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 편, 아담과 이브

지은이: "동산의 목소리" 천사, 솔로니아

1934년

아담과 이브는 서기 1934년(이 글을 쓸 때)부터 따져서 37,848년 전에 유란시아에 도착했다. 봄이 무르익어 동산에 꽃이 한창 피었을 때였다.

정오에 발표도 없이, 두 천사 수송기가 개량자 수송을 담당한 예루셈 직원들을 동반하고, 성전 근처에서, 회전하는 행성 표면에 천천히 내렸다.

아담과 이브의 몸을 다시 물질화하는 작업은 이 성소 구역에서 행해졌다.

도착하고 나서 인간 형태로 다시 지어지기까지 열흘이 걸렸고, 그들은 동시에 의식을 찾았다.

물질 아들딸은 반드시 함께 봉사하며, 쌍을 이루어 일하라고 고안되었다.

1. 예루셈 시절의 아담과 이브

아담과 이브는 예루셈에서 선임 물질 아들 집단에 속했고, 함께 14,311번이었다. 셋째 육체 시리즈에 속했고, 키는 240센티미터가 조금 넘었다.

선택되었을 때, 아담은 이브와 함께, 예루셈의 물리 실험실에 고용되어 있었고, 1만5천 년이 넘도록 생명 수정에 적용되는 실험 부문에서 지도자였다.

유란시아에서 아담의 모험에 자원자를 모집한다는 발표가 있었을 때, 선임 집단의 모두가 자원하였다. 멜기세덱 검사자들은 아담과 이브를 선택하였고, 이들은 라나포지와 최고자들의 승인을 얻었다.

아담과 이브는 루시퍼 반란이 일어날 당시에 미가엘에게 충성했다. 그래도 유란시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하여 발표를 자세히 들었고, 그런 세계에서 어떻게 일할 것인가 샅샅이 가르침을 받았다.

이 쌍은 예루셈 및 다른 곳에 자손 1백 명을 남겨 두었다. 부모가 유란시아로 떠날 때, 이들은 관리자로서 모두 임명되었다. 이 아이들은 비물질화 본부까지 부모를 따라가서, 천사 수송을 위한 준비로, 인격이 의식을 잃고 잠들었을 때, 부모에게 작별을 알렸다.

이렇게 아담과 이브는 유란시아에서 닥칠 위험에 대하여 준비를 갖추고 충분히 가르침을 받고서 새 직책이 기다리는 곳으로 떠나갔다.

2. 아담과 이브의 도착

아담과 이브는 예루셈에서 잠에 들어갔다. 유란시아에서 환영하는 군중이 모인 앞에서, 아버지의 성전에서 깨어났을 때, 그들은 반과 아마돈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에덴의 언어는 안돈 족속의 방언이었다. 반과 아마돈은 24 글자로 된 새 알파벳을 만들어 이 언어를 개량했고, 에덴의 문화가 세상에 퍼짐에 따라서 이 말이 유란시아의 언어가 되는 것을 보고 싶었다. 아담과 이브는 예루셈을 떠나기 전에 이 방언을 통달했기 때문에, 아마돈은 새 통치자가 자기 방언으로 말을 거는 것을 들었다.

"새들을 놓아 주어라. 약속된 아들이 오셨다는 말씀을 새들이 전하게 할지어다" 하고 주자(走者)들이 비둘기의 회합 장소까지 달려갔다.

아담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바깥에 퍼지자, 근처의 부족 사람 수천 명이 반과 아마돈의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아버지께 경배를 드리려고 에덴으로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아담과 이브는 성전 북쪽의 언덕에서 열린 환영회까지 호위를 받았다. 아마돈은 접대 위원회의 의장이었고, 이 위원회는 아마돈을 포함하여, 12명으로 구성되었다:

여섯 산긱 종족으로부터 대표 한 사람씩.

중도자의 임시 우두머리,

놋 족속의 대변인 아난,

동산의 설계자 노아,

거주하는 생명 운반자 2명.

 

다음에 선임 멜기세덱이 행성 관리 직책을 아담과 이브에게 넘겨주었다.

물질 아들딸은 최고자들에게, 그리고 미가엘에게 충성을 서약했고, 반은 이들이 유란시아의 통치자라고 선포했다. 이로써 반은 15만 년이 넘도록 지녔던 권한을 포기하였다.

아담과 이브는 세상 통치자의 자리에 취임하는 이때, 임금다운 예복을 걸쳤다. 직물 짜기는 에덴 시절에 아직도 유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가브리엘이 유란시아의 둘째 심판 점호, 제2 섭리 시대에 잠자고 있던 생존자들의 부활을 선포했다. 영주의 섭리 시대는 지나갔고, 아담 시대가 열린다.

3. 아담과 이브가 행성에 대하여 배우다

정식으로 취임하고 난 뒤에, 아담과 이브는 지구가 고립된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예루셈의 동료들은 자리잡힌 영주와 경험 있는 참모진이 있는 순탄한 세계들로 가버렸다.

꿈에서 깨어난 아담과 이브는 보름달이 비치는 동산을 거닐면서 다음 날의 계획을 이야기하였다. 이렇게 첫날이 끝났다.

둘째 날은 행성 관리자들 및 자문 위원회와 회의하면서 보냈다. 칼리가스티아의 계획이 완전히 물거품이 된 것에 관하여 자초지종을 모두 들었다. 이렇게 둘째 날이 저물었다.

셋째 날은 동산을 검열하느라고 보냈다. 에덴 동산을 만들려고 수고한 사람들에게 명예를 돌리기 위하여 잔치를 치르면서 이 셋째 날이 끝났다.

넷째 날에 아담과 이브는 동산 집회에서 연설했다. 세상사를 운영할 행정부에서 일하려고 뽑힌 남녀들을 위한 잔치로 끝을 맺었다.

다섯째 날은 임시 정부를 조직하는 데 보냈고, 이것은 멜기세덱 관리자들이 떠날 때까지 활동할 행정부였다.

여섯째 날은 수많은 종류의 사람과 동물의 검열에 쓰였다. 수천 가지 동물을 보고 그 성질을 아담이 이해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아담은 눈에 보이지 않게 작은 생물(균)을 설명하여 동료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 날이 저물었을 때, 아담과 이브는 "에덴의 동쪽"에, 새 집에서 처음으로 쉬었다.

그러나 그들의 취임 연설이 동산 거주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지능을 압도하여, 대다수는 아담과 이브를 신으로서 예배하려고 하였다.

4. 첫 소동

여섯째 날 밤에, 아담과 이브가 잠자는 동안에, 아버지의 성전 근처에서 야릇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흥분한 남녀 몇백 명이, 신(神)이 육체의 모습을 입고 내려왔고, 아담과 이브는 실제로 신이거나, 아니면 숭배를 받아 마땅하다고 결정했다.

이들의 머리는 빙글빙글 돌았고, 고귀한 쌍을 아버지의 성전으로 모셔오자는 제안에 모두가 찬성했다.

반이 항의했지만, 일축되었을 뿐이다. 반도 신과 가까운데, 그렇지 않다면 그가 땅에서 어찌 그리 오래 살았는가? 하는 비판을 들었을 뿐이다. 반은 중도자들과 통신하여 그 우두머리를 황급히 아담에게 보냈다.

중도자들은 아담과 이브를 성전으로 수송했다. 아담은 신의 아들 계급에 관하여 장황하게 이야기하고, 오직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가 지명하는 자들만 숭배를 받아도 좋다고 사람들에게 분명히 일러주었다.

아담과 이브의 취임을 인정한다는 소식을 천사 사자가 가져왔을 무렵에, 그들은 말했다: "너희는 이제 아버지의 성전에 가서 그분에게 경배하여라. 다시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경배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여라."

이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전통이 기원이었다. 에덴에서는 이 일곱째 날을 성전에서 정오 집회에 바쳤다. 이것은 법이 되지 않았지만, 아담의 행정부가 있는 한, 관습이 되었다.

5. 아담의 행정

멜기세덱 관리자들은 아담이 온 뒤에 거의 7년 동안 계속하여 근무했으나, 마침내 세상사를 아담에게 맡기고 예루셈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관리자들과 작별하는 데 하루 종일이 걸렸고, 저녁 때 멜기세덱들은 각자 아담과 이브에게 조언을 주고 성공을 빌었다.

사타니아의 천사 수송기들은 예루셈을 향하여 14 존재를 싣고 자정에 행성을 떠났고, 반과 아마돈도 동시에 이동하였다.

아담은 멜기세덱들의 조언에 따라, 바깥 세계와 무역 관계를 시작하려고 공업 기술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에덴이 붕괴되었을 때, 1백 개가 넘는 원시 제조 공장이 가동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아담과 이브는 세상을 개선하는 기법을 교육받았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야만인ㆍ미개인, 반(半)문명화된 인간이 사는 세계에서, 법과 질서를 세우는 일과 같이 코앞에 닥친 문제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아담은 이미 여러 중대를 모두 에덴 연맹으로 연합시켰다. 그러나 동산 바깥으로 나가서 아담의 동료들이 일을 시작하는 순간에, 칼리가스티아와 달리가스티아의 저항에 부딪쳤다.

마침내 아담은 이들과 즉시 교제하려는 계획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반이 조직하던 방법으로 돌아가서, 에덴 사람들을 1백인씩 중대로 나누고, 각 중대에는 중대장, 그리고 10명의 집단을 책임지는 부관들을 두었다.

아담과 이브는 대의 정치를 실현하려고 왔지만, 자격 있는 정부가 하나도 없었다. 에덴의 체제가 무너지기 전에, 아담은 바깥에서 무역 및 사회 중심을 거의 1백 개 세웠다.

한 부족이 다른 부족에게 대사를 보내는 것은 아담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6. 아담과 이브의 가정 생활

아담 가족의 집터는 12.8 평방 킬로미터가 조금 넘었다. 이 집터 둘레에서, 30만 명이 넘는 순수한 자손들을 돌보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겨우 첫째 건물 단위가 완성되었을 뿐이다. 아담의 가족이 늘어나기 전에, 에덴의 계획 전부가 물거품이 되었다.

아담손은 유란시아에서 보라 인종의 맏아들이며, 그의 누이와 이브손 (아담과 이브의 둘째 아들)이 뒤따라 생겼다. 임무의 불이행이 일어나기 전에, 딸 32명과 아들 31명을 낳았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을 떠났을 때, 가족은 4대로 이루어졌고 순수 핏줄 후손은 1647명이 되었다.

아담의 아이들은 한 살이 되어 어머니의 젖을 떼었으나, 동물의 젖을 먹지 않았다. 이브는 아이들에게 이가 생길 때까지, 견과의 즙과 과일 주스를 알맞게 섞어 주었다.

아담의 지역 바깥에는 불로 익혀 먹기가 유행했지만, 아담의 집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먹을 것이 익었을 때, 과일 따위가 먹기 좋은 것을 알았다. 하루에 한 번, 정오 뒤에 먹었고, 아담과 이브는 생명나무의 열매와 함께, 우주 방사물로부터 직접 "빛과 에너지"를 빨아들였다.

아담과 이브의 몸은 어렴풋한 빛을 발산했지만, 관습을 좇아서 이들은 반드시 옷을 입었다. 낮에는 거의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어도, 저녁때는 밤옷을 걸쳤다. 그들의 몸에서 방사되는 빛이 대체로 옷에 가려졌으니까, 머리에서 방출되는 빛만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었고, 이것이 후광의 기원이다.

아담과 이브는 약 8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에서 서로, 그리고 친자식들과 교통할 수 있었다.


Masolino, the Temptation of Adam and Eve, Capella Brancacci, Firenze.

아담의 아이들은 16살이 될 때까지 학교를 다녔고, 나이든 아이들이 더 어린 아이들을 가르쳤다. 어린아이들은 30분마다, 큰 아이들은 시간마다 활동을 바꾸었다.

약혼하는 평균 나이는 18살이었고, 이들은 2년 동안, 결혼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스무 살에 결혼할 자격이 있었다.

후일에 신들로부터 내려왔다고 생각되는 왕족들의 형제와 자매가 결혼하는 관습은 아담 후손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7. 동산의 생활

아담의 아이들은 서쪽 학교를 4년 동안 다녔고, "에덴의 동쪽"에서 살고 일했다.

16살이 될 때까지, 예루셈 학교의 방법으로 지적 훈련을 받았고, 16살부터 20살까지 여러 유란시아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고, 거기서 낮은 학급에서 선생으로 봉사하였다.

서쪽 학교 체계의 목적은 온통 교제였다. 오전의 휴식 시간은 원예와 농업에, 오후 시간은 경쟁하는 놀이에 쓰였다. 저녁은 사회적 교제에 이용되었다. 종교 및 성(性) 교육은 가정의 분야, 부모의 임무로 여겼다.

여러 학교에서는 다음을 가르쳤다:

(i) 건강과 몸을 돌보기.

(ii) 황금률.

(iii) 개인의 권리와 집단의 권리의 관계.

(iv) 여러 지구 종족의 역사 및 문화.

(v) 세계 무역을 개선하는 방법.

(vi) 임무와 감정의 갈등을 조정하는 것.

(vii) 놀이ㆍ유머ㆍ경기의 개발.

학교와 동산의 활동이 모두 방문객에게 열려 있었다. 한 유란시아인이 동산에서 머무르려면, "입양되어야" 했다.

동산의 법은 달라마시아 율법에 기초를 두었고, 일곱 항목 아래에 선포되었다:

(i) 건강 및 위생 법칙.

(ii) 동산의 사회 규칙.

(iii) 무역과 상업의 법규.

(iv) 공정한 놀이 및 경쟁 법칙.

(v) 가정 생활의 규칙.

(vi) 황금률을 지지하는 시민 법규.

(vii) 일곱 가지 명령.

에덴의 도덕 법규는 달라마시아의 일곱 계명과 거의 다름이 없었다. 아담 족속은 생각 조절자가 깃드는 것이 사람을 죽이지 않아야 하는 이유로 제시되었다.

에덴에서 대중 예배 시간은 한낮이었고, 해질녘은 가족 예배 시간이었다.

아담은 판에 박힌 기도를 막으려고 최선을 다했으나, 에덴 사람들은 달라마시아 시절부터 내려온 기도를 계속 썼다.

아담은 여러 종족에게 남녀 평등을 가르치려고 애썼다. 그때까지 인류는 출산이 "아버지의 허리"에서 거한다고 생각했고, 어머니는 기껏해야 태어나지 않은 것을 먹이고 갓난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시설로 바라보았다.

아담은 당대의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모두 가르쳤지만, 그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처럼 아담은 지구의 복지와 향상을 일했지만, 더 이상 진보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8. 천지 창조의 전설

유란시아를 엿새 동안에 창조했다는 이야기는 아담과 이브가 동산을 처음 훑어보는 데 꼭 엿새를 보냈다는 전통에 근거를 두었다. 이 상황은 달라마시아 사람들이 소개한 한 주의 기간을 사람들이 신성시하게 만들었다. 6일을 보낸 것은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지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세상을 엿새 안에 만들었다는 전설은 3만 년도 더 지나서, 나중에 생각한 것이다.

아담의 갈비로부터 이브를 빚어냈다는 이야기는 아담이 도착하기 45만 년도 더 전에 유형 참모진이 온 것과 관련하여, 살아 있는 물질을 서로 교환한 수술이 혼동된 것이다.

대다수의 민족들은 아담과 이브가 지구에 도착하고 나서 그들을 위하여 지어진 육체를 입었다는 전통에 영향을 받았다.

원시 민족들은 그들의 조상이라고 생각된 동물을 "토템"으로 고르는 관습이 있었다.

아담 족속의 문명과 접촉을 가졌기 때문에, 바빌로니아인은 사람이 신들로부터 바로 내려왔다고 가르쳤지만, 이것은 진흙에서 창조되었다는 교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구약에 천지 창조에 관한 이야기는 모세의 시절이 훨씬 지난 이후에 유래하였다.

초기의 가르침에서 모세는 아담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려고 하지 않았다.

초기의 전통은 아담 이전의 문명이 있음을 인정했다. 후일의 편집자들이 소홀히 하여, 카인이 "놋의 땅"으로 가서 거기서 아내를 얻었다고 내막을 드러내는 언급을 없애지 못했다.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뒤에 오랫동안, 히브리인은 널리 사용된 글자가 없었다. 이들은 이웃의 필리스티아인으로부터 알파벳 쓰기를 배웠는데, 이들은 더 높은 크레테 문명으로부터 정치적으로 피신하여 온 자들이었다.

크레테 섬의 크놋소스 궁전과 벽화


크레테에서 쓰이던 글자.

히브리인은 기원전 약 900년까지 거의 글을 쓰지 않았고, 글자가 없었기 때문에, 몇 가지 천지 창조 이야기가 유행하였다.

모세가 아브라함의 핏줄을 추적하여 아담까지 미치려고 애썼기 때문에, 유대인은 아담이 온 인류의 시조라고 가정했다. 모세가 땅에서 머무른 지 거의 1천 년이 지난 뒤에, 엿새 안에 천지를 창조했다는 전통이 기록되었고, 후일에는 모세가 그 글을 썼다고 명예를 돌렸다.

유대인 사제들이 (바빌로니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천지창조 이야기를 마쳤고, 이 이야기를 모세가 적었다고 주장했다.

모세의 가르침이라고 소문난 이 가짜 서적은 프톨레미 왕의 눈에 뜨였고,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새 도서관을 위하여 70인 학자 위원회에게 이것을 그리스어로 옮기게 하였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나중에 "성서"에서 자리를 차지하였다.

기독교의 선생들은 천지창조 관념을 이어받았고, 한때 황금 시대가 있었는데 사람이 타락했다는 이론을 형성하였다. 이것은 어째서 사회가 유토피아가 아닌 상태에 있는가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사람에게 (희망이 아니라) 실망을 준다. 아담의 잘못 때문에 인류를 벌하려는 복수심에 불타 있는 신을 암시할 뿐 아니라, 사람이 진보하지 않고 후퇴한다는 믿음에 근거를 두기 때문이다.

"황금 시대"는 신화이지만, 에덴은 사실이었다. 아담과 이브는 동산에서 117년 동안 버티었고, 이브와 아담이 성급하고 판단을 잘못 내려서, 재난을 부르고 망할 정도까지 유란시아의 발전을 늦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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