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편, 종교의 참 본질

글쓴이: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

1934년

인간이 체험하는 종교는 야만인이 원시적 두려움에 빠진 상태로부터 나중에 문명화된 필사자가 신앙으로 해방을 얻어,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임을 의식하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종교가 겉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모습은 인간 사회의 윤리적ㆍ도덕적 운동력에 힘차게 영향을 받는다.

믿지 않는 물질 지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절망적 논리밖에 만들어내지 못하며, 믿는 인격자의 믿음은 이러한 논리를 반드시 이길 수 있다. 종교는 결국 믿음의 문제이다.

1. 참된 종교

참된 종교는 이치로 타당함을 밝히는 철학 관념의 체계가 아니다.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체험도 아니다.

종교는 시간 세계에서, 아직 육체를 입은 동안에 영원한 실체를 맛보는 체험이다.

생각 조절자는 자기의 의사를 표현할 특별 장치가 전혀 없다. 필사자의 정신 작용을 통해서 이러한 체험을 겪을 수 있다. 이것이 조절자가 그 물질 지성과 교통하기가 어려운 것을 설명한다.

조절자는 느낌이나 감정을 통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높은 영적 생각 분야에서 필사자와 접촉한다. 너희를 하나님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너희의 생각이지, 느낌이 아니다.

하나님을 헤아리고 조절자의 소리를 듣는 지성은 순수한 지성이다. "아무도 거룩하지 않고서 주를 보아서는 안 되느니라."

시각(視覺)이나 느낌이 아니라, 믿음과 통찰력을 통해서 종교는 살아 있고 번성한다. 종교는 다만 하나님을 믿는 현실을 맛보는 체험이다.

종교는 물질적 우주론의 산물이 아니요, 신비스러운 명상에서 태어나지 않고, 혼자 숙고함으로 생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종교는 늘 얼마큼 신비스럽고, 논리로 정의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종교적 체험은 결국 하나님 의식, 그리고 믿는 인격자가 살아남는다는 확신을 낳는다.

계시의 빛을 받으면 도덕적 성품이 깊이 영향을 받아, 사람의 지성은 자기가 하나님을 믿지 않을 권리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는 경지에 이른다.

2. 종교적 사실

종교적 사실은 보통 인간들이 겪는 종교적 체험으로 이루어진다. 겉보기에 자연 과학, 그리고 종교에 관한 신학은 서로 반대되는 듯이 보인다.

계시는 이 두 가지, 과학과 종교를 통합하여 설명하며, 무한자가 물질 속에서, 어떻게 그의 계획을 성취하는가 필사자가 던지는 질문을 인간의 체험 속에서 대답한다.

이성(理性)은 과학의 방법이요, 믿음은 종교의 방법이며, 논리는 철학이 시도하는 기법이다. (하늘에서 주시는) 계시는 인간이 상물질 관점이 없는 것을 보상해 준다.

과학을 연구하는 것은 첫째 원인으로 이끌 수도 있지만, 첫째 원인이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인 것을 깨닫는 데는 종교적 믿음이 필요하다.

인간을 살리는 하나님을 믿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i) 깃드는 생각 조절자가 어떻게든 머리에 떠올린 희망.

(ii) 진실의 영이 애를 쓰거나, 신다운 아들이 자신을 수여하거나, 기록된 말씀을 내려 줌으로 진실이 계시되는 것.

과학은 첫째 원인을 가정하면서 탐구를 그친다. 종교는 하나님을 확신할 때까지 믿음으로 비행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종교에서는 인격자가 살아남도록 하나님이 보살핌을 거리낌없이 믿는다. 계시는 철학조자 해내지 못한 일, 과학에서 첫째 원인과 종교에서 하나님은 같은 신인 것을 확인한다.

이치는 과학을, 믿음은 종교를 증명하며, 논리는 철학을 증명한다. 계시가 타당한 것은 인간의 체험이 확인한다.

물질에 에너지를 더하면, 어떤 조건 밑에서 생명이 되어 겉으로 보인다. 이처럼 자연 생명은 일시 지속되지만, 잠시 뿐이다. 자연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인격이 살아남는 것을 믿을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믿음은 혼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낸다. 계시는 사람이 그 하나님을 자연 속에서 볼 수 있게 만든다. 지음받은 자와 창조자,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자연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성격을 가진 하나님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찾았으면, 자연의 연구는 우주를 영적으로 해석하게 만든다.

신기원(新紀元)의 현상으로서, 계시는 정기적으로 일어난다. 필사자의 인격 안에서, 조절자로서, 진실의 영으로서, 성령으로서 신이 활동하며, 이 세 가지 재산은 인간의 체험 속에서 최상위를 위한 봉사로서 하나처럼 작용한다.

참된 종교는 실체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이요, 무슨 독단적 교리에 지적으로 찬성만 하는 것이 아니다.

조절자는 신다운 완전을 찾는 갈망을 마음 속에서 일으킨다.

종교를 깨닫는 것은 학문이나 논리에 의존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큰 성현이 속세의 지혜가 없었던 것을 설명한다.

비슷한 체험을 가진 동료에게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입증하려는 논의가 필요 없고, 한편 어떤 논리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없다.

3. 종교의 특징

종교는 생명력이 강하여, 배움이 없는 곳에서도 지속한다. 종교적 흥망의 역사를 통틀어, 인간이 살아남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 윤리와 도덕 의식이다.

영적 통찰력은 아버지의 선물, 생각 조절자와 관련하여 우주 지성이 부여한 것이다.

혼의 지능은 창조 영이 준 선물이다. 진실의 영은 수여 아들이 사람의 아들딸에게 주는 선물이다.

사는 동안 싹트는 영 인격을 조절자가 소유하면, 자연사를 겪은 뒤에 인격이 살아남는다.

움직임이 그치고, 물질과 영의 협동 관계가 분리될 때, 영에 기원을 가진 혼은 인간의 체험과 결합하여, 물질 자아의 분해를 견디고 살아남는다. 진정한 영적 믿음은:

(i) 동물 성향이 있어도, 윤리와 도덕이 진보하게 만든다.

(ii) 쓰라린 패배를 겪고도, 하나님이 선함을 신뢰하게 된다.

(iii) 역경을 당하고도 용기와 자신감을 가진다.

(iv) 육체의 고통이 있어도, 설명할 수 없는 차분함을 지닌다.

(v) 지독히 불공평한 대우를 받아도, 인격의 침착성을 잃지 않는다.

(vi) 사정 없이 잔인한 운명을 겪는 듯 보여도, 신을 의지하는 태도를 지킨다.

(vii) 온갖 반대 논리에 부닥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지킨다.

(viii) 잘못된 과학적 가르침에도 상관 없이, 혼이 살아남는 것을 계속 믿는다.

(ix) 복잡한 현대 문명이 지워준 짐과 상관없이, 살고 승리한다.

(x) 이기심과 사회적 대립이 있어도, 이타 정신을 유지한다.

(xi) 죄악의 존재와 상관 없이, 신의 인도하심을 꿋꿋이 믿는다.

(xii) 어떤 일이 있어도, 줄곧 하나님을 섬긴다.

세 가지 현상으로 우리는 안에 신의 영이 계심을 안다. 첫째로, 개인의 체험으로, 둘째로, 개인과 종족에게 주는 계시로, 셋째로, 이 12가지 영적 성취가 보이는 바와 같이 부자연스러운 반응을 드러내는 것으로 안다.

4. 계시의 한계

너희 세계가 물리적 기원에 관해서도 무지하니까, 때때로 우주론을 가르치는 것이 현명한 듯 보였지만, 그것은 반드시 앞날에 문제를 일으켰다.

계시하면서 지켜야할 법칙은 수고하여 얻지 않은 지식을 나누어주는 것을 금지함으로 우리를 몹시 방해한다. 계시의 일부로서 어떤 우주론을 발표해도 시간이 지나면 못쓰게 되어 있다. 따라서, 앞날의 학자들은 계시 안에 발표된 우주론에서 오류를 발견하기 때문에, 계시에 포함된 종교적 진실도 함께 던져 버릴 유혹을 받는다.

인류는 우리가 상관들이 내린 지침에 엄격한 제한을 받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계시하는 기록 속에 사람이 수고하여 찾아내지 않는 사실을 담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이 계시에 담긴 우주론은 영감을 받아 쓴 것이 아니다. 신이 준 통찰력(조절자)은 선물이지만, 인간의 지혜는 진화되어야 한다.

결국, 종교는 그 열매로 판단해야 한다. 우주론을 언급하는 계시는 영감을 받아 적은 것은 아니지만, 일시나마 다음과 같이 지식을 뚜렷이 설명하므로 가치가 있다.

(i) 오류를 없앰으로 혼란을 줄인다.

(ii) 이미 알려졌거나 곧 알려질 사실과 관찰을 조정한다.

(iii) 신기원의 거래들에 관하여 잃어버린 부분을 회복한다.

(iv) 달리 얻은 지식에서 빠진 부분을 채워준다.

(v) 영적 가르침을 비추는 방법으로 우주 자료를 제시한다.

5. 계시로 확대된 종교

(제4, 제5 계시와 같이) 계시는 진화 방법으로 진실을 깨우치는 작업에서, 말할 수 없이 긴 세월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과학은 사실을 다루며, 종교는 오직 가치 기준에 관여한다. 그래도 종교는 두 단계에서 겉으로 나타난다:

(i) 진화로 생긴 종교. 원시적 예배의 체험. 지성에서 파생된다.

(ii) 계시된 종교. 인격이 살아남고, 궁국에 신에 도달하는 것을 믿는 것. 진화된 종교를 계시로 확대시키는 것이 계획이다.

철학도 과학과 종교와 마찬가지로, 어떤 가정을 두고 전개해야 한다.

(i) 물질인 몸.

(ii) 인간에게 무언가 초물질 단계가 있는 것.

(iii) 인간의 지성이 물질과 영 사이를 연결시키는 작용.

논리도 감정도 본질적으로 종교적 체험의 일부가 아니다.

진화 종교는 신을 경배하는 버릇을 육성하는 지성 보조자가 성취한 것이다.

삼위일체의 수여 영들은 계시 종교를 후원하며, 황금률을 강조한다.

첫째 단계: 진화된 종교는 온통 믿음에 의존한다.

둘째 단계: 계시된 종교는 믿는 것을 확신하게 할 뿐 아니라, 계시된 실체들을 체험하게 한다.

종교에서 셋째 단계는 상물질적 진보이다. 너희는 (경험적) 최상의 가치, 신의 선함, 궁극의 운명을 알게 될 것이다.

6. 진보적 종교 체험

살아남은 뒤에야 계시 종교의 상물질 단계가 시작된다. 이 단계에 신을 예배하려는 욕구가 따르며, 최상위, 궁극위까지도 의식할 수 있다.

물질 수준에서 시작하여 완전한 영 지위를 얻을 때까지, 조절자의 도움이 있어야 (불완전한 세계의 하나님) 최상위가 사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도덕적 인격은 상물질 인격, 영 지위의 선구자이다.

진화로 얻은 지식은 오직 원형질의 기억 물질이 축적된 것이고, 가장 원시 형태의 생물 의식이다. 동물은 지식이 있지만, 오로지 사람이 지혜를 키울 능력을 소유한다. 생각 조절자와 진실의 영의 도움으로, 진실은 지혜로운 사람에게 소용된다.

그리스도는 세례를 받을 때까지 진화된 종교에 지배되어 살았다. 그 이후 십자가에 못박히는 순간까지, 예수는 진화된 종교와 계시된 종교로 일을 해 나갔다. 부활한 뒤에는 상물질 생명을 거쳤다.

깃드는 조절자와 일체가 되는 것, 사람과 하나님의 본질을 인격이 통합하는 것은 사람을 최상위의 일부가 되게 만들고, 영원한 생득권을 보장해 준다.

생각 및 결정, 논리적 이상을 조정하는 것은 올바른 인품을 소유하게 하며, 영적 현실에 친숙해지는 데 필수 조건이다. 예수의 믿음은 다음과 같이 인간이 구원받는 길을 보여주었다:

(i)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깨닫고, 물질의 사슬을 벗어나게 한다.

(ii) 진실이 사람을 해방한다.

(iii) 영적으로 눈이 먼 상태를 벗어나게 한다. 모든 우주 생물이 형제이다.

(iv) 하보나의 조화와 파라다이스의 완전을 깨닫고 자아의 불완전을 벗어나게 한다.

(v) 최상위 지성에 도달하여, 자의식의 한계를 벗어나게 한다.

(vi) 시간 세계를 벗어나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한다.

(vii) 유한을 벗어나게 한다. 신과 하나가 되고, 최후자 이후 수준에서 궁극위를 찾으려고 애쓴다.

이 일곱 가지 구원은 우주의 아버지를 만나는 체험을 겪는 것과 대등하다.

예수의 믿음을 이용하여 인간은 시간 세계에서 영원의 실체들을 미리 맛볼 수 있다. 예수는 인간의 체험 속에서 아버지를 발견했고, 우리 형제들은 예수를 따라갈 수 있다.

7. 개인의 종교 철학

하나의 생각은 행동하려는 이론적 계획일 뿐이며, 분명한 결정은 사람이 인가한 행동 계획이다. 개인의 종교 철학을 세우는 요소는 내면 체험과 환경 체험, 이 두 가지이다.

관념과 실험해 보는 생활이 동료들을 모방하는 경향에 수정되는 바와 같이, 종교에 관한 철학은 이 두 가지로부터 진화한다. 새 수준의 체험을 시작하고 알지 못하는 분야의 탐구를 시도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당장에 새로운 체계의 가치 기준이 존재하게 된다. 버릇과 이상이 다시 모습을 갖춘다. 성격을 가진 하나님에 대한 어떤 관념을 얻고, 하나님과 가지는 관계에 대하여 어떤 개념들이 뒤따라 생긴다.

종교 철학의 진화에 네 단계가 있다:

첫째: 전통과 권한에 복종하면서 다만 순응하는 체험이 될 수 있다.

둘째: 나날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정도에서 (철학의) 성장이 그칠 수 있다.

셋째: 지적 수준까지 철학이 진보하지만, 문화에 종이 되어 침체에 빠진다.

넷째 수준: 관습과 전통으로부터 해방되고, 정직하게, 충성스럽게, 두려움 없이 진실하게 믿는 대로 산다.

건전한 종교 철학은 하나님의 것과 케자의 것을 혼동하지 않는다.

철학은 원시 종교를 우주 현실의 가치를 맛보는 체험으로 변화시킨다.

8. 믿음과 관념

어떤 가르침을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단지 믿는 관념이다. 확신을 가지는 것도 믿음이 아니다. 생활 방식을 실제로 지배할 때에야 믿음의 수준에 이른다.

관념은 언제나 사람을 제한한다. 믿음은 확대하고 사람을 해방시킨다. 살아 있는 종교적 믿음은 하나님을 알고 사람에게 봉사한다. 관념은 집단의 소유물이 될 수도 있지만, 믿음은 개인의 것이다.

믿음은 인생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의무를 결코 피하지 않는다.

믿음은 창조적 상상력에 쇠고랑을 채우지 않으며, 과학적 발견에 대하여 편견을 유지하지도 않는다.

9. 종교와 도덕성

진화 종교는 윤리적 책임을 육성한다. 계시는 진화 종교의 윤리적 시야를 확대한다.

다른 사람의 종교를 너의 지식 및 진실 기준에 따라 판단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사람의 가장 높은 윤리 및 도덕 개념에 대한 최선의 해석은 상물질 현실이며, 이를 믿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참된 종교는 훈계한다.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한, 아름다움의 추구는 종교의 일부이다.

깨우친 영적 의식은 특정한 지적 관념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상황에 선하게 반응하는 기법과 상관이 있다. 도덕적 의식은 윤리적ㆍ상물질적 가치 기준을 의식하는 것이다.

종교의 기능은 두 가지로 명시된다:

(i) 종교의 영적 자극은 사람의 도덕적 가치관을 동료들에게 연장시키게 만든다. (윤리적 반응)

(ii) 종교는 필사자의 일을 검열하며, 시간 세계의 실체와 영원의 실체를 믿는 확신을 준다.

믿음은 도덕적 의식과 영원한 실체에 대한 개념을 잇는 다리가 된다.

10. 사람을 해방하는 종교

지능이 있는 사람은 그가 물질 우주의 일부인 것을 안다. 운동과 긴장이 지배하는 우주에서 그는 개별 인격이 살아남지 못하는 것을 헤아린다. 물리적 원인과 결과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현실을 헤아릴 수도 없다.

논리와 이치의 가능성을 다 소모해도, 인격이 살아남는다는 진실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물질 수준의 법칙은 인과(因果) 관계, 원인에 결과가 뒤따르고, 지성 수준은 선재하는 개념으로부터 새 개념 가능성이 따름을 암시한다. 이 두 수준을 아무리 탐구하더라도, 생명 에너지를 소모하고 나서, 일시적 인격이 꺼질 운명이라는 불안에서 벗어날 길을 보여주지 않는다.

에너지와 지성은 신에게로 되돌아 가지만, 사람의 에너지와 지성 재산은 신으로부터 직접 생겨나지 않는다. 오직 영적 의미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필사인 것과 신다운 것, 부분적인 것과 완전한 것, 사람과 하나님을 섞음으로, 인간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이 종교의 목적이다.

결코 과학이나 논리로 신이 있음을 증명할 수 없다. 사리(事理)만으로 종교적 체험이 선한 것을 결코 정당화할 수 없다.

종교는 사람이 영적으로 외롭다는 느낌을 실질적으로 치료한다. 종교는 하나님의 한 아들, 우주의 한 시민으로서 믿는 사람을 해방시킨다.

네가 그런 믿음의 변화를 체험할 때, 너는 이제 더 수학이 지배하는 우주의 일부가 아니라, 우주의 아버지의 아들이다. 영생의 지위를 얻으려는 싸움에 하나님과 온 우주가 편을 들고 있음을 인간이 의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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