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양(洛陽) 구경

중국의 국보 1호인 칭밍샹허투(淸明上河圖)는 중국 북송시대의 한림학사였던 장택단(Zhang Zeduan, 서기 1085-1145년)이 그린 그림이다. 北宋의 수도였던 카이펑(開封)의 서민들이 청명절을 지내는 풍경을 그렸다. 이 그림 한 구석에는 갓을 쓰고 말을 타고 가는 고려인의 모습도 보인다.

당시에는 세계에서 송나라의 생활 수준이 제일 높았을 것이다. 오늘날의 카이펑은 옛날처럼 번화하지는 않다.

1. 카이펑

오늘날의 카이펑 시 안에 옛 스타일로 지은 누각. 왼쪽에 높이 지은 집은 부동산 회사의 사무실로 쓰인다고 한다.

오대십국의 혼란기 동안에, 후량, 후진, 후한, 후주가 카이펑에 도읍을 정했고, 송나라가 (서기 960-1279년) 982년에 중국을 통일하면서 수도를 카이펑으로 정했다.

칭밍샹허투의 대상이 되었던 곳을 찾아 볼까 하여 수소문해 보았으나 허사였다. 이곳의 땅이 대체로 평지였으므로 지난 1천년 동안 강물의 물줄기가 여러 번 변했을 터이고, 따라서 옛날의 강을 따라서 사람들이 집을 짓고 장사하던 곳을 오늘날 찾을 수가 없다. 그 그림을 흉내내어 새로 지은 정원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카이펑 철탑. 1049년에 지었다.

허난 대학의 정문.

유소기의 동상

유소기(류샤오치)가 실각한 뒤에 모택동의 미움을 사, 이 집에서 감금되어 있다가 죽었다.

 

2. 낙양
 洛陽 박물관

낙양성 앞에는 얼리토(二里頭) 문화의 유적지가 있다.

 3. 롱먼 석굴 (龍門 石窟, Longmen Grottoes)
북위의 효문제가 낙양으로 천도한 494년부터 이 석굴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바위 여러 곳을 파서 조각을 시작했다.

롱문 최대의 석굴은 당나라의 고종 때 시작되고 측천무후도 돈을 기부하였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바위가 온도에 따라 팽창하고 줄어듦에 따라서 바위가 부서져, 초기의 조각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은 많지 않다.

  초기의 작품

왼쪽 바른 쪽

충실한 스님의 모습

4. 白園 (白居易의 묘)

낙양의 향산사에 백거이의 묘가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그의 문집은 71편이나 되고 長恨歌는 그가 지은 장편 서사시이다.

일본에서 백거이의 시를 아끼는 사람들이 세운 비석.

한국의 백씨 종친회에서 세운 비석.

5. 낙양 박물관
 
 

당시대 문관의 복장

 

당시대 무관의 복장

 

당시대 여인이 말 타고 폴로 경기하는 모습.

 

당대의 운하 지도

 

측천 무후가 발행한 면죄부.

최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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