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언어는 수메르어와 고대 황인종 언어의 혼합인가?

수메르인은 크게 보아서 백인종에 속하고 우리는 황인종에 속한다. 그러니 수메르인과 한국인이 동족이라는 것은 어거지이다. 또한 고조선 사람이 서방으로 수메르까지 가서 찬란한 문화를 세웠다는 것도 과학적 근거가 없이 민족우월사상을 부추기는 것이다. 그러나 고조선 언어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하는 문제를 고려하기 전에, 이 두 언어의 상관 관계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우르 남무 왕 (기원전 2112-2098년) 시대에 쓰인 수메르인의 전차(戰車). 바퀴가 둘 달린 보통 수레와 달리, 전쟁에 쓰이는 수레는 바퀴가 넷이었다. 수메르인 이전에는 말이 끄는 전차가 쓰인 기록이 없다. 힛 족속(Hittites)이 기원전 1800년에 살라티와라를 포위했을 때 전차를 처음 사용했다고 하나, 우르 남무 왕의 군기(軍旗)는 이를 훨씬 앞선다. 어쨋든 힛 족속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전차를 이용하여 한 동안 주도권을 쥐었다. 고구려는 북방 기마민족의 후예라고 한다. 이 말타는 기술은 고구려인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 고조선을 통하여 수메르인으로부터 전수받은 것이다.
 

1. 수메르어와 한국어의 상관 관계
(1) 유사음동의어가 많다.

문정창 교수는 여러 사람이 수메르어와 한국어 사이에 同音同義語는 아니라도, 유사음(類似音) 동의어가 여럿이 있음을 지적했다. 예를 들면 수메르어의 gu는 먹다는 뜻이고 일본어의くう(아마도 ‘먹어’에서 나온 듯)와 상통한다.

좋은 수메르어 사전이 아직 한글이나 영어로 출판되어 있지 않아서, 이러한 주장을 아직 일일이 확인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2) 수메르어는 한국어와 일본어처럼 (반짝반짝, キラキラ) 형용사를 되풀이하여 강조하는 습성이 있다.

수메르어는 우리말 처럼 음절의 구분이 명확하여 음절 문자를 개발한 듯하다. 유사음 동의어보다도 같은 문법이 더 두 언어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훨씬 더 중요하다. 왜냐 하면, 언어의 구성 분자인 단어는 시간이 오래되면 바뀔 수 있지만, 문법은 바꾸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집이 오래 되면, 집안의 여러 가구를 바꿀 수 있으나, 건물의 구조는 바꾸기가 더 힘들다. 마찬가지로 명사나 동사는 쉽게 바뀌어도 단어들을 연결하는 문법은 세월이 지나도 잘 바뀌지 않는다.

수메르어에서도, kal은 “귀한”(precious), 그리고 kal-kal 은 “대단히 귀한” (very precious)의 뜻이 된다. 셴(šen)은 깨끗한 (clean)이고, 셴셴(šen- šen)은 “아주 깨끗한”(very clean)의 뜻이 된다. 또한 Digir-gal-gal 크나큰 신이 된다.

(3) 수메르어와 한국어에 관사(a, an, the)를 쓰지 않는다. 두 언어가 또한 교착어이라서, 앞토씨(접두어)와 뒷토씨(접미어)를 사용하여 단어의 순서가 바뀌어도 의미가 통한다.

(4) 장소를 가리키는 토씨에 -a가 있는데, 우리 말의 -에와 같다. 예를 들면,
An ki-a (안키아) = 하늘(an/anu)과 땅(ki)-에, 에서, 그리고
Iri Lagas-a (in the city Lagas/Lagash)는 ‘라가쉬 시(市)-에서’가 된다. 이 외에도 비슷한 조사들이 더 있다. 예를 들면, ‘우림타 니부르세’는 ‘우림에서“부터” 니부르까지’ 이고, u-bi-ta는 ‘그날/그때부터’이다.


라가쉬의 임금 구데아, 기원전 2120년경. 루브르 박물관.

무엇을 부정할 때, In-nu를 아니야, 있지 않아라는 뜻으로 쓰이며, ul은 “오래 된” 것이다.

(5) 비슷한 숫자
eš (에쉬) 는 셋이요, 거꾸로 읽으면 에쉬가 된다. àš (아쉬, “아”는 내려가는 소리인 듯)는 여섯이요, u(우)는 열이다. 김상일 교수는 두 언어의 숫자가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geš(게슈)는 예순을 뜻하는데 두 낱말의 음가(音價)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주: 참고 서적, Daniel Foxvog “Introduction to Sumerian Grammar”)
 

2. 고조선의 인구
수메르어와 고조선어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데 인구를 고려해야 한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숫자를 고지식하게 믿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다른 수가 제시된 적도 없으므로, 환웅이 3천 명을 거느리고 신단수가 있는 곳으로 왔다는 기록을 기초로 하여 고조선의 인구를 추정해 보기로 한다. 환웅 혼자서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고 다른 3천 명은 구경만 하다가 죽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 3천 명은 수메르 지역을 떠나서 몇 십년 또는 몇 백년 동안 여행하여 우랄 산이나 그 동쪽으로 이주하였을 터이므로, 전부 남자일 수 없고, 남녀가 반반씩이었을 것이다. 여행하는 동안 자식도 낳아서 인구가 약간 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림잡아서, 여행 끝에 환웅 부족의 3천 명이 곰부족의 3천 명과 결혼하였다고 가정해 보자.

곰 부족과 호랑이 부족이 의사소통을 했다는 것은 호랑이 부족이 세월이 지나면서 이 혼합 부족과 섞였다는 것을 가리킨다. 다른 글에서 하늘 또는 서방에서 온 환웅 부족과 곰 부족은 소수였다는 것을 지적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호랑이 부족의 수는 최소한 이 혼합 부족의 두 배가 넘었을 것이다. 이 수를 택하면, 세 부족의 초기 인구는 대략 18,000명이 된다. 전쟁이나 자연 재해가 있으면 인구가 크게 줄어든다. 이것을 감안하여 인구가 50년마다 10퍼센트씩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현재 남북한의 인구는 얼마나 될까?

고조선의 기원을 기원전 2300년으로 잡으면 건국된 지 4300년이 지난 것이다. 그러면
현재 한국의 인구는 18,000 x (1.21)43 = 65,300,000이 된다. 이것은 대충 남북한의 인구를 합한 것이 된다. 물론 호랑이 부족의 수가 더 크거나 작다면, 인구 성장률을 조금 조정해야 현재 수치에 도달할 것이다.
 

3. 초기 고조선어
어느 시점에인가 황인종 한 쌍이 부모와 다르게 돌연 변이로 생겨났을 것이다. 두 쌍이 태어났을 수도 있고, 남자 아이 둘과 여자 아이 하나, 아니면 여자 아이 둘과 남자 아이 하나가 태어났을 수도 있으나, 편의상 황인종 한 쌍이 진화로 생겨났다고 가정하자.

이 쌍은 아직 중국인도, 한국인도, 몽고인도 아니다. 아직 글자가 발명되지 않았고, 이들이 무슨 언어를 썼는지 알 수 없다. 현재 아시아에는 중국인이 14억이고, 인도인을 빼고, 나머지 동양인 10억 명이 여러 가지 말을 쓰니, 이 황인종의 고대 언어가 지금의 한국어나 일본어보다는 중국어에 가까울 확률이 높다.

이 초기의 황인종 언어를 고대 중국어라고 부르자. 그러면 언젠가 황인종 집단에서 고조선인이 가지를 쳐 나온 것이다. 고조선인이 고대 중국인과 동질이었다면 가지를 쳐 나올 이유가 없다. 고대 동양인 중에서 다른 민족과 섞여, 이질적인 인구가 생기므로 기존 집단에서 차별 대우를 받고 가지를 쳐서 떠나간 것이다.

단군신화에도 적혀 있다시피, 외래 부족, 또는 하늘/서방 부족과 섞이게 된 것이 고조선이 가지를 쳐 나간 것을 설명할 것이다.

처음에 수메르어를 하는 환웅 부족과 곰 부족이 종족 결합을 하면, 각자 다른 언어를 쓰던 사람들의 언어가 섞이고 달라진다. 두 부족이 합쳐질 경우에 언어의 진화에는 크게 보아서 두 가지 중요한 요인이 작용한다.

(1) 큰 인구의 언어가 지배한다.
두 종족의 인구 비율이 비등하다면 두 부족이 서로 언어를 빌려오고 두 언어가 골고루 섞인 혼합 언어가 개발될 것이다. 그러나 한 부족이 다른 부족보다 월등하게 수가 많으면, 다수의 언어가 지배하게 되어 있다.

서기 1616년에 우리의 친척인 여진(만주) 족은 金나라를 세우고 차츰 중국을 먹어 들어가 결국은 중국 땅에서 청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여진 족의 수는 중국 인구에 비해서 훨씬 적어, 중국을 지배할 필요성 때문에 그들은 중국어를 배울 수 밖에 없었고, 결국은 자기네 만주어를 잃어 버렸다.

(2) 우수한 문화를 가진 종족의 언어가 지배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4세기에 마케도니아에서 필립 2세를 뒤이어 임금이 된 후에 13년 동안 지중해의 여러 나라를 정복했다. 다른 나라들은 잘 조직되어 있지 않았고, 그리스의 병사들은 월등한 방패를 가진 덕택에, 지중해의 여러 나라를 쉽게 정복하였다. 이후에 지중해의 세계는 어디를 가나 그리스어를 해야 되었고, 신약도 그리스어로 쓰여 있다.

요즘에는 국민 소득이 높은 나라의 언어가 우수한 언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과 미국 또는 영국인이 접촉하면, 한국인이 수입하여 쓰는 영어 단어의 수가 영미인이 한글 단어를 빌려 쓰는 수보다 훨씬 많고, 일본어와 러시아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고조선이 설 당시에, 환웅이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을 주관하였다는 말은 외래 부족이 곰 부족에게 농사와 위생을 가르치고, 고조선 사회에 법을 세워 사회를 안정시켰다는 말이다. 따라서 곰 부족 사람들은 쉽사리 수메르어를 많이 빌렸을 것이다.

(3) 고조선어는 수메르어와 고대 황인어의 혼합

수메르어는 우리말과 같이 문장의 구조가 ‘주어 + 목적어 + 동사’로 되어 있다. 고대 황인의 언어는 문법이 바뀌지 않았을 터이니, 현대 영어나 중국어와 마찬가지로 ‘주어 + 동사 + 목적어’로 되어 있었을 것이다. 대다수의 황인종은 다른 종족과 섞이지 않고 따라서 독자적인 문법을 바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문장 구조가 다른 언어를 쓰는 두 종족이 혼합되면, 더 나은 문화를 가진 종족의 언어가 지배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이미 지적한 바 있다. 곰 부족의 사람들은 인간사의 360 가지, 거의 모든 것을 배우는 형편이었으니 그들은 외래 부족의 어법을 따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방에서 흘러온 환웅 부족의 수가 원래 있던 곰 부족과 호랑이 부족보다 훨씬 적었으므로, 이 두 언어의 싸움은 일방적으로 수메르어가 이길 수 없음을 암시한다. 그러니 곰과 호랑이 부족 언어의 흔적이 무엇인가 남아 있다.

(가) 형용사의 전치

수메르어에서는 숫자를 제외하고,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가 반드시 뒤에 나온다. 예를 들면, Anše (당나귀) tur(작은) mah (높은,큰), 즉 ‘안쉐 투르 마’는 ‘작고 큰/크고 작은 당나귀’가 된다.

그러나 원시 황인어의 문법은 아마도 현대 중국어 문법에 가까웠을 것이다. 수식하는 형용사 또는 과거 분사가 반드시 명사 앞에 나와야 된다. 예를 들면, 노란 꽃은 黃花요, 새로 연 레스토랑은 신카이다 찬팅(新開的餐廳)이다.

(나) 질문형 어미(語尾)

인도유럽어로 질문할 때는 문장의 끝이 높아진다. 때로는 주어와 동사가 도치되기도 한다. 한국어와 중국어도 문장 끝에 어조를 높인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중국어의 질문 끝에는?忘了??(니 왕라마/너 잊어 버렸나?) 식으로 끝에 질문을 표시하는 어미 마’가 붙는다.

우리말도 아직도 그러한 질문 어미를 유지하고 있는데, ‘마’가 변하여 우리 말에서는‘-나,’‘-느냐’‘-는가’따위로 미음 소리 대신에 니은 소리가 남아 있다. 함경도 사투리로 ‘했음메?’경우와 같이 북쪽에서는 ‘마’ 소리가 남아 있기도 하다.

(다) 대명사

이것 저것 (쩌거, 나거/네이거 這個, 那個) 따위는 한자가 들어오기 전부터 중국인에게서 빌려온 듯하다, 我는 일본어에서 わたし가 되고, 우리 말에서는 ‘나’가 되었고, ?는 너 또는 ‘니’가 되었다.
 

4. 왜 환웅 부족이 메소포타미아를 떠났는가?
단군신화는 고조선의 시작을 설명하는 것이 의도이지만, 어째서 하필이면 기원전 2333년에 시작되었는가, 어째서 그보다 일찍 또는 늦게 시작되지 않았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홍수 이야기는 우르의 제 3왕조(기원전 2100-2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길자메시가 통치하던 기간은 기원전 2700년이라 한다. 수메르에 홍수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큰 홍수가 한 번 있었기는 하지만, 그런 홍수가 한번만 일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우륵 땅에 넘친 큰 홍수 외에도 두 강이 범람한 일이 여러 번 일어났을 것이다.

남은 사람들도 물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수메르인의 대부분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떠난 이유를 설명한다. 이 수메르인들이 어디로 갔는가? 생명나무는 이 수메르인들에게 독특한 전통이다. 그러니 그들이 어디로 가든 생명나무의 전통을 가지고 가서 생명나무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니 다른 민족들도 생명나무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물론 수메르로부터 멀리 갈수록 그런 전통이 희미해졌을 것이다.



페르샤인의 생명나무 기록



아라비아에도 가지고 갔다.



그리스에 남아 있는 생명나무 전통



에집트에 남아 있는 생명나무 꽃 목거리



우라르투(Urartu) 왕국의 청동 허리띠 (기원전 7세기). 생명나무와 꽃과 열매따는 사람의 모습이 있다.

우라르투 왕국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우랄 산맥이 남북으로 뻗어 있고, 우랄 산맥은 우라르투(또는 성경의 아라랏)에서 파생된 듯하다. 환웅 부족은 여기를 거쳐서 동방으로 향했을 것이다. 고조선의 기원을 기원전 2333년으로 보면, 고조선 지역까지 오는 데 어느 정도 시일이 걸렸다고 볼 수 있다. 환웅 부족가 신단수가 있는 곳에 내려왔다는 것은 생명나무가 있는 곳에 아담이 정착한 것을 말한다. 웅녀가 신단수 아래에서 기도했다는 것은 생명나무를 상징하는 신단에서 기도했다는 뜻이다.

최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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