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나라의 찬란한 청동기, 3부

  1. 하(夏)나라, 기원전 2070 – 1600년
  하나라의 역사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데, 아마도 그 시대에 아직 한자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漢字는 한나라 사람들의 글자란 뜻이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商字나 殷字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은나라를 세운 湯王은 원래 하나라의 제후였다고 한다. 은허 유적지에서 발굴된 시신들이 한족이 아니라 동북방 인종의 특징을 가졌다고 한다(潘其風). 상나라 사람들이 동이족이었다는 설이 있으나, 과학적인 증거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어쨋든 하 시대의 도기나 청동기에는 아무런 그림 글자나 한자가 보이지 않는다. (사진 출처: 허난 박물관)

 

  2. 상대(上代) 초기 (기원전 1600-1300년).
원시 자기(磁器) 상나라가 망하고 난 뒤에 상나라 사람들이 떠돌이 생활을 하며 장사를 했기 때문에 이들을 商人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것 상인이 한족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상나라의 말기 시대부터 중국인은 기초적인 상형 문자를 개발했던 듯하다. 전국 시대 말기에 漢族이 대륙을 통일하고 이미 발달된 글자를 “우리 글”이라는 뜻으로 한자라고 불렀을 것이다.

정저우(鄭州) 시에서 원시 자기가 발굴되었다. 이 자기는 고령토를 써서 만들었고 그릇 표면을 녹색 유약으로 칠했으니, 단연 자기라 부를 수 있다.

 


은허 유적 분포도

酒器 상대 초기에 쓰인 청동기는 상제에게 제사를 드리는 목적의 祭器였고, 주로 주기였다.

정저우 시에서 발견된 술통. 장인의 솜씨가 놀랍다.

짐승 얼굴 모습이 새겨진 酒器.

 

짐승 얼굴 모습이 있는 술잔.

 

盉(조미할 화), 술의 농도를 조절하는 (물을 담은) 그릇

兵器

정저우 시에서 출토된 청동과(戈). 긴 나무 막대기 끝에 이것을 꽂았을 것이다.

  3. 상대(上代) 후기, 기원전 1300-1046년
  반경(盤庚) 임금이 도읍을 기원전 1300년경에 은(殷)으로 옮겨, 이때부터 상을 은나라로 부른다.

주기 외에도, 식기, 창과 같은 병기, 손 씻는 대야 같은 水器도 개발된다.

 

반경이 도읍을 殷으로 옮기고, 우딩(武丁)이 임금이 되자, 상의 문화가 주위에 번성하였다.

식기

딩(청동솥), 고기를 담는 그릇

酒器  

 

 
卣(술통 유)

 

 

 

 

  4. 푸하오의 묘지에서 출토된 청동기와 옥기
옥기  

상나라 무정왕 시대의 옥기. 푸하오의 묘지에서 출토

 

푸하오 묘지에서 출토된 량주 시대 옥기.

푸하오 묘지에는 이 외에도 룽산 및 홍산 옥기들이 다량 묻혀 있었다고 한다.

푸하오 옥기의 무늬
주기  

상의 임금 우딩(武丁)의 왕비 “푸하오”에게 드리는 그릇(공). 아들이 어머니를 위하여 만들었다.

 
부엉이 모양의 준(尊,술잔)

식기  

용의 발 모양이 특징

 

증기로 찌는 그릇

상대 청동기의 주요 무늬

鳳鳥(봉황새), 치기(올빼미,부엉이), 송아지, 뱀, 용, 수면(짐승 얼굴), ?, 연주(구슬)와 번개, 황룡, 개구리, 불꽃, 사각, 호랑이 무늬.

청동기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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