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003 번역에 대하여

  1. 번역에 대하여
 

D003, 왜 유란시아서를 읽어야 하는가

번역에 대한 교회의 태도

 

Vita brevis, ars longa

이것은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의 의사였던 Hyppocrates의 명언이고 (died 375 BC) 그는 또한 의사의 윤리와 비밀을 지키게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유명하다.

흔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한글로 잘못 번역되어 있다.

서양 예술은 1천년도 더 지나서, 서기 1350년 경, Firenze에서 르네상스 시대에 시작되었으니, ars 를 "예술"로 번역하는 것은 당치도 않다.

이 라틴어 구절은 "인생은 짧고 기술 터득은 오래 걸린다,"

하나의 일생을 바쳐도 의술을 터득하기에는 모자란다는 뜻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란시아서 번역에 관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인생은 짧고 유란시아서 번역은 오래 걸린다."

유란시아서의 네델란드어 번역판은 어느 아버지와 딸, 2 세대가 번역을 마쳤다고ㄴ 한다.

이번 2차 한국어 개정판은 25년 만에 새로 인쇄되었다.

"Once a translator, always a translator."

번역은 끝난 작품이 아니라, 미완성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아무리 잘 해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

 

머리말에는 계시자들이 원문을 영어로 번역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저택 세계에서 체계 언어, 구원자별 언어, 초우주 언어

하보나에서 쓰이는 언어는 화음(harmony)이라고 한다.

파라다이스에서 1시간의 강의 내용은 우리 말로 1만년에 달하는 분량의 정보이다.

 

태어난 뒤에 처음 20년은 현대 생활의 기본을 터득하고 일생동안 먹고 사는 직업을 얻기 위하여 기술을 얻는 데 쓰인다.

다음 20년은 자식을 낳고 기르는 체험을 얻느라고 바쁘며,

그 다음 20년은 길거나 짧게 직장에서 활동하다가 은퇴하며, 환갑이 되면 자기 인생을 되돌아 보거나 다른 사람들이 쓴 책을 읽어볼 겨를이 생긴다.

 

유대인의 성경 (구약)

Torah (The Five Books of Moses)

Nevi’im (Prophets)

Ketubim (Writings): 시편, 잠언 등

Septuagint (70인이라는 뜻)은 예수님 시절에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이었다.

회당 학교에서 예수님이 읽은 성경은 히브리어로 된 모세 5경 (기초 반)과 선지자와 기타였다 (중급반).

다 같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각 종파가 믿는 하나님의 모습은 천지 차이가 있고 얼룩덜룩한 모습을 서로 다른 종파에서 믿고 있음을 알 수 있다.

Adolf Hitler도 무신론을 배격했지만, 전통적인 기독교를 믿지도 않았다.

하나님이 독일 사람/아리안 족을 지지한다고 Gott mit uns (God with us), "우리를 지지하는 하나님"을 믿었다.

 

 

2. 어떻게 엘로힘을 번역하는가?

 

엘로힘

한 성서의 구절을 어떻게 여러가지로 번역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러 종족 사이에는 체험에 따라서 종교적 사상이 서로 다를 수 있다.

성서에서 동사 번역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looked, saw 는 보았다, 바라보았다로 번역하고 동사 선택지가 별로 많지 않다.

그러나 명사, 구체적 형태가 없는 명사, 특히 추상 명사 (abstract nouns)를 번역할 때, 두 언어 사이에 matching 이 되는 추상 명사를 찾기가 어렵다.

구체적 형태가 없으면서 가장 추상적인 것은 신 걔념이다.

두 민족의 체험이 서로 다르면 신 개념 또한 서로 다를 것이다.

누구의 신 개념이 옳은가?

어떤 형태의 신 개념이 옳은지 판단할 기준이 없다.

어린아이들까지 죽이라고 명하는 신 개념이 옳은가 (구약),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라는 (주 기도문) 개념이 옳은가?

아니면 전통적으로 내려온 신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히브리인의 구약에는 2가지 신 개념이 언급되는데, 하나는 Elohim 이요 또 하나는 Yahweh이다. 처음부터 이 두 존재는 서로 다른 신 개념을 대표하였다.

Elohim (-im = 복수),

엘로힘이 내포하는 의미는 power, 孤高한 신 개념, 삼위에 가까운 개념

창세기 1장의 신 개념을 대표한다.

 

예를 들면,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엘로힘(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백성들이 엘로힘의 이름이 무엇인가 물으면 어찌 대답할까요 모세가 물었다. (Exodus 3:14)

이에 대하여 엘로힘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I am what I am (or I am who I am, 나는 스스로 계신 이)

야웨

1장과 달리, 창세기 2장에는 야웨 개념이 적혀 있다.

Yahweh, 창세기 2장 21절,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아담을 먼저 만들고 다음에 여자를 만들었다.

또한 창세기 6장에는

야웨가 열 번이나 후회했다는 기록이 있다.

후회한다는 말씀은 야웨가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는 것, 그다지 명석하지 않은 듯한, 사람다운 모습을 한 야웨 개념을 (anthropo-morphic concept) 의미한다.

야웨의 이러한 성질은 야웨 종파가 엘로힘보다 열등한 하나님 개념을 상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아씨리아에게 멸망당했고 (722 BC),

남쪽 유다 왕은 에집트 편들어서 바빌론 제국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멸망당하였다 (586 BC).

거의 50년이 지나서, 페르샤 임금이 유대인을 해방하게 된다.

Cyrus freed the Jews (538 BC).

바빌론에서 태어난 에즈라와 (둘째) 이사야가 80년 만에, 458 BC에 1754명의 장정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총 5천 명 정도, 여자와 아이들)

에즈라는 돌아와서 모세 5경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편집하는 과정에 취사선택을 하지 않고 (좋은 부분은 남기고 어울리지 않는 부분을 버리지 않고) 모두를 짜깁기하여 하나로 만들였다.

무슨 증거가 있는가?

엘로힘파 이야기에는

식물이 먼저 창조되고, → 다음에 동물, → 마지막으로 남자와 여자가 창조된다.

야웨파의 창조 이야기에는

남자 먼저 → 다음에 식물, 동물, 그리고 마지막에 여자를 창조한다,

 

영어 성경

엘로힘이나 야웨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선택은 2가지이다.

(transliteration vs translation), 뜻을 번역할 것인가, 음역할 것인가?

John Wycliffe bible: 엘로힘이라고 소리를 따라 transliterate (음역)하지 않았고,

라틴어 번역 (Latin Vulgate, 서기 382년)을 따라서, 라틴어로 Deus나 Dii 라고 표현하지도 않았다.

직접 히브리 단어 엘로힘을 → God 또는 gods으로 번역하였다.

야웨 → Lord 로 번역

한국어

처음 영어판 신약을 한글로 번역한 사람은 스콧랜드 목사 John Ross 였다.

하나님의 중국어 명칭은 上帝 또는 天主였다.

한국 카톨릭 (천주교)에서는 천주라는 명칭을 처음에 쓰다가 1977년부터 ‘하느님’으로 통일하였다.

John Ross는 중국어 명칭을 거부하고 순수한 한글로 God을 하나님이라고 번역했다.

 

한국에는 다행히도 기독교가 전파되기 이전에 (하늘을 주관하는) 하늘 님 개념이 있었고 현재 개신교에서는 하나님, 천주교에서는 하느님으로 명칭이 갈라졌다.

여호와: tetragrammaton, 4문자, YHWH를 그대로 읽지 않고 adonai (my lord)에서 3개의모음, a, o, i 를 이 4문자와 섞어서 여호와라고 읽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이보다 "야웨" 발음을 학자들이 더 지지한다고.

 

두 민족이 똑같은 하나님 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한쪽이 다른 쪽으로부터 빌려왔을 가능성이 높다.

구체적 형태를 가진 명사가 아니면, 두 언어 또는 민족이 같은 추상적 개념을 담기가 힘들다.

한국어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하늘 님 개념이 있으므로 천주교에서는 하느님이라고 절충한 듯하다.

한글판 유란시아서에서 God을 天主나 上帝로 바꾼다면, 그 내용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유란시아서 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땅에서 겨우 비와 바람을 다스리는 하늘 임금이라는 초라한 신으로 보인다. 공을 들여서 용어를 선택해야 한다.

일본

예를 또 하나 들면, 일본어로 Kami

(神)는 Shinto 에서 산 바다 바람 등에 신이 들어 있다고 믿는 자연 신 개념이다.

히브리 종교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유일신보다 훨씬 작은 개념을 의미한다.

가미가제 (神風, かみかぜ)

일본어의 가미는 바람을 불러 일으켜서 일본 열도를 침공하는 몽고족의 함대를 바다에 던지는 정도의 실력을 갖춘 작은 신이었다.

(온 우주를 다스리는 신이 아니었다.)

so what? (어찌할 것인가?)

이론적으로 볼 때, 번역문이 담고 있는 내용은 원문보다 커도 안되고 작아도 안 되겠지만, 실제의 경우에는 (god 의 경우에 보다시피) 더 크거나 작을 수 있다는 것을 숙지해야 한다.

빗나가지 않으면 다행이다. (예: absonite)

  3. 일생 동안에 몇권의 책을 읽는가?
 

한국의 통계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인의 절반이 (48.5%) 책을 읽으며, 평균 독서량은 1년에 4권이라고 한다. (미국인은 12권) 책을 읽는 기간을 50년이라고 가정하면

한국인의 평생 독서량은 4권 × 50년 = 200권밖에 안 된다.

유란시아서는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가? 다른 책 1천 권을 읽느라고 일생을 보내는 것보다 유란시아서를 10번 읽으면 시간을 적게 쓰면서 독서 시간의 가성비가 최고로 높아진다. best bang for the buck, (성과÷비용이) 높아진다.

그 가르침을 실천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성과/비용 = ∞ (유란시아서의 경우)

 

사람의 연간 독서 시간은 얼마나 될까?

미국이 357시간 (하루 1시간)

중국, 154 시간 (하루 26분)

일본, 135 시간

한국, 125 시간 (하루 20분). 무슨 책을 읽는가가 중요하다.

시간이 많이 없으니, 성과비가 좋은 책을 읽어야 할 듯.

유란시아서를 읽어야 한다.

한국인의 독서율 = 38%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4명만 읽으니 가성비가 좋은 유란시아서를 읽어야 한다.

시간이 없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도움되는 책, 실용성이 있는 책.

 

  Best Sellers
 

단연 성경(Bible)이 1위이다. (2025년 현재, 5 billion copies sold)

우리가 보는 성경은 대부분 한글 번역판이다.

 

  4. 번역에 대한 교회의 태도
 

초기에는 성경에 오류가 있는가 없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도들이 처음에는 유대교의 의식을 중시하고 유대교의 한 종파로 남아 있으려고 했다.

마지막 만찬을 하던 곳에서 모임을 가지고 주의 동생, James the Just (야고보)를 예루살렘 회당의 우두머리로 세웠다. 이 회당은 공동체로 작용했고 재산을 공유하였고. 서기 45년에 대기근이 들자 바울은 Jerusalem Donation 을 걷어 예루살렘 신자들을 위하여 헌금을 거두었다. 그러나 공동체를 위한 헌금은 차츰 줄어들었다.

스테반이 돌에 맞아 죽은 다음에는 (서기 36년?) 유대교의 종파가 아니라 새로운 모임을 시작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서기 70년에 로마의 장군 타이투스가 유대인의 폭동을 진압한 뒤에 예루 살렘 교회는 멸망했고 신자들을 펠라로 도망갔다.

초대 교회는 몇 개 그리스 도시에서 성장했다
(Corinth, Ephesus, Thessalonica, Rome)

Pope Leo I (reigned 440-461 AD) asserted Roman supremacy. (로마 교회의 수위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Josephus에 따르면, 안티오크에서 신자들이 첫 교회를 만들었고, 급히 성장하는 이들에게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각 교회마다 소지하고 있던 4복음의 일부와 바울의 편지들을 일요일에 읽었다.

Marcion 의 신약 (누가 복음 + 바울의 편지들, (서기 130 – 140년)

Tertullian, Irenaeus가 마르키온을 비판했고, 서기 144년에 마르키온은 파문을 당했다.

서기 325년에 니케아 종교 회의가 있을 때까지, 4복음과 바울의 서신들을 신약 경전으로 만들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Bishop Athanasius of Alexandria 그리스로 된 복음서와 바울의 편지들을 (27 books) 수집하여 기독교의 경전으로 만들었다. (서기 367년) 이 되자, 번역에 대한 사제들의 태도는 좋지 않았다.

교황 Damassus 1세가 Saint Jerome에게 라틴어로 번역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서기 382녀)

카톨릭의 사제들은 철밥통을 지키려고 번역자들을 박해하고 사형에 처했다.

위크리프가 중세 영어로 번역한 신약 (화형).

John Wycliffe’s (middle) English translation was condemned. His body was exhumed and burned in 1428. 파묘를 당하고 그의 유골은 화형에 처해졌다.

틴데일 영어 신약 (사형)

William Tyndale not only translated but also used the printing press to print the first new Testament. He was executed in the 1520s.

Jan Hus and his followers rejected papal authority (교황의 통치권을 거부했다, "교황의 권한이 아니라, 성경의 권력을 믿어야 한다.")

Hussites favored the English translation (bible as the source of authority)

 

유란시아서에 저자라고 직함이 적혀 있는 존재들 = 22명, 실제는 이보다 더 많으나 신분을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40명 이상인 듯.

저자들이 사용하는 원어는

체계어, 구원자별 언어, 등등.

  5. 유란시아서는 무슨 책인가?
 

우주에서 제일 중요한 실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없다면, 각자 자신의 일생을 살다가 끝이 난다. 그러니

일생에서 제일 중요한 일은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확실히 해두는 것이다.

과학 지식은 세상을 항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과학 지식을 쌓았거나 필기 시험에 만점을 얻었으니 영생을 달라고 하나님을 설득할 수는 없다. 교양 서적을 1천 권을 읽는다고 해서 영생을 보장할 수 없다.

유란시아서를 읽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유란시아서는 영생을 얻는 첫 걸음의 설명서

유란시아서는 제5 계시요, 부족한 인간이 어떻게 영생을 얻는가 계시자들이 요약한 설명서이다. 토마스와 나다니엘이 파악한 바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는 똑같이 완전하고 서로 의사를 소통할 분, 즉 아들이 필요하고,

파라다이스가 있는 가운데, 두 분과 합동하여 일할 존재, 즉 무한한 영과 하보나 세계들이 영원부터 존재한다. 이것이 삼위일체의 필연성이다.

삼위가 계시기 시작한 그 순간은 없다. 항상 스스로 계셨던 이요, 항상 스스로 계시는 이요, 항상 스스로 계실 이이니까.

시공 세계와 거기에 거할 진화 인간을 만들자는 아버지의 제안에 아들이 찬성하고 영이 협조를 약속한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을 파라다이스에 때이르게 입장시킬 수는 없는 것. (그리했다면, 불완전한 존재들이 하보나에서 영원한 싸움을 일으켰을 듯.)

따라서 광대한 천사 계급을 동원하여 인간을 완전하게 만들고 삼위 품에 안길 수 있게 만드는 사업에 무한한 영이 협조를 약속함으로 시공 세계가 시작된다.

1부는 인간을 완전하게 만들어 영생을 얻게 하려는 아버지의 의도를 설명한다.

2부는 지역 우주에서 활동하는 인물과 천사들에 관한 글이다.

3부는 지구를 보살피는 하늘 존재들과 인류의 선사 시대의 역사를 설명한다.

4부는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 중도자들이 예수가 어떤 일생을 살았고 무엇을 가르쳤는가를 기술한 글이다. 신약보다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4부는 4복음을 보충하는 글이다.

  구약과 신약과 유란시아서 중에서 무엇을 읽어야 하나 (다음 주)
 

여유가 있으면 모두 세 권을 읽으면 좋다. 유란시아서의 장점을 볼 수 있으니까.

유럽과 중동 역사가 의미가 있지만, 외국 역사의 자세한 내용까지 교양을 위하여 공부할 시간이 없다.

신약의 60%는 바울의 개인적 의견이다.

시간이 없으면 유란시아서를 읽을 것

   

 

  5. 영생의 수학
 

일생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숫자로 측정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무신론자는 1백년의 일생을 살기만 하고 (t = 1) 끝이 난다고 믿는다. 살아 있는 동안 그의 행복 지수를 1이라고 가정해 보자. (u = happiness)

u(1) = 1.

사람이 죽은 뒤에는 아무것도 못 느끼니까, 둘째 백년 동안 죽어 있는 사람의 행복 지수를 0이라고 하자. 마찬가지로, 셋째 백년, 넷째 백년, … 동안의 행복 지수는 여전히,

u(2) = u(3) = … = 0 이다.

한 번 죽고나면 영원히 죽은 상태로 있으니까, 무신론자의 총 행복 지수는

u(1) + u(2) + u(3) +… = 1 + 0 + 0 + … = 1.

아무리 오랫 동안 죽은 상태로 있다 해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으니까, 무신론자의 총 행복 지수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

u(2) = u(3) = … = 0을 무한번이나 (∞ -1) 곱해도 여전히 0이 된다. 첫째 생애에서 얻은 복지를 1이라 한다면, 일생을 한 번 살다가 영원히 사라진 사람의 총 복지는

u(1 +0 × ∞) = 1

이 된다.

 

예루셈에서 훈련하는 중에 (칼리가스티아 1백인의 경우처럼) 진화 세계에서 다시 일생을 보내는 사람의 복지는

u(1 +1) = 2.

그가 둘 째 인생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이것으로 끝낼 수도 있다. 조절자와 융합한 최후자는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어 있으니까 그의 총 복지는

u(1 + 1 + 1 …) = 1 + 1 +1 … = ∞.

 

유란시아는 간단히 말하면, 사람이 어떻게 신이 되는가, 즉 어떻게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되는가를 보여 주는 하나님의 설명서이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혼자서 즐기는 분이 아니다.

 

보수적인 사람의 행복 지수

인간은 불완전하게 태어났고, 태어난 사람들 중의 대부분은 불완전하게 살다가 죽었다.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가 설명하려고 돌아온 사람도 없다. 따라서 보수적인 사람들은, 필사자가 죽은 뒤에 다시 살아남아서 완전하게 되는 확률은 0이라고 본다. 이것이 보수적인 사람의 관점이다. (기독교에서는 죄를 지었더라도 용서를 받으며, 죄인을 완전한 사람으로 인정해 준다.)

그러나 인생을 하나님의 견지에서 보면, 하나님은 사람보다 훨씬 더 낙관적이다. 죄를 저질렀어도, 죄 없는 사람으로 계산해 준다는 것이 기독교의 속죄 이론이다. 유란시아서에 담긴 하나님 개념은 불완전하게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딸을 어떻게 완전한 인간으로 만드는가를 사람들에게 계시하는 하나님이요, 그 과정은 유란시아서에 적혀 있다.

유란시아서를 읽는 사람의 행복 지수

지구에서 일생을 보내며 얻는 행복의 양은 u(1) = 1에 불과하다. 지구 다음에

(예루셈 주위의) 8 세계

(별자리에서) 71 세계

(구원자별 세계, 즉 멜기세덱 대학) 491 세계

합계: 570 세계

이 570개 세계에서 보내면서 지구보다 더 행복할 터이지만, 지구에서 보내는 일생에서 얻는 행복 수준과 똑같다고 보수적으로 계산하면 하보나를 향하여 출발하기 전까지 도달하는 행복 지수는 최소한 u(1, 2, …, 570) = 570이 된다.

저택 세계에서 얻는 행복의 수치도 u(2) = 1. 저택 세계들을 포함하여, 570개 세계에서 모습을 바꾸어 사는 생애에서 얻는 행복의 수치는

u(2) + u(3) + … = 571.

(하보나) 10억 세계를 거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각 사람마다 다르다. 각 세계를 통과하는 데 일생을 보내야 한다, 즉 1백 년이 걸린다고 하고 각 세계에서 도달하는 행복 지수가 1이라고 가정하면, 하보나를 통과하는 승천 필사자의 총 행복 지수는 u(1,000,000,000) = 1,000,000,000 이다.

그러나 영원히 사는 존재, 최후자가 되어 바깥 우주에서 일하는 자의 행복 지수는 이보다 엄청나게 더 크다. 즉 u(∞)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