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이 언제 중국에 정착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마이디(大麥地)에서 바위에 색인 상형 문자가 한자의 시조라고 리샹시(李祥石) 교수가 우기지만, 이것은 학자들의 과학적 검증일 필요할 것이다. 아직까지 이 그림 글자와 갑골 문자를 짝을 맞춘 것이 하나도 없다. 어떤 그림 글자가 나중에 바뀌어 갑골 문자의 어느 글자로 변했다는 것을 아직 보이지 못했다. 신문에 보도된 글자로 봐서는 거의 무관한 듯한 느낌이 든다.
한국인이 백만 년 전서부터 한국 땅에서 진화했을 리는 없고 우랄 산맥 근처에서 살다가 언젠가 동쪽으로 출발하여 어딘가를 거쳐서 한반도에 정착한 것이다. 그러니 중국 땅에 있는 유적 중에 어떤 것은 한국 사람이 지나가다가 세워 놓은 문화일 수도 있다. 중국 땅에 있는 모든 유적이 중국인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미국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유적이 모두 백인의 유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학자들 사이에 터놓고 연구해야 될 것이다.
우랄 산맥에서 한반도까지 가는 쉬운 길은 몽고 지방을 지나는 것이다. 즐문토기는 한반도 뿐 아니라 시베리아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우리의 선조의 주류는 추위를 무릅쓰고 몽고 땅을 거쳐간 것 같다. 몇 천년 동안 동방으로 가는 동안에 우리는 몽고 반점을 얻었는가 보다. 그렇다면 그들은 우리의 사촌이다.
서로 싸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예전에 단결하지 못했다면, 일부는 동쪽으로 가다가 따듯한 남쪽으로 중국 땅에 일찍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내친 김에 양자강까지 가서 주저앉아 허다한 중국인과 섞였다면, 오늘날 한국인의 명맥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남쪽으로 들어섰다고 해도 산동 지방쯤 해서 종족을 보존하기 위하여 배를 타고 한국으로 건너갔을지도 모른다. 양자강까지 내려갔다가 제주도나 한반도 남쪽으로 갔을 수도 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신석기 문화는 양자강 유역에 펑토우산(彭頭山) 문화인데 기원전 7500-6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다음은 황하 남쪽에 베이리강(裴李崗) 문화 (기원전 7000 -5000년)이니, 중국인이 황하가 아니라 양자강 유역에서 먼저 정착해서 위로 올라갔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황하에 정착한 중국인은 양자강 유역에 정착한 중국인과 다른 종족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선조 일부는, 아직 중국 땅에 사람이 많지 않았을 때, 황하까지, 아니 양자강까지 내려왔다가 올라오는 중국인을 피해서 배를 타고 한국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딘가 유적이 남아 있을 터인데.
한국인은 기원전 2333년 전에 조선 땅에 정착했다고 하지만, 암사동에서 발견된 즐문 토기가 기원전 4천년이라 하니, 한국인이 한반도에 정착한 것은 대체로 양샤오 문화가 황하 남쪽에서 발달하고 있던 때이다. 기원전 6천년이나 그 전에 중국인이 양자강 유역에 정착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이것은 전위 부대로 일찍 도착한 사람들이고 기원전 4천년부터 본격적으로 중국인이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남쪽으로 내려오던 우리의 선조가 올라오는 중국인의 세를 피하여 배를 타고 한반도로 건너갔을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