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알렉산더 시절 이후로 그들은 갈수록 더 서로 상관하지 않았다.

열두 사도는 데카폴리스 지방과 시리아에 있는 그리스 및 기타 이방인 도시들에서 전도하기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마리아로 들어가자”고 예수가 말했을 때 그것은 주에게 바치는 충성심을 재는 어려운 시험이었다.

5. 시카의 여인

“조금도 내 걱정을 하지 말라, 이 사마리아인들은 친절할 것이라. 오직 우리의 형제, 유대인들이 우리를 해치려 하느니라.”

시카의 어느 여인이 물그릇을 가지고 와서 우물에서 물을 길으려고 준비했을 때 예수는 말했다. “내게 물을 다오.” 이 사마리아 여인은 모습과 옷차림으로 예수가 유대인인 줄 알았고 말씨로 보아 갈릴리 유대인이라 짐작했다.

“당신은 유대인이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마실 물을 달라 하시니 어인 일이니이까?” 예수는 대답했다:

“내가 정말로 너에게 마실 물을 달라 하였으나, 네가 알 수만 있다면 생명의 물 한 모금을 달라 내게 청하리라.” 그러자 날다가 말했다:

“하지만 주여, 당신은 물을 길어 올릴 그릇이 없고 우물은 깊사오이다. 그러니 어디에서 이 생명(生命)의 물을 얻으시나이까? 당신은 우리 조상 야곱보다 더 위대하시나이까?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목이 다시 마르려니와 살아 있는 영(靈)의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든지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이 생명의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솟아올라 바로 영생(永生)에 이르는 시원한 샘물이 되리라.” 그러자 날다가 말했다. “내게 이 물을 주시사 나로 하여금 목도 마르지 않고 물 길으러 여기까지 멀리 오지도 않게 하소서.

날다는 그 비유를 자기에게 일종의 추파를 던지는 것으로 잘못 해석했다. 품행이 단정치 않은 여인이었으므로 그 여자는 드러내놓고 희롱할 생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여자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예수는 명령하는 음성으로 말했다: “여자여, 가서 네 남편을 찾아 여기로 데려오라.”

“내 주여, 당신께 버릇없이 말씀드린 것을 뉘우치오니, 당신은 거룩한 사람이든지 아마도 선지자인 것을 깨닫기 때문이나이다.”

“예 주여, 요한은 교화자(敎化者)가 오신다고 설교했는데, 그를 구원자라 부를 것이요 그가 오실 때 우리에게 모든 것을 선언할 줄을 내가 아나이다”―날다의 말을 막으며, 예수는 놀라운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너에게 말하는 내가 그니라.”

“여자여, 길을 가라. 하나님이 너를 용서하였느니라. 이제부터 너는 새 인생을 살리라. 생명의 물을 받았으니, 새 기쁨이 네 혼 속에서 솟아나겠고 너는 최고자의 딸이 될지니라.”

그 여자는 사도들이 싫어하는 눈치를 채고서, 물동이를 버리고 도시로 달아났다.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

6. 사마리아의 부흥

예수와 사도들은 시카로 들어갔고 게리짐 산에서 캠프를 세우기 전에 이틀 동안 전도했다. 시카에서 많은 주민이 복음을 믿고 세례받기를 청했지만 예수의 사도들은 아직 세례를 주지 않았다.

예수와 열두 사도가 한 일은 후일에 빌립이 하는 일을 예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7. 기도와 예배에 대한 가르침

예배―영적인 것을 숙고하는 것―은 봉사, 즉 물질적 현실과 접촉하는 것과 번갈아 있어야 한다. 일하고 노는 것을 번갈아 해야 하며, 종교는 유머로 균형을 얻어야 한다.

깊은 철학은 리듬 있는 시(詩)로 긴장을 풀어야 한다. 생활의 긴장은―인격이 시간 속에서 받는 긴장―예배가 주는 휴식으로 풀어야 한다. 우주에서 인격이 고립되는 두려움에서 생기는 불안한 느낌은 아버지를 믿고 숙고함으로, 그리고 최상위를 깨달으려고 애씀으로 중화(中和)되어야 한다.

기도는 자아를 생각하게 한다―숭고한 사고(思考)이다.

예배는 자아를 잊는 것이다―초월적 사고이다. 예배는 힘 안드는 집중이요, 혼의 참되고 이상적인 휴식, 일종의 편안한 영적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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