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 존재 (3S)

  115편에서 118편까지, 이 네 편의 논문은 최상위에 관한 글이다.

115편은 최상위와 삼위일체 및 잠재성의 절대자의 관계를 설명한다.

최상위의 절대적 기초는 삼위일체이다.

절대 수준의 세 가지 가정

(i) 최초자 (스스로 계신 이)

(ii) 실재자 (아들ㆍ파라다이스ㆍ영)

(iii) 잠재자 (신 절대자ㆍ무제한 절대자ㆍ우주 절대자)

최상위는 하보나에서 영 성격으로서, 대우주에서 전능자로서 (전능한 하나님) 활동하며, 총우주 활동은 밝혀지지 않았다.

최상위는 유한한 하나님이며, 하나님과 사람은 서로 필요하다.

116편은 시공에 나타나는 하나님이 불완전한 하나님인 것을 밝힌다.

최상위는 최상 창조자들의 활동을 통해서 시공에서 사실화된다.

전능자는 칠중 통제자의 활동을 통해서, 앞으로 솟아날 최상위의 동력 통제 잠재성이다.

행성에서 진화가 전개됨에 따라서, 파라다이스 신들은 최상위의 진화에 참여한다.

117편은 최상위의 사실성이 개인적이 아니라 총체에 대하여 반응함을 설명한다.

최상위 안에서 지은 자와 지음받은 자의 신분이 한 몸이 된다.

최상위의 진화가 끝날 때, 인간의 진화도 끝난다. 최상위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한 바깥 공간자들의 체험적 결핍을 메워주는 것인 대우주의 진화 시민의 역할이다.

한 사람이 파라다이스로 올라가지 않으려 하면, 최상위의 표현은 그만큼 늦어진다.

하나님도 최상위도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118편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글이요, 신이 시공 우주 어디에나 계신 성질과 (시공을 초월하는 바깥 우주에) 신이 두루 계신 성질을 구별한다. 삼위일체는 절대 필요성이요, 1차 원인이다. 나머지는 2차 또는 그 이하의 원인이다. 삼위는 전능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을 하거나 만사를 행하지는 않는다.

119편은 미가엘이 네바돈 지역 우주에서 지구에 오기 전에 다른 곳에서 여섯 번 다른 생물로서 수여 생활한 것을 요약하여 설명하였다.

  115편, 최상 존재
글쓴이: 유란시아에 잠시 머무르는 한 막강한 사자

1934년

아버지 하나님에게 아들인 것은 엄청난 관계이다.

최상위 하나님에게는 성취가 지위를 얻는 데 필수 조건이다―누구나 무엇일 뿐 아니라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1. 개념 구조의 상대성

 

한 우주 구조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생각하는 타고난 능력이 없다면, 진화하는 지능들은 합리적 사고(思考) 형태를 시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가설의 테두리 안에서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단을 가질 수 있도록, 그러한 머리는 어김없이 결론을 가정(假定)하고 기원을 발명할 것이다.

인간의 사고를 위하여 그러한 우주 테두리는 합리적 지능 작용에 필수이지만, 그런 테두리는, 정도가 크던 작던, 예외 없이 잘못되어 있다.

우주의 개념 구조들은 쓸모 있는 발판이요, 우주를 더욱 이해하기 전에 무너져야 한다.

[개념 구조: 집합 이론으로 설명하면, U = {a,b,c, …}, U = 우주 (universe), a = 첫째 멤버, b = 둘째 멤버, …]

진리ㆍ아름다움ㆍ선ㆍ도덕ㆍ윤리ㆍ의무ㆍ사랑ㆍ신성(神性)ㆍ기원ㆍ존재ㆍ목적ㆍ운명ㆍ시간ㆍ공간, 아니 신을 이해하는 것조차 상대적으로 참될 뿐이다.

필사자가 온 우주를 이해하기 쉽도록 우주 실체의 다양한 수준을 유한 수준, 초한(超限) 수준, 절대 수준이라 언급하였다.

이 중에서 오직 절대적인 것이 무조건 영원하고 참으로 실존적이다. 초한한 것과 유한한 것은 무한의 원초적 절대 실체에서 나온 파생물이요, 수정(修正)된 것, 자격 제한이요, 묽게 만든 것이다.

높고 낮은 유한한 생물은, 왜 유한자가 필요한가 이론을 내놓아도 좋고 또 그렇게 했지만, 모든 것을 고려하건대, 유한자는 하나님이 그렇게 의지했기 때문에 존재한다.

창조자의 선재하는 의지에 의존하지 않고서, 유한한 인간은 어째서 자신이 개인으로 존재하는가 합리적 이유를 내놓을 수도 없다.

2. 최상위의 절대적 기초 (영원자의) 실존적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아무것도 은하(銀河)들에 두루 일어날 수 없으니, 이는 스스로 계신 이 안에 본래 있는 완벽한 무한이

(a)일곱 절대자 안에 영원히 있고,

(b) 여러 삼자일치 속에서 기능적으로 관련되고,

(c) 여러 삼극일치 안에서 전달되어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여러 절대 관계에 이처럼 무한(無限)이 실존적으로 있다는 사실은, 조금도 우주의 새로운 체험적인 것들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는다.

유한한 인간의 관점에서, 무한은 현재 사실로 있는 것보다 미래에 가능한 서열에 있는 많은 것을 포함한다.

모든 체험 수준에서, 우주를 창조하고 진화시키는 계획 전체가 잠재하는 것을 실재하는 것으로 바꾸는 문제인 듯하다.

우주에서 잠재하는 것을 실재하는 것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은 수준마다 다르다.

유한자의 경우에는 체험적 진화요, 초한자의 경우에는 체험으로 궁극에 이르는 것이다.

실존적 무한은 정말로 만물을 포함하는 데 제한이 없고, 만물을 포함하는 바로 이 성질은 어쩔 수 없이, 진화로 유한한 체험을 겪는 가능성까지 포함한다.

그러한 체험적 성장 가능성은, 최상위에 부딪치고 또 그분 안에서 삼극일치 관계를 통해서 하나의 우주 사실이 된다.

 

3. 최초와 실재와 잠재 절대적 우주의 개념에는 한계가 없다.

이 근원적 실체의 범위와 성질이 어떻다고 정의하는 것은 무한에 조건을 다는 것이요, 영원이라는 순수 개념을 묽게 만드는 것이다.

무한ㆍ영원한 것, 영원ㆍ무한한 것의 개념은 그 범위에 제한이 없고 사실로 절대적이다.

유란시아의 과거, 현재, 또는 미래에, 무한의 실체나 실체의 무한을 표현하기에 적당한 용어가 하나도 없다.

사람은 무한한 우주에 있는 유한한 인간이요, 한없고 가없고 결코 시작이 없고 결코 끝이 없는 존재에 대하여 일그러진 그림자와 묽어진 개념으로 만족해야 하며, 이를 이해하는 것은 정말로 사람의 능력을 지나친다.

사람은 한 절대자라는 실체의 통일성을 먼저 깨뜨리려고 시도하지 않고서, 결코 절대자의 개념을 파악하기를 바랄 수 없다.

무한에는 통일성이 있고, 이것은 이 여러 논문에서 스스로 계신 이로서―인간의 머리로 생각하는 최초의 가설로서―표현되었다.

절대 수준에 관한 기본 개념은 세 단계의 가정을 포함한다:

1. 최초자. 제한이 없는 첫째 근원 중심 개념, 스스로 계신 이의 근원의 명시. 거기서부터 모든 실체가 기원을 가진다.

2. 실재자. 사실인 세 절대자, 곧 둘째 근원 중심, 셋째 근원 중심, 파라다이스 근원 중심을 모은 집단. 영원한 아들, 무한한 영, 파라다이스 섬의 삼극일치는 첫째 근원 중심의 독창성이 실제로 계시된 것이다.

3. 잠재자. 잠재성의 세 절대자, 즉 신 절대자, 무제한 절대자, 우주 절대자의 연합. 이 실존적 잠재성의 삼극일치는 첫째 근원 중심의 최초인 성질의 잠재적 계시이다.

최초자ㆍ실재자ㆍ잠재자의 상호 교제는 무한 속에서 긴장을 일으키며, 이것은 우주가 성장하는 모든 가능성을 낳는다. 그리고 성장은 칠중자ㆍ최상위ㆍ궁극위의 성질이다.

신 절대자, 우주 절대자, 무제한 절대자가 교제할 때 잠재성은 절대적이며, 한편 사실성이 태어난다.

둘째 및 셋째 근원 중심과 파라다이스 근원 중심이 교제할 때 사실성은 절대적이고, 한편 잠재성이 태어난다.

첫째 근원 중심의 최초인 성질에 사실성이나 잠재성이 존재하는지 태어나는지 우리는 말할 수 없다―아버지는 계신다.

시간 관점에서 볼 때, 실재자는 이미 있었고 지금 있는 무엇이요, 잠재자는 생겨나고 있고 앞으로 있을 무엇이요, 최초자는 지금 있는 무엇이다.

영원의 관점에서 볼 때, 최초자ㆍ실재자ㆍ잠재자의 차이는 이처럼 명백하지 않다.

이 삼자일치의 성질은 파라다이스의 영원 수준에서 그다지 뚜렷하지 않다.

영원 속에 만물이 있다―다만 모두가 시공에서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잠재성의 세 절대자는 우주에서 순전히 영원한 수준에서 작용하고, 따라서 절대 이하 수준에서는 결코 그 자격으로 활동하지 않는다.

실체의 내려가는 수준에서 잠재성의 삼극일치는 궁극위와 함께, 그리고 최상위한테 나타난다.

잠재하는 것은 어떤 절대 이하 수준에서, 한 부분에 관하여 시간에 맞추어 현실이 되는 데 실패할지 모르지만, 총합은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뜻이 궁극에 이기며, (자유 의지를 주었기 때문에) 개인에 관해서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총합에 관해서는 변함없이 그렇다.

우주에 존재하는 것들의 중심은 사실성의 삼극일치에 있다. 영이든 지성이든 에너지이든, 모두가 이 아들ㆍ영ㆍ파라다이스 연합에 집중한다.

영인 아들의 성격은 온 우주에 두루, 모든 성격자의 원본이다.

파라다이스 섬의 내용은 원본이요, 하보나는 그 원본의 완전한 계시요, 초우주는 원본의 완전하게 되고 있는 계시이다.

파라다이스로 올라가면서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사실성(신)이다.

사람이 그 탐구에서 진화시키는 것은 (인간이 신답게 되는) 잠재성이다. 실재하는 사람, 잠재하는 사람, 그리고 영원한 사람이 함께 존재하고 통합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최초자이다.

성장의 기초가―절대로 사실로 있는 것들이―제약되지 않으니까, 그리고 성장의 가능성―절대 잠재성―이 제한되지 않으니까, 성장이 정지된 상태는 총 우주에서 결코 나타날 수 없다. 실제의 관점에서 볼 때, 우주의 철학자들은 끝과 같은 것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총 우주의 주요한 장기(長期) 성향은 하보나 시대ㆍ초우주 시대ㆍ바깥 우주 시대와 관계된다. 그러나 연속된 관계의 이 기본적 구분조차도, 끝없는 영원의 대로(大路)에서 상대적 경계표에 불과하다.

4. 최상 실체의 근원 최상위 하나님의 기원을 무슨 방법으로 고려하더라도 삼위일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는 삼위일체가 최초의 신이며, 한편 최상위는 파생된 신이기 때문이다.

최상위의 성장을 무슨 방법으로 고찰하더라도 여러 실존적 삼극일치를 고려해야 한다. 이것들이 (첫째 근원 중심과 연결하여) 모든 절대 사실성과 모든 무한 잠재성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무한한 삼극일치들이 유한 수준에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멈추어서 그들의 바로 그 무한은 자체 속에 유한한 것의 잠재성을 담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라.

최상위의 성장은 삼극일치들로부터, 최상위의 영 성격은 삼위일체로부터 얻는다.

5. 최상위와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의 관계 최상 존재의 성격 및 영 성품의 실체는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의 존재와 활동에 절대로 의존한다.

최상위의 성장은 삼극일치 관계의 문제이지만, 최상위 하나님의 영 성격은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에 의존하고, 그로부터 파생된다.

삼위일체는 완전하고 무한한 안정의 절대 중심이자 근원으로서 항상 남아 있고, 그 둘레에서 최상위의 진화적 성장이 점진적으로 펼쳐진다.

6. 최상위와 삼극일치의 관계 사실성의 삼극일치는 하보나 이후 시대에 계속하여 직접 작용한다.

파라다이스의 인력은 물질 존재의 기본 단위들을 붙잡고, 영원한 아들의 영 인력은 영 존재의 근원적 가치에 대하여 직접 작용한다.

합동 행위자의 지성 인력은 지적 존재에서 중요한 의미 있는 모든 것을 틀림없이 붙잡는다.

최상위의 움직임은 두 가지이다: 파라다이스와 신을 향하여 집중하여, 그리고 잠재성의 절대자들의 한없음을 향하여 광범위하게 움직인다.

현재 우주 시대에 이 두 가지 움직임은 대우주에서 내려오는 성격자와 올라가는 성격자들 속에 드러난다.

최상 창조 성격자들, 그리고 그들과 관련된 모든 신다운 동료는 외향적이고 확산되는 최상위의 움직임을 반영하며, 한편 일곱 초우주 출신의 하늘 가는 순례자들은 안을 향하고 집중되는 최상위의 경향을 가리킨다.

7. 최상위의 성품 최상위 신 안에서 아버지인 스스로 계신 이는 무한한 지위, 영원한 존재, 절대적 성품에 본래 있는 한계로부터 비교적 완벽한 해방을 얻었다.

그러나 최상위 하나님은 오직 우주에서 활동할 때 체험적 제한에 지배됨으로 모든 실존적 한계로부터 풀려났다.

체험 능력을 얻으면서 유한한 하나님은 또한 체험할 필요성에 지배된다.

영원으로부터 자유를 얻으면서 전능자는 시간의 장벽에 부딪친다.

최상위는 오로지 미완성 존재이자 불완전한 성품의 결과로, 즉 절대적이 아닌 존재가 되는 결과로, 성장과 발전을 겪을 수 있다.

이처럼 최상위의 체험적 진화를 예정함으로, 아버지는 유한한 인간이 우주에서 존재하게 하고, 체험적 진보를 통하여 언젠가 최상위의 신성에 이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파라다이스 삼위일체는 절대로 불가피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곱 으뜸 영은 삼위일체에게 불가피한 것인 듯하다.

최상위의 권능ㆍ지성ㆍ영ㆍ성격이 사실이 되는 것은 진화적 필연임이 틀림없다.

근원ㆍ기능ㆍ운명, 즉 기원을 주는 삼위일체, 활동하는 우주, 그리고 운명인 궁극 삼자일체와 가지는 관계, 이 세 가지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최상 존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116 편, 전능 최상위
글쓴이: 유란시아에 잠시 거주하는 한 막강한 사자

1934년

시공의 하나님이 진화하며 절대적이 아닌 신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이 세상이 불평등하다는 모순은 이제 더 종교적 역설(逆說)이 되지 않을 것이다.

완전한 하보나 구체들을 바라보면 완전ㆍ무한하고 절대적인 창조자가 이를 만들었다고 믿는 것은 이치가 있다. 그러나 지구의 불완전과 불공평함을 보면, 완전하지 않은 창조자들이 너희 세계를 관리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하보나는 성장하지 않았고, 언제나 그대로 있어 왔으며, 영구한 신들처럼 실존적이다. 그러나 대우주는 성장을 겪고 있다.

전능 최상위는 살아 있고 진화하는 신이요, 그의 운명은 완전이지만 현재는 성장하고 불완전한 지위를 가진다.

최상 존재는 1차적으로 중앙 우주에서 한 영 성격으로서, 2차적으로 대우주에서 전능한 하나님으로서 활동한다. 총우주에서 최상위의 3차 활동은 알려지지 않은 잠재 지성으로서 존재한다.

1. 최상위의 지성 진화하는 인간이 겪는 체험은 최상위 체험의 한 단계이다.

전능 최상위의 진화가 완성되면, 통일되고 성격을 가진 한 신을 낳을 것이다.

최상위의 물리적 동력 잠재성은 일곱 최상 동력 지휘자에게 투입되었고, 지성 잠재성은 일곱 으뜸 영 안에서 쉰다. 무한한 지성은 무한한 영의 기능이요, 최상위의 지성은 대우주에서 사실화되는 과정에 있다. 최상위의 대우주 통제는 순전히 물리적ㆍ영적 일은 아니고, 지적ㆍ영적 현상도 있다.

우리는 최상위의 지성에 대하여 아는 것이 적다. 최상위의 지성은 대우주에서 활발하고, 총 우주에서 활동할 잠재 운명이 있다고 믿는다. 영은 완전히 발육될지 모르지만, 지성은 결코 진보를 멈추지 않는다.

2. 전능자와 칠중 신 전능자의 계심이 나타나는 것은 여러 초우주의 창조자 및 통제자들이 우주의 행동 무대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때에 일어난다.

최상위는 영 및 성격 속성을 삼위일체로부터 얻지만, 창조 아들, 옛적부터 늘 계신 이, 으뜸 영들의 행위 속에서 권능을 현실화한다.

시공의 인간은 파라다이스 신을 이해할 수 없다. 시공의 인간은 기원ㆍ관계ㆍ운명이 있어야 신을 이해한다. 따라서 파라다이스 신은 파라다이스 바깥에서 성격화를 묽게 만들고 제한하여, 진화 세계에서 수여 아들들이 땅에서 인생을 살면서 사람이 이해하기까지, 근원으로부터 멀리 생명의 빛을 가지고 간다. 이것이 칠중 신의 기원이다:

(i) 창조 아들(과 영)

(ii) 옛적부터 늘 계신 이.

(iii) 일곱 으뜸 영.

(iv) 최상 존재.

(v) 합동 행위자.

(vi) 영원한 아들.

(vii) 우주의 아버지.

처음 세 수준은 최상 창조자들이요, 마지막 세 수준은 파라다이스 신들이다.

최상 창조자들은 체험하는 신의 새로운 권능 잠재성을 표현한다.

최상위는 파라다이스 삼위일체가 아니지만, 삼위일체에서 기원을 가진다. 최상위는 최상 창조 성격자들의 활동을 통해서 시공에서 사실화되고 있다.

3. 전능자와 파라다이스 신 파라다이스 신들은 여러 대리자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활동한다.

(i) 셋째 근원 중심의 지성 집중.

지성은 인간과 창조자들이 조종할 수 있는 실체이다. 셋째 근원 중심이 지성을 수여하면, 최상위의 영 몸과 전능자의 권능이 하나로 된다.

(ii) 둘째 근원 중심의 성격 계시.

아들들의 자신 수여로 육신화하는 것은 창조자의 성품과 인간의 진화하는 성품을 통일한다. 미가엘과 아보날은 사람의 생애를 살아봄으로 신다운 성품을 확대한다.

(iii) 첫째 근원 중심의 깃드는 계심.

깃드는 조절자들은 인간을 하나님과 실제로 통일한다.

이러한 수여는 신다운 아들들이 생물의 성품을 얻음으로 성격을 강화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파라다이스 신들은 행성에서 진화가 전개됨에 따라서, 최상위 성격의 진화에 참여한다.

4. 전능자와 최상 창조자 최상위 총체가 통일되는 것은 유한 부분들의 점진적 통일에 의존한다.

무한한 영은 진화하는 신의 불완전함을 보충하며, 모든 으뜸 영이, 특히 으뜸 영 7번이 최상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으뜸 영들은 거울 영 49명을 공동으로 창조하면서 삼위일체와 함께 하였다. 위엄자가 나타나서 최상 지성의 계심을 집중하였다.

으뜸 영들은 거울 영들을 계속 감독한다. 일곱째 으뜸 영은 유버르사에 자리잡은 일곱 거울 영과 친히 접촉한다.

으뜸 영들은 최상위의 통치를 지지할 뿐 아니라 최상위의 목적에 지배된다. 대체로 으뜸 영들이 집단으로 창조한 것은 준(準)물질 계급이며 (동력 지휘자와 기타), 한편 개별로 창조하는 것들은 영적 계급이다 (상천사와 기타). 그러나 으뜸 영들이 최상위의 뜻에 반응하여, 집단으로 일곱 회로 영을 낳았는데, 이들은 영적 자식이었다.

초우주의 삼자일치 통치자(옛적부터 늘 계신 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파라다이스와 진화 세계들의 중간에서 삼위일체 기원을 가진 이 군주들은 양쪽을 보고 안다.

지역 우주는 최상위가 신으로서 진화되는 기초를 이룬다.

지역 우주에서는 창조자도 진화한다. 지역 우주는 진화의 출발점이다.

수여를 통해서 심판 아들들은 자신을 진화 세계에 수여함으로 파라다이스 신을 표현한다. 미가엘 창조자들도 마찬가지로 지역 우주 자녀들의 관점을 얻는다.

수여 아들들은 하나님을 찾아내는 길을 사람에게 드러낸다.

지역 우주는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인격자들이 가파른 영적 상승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칠중 신이 최상위로 현실화하는 동안에 필사 인간이 필요한 듯하다.

5. 전능자와 칠중 통제자 너희는 칠중자가 대우주의 창조자 뿐 아니라 통제자들도 포함하는 것을 헤아려야 한다. 대우주의 일곱 가지 통제자는 다음을 포함한다:

(i) 물리 통제사.

(ii) 최상 동력 중심.

(iii) 최상 동력 지휘자.

(iv) 전능 최상위.

(v) 행위의 하나님―무한한 영.

(vi) 파라다이스 섬.

(vii) 파라다이스의 근원―우주의 아버지.

칠중 신에는 (i) 창조 아들 및 영, (ii) 옛적부터 늘 계신 이, (iii) 일곱 으뜸 영이 들어가는데, 일곱 통제자에는 이들 대신에 (i) 물리 통제사, (ii) 최상 동력 중심, (iii) 최상 동력 지휘자가 들어간다.

칠중 신에는 또한 (v) 영, (vi) 아들, (vii) 아버지가 들어가는데, 이들 대신에 일곱 통제자에는 이 삼위 중에서 아들 대신에 파라다이스가 들어간다. 즉 (v) 영, (vi) 파라다이스, (vii) 아버지가 들어간다. 또한 최상위는 양쪽에 다 들어간다.

일곱 으뜸 영이 집단으로 창조하는 첫 행위는 초우주에서 에너지와 영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것을 상징하였다. 이 사건으로 일곱 최상 동력 지휘자가 출현하였다. 동시에, 동력 지휘자가 감독하는 물리적 활동과 반대로, 으뜸 영들의 영적 회로가 구별되었고, 물질과 영을 조정하는 우주 지성이 나타났다.

전능한 최상위는 대우주의 동력을 통제하는 자로서 진화하고 있다. 물리적 동력의 잠재성은 일곱 최상 동력 지휘자에 집중되는 듯하다.

시간 지역의 우주들은 완전하지 않다. 일곱 초우주가 빛과 생명 속에 안정되기 전에 물리적 안정이 먼저 필요하다.

우주를 짓는 초기에는 파라다이스 창조자들도 1차적으로 물질의 균형에 관심을 가진다.

결국, 모든 에너지는 지성에 반응하며, 물리 통제자들은 지성 하나님의 자식이다.

시공에서 영의 투쟁은 지성이 중재함으로 영이 물질을 지배하는 진화 과정이다. 대우주 전체의 총 진화는 에너지를 통제하는 지성과 영이 조정한 지능을 성격이 통일하는 문제이다.

물리적 창조의 확립된 회로들은 새 에너지가 나타남으로 위협을 받는다.

빛과 생명 속에 안정된 우주에서는 기대하지 않은 물리적 사건이 생기지 않는다. 안정된 우주와 진화하는 우주들의 관계는 아직도 우주 동력 지휘자들의 솜씨가 필요하다.

6. 영의 지배 성격과 가지는 관계에서 물리적 체계들은 종속되어 있고, 지성 체계들은 나란히 있으며, 영 체계들은 지휘하게 된다.

권능과 성격의 연합은 최상위로서 신 수준에서 표현된다.

절대 수준에서 에너지와 영은 하나이다. 절대 수준에서 한 걸음 내딛는 순간, 파라다이스에서 공간으로 움직이면서 그 간격은 지역 우주에서 상당히 벌어진다.

통제 성격자들이 에너지의 방향을 정할 수 있고, 이것은 에너지가 지성의 행위에 민감한 것을 드러낸다.

지역 우주를 조직하면서 창조 아들과 창조 영들은 동력 중심과 물리 통제자들의 협조에 의존한다.

삼위일체와 연합하는 운명을 얻기 위해서, 최상위의 영 몸은 전능자의 진화적 힘이 필요하다.

파라다이스 에서, 일력(一力)과 영은 하나와 같고 구별할 수 없다. 하보나에서 물질과 영은 구별할 수 있게 다르지만, 동시에 본질적으로 조화되어 있다. 그러나 일곱 초우주에서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지성이 활동할 잠재성이 더 크다. 우주 체험의 가능성은 인간과 창조자에게 똑같이 소용된다.

필사 인간으로부터 최상 존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진화 체험을 함께 한다.

7. 대우주는 살아 있는 유기체 대우주는 웅장한 물질 창조일 뿐 아니라,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신경(神經) 감각의 망이 인간의 몸을 통과하는 것 같이, 지성 회로들이 이 유기체에 침투한다.

필사자가 태양 에너지에 기대는 것과 비슷하게, 대우주는 파라다이스에서 방사되는 에너지에 의존한다.

신분과 인격을 스스로 의식하라고 지성이 필사자에게 부여되었다.

대우주가 영원한 아들의 영 인력에 반응하는 것 같이, 필사 인간은 영의 안내에 민감하다.

최상위는 절대로 안정된 삼위일체에 영원히 의존한다.

하나님께 도달하려는 사람의 투쟁은 우주에서 신성의 긴장을 일으키며, 이 긴장은 불사의 혼을 개발함으로 풀린다.

   
  117편, 최상위 하나님
글쓴이: 유란시아에서 잠시 머무르는 한 막강한 사자

1934년

최상위 하나님은 하나님의 총 의지 최대의 유한한 명시가 되고 있다.

대우주에 사는 존재들이 모두 하나님의 뜻을 충실히 행한다면, 시공의 창조들이 빛과 생명 속에 안정된다. 그때 최상위의 잠재성인 전능자는 최상위의 성격이 솟아나면서 사실이 된다.

진화하는 우주가 중앙 우주처럼 안정될 때, 필사 인격자가 깃드는 조절자의 이끄심에 조율이 될 때, 최상위의 사실성은 한 눈금만큼 더 현실이 된다.

대우주의 부분과 개인들은 최상위의 총 진화의 반영으로서 진화하며, 최상위는 대우주 진화의 누적 합계이다.

1. 최상 존재의 성품 최상위는 대우주의 대혼(大魂)이요, 유한한 실체의 완성이요, 창조자와 인간의 체험이 성격화된 것이다.

최상 창조자들의 몸을 입고서 신들이 파라다이스로부터 시공 영토로 내려왔으니, 이는 아버지를 찾아서 올라갈 인간을 창조하고 진화시키려는 것이다.

대우주의 존재는 삼위일체의 창조 행위의 결과이다.

창조자의 뜻과 인간의 뜻은 질적으로 다르지만, 체험적으로 비슷하다. 사람은 하나님과 연결하여 일할 수 있고, 이렇게 영원한 최후자를 함께 창조한다.

최상 존재의 경우에, 창조자와 인간은 신 안에서 뭉치며, 최상위의 뜻은 인간이나 창조자의 뜻보다 더 큰 무엇이다.

최상위 안에서 지은 자의 신분과 지음받은 자의 신분이 한 몸이 된다.

최상위 하나님은 진실이요 아름다움이요 선이니, 이러한 신성 개념이 체험의 유한한 최대치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신성의 이 삼자일치 품질의 근원은 유한 초월 수준에 있지만, 인간은 그러한 근원을 초월적 진실ㆍ초월적 아름다움ㆍ초월적 선으로만 겨우 파악할 수 있다.

미가엘은 아버지가 인간 자녀들에게 품는 신의 사랑을 드러냈다. 사람은 이렇게 사랑을 받았으니까, 육체를 입은 동포에게 이 사랑을 드러낼 수 있다.

첫째 근원 중심은 세 절대자 안에서 (신ㆍ우주ㆍ무제한 절대자) 잠재하며, 파라다이스ㆍ아들ㆍ영 안에서 실재한다. 그러나 최상위는 실재하면서 잠재한다.

2. 진화적 성장의 근원 최상위는 시간 지역에 있는 하나님이다. 모든 성장의 마지막 결과는 최상 존재이다.

필사 인간에게 존재는 성장과 마찬가지이다. 현재 시대에 인간 존재의 성장은 최상위의 한 기능이라고 본다.

인간이 삼자일체 체험으로 낳은 아들들의 지위를 생각해 보아라. 그들은 지성ㆍ영과 함께, 성격을 가졌고 체험을 하지만, 하늘 가는 자처럼 자라지 않는다. 이들은 현재 우주 시대에 있지만, 다음 우주 시대의 출신이라고 우리는 이해한다. 현재 우주 시대의 체험에 참여하지 않는다.

막강한 사자들은 삼위일체의 품에 안겼으니까, 현재 우주 시대의 성장에 참여하지 않는다. 우리의 지위는 삼위일체의 품에 안김으로 고정되었고,체험은 이제 더 성장을 낳지 않는다.

너희는 지구에서 지금 살며 파라다이스에 이르고 최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최상위의 성장에 참여한다.

언젠가 최상위의 성장이 끝나고 그의 지위는 확정될 것이다. 최상위의 진화가 그칠 때 인간의 진화도 끝난다. 바깥 공간자들이 최상위의 성장으로 혜택을 받지 못한 결핍을 메워주는 것이 대우주의 진화 시민들의 역할일 것이다.

현재 우주 시대가 끝나면 최상 존재는 대우주에서 체험적 군주로 활동할 것이다. 바깥 공간자들은 초우주 이후의 성장 잠재성을 가진다.

최상위의 불완전함은 미덕으로 보아도 좋으니, 인간의 성장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어 있는 것은 미덕이 있으니, 빈 것이 체험으로 채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과 우주들은 최상위 안에서 진화하고 있다.

3. 우주의 인간에게 최상위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최상 존재는 최상위 하나님, 전능한 최상위라고도 부른다.

최상위는 공간에서 삼극일치들의 무한이 흐르는 경로이다.

예수가 하나님께 올라가는 생명의 길인 것 같이, 최상위는 의식을 초월하고 초한 통찰력을 얻는 생명의 길이다.

너희의 창조 아들은 인간이 신에 이르는 경로일 수 있으니, 그가 사람의 아들로서 파라다이스 신에 이르기까지 진보하는 길을 몸소 거쳤기 때문이다.

물리적 관점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모습을 닮지 않았으나, 조절자와 연락하여 불사의 혼이 자란다.

최상 존재는 신이요 인간은 지음받은 자이니까 최상 존재와 똑같지 않지만, 사람의 진화는 어떤 면에서 최상 존재의 성장과 비슷하다. 일단 혼이 생기면, 혼은 저절로 자란다.

최상위를 창조자가 진화시키고 삼위일체가 파생시켰을 뿐 아니라, 최상위는 스스로 진화하고 유래한다. 최상위 자신이 의도하여 창조에 참여한 자이다.

파라다이스 에너지를 조종하고 이를 최상위에 반응하도록 만드는 데 아버지는 합동 행위자와 더불어 일한다. 창조 아들들을 낳기 위하여 아버지는 영원한 아들과 함께 일하며, 이들의 활동은 최상위의 통치권을 성취할 것이다.

신은 통일성이요, 삼위일체로서 실존적이고, 최상위로서 체험하며, 필사자의 경우에는 조절자와 융합한다.

사람의 불멸하는 혼은 아버지의 계심과 교제함으로, 그리고 인격의 결정에 따라서, 자기의 영원한 운명을 진화시킨다. 삼위일체와 최상위의 관계는 조절자와 진화 인간과 같다.

시공의 창조 대리자들이 유한 행동 가능성을 소모한 경우를 제외하고, 현재 우주 시대에 최상 존재는 창조자로서 직접 활동할 수 없는 듯하다.

최상 존재는 사람을 창조하지 않았지만, 사람은 최상위의 잠재성으로부터 창조되고 생명은 거기서부터 파생되었다.

최상위는 최초의 원인 작용을 비롯할 수 없는 듯하지만, 성장의 촉매인 듯하다. 아버지는 유한한 우주 개념을 비롯하신다. 창조 아들과 영들은 시공에서 이 개념을 사실로 만든다. 최상위는 유한자 총체를 완성한다.

4. 유한한 하나님 최상위는 유한한 신이며, 진화 세계에서 우리가 벌이는 싸움은 최상위가 통치권을 얻으려고 기울이는 노력을 반영한다.

하늘 가는 필사자의 생애를 통해서 유한한 하나님의 체험적 통치권이 커진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므로, 신다운 성품의 한 조각을 인간의 손에도 맡긴다. 조절자의 계심을 파괴할 수 없지만, 진화하는 자아는 멸망할 수 있다.

인격은 인간의 개성을 파괴할 수 있고, 파괴된 개성은 개별 인간으로서 지속하지 않는다. 최상위는 여러 우주의 인간들 속에서 다시 표현을 찾지만, 그 인격자로서 다시 표현되지 않는다.

유한자의 인격이 고립된 행동을 하더라도 최상위는 궁극에 출현한다. 개별 필사자의 인격은 최상위 앞에 하찮은 것이지만, 각 사람의 인격은 갈아치울 수 없는 가치를 대표한다.

우리가 자아를 표현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최상위는 우리와 함께 신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인류는 수고도 하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지 않는다. 총명하게 활동하지 않고는 최상위도 진화하지 않는다. 사람은 수동적 태도로 완전을 얻지 않으며, 최상위도 유한한 창조에 봉사를 베풀지 않고 전능자가 될 수 없다.

필사 승천자가 불멸하는 신다운 인품을 얻는 것은 최상위에게 달려 있다.

인격을 영적으로 변화시키는 조절자의 진보는 최상위의 통치권을 확대한다. 인간은 최상위 없이 진화할 수 없지만, 모든 인간의 진화가 완성되지 않고서 최상위의 진화가 완전해질 수도 없다.

필사 인간의 도전은 이것이다: 우주의 체험할 수 있는 가치 의미를 자기 재산으로 만들려고 결심할 것인가? 아니면 살아남기를 거절하고 최상위가 다른 사람을 기다리도록 버려둘 것인가?

현 시대에 큰 싸움은 잠재하는 것과 실재하는 것 사이에 있다. 자아가 파라다이스로 올라가기를 거절하는 한, 최상위의 표현은 대우주에서 늦어진다.

아버지는 필사 인간에게 조절자를 맡겼을 뿐 아니라, 최상위 미래의 극미 부분의 운명을 통제하는 권한도 밭겼다.

너는 너의 결정에 의존하는, 시간 세계의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릴 것인가? 동물처럼 게으름으로 최상위의 기대를 저버릴 것인가?

하나님은 먼저 사람을 사랑하고 그에게 불사의 잠재성을 수여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함에 따라서, 사람은 사실로 영원하게 된다.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신분보다 더 위대하게 만든다.

5. 창조의 대혼 최상위는 대우주에서 우주적 대혼(大魂)이다. 최상위는 또한 현실화되고 있는 신이다.

유한자의 지적 자아는 셋째 근원 중심으로부터 태어난다. 사람이 창조자의 뜻에 복종할 때, 자아를 잃는 것이 아니라 신의 모험에 참여함으로 점진적으로 커진다.

불멸의 혼은 물질 지성과 조절자가 함께 창조한 것이며 그 자격으로 파라다이스까지 올라간다.

아버지가 땅에서 예수의 일생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최상위는 하늘 가는 사람의 혼 속에서 현실이 될 것이다.

사람은 최상위와 하나되어 인격 신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의 체험적 반응은 최상위 체험의 일부가 된다.

사람이 행동할 때 최상위가 반응하며, 이 거래는 사실로 진보가 된다.

인간의 지능은 보조 지성 영들의 맥박 안에 거하며, 죽고 나서 인간의 자아는 보조자 회로에서 영구히 떨어져 나간다.

영적 회로의 경우에도 그렇다: 여러 우주를 올라가면서 사람은 이 회로들을 이용하지만, 인격의 일부로서 회로를 소유하지 않는다.

성령과 진실의 영은 지역 우주에서 베푸는 봉사이지만, 이러한 안내는 거기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네가 지역 우주의 영토를 떠날 때, 최상 존재의 영이 베푸는 봉사를 통해서, 지도하는 영이 여전히 너를 안내할 것이다.

이 다양한 회로들이 어떻게 최상위 안에 진화로 얻은 체험을 기록하는가? 최상 창조자들의 몸을 통해서 이러한 기록이 일어난다고 우리는 믿는다.

체험을 겪음에 따라서 조절자는 최상위와 비슷해지며, 진화하는 혼이 최상위 안에서 창조된다.

아버지께로 올라가는 동안, 사람들은 다만 유한한 것의 질과 양을 이용한다.

사람이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길 때, 사람은 체험하며, 그 체험의 의미는 언제까지나 그의 영원한 인품의 일부이다.

인간은 아버지에게 도달할 수 있지만, 그 지성이 유한하니까, 정말로 아버지를 이해할 능력이 없다. 유한자는 자체 안에 영원의 씨앗을 품고 있다. 진화로 성장 능력이 소모되었을 때, 유한자 총체는 궁극위를 찾아서 초한 단계를 시작하리라고 우리는 가르침을 받았다.

6. 최상위를 찾기 우리는 여러 우주에서 최상위를 찾지만, 찾아내지 못한다.

하나님이 너희의 신다운 아버지인 것 같이, 최상위는 너희의 신다운 어머니이다.

미가엘과 네바돈의 관계는 최상위와 유한 우주의 관계와 같다.

인간이 창조자의 뜻을 행하려는 행위는 우주적 가치가 있고, 어떤 조정 세력이 즉시 반응할 중요성이 있다.

진화하는 필사자의 혼은 조절자의 행위에서 생긴 아들이요, 최상 존재의 반응에서 생긴 자식이다.

최상위가 어머니로서 주는 유산이 아버지의 조절자 유산과 동시화될 때까지, 최후자의 생애에서 자아 실현이 계속될 듯하다.

일곱째이자 마지막 단계인 영 지위에 들어가고 나서, 신성을 깨닫는 시대가 뒤따를 것이다.

혼을 얻은 인간은 글자 그대로, 아버지 하나님과 최상 존재(어머니 하나님)이 낳은 진화의 아들이다.

인간의 존재에서 하나님이 가장 큰 체험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자주 잊어버린다. 하나님을 찾을 때, 사람들은 모든 것을 찾고 있다.

모든 참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체험을 통하지 않고서 최상위에게 가까이 가는 길은 없다. 현재 우주 시대에는 인간이 최상위에게 다가가는 길이 세 가지 있다:

(i) 파라다이스 시민은 하보나를 거쳐서 내려 오며, 최상 창조 성격자들의 다양한 활동을 연구함으로 최상위를 이해하는 능력을 얻는다.

(ii) 시공의 승천자들은 하보나를 거치면서 최상위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iii) 하보나 원주민은 파라다이스에서 내려오는 순례자와 일곱 초우주에서 올라가는 순례자들과 접촉함으로 최상위를 이해하게 된다.

진화 인간에게는 아버지께 접근하는 일곱 가지 접근법이 있고, 이 길은 각각 한 으뜸 영을 통과한다.

사람이 유한한 하나님을 찾지 못하게 막는 것은 사람의 한계 뿐 아니라 우주의 불완전함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최상위를 발견할 때까지, 어느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최상위를 발견하지 못한다.

너희는 아버지와 아들과 영을 발견할 수 있다. 최상위를 개인적으로 발견할 수 없어도, 너희는 최상위가 우주에서 활동하심을 차츰 인식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언젠가 최상위에 도달하는 것은 파라다이스 신의 영(조절자)과 융합하는 결과로 가능하다. 조절자가 앞날에 일곱째 단계의 최후자에게 드러낼 것은 최상위의 신성일 것이라 우리는 추측한다.

최상위는 무한하지 않지만, 유한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무한성 모두를 품는다.

체험으로 창조된 모든 것은 서로 의존하여 운명을 실현한다. 하보나와 일곱 초우주는 최대의 유한한 달성을 위하여 서로 필요하다.

하늘 가는 사람은 아버지를 발견할 수 있고, 하나님은 실존적이다. 그러나 모든 승천자가 동시에 최상위를 발견할 만큼 성숙해질 때까지, 하늘 가는 사람이 혼자서 최상위를 찾아낼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최상위도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사람은 마음 속에서 아버지를 발견할 수 있지만, 모든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서 최상위를 탐구해야 할 것이다.

모든 인격자가 완전해진 자아를 실현하는 것은 최상위에 도달하는 것과 동등하다. 모든 유한한 가능성을 소모하는 것은 마침내 최상위에 이르게 한다.

지진이 바위를 쪼개듯, 사람들은 갑자기 볼 만하게 최상위를 발견하지 않는다. 천천히, 참을성 있게 발견한다.

네가 아버지를 발견할 때 영적으로 올라가는 큰 원인을 발견할 것이다. 최상위를 찾아낼 때, 너는 파라다이스로 올라가는 생애의 큰 결과를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어떤 필사자도 나그네 길에 쓸쓸하지 않을 터이니, 걸음걸음 아버지가 옆에서 걷고, 거쳐 가는 길이 최상위의 계신 앞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7. 최상위의 앞날 최상위가 전능한 신으로서 마침내 솟아나면, 최상위는 영원한 아들처럼 성격화되고 파라다이스처럼 동력화되고 합동 행위자처럼 완벽하게 통일되리라 우리는 믿는다.

최상위의 앞날에 대하여 다음에 주의를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i) 최상위의 무제한 감독자들은 최상위가 진화를 마치기 전에 도저히 신이 될 수 없다. 그래도 빛과 생명 속에 안정된 우주들에 대하여 어느 정도 최상의 통치권을 행사한다.

(ii) 최상위의 지위가 완성된 사실이 될 때까지, 그는 궁극 삼자일체 안에서 활동할 수 없다. 그래도 궁극 삼자일체는 (최상위ㆍ최상 창조자들ㆍ총우주 건축가들) 지금도 제한된 실체이다.

(iii) 최상위는 우주 생물에게 완벽한 현실이 아니지만, 그는 칠중 신에게 현실이라고 추론할 이유가 많다.

유한자의 위쪽 한계에서 시간은 초월 시간과 합쳐지며, 거기서 순서가 얼마큼 흐려질지 모른다. 최상위는 그의 계심을 이 시간 초월 수준까지 예측하고 창조된 수준까지 반영하여 어느 정도 앞날의 진화를 예상하는지 모른다.

최후자 군단에 입단 허가를 받을 때, 필사 승천자는 삼위일체에게 선서하고, 이것으로 최상위에게 영원한 충절을 서약하는 것이다.

최상 존재가 분명이 나타날 때 세 가지 유한 초월 가능성을 품는다.

(i) 첫째 체험적 삼자일체에서 초한 공동 작업.

(ii) 둘째 체험적 삼자일체에서 공동 절대적 관계.

(iii) 가장 높은 삼자일체에서 공동으로 참여. 이것이 정말로 무엇을 뜻하는가 우리는 흡족한 개념이 없다.

이것이 최상위의 앞날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가설이다.

여러 초우주의 현재 목표는 잠재성 안에서 완전하게 되는 것이다. 다가올 시대에 불화(不和), 그릇된 조절, 잘못 적응하는 가능성은 초우주에서 궁극에는 없어지리라고 믿어진다.

아득히 먼 미래에, 최상위의 영 성격과 전능자의 권능은 나란히 발전했을 터이고, 이 둘은 최상 존재로서 사실이 되리라 추측된다.

현재 삼위일체의 행정가(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이 최상위의 대행(代行)이 되는 것이 아주 가능성이 있지만, 일곱 초우주 사이의 현재 경계는 차츰 사라질 것이다.

이때 아마 최상위는 유버르사에 몸소 거할지 모르고 대우주의 행정을 지휘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 미래 시절에 완전해진 대우주는 현재의 처지와 방대하게 다를 것이다. 아마도 어느 공간에 휴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래 쉬지 않는다! 궁극위 하나님의 수수께끼가 완전하게 된 이 시민들에게 도전할 것이다.

   
  118편, 최상과 궁극―시간과 공간
글쓴이: 유란시아에 잠시 머무르는 한 막강한 사자

1934년

신의 몇 가지 성품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해도 좋다:

(i) 아버지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아이다.

(ii) 아들은 함께 존재하는 자아이다.

(iii) 영은 결합되어 존재하는 자아이다.

(iv) 최상위는 진화하고 체험하는 자아이다.

(v) 칠중자는 스스로를 분배하는 신성(神性)이다.

(vi) 궁극위는 초월적이고 체험하는 자아이다.

(vii) 절대자는 실존적이고 체험하는 자아이다.

칠중 신은 최상위를 진화로 달성하는 데 필수이지만, 최상위는 또한 궁극위가 궁극에 솟아나는 데 필요하다.

창조적 성장은 그치지 않지만, 인격을 만족시키는 순간들이 이따금 사이에 낀다. 그러한 순간은 새 모험으로 사람을 동원하는 전주곡으로서 효과 있게 쓰인다.

수학에는 질적 한계가 있지만, 유한한 머리에게 무한을 곰곰이 생각해 볼 개념의 기초를 마련해 준다. 유한한 머리가 생각하기에도, 수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아무리 큰 수(數)를 생각해도, 너희는 언제나 거기에 하나를 더할 수 있다. 또한 그 수가 무한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너희가 이해할 수 있으니, 이는 아무리 여러 번 너희가 그 수에 이 덧셈을 거듭해도, 여전히 하나 더 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한한 시리즈는 어느 시점에서도 합계할 수 있고, 이 총합은 인간에게 어느 특정한 시간에 목적을 달성하는 단맛을 마련해 준다. 그러나 이 인격자는 다시 갈급해지고 새로운 목표를 바란다.

연속되는 각 우주 시대는 다음 시대로 인도하는 문간방이다.

1. 시간과 영원 신과 우주의 관계를 모두 이해하는 것이 사람이 우주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진화하는 우주에서 영원은 현세가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기법을 통해서, 필사 인격은 영과 자신이 일체가 되어 영원하게 될지도 모른다. 순간들의 연속이 사람의 목적에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

어느 특정한 지능 안에서도 성숙과 시간을 의식하는 단위 사이에 직접 관계가 있다. 시간 단위는 의식하는 자아가 인생의 상황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체험ㆍ지혜ㆍ판단은 필사자의 체험에서 시간 단위가 길어져 생기는 것들이다. 인간의 머리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갈 때, 지난 체험을 현재 상황에 비춰 보려는 목적으로 머리는 지난 체험을 평가한다. 생각하는 머리가 앞날을 알려고 손을 뻗음에 따라서, 머리는 어떤 가능한 행동이 미래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평가하려고 애쓴다.

파악하는 자아가 이렇게 과거와 미래로 손을 뻗음에 따라서, 판단이 순간적 현재에 의존하는 일이 적어진다.

짧은 시간 단위로 생각하는 필사자가 참을성을 연습한다.

성숙하게 되는 것은 현재에 맹렬하게 사는 것이요, 동시에 현재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미숙했을 때의 시간 단위는 현재와 비현재를 분리하고 현재 순간으로 의미를 집중한다.

무한자와 절대자의 수준에서, 현재의 순간은 미래 뿐 아니라 과거의 모든 것을 포함한다. 스스로 계신 이는 또한 스스로 계셨던 이요, 스스로 계실 이를 의미한다. 이것이 영원과 영원한 자에 대하여 우리가 가진 최선의 개념이다.

절대적이고 영원한 수준에서, 잠재하는 실체는 실재하는 실체와 똑같이 중요하다. 오로지 유한 수준에서, 사람들에게 그렇게 방대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절대적인 하나님에게는 영원한 결정을 내린 하늘 가는 필사자는 이미 최후자이다.

2. 두루 계심과 어디에나 계심 [대우주 어디에나 계신 성질과 (ubiquity) 시공 초월 우주, 즉 바깥 공간에 두루 계신 성질 (omnipresence)를 소개하고 구분하는 문단이 편집 과정에 생략된 듯.

얼핏 생각하기에는 우리 지구가 속하는 초우주 수준과 바깥의 네 공간 수준을 모두 시공간으로 취급해도 될 듯한데, 이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영적 존재들은 바깥 공간에 거의 없고, 동력을 다루는 존재들만 바깥 공간에 있다. 또한 여러 초우주의 공간에 사는 존재들은 최상 존재의 현실화에 기여하지만, 바깥 공간의 우주들에서 태어날 존재들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바깥에 있는 4 공간 수준을 시공 초월 수준으로 부르며, (i) 시공 세계 어디에나 계신 성질(ubiquity)과 (ii) 시공을 초월하여 바깥 공간 어디에나 계신 성질(omnipresence)을 구분한다.]

(시공 우주) 어디에나 계신 성질을 (시공을 초월하는 바깥 우주에) 신이 두루 계신 성질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주의 아버지는 시공에 어디에나 계시고, 또한 시공을 초월하여 바깥 공간에 두루 계시는 성질이 있으며, 최상위ㆍ궁극위ㆍ절대자가 이러한 성질을 보편ㆍ절대적 계심으로 보상하고, 이와 통일하는 것이 우주의 아버지의 뜻이다.

필사자는 칠중 신이 베푸는 봉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차츰 식별한다. 하보나를 통해서 너희는 최상위를 발견한다. 파라다이스에서 너희는 그가 한 성격자임을 발견하며, 다음에 최후자로서 너희는 그가 궁극위인 것을 알려고 애쓸 것이다.

최상위는 신이 (시공 우주) 어디에나 계심의 분명한 표현이다.

최상위가 언젠가 시공 우주의 직접 통제를 맡는다면 그 행정이 궁극위의 전반적 통제 밑에서 작용할 것이라 우리는 확신한다.

대우주에서 행정 권한을 얻기까지 최상위가 진화하는 데 궁극위의 명시가 늘어난다면, 바깥 공간에서 궁극위가 출현할 때도 비슷하게 절대자 하나님의 계시가 늘어날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모른다.

3. 시공 관계 오직 어디에나 있는 성질로 신은 유한자가 이해하도록 시공에서 명시되는 모습을 통일할 수 있다. 결국, 너희는 분석함으로 시간을 파악하고, 종합함으로 공간을 파악한다.

사물은 시간에 조건을 받지만, 진실은 시간을 초월한다.

진실은 언제나 살아 움직이지만 흔들릴 수 없는 것이다.

창조자의 절대적 진실과 현세의 유한한 사람이 겪는 체험을 연결하는 것은 궁극에 최상위의 가치가 된다.

공간은 비절대 사물 중에서 절대성에 가장 가깝다. 공간을 우리가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은 물체들이 공간 속에 존재하지만, 공간이 또한 이 물체들 속에 존재하는 사실 때문이다.

한 물체가 공간을 통해서 움직일 때, 그 물체 안에 있는 공간까지도 가지고 간다.

영 형태는 공간을 차지하거나 밀어내지 않으며, 공간을 담지도 않는다. 한 개념의 형태가 공간을 차지하는지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개념의 형태는 공간을 담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4. 1차 원인과 2차 원인

 

사람들이 닥치는 신학적 문제점 중에 상당수는 신을 잘못 이해하여 절대적 속성을 하위 신에 할당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처음 원인이 있고, 또한 종속된 원인들의 집합이 있음을 잊지 말라.

1차 원인과 2차 원인의 중대한 차이는 1차 원인들이 최초의 효과를 낳는 것이며, 2차 원인은 이전의 원인으로부터 물려받은 결과를 드러낸다.

무제한 절대자의 정적(靜的) 잠재성은 신 절대자의 원인 작용에 반응한다.

[무제한 절대자가 신 절대자에 반응하여, 공간에 잠재 에너지(물력)을 뿌린다.]

초월 대리자들은 이 잠재성을 성장하는 상태로 변화시키고,

[물력 조칙책들이 이 잠재 물력을 극자 및 전자 이후 물질로 변화시키고]

이 성숙한 잠재성 위에 대우주의 창조자 및 통제자들이 우주를 진화시킨다.

[극자 이후 물질이 나타나면 미가엘 및 동력 지휘자들이 물질 우주를 진화시킨다.]

이처럼 우주 창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와 달리, 빅뱅 이론은 한 순간에 한 곳에 집약된 물질이 펑 터져서 물질 우주가 생겼다고 본다. 빅뱅 이론에는 최초의 원인이 없다 (어느 순간에 터졌다고 하지만, 왜 그 전이 아니고 그 후도 아니고, 그 시간에 왜 터졌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원인의 기본 구성은 세 가지이다:

(i) 정적 잠재성의 활성화. 신 절대자의 행위로 우주 절대자 안에서 운명이 정해지는 것.

(ii) 우주를 만드는 능력이 궁극에 생기는 것. 이것은 궁극위와 초월 수준의 대리자들(물력 조직책)의 행위이다.

(iii) 우주에 실재하는 것들의 창조와 진화. 성숙한 잠재성을 최상 창조자들이 체험적 실재물로 변화시키려고 작용한다. 창조 아들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물질을) 변화시키는 창조자이다.

5. 전능과 공동 가능성

 

신이 전능(全能)하다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을 행하는 힘을 뜻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의 틀 안에서, 무한한 하나님조차 네모난 동그라미를 만들거나 본래부터 착한 악을 만들 수 없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모든 일을 하지만, 사람들조차 최후의 운명을 실현하는 데 하나님과 협동자가 될 것이다.

언제나 신은 원본 우주와 완전한 성격자들을 마련하고, 진실ㆍ아름다움ㆍ선을 얻으려고 신 아래에 있는 자들이 애쓰게 만들어야 한다.

6. 전능과 모든 일을 행하심

 

하나님은 참으로 전능하지만 모든 일을 몸소 행하지는 않는다.

원초적 신이 만사를 행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양한 조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거의 1백만 명의 창조 아들들의 특권을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모든 의지는 상대적이다. 오직 아버지ㆍ아들ㆍ영이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공간에 제한되지 않는 의지의 특권을 나타낸다.

사람은 선택 범위를 넘어서 선택할 수 없다.

필사자는 선택이 가능한 시절에 여러 길 중에서 항상 결정을 내린다.

사람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와 같이 되기를 택할 때, 그런 선택은 유한을 초월한다.

신이 전능함을 인식하는 것은 파라다이스로 가는 길이 안전함을 확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이 모든 것을 행한다는 허위를 받아들이는 것은 범신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7. 전지(全知)와 숙명 창조자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는 으뜸 건축가들이 지정한 한계 안에서 작용한다.

유한한 선택에서 생기는 잘못은 시간에 제한을 받는다.

제약받는 시공에서 죄가 일어나는 것은 유한자가 자유를 가졌음을 증명한다. 죄는 미숙한 자가 자주적 인격의 자유에 현혹되는 것을 묘사한다.

오직 사람이 하나님과 한편이 됨에 따라서, 우주에서 실재하게 된다.

생명의 수여(授與)는 물질 에너지 체계들이 스스로 영속하고, 스스로 번식하고, 스스로 적응할 수 있게 만든다. 인격의 수여는 살아 있는 유기체들에게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진화하고, 신의 융합 영과 일체가 되는 늘어난 특권을 나눠준다.

인격이 없는 살아 있는 존재들은, 처음에 물리 통제자로서, 다음에 보조 지성 영으로서, 에너지와 물질을 활성화시키는 지성이 있음을 가리킨다. 인격이 참으로 자유로운 선택권이 있다면, 자아를 파괴하는 선택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하급 존재에 두루, 인격자의 선택 한계가 좁아지면서 안전성이 늘어난다. 하늘 가는 인격자가 신의 지위에 도달함에 따라서, 궁극에 선택은 신의 자유에 접근한다.

8. 통제와 전반적 통제 8장은 (기계적) 통제와 (최상위)의 전반적 통제를 비교한다. 개체를 직접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될 수 있는 대로 다치지 않으면서) 인류 전체를 통제하려고 한다.

시공의 우주에서 자유 의지의 둘레에는 제한하는 조치로, 울타리가 치어져 있다.

필사 인간은 기계요, 살아 있는 기계 작용이다. [100% 기계에는 전혀 자유가 없다. 사람에게 자유의지가 주어졌지만, 행동 반경이 정해져 있으니 (수명, 건강 따위), 어느 정도 행동에 재약을 받는다.] 그러나 사람은 기계보다 훨씬 더 크다. 사람은 지성을 부여받고 그에게 영이 깃든다.

(자아의) 기계적 지배(통제)는 진보하지 않는 대가로 안정을 보장한다. [기계적 유기체는 안정성이 있지만, 자유의지가 없으니 진보가 없다.] 영과 연합하는 것은 선택을 물리적 수준에서 해방하고, 동시에 신다운 안정성을 보장한다.

인간을 따라다니는 위험은 생명의 기계적 작용에서 해방되고나서 영과 기초적 연락을 얻어 안정의 손실을 보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원시인이나 가난한 자는 해가 떠 있는 동안 부지런히 일해야 겨우 먹고 살고 나빠질 가능성이 없다. 부유해지면서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부가 치명적이 된다.]

생물학적 진화의 원칙 전체가 원시인이 자제하는 자질을 가지고 나타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따라서 사람을 진화시키려는 설계는 외부 제한, 즉 배고픔과 두려움을 마련해 주어야하며, 이것들은 원시인이 영적 수준 이하로 선택하는 범위를 제한한다. [영적인 사람을 길러내려면, 춥고 어려운 상황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먹고 살기 힘든 환경에서는 사악한 행위를 저지르기가 어렵다. 살림이 부유해지면, 과거의 제한은 쓸모가 없어진다.]

인간의 문화가 느리게 진보하는 것은 물질적 타성의 브레이크 작용이 효과 있음을 증거한다. 문화가 너무 빨리 진보할 때, 문명은 자체 속에 퇴보의 씨앗을 품는다.

칼리가스티아의 사악함은 점진적으로 인간을 해방하는, 시간 조절 장치를 피해간 데 있다.

루시퍼는 지역 체계에서 때 이르게, 시간 조절 장치를 깨뜨리려고 애썼다.

사람이 기계로 대륙과 대양을 좁힘에 따라서, 사람은 뛰어넘은 각 제한을 자진해서 부과한 제한으로 갈아치워야 한다.

우주의 자동 반응은 안정되어 있고, 어떤 형태로 우주에서 계속한다. 사람의 큰 모험은 필사 지성이 기계 같이 안정된 상태에서 영적으로 힘찬 신성으로 넘어가는 데 있다.

9. 우주의 기계 작용 시간과 공간은 총 우주에서 한데 붙어 있는 장치이다. 시공은 유한한 인간이 무한자와 함께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장치이다. 유한한 인간은 시공으로 인하여 절대 수준과 차단되어 있다. 이 차단하는 매체가 없이 아무 필사자도 존재할 수 없다.

상급 지성들이 만들어낸 기계 장치는 그 근원을 해방하도록 작용하지만, 종속된 지능 존재의 행위를 어느 정도 제한한다. 사람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지만, 그 선택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

필사 인격자의 인체는 필사를 초월하는 창조적 설계의 산물이다. 따라서 사람은 결코 스스로 인체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오로지 하늘 가는 사람이 조절자와 연락하여 인체를 완전히 통제할 것이다.

대우주는 유기체일 뿐 아니라, 기계이고 살아 있는 장치이다. 최상 존재로서 권능과 성격을 통일하는, 살아 있는 장치이다.

기계 장치들은 창조자의 생각을 단단하게 구체화한 것이다. 어떤 기계 장치라도 그 목적은 기원에 있다.

이러한 기계 장치는 신의 행위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 우주 장치들은 첫째 근원 중심의 뜻에 반응하여 존재하게 되었다.

파라다이스의 장치가 어떻게 아들의 성격과 상관되는가 우리는 얼마큼 이해한다. 무제한자의 이론적 기계 장치와 신 절대자의 잠재성에 관하여 우주 절대자가 무슨 작용을 하는가 잘 모른다.

과거 영원에 아버지와 아들은 일치하여 무한한 영을 표현하였다. 미래 영원에 지역 우주의 창조 아들과 영들이 바깥 공간에서 연합한다면, 무엇을 창조할 것인가?

최상위는 시간 세계 은하들의 아름다움을 구현한 것이다. 영원한 미래에 최상위는 체험으로, 다양한 우주를 하나의 전체로 종합할 것이다.

10. 섭리의 기능 섭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미리 모든 것을 정했음을 뜻하지 않는다. 만물 예정설은 우주의 전제(專制) 정치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ㆍ아들ㆍ영은―삼위일체로서―전능한 최상위가 아니지만, 최상위의 기능은 삼위일체의 기능과 관련을 가진다.

삼위일체를 한 분의 하나님으로 보기를 바랄 때, 진화하는 최상 존재가 삼위일체의 부분 초상임을 발견한다.

신들은 속성을 가졌지만 삼위일체는 기능을 가졌으며, 섭리도 하나의 기능이다.

하나님은 각 인간을 한 아이로서 사랑하며, 그 사랑은 만세(萬世)와 영원을 통해서 각 인간을 감싼다. 섭리는 전체에 관하여 작용하며, 기능이 전체에 관계되는 대로, 어떤 인간의 기능도 다룬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어느 때라도 그의 뜻대로, 우주 사건의 흐름 속에 아버지의 손을 접어넣을지 모른다.

사람이 섭리라고 부르는 것은 흔히 자신이 상상하는 결과요, 우연히 상황이 겹치는 것이다.

사람의 지성이 완전한 수준에 올라감에 따라서, 최상위가 우주 현상의 실제 통일자로서 솟아남에 따라서, 섭리는 점점 더 식별이 가능하게 된다.

필사자가 행운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많은 것은 정말로 불운인지 모른다. 필사자에게 잔인하게 보이는 부당한 운명은 물렁쇠처럼 미숙한 인격을 강철처럼 단련시키는 불인지 모른다.

진화하는 여러 우주에 섭리가 있고, 인간은 진화로 완성됨에 따라서 이 섭리를 발견할 수 있다.

아버지의 사랑은 개인의 마음 속에서 직접 작용한다. 신의 비성격 계심(전능 최상위와 삼위일체)은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존중한다.

자연 법칙은 겉보기에 흔히 모질고 무정하며, 참되고 아름답고 선한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은 인류가 진보함에 따라서 다음 이유로 수정된다:

(i) 사람의 확대되는 상상력. 물리적 사물의 자로 재는 한, 사람은 시공에서 조화를 발견할 희망이 없다.

(ii) 사람의 증가하는 통제력. 문명화된 사람은 언젠가 행성의 자연력을 비교적 통달할 것이다.

(iii) 사람의 우주 통합. 통찰력이 높아지고 사람이 최상위의 계심과 더욱 조화된다.

사람은 물질 문제를 지배할 뿐 아니라 우주의 경향을 따라서 살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다. 각 사람의 마음 속에서 하늘나라가 사실이 될 때, 최상 존재의 통치가 달성된다.

시간 세계에서 섭리를 깨달으려면, 사람은 완전에 도달하는 과제를 마쳐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필사자의 전진을 위하여, 만물이 함께 일한다는 사실을 곰곰이 생각하면 사람은 지금도 섭리의 의미를 미리 맛볼 수 있다.

물질인 것으로부터 영적인 것에 이르려고 위로 손을 뻗을 때, 갈수록 더 사람은 섭리를 알아보게 된다.

섭리는 불완전한 최상위의 통제력이 나타나는 것이며 다음과 같다:

(i) 부분적이다― 최상위의 현실화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ii) 예측할 수 없다― 인간의 태도는 늘 수준에 따라 달라지며, 최상위의 반응이 변한다.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섭리의 간섭이 있기를 기도할 때, 그 응답은 인생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섭리는 처음에 최상위에, 다음에 궁극위에, 그리고 아마도 절대자 안에 있는 영원의 목표들을 향하여 은하와 성격자들이 확실하게 행진하는 것이다.

   
  119편, 그리스도 미가엘의 수여
글쓴이: 저녁별의 우두머리, 가발리아

1934년

나는 네바돈 저녁별들의 우두머리요, 네바돈의 군주 미가엘이 일곱 번 자신을 수여한 이야기를 계시하는 사명을 띠고 유란시아로 배치받았으며, 내 이름은 가발리아이다.

자신을 수여하는 속성은 파라다이스 아들들에게 본래부터 있다. 영원한 아들은 이 관습을 처음 시작하였고, 시공 세계에서 온 첫 필사자 그랜드판다가 승천하던 시절에, 하보나의 일곱 회로에 자신을 일곱 번 수여하였다.

영원한 아들이 한 지역 우주에 한 창조 아들을 주실 때, 그 창조 아들은 새 우주를 완성하는 총 책임을 맡으며, 일곱 번 생물로서 자신 수여를 마치고 관할 초우주의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인가를 받기까지, 그 우주의 완전 통치권을 쥐지 않겠다고 삼위일체에게 서약해야 한다.

생물로서 육신화하는 목적은 그러한 창조자가 공정하고 이해심 있는 군주가 되게 만들려는 것이다. 이 아들들은 날 때부터 공정하지만, 이 수여 체험으로 자비로워진다.

다른 계급의 우주 지성 존재들과 다른 세계ㆍ체계ㆍ별자리도 덕을 보지만, 수여는 1차적으로 창조 아들의 훈련을 위한 것이다.

초우주의 통치자들은 창조 아들이 자신이 만든 생물이 존재하는 환경 속에서, 바로 이 지음 받은 자로서 실제로 체험을 얻고 그들의 관점을 얻기까지, 결코 창조 아들을 군주로 인가하지 않는다.

네바돈 지역 우주는 자신 수여를 마친 창조 아들이 지금 다스린다. 네바돈의 미가엘은 영원한 아들이 611,121번 째 보낸 분이며, 그는 4천억 년쯤 전에 너희 지역 우주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1. 첫째 수여

(멜기세덱)

거의 10억 년 전, 미가엘이 임무를 띠고 자리를 비울 동안, 형 이마누엘이 네바돈에서 권한을 쥘 것이라고 미가엘이 네바돈 우주의 지휘자와 우두머리들에게 발표하였다. 별자리 아버지들에게 주는 작별 방송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파라다이스 아버지가 명하신 것을 행하려고 가는 동안, 나는 너희를 이마누엘의 관리 하에 두노라.”

이 작별 방송이 있은 뒤에, 미가엘은 구원자별의 파송하는 들판에 나타나서 말했다: “나는 파라다이스 신들의 뜻을 행하려고 가고, 내 사명을 마치고 나서 내 자리로 돌아오겠노라.”

구원자별의 모든 거주자가 소식을 들으려고 우주 정보 수신소 둘레에 모였다. 멜기세덱 구체로부터 구원자별에 한 통신문이 기록되었다: “오늘 정오에 접대하는 들판에 한 이상한 멜기세덱 아들이 나타났다. 유버르사로부터 전천사(全天使)가 혼자 뒤따라 왔는데, 그 전천사는 우리의 우두머리에게 주는 명령서를 제출했다. 이것은 새 멜기세덱 아들을 네바돈 멜기세덱들의 비상 근무에 배치하라고 지시하였다.”

이 외에 미가엘의 첫 자신 수여에 관하여 구원자별에 기록이 거의 없다. 유란시아 시간으로 1백 년이 지나자 미가엘이 돌아와서 우주 사무를 다시 맡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멜기세덱 세계에는 24가지 비상시 임무에 이 멜기세덱 아들이 봉사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이방문자는 한 멜기세덱으로서 살았고, 우리 계급의 비상시 아들로서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와 함께 수고하였다.”

우리는 10억 년 전에 신비하게 수고한 이 이상한 멜기세덱이 첫 수여 사명으로 육신화한 미가엘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모두 미가엘이 여러번 수여한 것이 사실인 것을 알지만, 그 수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2. 둘째 수여

(라로난덱)

미가엘이 멜기세덱으로 자신을 수여한 일이 있은 뒤 거의 1억5천만 년 동안, 네바돈에서 만사가 순조로웠는데, 이때 37번 별자리의 11번 체계에서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체계 군주인 어느 라노난덱 아들은 별자리 아버지들의 판결을 받았는데 그는 그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동료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 체계 군주 루텐시아는 네바돈 표준 시간으로 20년이 넘도록 군림하였다. 최고자들은 유버르사의 승인을 얻고서 그를 격리할 것을 명령하였고, 새 체계 군주를 임명해달라고 구원자별에 요청하였다.

이 요청을 받고 나서 미가엘이 자리를 비운다는 둘째 선포가 있었고, 미가엘은 이마누엘의 손에 전권을 부여하였다.

미가엘이 휴가를 떠난 뒤 사흘째에, 라노난덱 아들의 예비군 사이에 새 아들이 3품 천사 한 명의 수행을 받고 나타났다.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신임장은 그를 루텐시아의 후계자로서 새 군주가 임명될 때까지, 37번 별자리의 11번 체계에 배치하라고 지시하였다.

네바돈 시간으로 17년이 넘도록 이 임시 통치자는 체계의 사무를 관리하였다. 모반한 선임자에게 그가 경솔했던 것을 이마누엘에게 사과하기만 하면, 체계 권한의 보좌를 나누는 특권을 제안하였다. 루텐시아는 이 제안을 걷어찼지만, 그의 추종자 수백만 명은 새 통치자의 용서를 받아들였다.

새 체계 군주가 도착하여 루텐시아의 후계자로 임명받았다. 온 팔로니아가 임시 통치자가 떠나는 것을 슬퍼했다.

이 임시 통치자는 그 행성을 떠났고, 그 뒤 사흘째에 미가엘은 구원자별에 나타나서 다시 네바돈의 사무를 돌보았다.

3. 셋째 수여

(물질 아들)

구원자별의 최고 회의는 61번 별자리, 87번 체계, 217번 행성에서 물질 아들을 파송해 달라는 생명 운반자들의 요청의 심의를 막 마쳤다. 이 행성은 타락한 군주가 다스리는 어느 체계에 속했는데, 이것은 온 네바돈에서 그러한 두 번째 반란이었다.

미가엘이 나서서 이마누엘의 손에 우주의 지휘를 맡겼고, 구원자별의 파송하는 들판에서 사라졌다.

그 뒤 사흘째, 61번 별자리, 87번 체계의 본부 세계에, 한 2품 천사의 수행을 받고서 한 낯선 물질 아들이 나타났다. 체계 군주 대리는 즉시 이 물질 아들을 217번 세계의 행성 영주 대행으로 임명했다.

이 비상시 물질 아들은 직무를 게을리한 행성 영주가 뉘우치고 회복하도록 만들었다. 시간이 되자 한 물질 아들과 딸이 이 세계에 도착하여 행성 통치자로서 취임하였다. 비상시 행성 영주는 어느 날 떠났고, 구원자별에서 자기 자리에 나타났다.

이 물질 아들이 부닥친 시련에 대하여 이야기할 허가를 받지 못하여 나는 서운하다.

멜기세덱 아들, 그리고 나서 라노난덱 아들, 다음에 물질 아들로서 미가엘이 자신을 수여한 것은 똑같이 신비스럽고 설명할 수 없다.

반란이 있었던 세계의 영주로서 이렇게 놀라운 수여가 있은 뒤로, 네바돈의 어떤 물질 아들이나 딸도 행성 임무가 어렵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어떤 물질 아들이나 딸도 알면서 미가엘에 맞서 반란에 참여하지 않았다.

4. 넷째 수여

(세라핌)

유버르사에서 1천 년마다 있는 정기 점호가 끝나자, 미가엘은 이마누엘과 가브리엘에게 네바돈 정부를 맡겼다. 그는 구원자별의 파송하는 들판으로 가서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사흘이 지난 뒤에, 네바돈 천사 본부로부터 우리는 이 뉴스를 보았다: “알려지지 않은 어느 세라핌이 도착했는데, 그에게 상천사 하나와 가브리엘이 따라왔다. 이 세라핌은 최상 계급의 천사인 것이 밝혀졌고, 교육 상담자 군단에 배치되었다.”

표준 우주 달력으로 40년이 넘도록 미가엘은 구원자별에서 자리를 비웠다. 그는 교육에 관하여 상담하는 천사로 부속되었고, 다른 주요 선생들에게 개인 비서와 같은 직책이었다. 마지막 임무는 네바돈 우주에서 3번 별자리, 84번 체계, 462번 세계에서, 어느 삼위일체 교육 아들의 수여 임무에 부속된 조수였다.

7년 동안 이 임무를 통하여, 이 삼위일체 교육 아들은 천사 동료의 신분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들의 창조자가 “모든 면에서 천사 성격을 입고서 단련을 받았다”는 것이 참말이었다.

낮은 수준으로 수여가 일어남에 따라서, 가브리엘은 미가엘과 이마누엘 사이에 연락원으로 활동하였다.

필사자로서 육신화하기 전에 그는 최상 세라핌으로서 성격화된다.

5. 다섯째 수여

(영 필사자)

유란시아 시간으로 3억 년보다 조금 더 전에 미가엘은 우주 권한을 이마누엘에게 또 이양하였다. 그가 구원자별을 떠난 뒤 얼마 안 되어, 유버르사 방송에서 이 발표가 나타났다: “네바돈 우주로부터 하늘 가는 순례자가 오늘 도착했는데, 가브리엘을 동반하였다.

너희가 오늘 유버르사를 찾아본다면, 에벤톳이 머무른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그는 영 필사자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가브리엘의 계심 때문에, 우리는 이 순례자가 남이 아니라 통치자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영 필사자는 하보나로 진급하는 계제까지 생애를 계속하였다.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가브리엘의 수행을 받고서 유버르사를 떠났고, 구원자별에서 나타났다.

이 무렵에 멜기세덱 학부들은 미가엘이 언젠가 육체를 입은 필사자로서 육신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비로소 가르쳤다.

가브리엘도 이 우주 창조자가 자신의 하위 생물 중 하나의 성격을 받고 어떤 방법으로 사는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6. 여섯째 수여

(상물질 필사자)

미가엘은 본부 행성에 거하는 자들을 불러모으고, 제5 별자리의 본부 행성에서 최고 아버지들의 법정에서 상물질 필사자로 살 목적으로 구원자별을 떠나리라고 발표했다. 일곱째 수여는 어떤 진화 세계에서 필사자로 육신화할 것이라는 발표를 우리는 처음 들었다.

세라핌 하나와 밝은 아침별을 수행하고 미가엘은 떠났다. 우주의 지휘는 이마누엘에게 맡겨졌지만, 행정 책임이 널리 분산되었다.

미가엘은 5번 별자리 본부에 상물질 필사자로 나타났다. 이 필사자 생애의 세부를 드러내지 말라고 금지되어 나는 서운하다.

미가엘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군주가 가장 낮은 형태로 지음받은 존재의 친구라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명백했다.

언제 미가엘이 상물질 수여에서 해방되는가 미리 통지를 받았고, 우리는 구원자별에서 접대를 준비했다. 군주를 환영하는 여러 연설에 답하여 그는 말했다: “나는 단지 내 아버지의 일을 보살피고 있었노라.”

상물질 필사자로 육신화하여 엔단툼에서 활동하는 동안에 미가엘이 세운 공헌에 대하여 온 네바돈이 논의하였다.

7. 일곱째이자 마지막 수여

(필사자)

가브리엘은 최종 수여가 필사 육체를 입을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쳤지만 그 시간ㆍ장소ㆍ방법에 관하여 전혀 몰랐다.

아담과 이브의 실수에 대하여 소식을 들은 뒤에 곧 미가엘이 유란시아를 택했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다. 3만5천 년이 넘도록 우주 회의에서 너희 세계는 주목을 받았다.

우리는 결코 미가엘이 땅에서 힘없는 아기로서 나타날 줄은 몰랐다. 그때까지 그는 언제나 성장한 개인으로서 나타났다.

 

우리의 창조자가 그의 권한에 대한 위험을 무릅쓰고 아슬아슬한 걸음을 내딛는 것을 깨달았다. 30여년 동안 지역 우주에서 눈이 모두 유란시아에 집중되었다.

유대인 아기 요수아 벤 요셉은 미가엘의 육신화라는 것을 제쳐놓고, 모든 다른 아기와 같이 잉태되고 세상에 태어났다. 신이 예수로 육신화되는 신비는 아들별의 신비이다.

땅에서 지혜로운 어떤 사람들은 미가엘의 강림이 가까운 것을 알았다. 중도인(中道人)을 통해서 세라핌은 갈대아 사제들에게 발표했는데, 그 세라핌은 첫째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에게 부속되었던 세라핌이었다.

예수의 인간 부모는 그 시대에 보통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아들은 여자에게서 태어나고 당시의 아이들처럼 평범한 방법으로 자랐다.

미가엘이 유란시아에서 머무른 이야기는 이 글의 범위를 넘는다.

8. 수여 이후의 미가엘의 지위 마지막 수여에 성공한 뒤에, 미가엘은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인가를 받았고, 또한 우주의 아버지의 인정을 받았다. 유버르사로부터 여덟째 선포가 내려왔고, 한편 파라다이스에서 우주의 아버지와 영원한 아들의 합동 선언이 왔는데, 이것은 미가엘이 이 우주의 유일한 우두머리이며, 구원자별에 주둔하는 늘 하나된 이에게 파라다이스로 물러갈 의사를 표시하라고 지시하였다. 별자리 본부에 있는 늘 충실한 이들도 또한 최고자 회의에서 물러나라고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미가엘은 삼위일체 아들들에게 네바돈에 남아 있으라고 부탁했고, 이를 따르겠다는 소망을 파라다이스에 있는 지도자들에게 알렸다. 얼마 안 되어 파라다이스의 분리 명령이 내렸는데, 이것은 이 아들들을 네바돈의 법정에 영원히 부속시켰다.

미가엘이 최고 권한을 안정시키는 데 유란시아 시간으로 거의 10억 년이 걸렸다.

미가엘은 또한 최상위의 통치권을 확대하고 있었다.

신들의 다양한 의지는 일곱 으뜸 영으로 성격이 되었고, 미가엘의 각 수여는 이 중에 한 모습을 특별히 드러냈다.

멜기세덱 수여에서는 아버지ㆍ아들ㆍ영의 하나된 뜻,

라노난덱 수여에서는 아버지ㆍ아들의 뜻,

아담으로 수여할 때는 아버지ㆍ영의 뜻,

천사로 수여할 때는 아들ㆍ영의 뜻,

유버르사에서 영 필사자로 수여할 때는 영의 뜻,

상물질계 필사자로 수여한 것은 영원한 아들의 뜻,

유란시아에서 육체로 자신을 수여할 때, 우주의 아버지의 뜻을 실천했다.

 

모두 일곱 수여의 통합은 최상 존재를 네바돈에서 계시한 것이다.

미가엘은 시공에서 창조자이지만, 칠중의 주아들 미가엘은 궁극 삼자일체의 구성원이다.

우리는 미가엘이 바깥 공간에서 생길 우주들을 위하여, 거기서 첫째 체험적 삼자일체 안에서 최상 존재와 함께 일할 것을 믿는다.

유란시아는 온 네바돈에서 감상을 일으키는 성지(聖地)요, 1천만 세계에서 으뜸이다. 사람의 아들이자 유란시아의 영주가 필사자로 있던 집이다.

[이 글은 이 시리즈에서 63번째 글이며, 이 여러 논문은 만투시아 멜기세덱의 지휘 하에 활동하는 12자 위원회의 허가를 받았다. 우리는 서기 1935년에 상관들이 허가한 기법에 따라, 이 이야기를 쓰고 영어로 기록하였다.]

   
Tagged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