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32 예수의 예언

기초반 수업 제목

3.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게 되리라 (D132)

(성현의 존칭을 생략하니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1. 로마 세계와 기독교의 전파

천사 +중도자들의 준비

개인적 의견도 포함되어 있다. 반드시 옳다는 주장은 아니다.

서기 22년 3월

에 예수는 가버나움을 떠났고, 그 길로 세베대의 부인 살로메의 소개장을 가지고 예루살렘의 은퇴한 대사제 안나스를 만나보았다.

겉보기에 우연히 (by apparent chance, paper 129) 예수는 인도인 상인 고노드와 그 아들 가니드를 만났고, 이들과 함께 로마 세계를 여행하는 데 찬성하였다.

(부활하신 다음에 예수가 사도들에게 신신당부한 말씀: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라고 누차 말씀했다. 예수의 가르침을 제자들이 땅끝까지 전하려면, 예수가 어느 정도, 서기 1세기의 세상을 보는 안목이 있어야 했다. 따라서,

(a) 촌구석이 아니라 진실을 전파하기에 지리적으로 유리한 곳에서 예수가 태어나고 교육을 받아야 했다. 나사렛에서 기본 유대인 교육뿐 아니라, 이방인을 이해하는 균형된 감각을 얻었고 이 때문에 알렉산드리아 체재가 단축되었던 듯하다.

(b) 예수에게 지중해 세계를 직접 구경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멜기세덱이나 가브리엘이) 판단했던 듯.

통계 정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실제로 로마 세계를 눈으로 보고 피부로 겪는 체험이 필요했다. 그래서 중도자와 천사들이 겉보기에 우연한 이 만남, 예수와 가니드의 만남을 주선했음을 가리킨다.

(c) 예수는 미가엘 계급의 아들이라고 해서,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을 예수는 지지 않아도 된다고 면제해 줄 수 없었다. 인도인 상인과 함께 지중해 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예수는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을 다하도록 충분히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신의 한 수"는 천사와 중도자들이 장면 뒤에서 활동했음을 가리킨다.

  1. 로마의 옛 모습

글쓴이: 중도자 위원회

1935년

로마

 

(i) 로마에 도착한 뒤 사흘째, 두 인도인과 예수는 황제 앞에 나타났다. (Augustus died in AD 14.)

시무룩하던 황제는 이날 특히 명랑했고, 세 사람과 오랫동안 잡담을 나누었다. 티베리우스 황제는 (서기 14-37년) 예수를 언급하며 보좌관에게 말했다:“저 친구의 임금다운 태도와 품위 있는 예절을 가졌다면, 내가 진짜 황제가 될 터인데, 응?” (티베리우스는 Augustus의 아내 Livia 가 전남편 사이에 낳은 아들)

(ii) 고노드의 고용자 중 한 사람이 흔히 통역으로 따라가곤 해서, 예수는 하루 종일 혼자 지내는 일이 많았다.

(iii) 당시에 로마의 인구는 2백만이 되었다. 중세에 들어서30,000으로 줄어들었고, 르네상스에 들어서면서 인구가 다시 늘기 시작했다.

(iv) 예수는 자주 카피톨리움(Capitolium)으로 올라갔다. 기다란 평지에 전개된 포럼을 내려다 보는 언덕에 카피톨리움이 있다. 포럼 동쪽에 Colosseum이 있다.


포럼 광장에서 왼쪽으로 카피톨리움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포럼이 있는 지역은 (Foro Romano) 고대 로마의 중심지였다. 건물이 없이 사람들이 모여서 새 뉴스를 듣고 토론도 하는 광장이다. Capitolium 지역은 툭 튀어나온 머리(capita) 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지었고, 지금은 박물관이 차지하고 있다. Jupiter, Juno, Minerva, 이 세 신을 위한 성전이 여기에 있다.

  2. 유대인의 반란
 

(i) 서기 66 년에, 그리스인이 어느 회당 앞에서, 유대인을 조롱하느라고, 오줌이 든 항아리 위에 새들을 희생 제물로 바친 사건 때문에 유대인의 폭동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희생물은 예루살렘의 성전에서만 바칠 수 있다.)

 

이런 행위는 회당을 더럽히고, 유대인을 모욕할 의도가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로마에서 임명한 유대 지방 총독 (Procurator of Judea) Gessius Florus에게 탄원했는데, 그는 8 탈렌트를 받아먹고 청문회를 열었으나, 성전 금고에서 은 17 탈렌트를 강탈하고 뜻밖에 유대인 탄원자들을 감옥에 가두었다.

(ii) 유대인들은 시리아의 집정관 Cestius Gallus 에게 불평했지만, 갤루스는 이를 묵살했다. 폭동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려고 66년 가을에 시리아 군단을 (Legio XII Fulminata: thunderbolt legion) 예루살렘에 투입했다.

Gallus의 군대는 (30,000 – 35,000명) 정도였는데, 그 구성을 보면

주력 부대, Legio Fulminata (6000명) plus

차출된 파견대 (2000명씩, from

III Gallica,

VI Ferrata,

X Fretensis

+ auxiliary (foreigners, non-citizens, 외인 부대)

(정규 로마인 군인의 연봉은 225 denarii 였는데 외인 부대는 연봉이 적었다: salary = 5/6 = 118 denarii.)

Auxiliaries were deployed far from their homelands to prevent rebellion.

 

이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을 9일 동안이나 포위했어도, Temple Mount (성전이 자리잡고 있던 언덕)을 정복하지 못했다.

성을 공격하는 데는 4가지 도구가 필요한데, 이를 뒤쪽에 배치했다가 유대인 게릴라에게 털리고 보호하지 못하였다.

siege tower (공성탑)

trebuchet (투석기)

battering ram (공성퇴)

ballista (대형 석궁)

Gallus 는 보급로가 차단되는 것이 두려워 성전에서 후퇴함으로 로마 군대의 사기가 떨어졌고, 그 군단 전체가 매복 당하여 6,000명이나 되는 로마 군인들이 몰살되었다.

 

(Battle of Beth Horon, 벳 호론 전투, 서기 66년)

Gallus 는 목숨을 건져 Antioch 로 도망갔다가, 명예가 훼손되고 창피해서 1년 후에 죽었다고 한다.

(iii) 반군의 정부가 예루살렘에 본부를 세웠고, 네로 황제는 Vespasian 장군에게 반란군의 진압을 명령했다. 그는 60,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갈릴리를 침공했다.

Jotapata에서 67년 6월 갈릴리 사령관 Josephus가 성을 지키고 있었으나 그는 47일만에 함락되었다.

(iv) Flavius Josephus 는 붙잡혀서 Vespasian 장군 앞에 끌려 왔는데, 재빨리 그 장군이 곧 황제가 되는 환상을 그가 보았다고 말하여 목숨을 건졌다. 그가 황제가 된다고 예언하는 사람을 죽일 필요가 없었다. 후일에 Josephus는 The Jewish War "유대인의 (독립) 전쟁, 7권"이라는 (1300 페이지, 성경 정도 분량) 역사서를 썼다. 예루살렘이 다시 포위되었을 때 성 앞에 가서 그는 유대인의 항복을 권유하였다.

John of Gischala (갈릴리에서 모반 군대의 지휘관), 항복하고 무기 징역 선고를 받았다.

Simon bar Giora, (로마 군대를 벳 호론 전투에서 무찌른 지휘관) 사형 선고.

이 두 사람은 폭동이 진압된 후에, 로마에서 벌어지는, 타이투스 장군의 개선 행진에 끌려갔다.

 

(v) 네로 황제가 자살하는 바람에, 군대의 추대를 받아 Vespasian은 황제가 되었다 (서기 68년, 4 황제의 해). Vespasian은 유대인의 폭동을 진압하라고 아들 Titus 장군을 보냈다. 그는 4개 군단 (약 6만 – 7만 명)을 이끌었다.

Legio V Macedonia

Legio X Fretensis

Legio XII Fulminata

Legion XV Apollinaris

+16,000 noncombatants. (비전투원)

 

Josephus에 따르면 Titus 장군은 예루살렘을 포위하였고, 이 때문에 110만의 (비전투) 유대인이 죽었고 97,000명이 살아남았다고 하지만. 이것은 과장된 숫자라고 한다. 학자들에 따르면, 굶어 죽거나 질병으로 죽은 숫자는 수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성안에는 지하에 6년이나 버틸 만큼 곡식이 쌓여 있었으나 권력 싸움 때문에 900톤의 곡식을 불태웠다고 한다.

예루살렘의 포위는 유월절 동안에 일어났고, 로마인은 순례자들이 성 안에 들어가는 것은 허락했지만 떠나는 것은 막았다. 따라서 식량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vi) Titus 장군은 성전을 파괴할 생각이 없었다. 약탈되기 전날에 회의를 열고 성전을 구제하려고 결정을 내렸으나, 고생하고 이를 갈고 있던 로마 병사들은 명령을 듣지 않았고 헤롯이 지었던 제2 성전에 횃불을 던져 불태우고 돌들은 다 밀어 버렸다

(돌 위에 돌 하나 남아 있지 않게 되리라는 것은 예언이요, 저주가 아니다. 예루살렘이 포위될 때, 거기에 남지 말고 흩어지라, 생명을 부지하고 세상 끝까지 말씀을 전하라고 부탁한 것이요, 유대인을 저주한 것은 아니다. 1세기의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의 파멸을 하나님의 심판이라, 세상의 종말이라고 생각했다.) 이 돌들은 아직도 성전 옛터 주위에 널려 있다.

(vii) Titus는 7만 명의 유대인을 포로로 삼아 로마로 데리고 가서 Colosseum을 짓는 데 이용했다.

(viii) Titus의 군대가 탈취한 예루살렘 성전의 금과 은의 양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시리아의 금 시장에서 금값이 밤 사이에 절반으로 폭락했다고 한다.

Josephus에 따르면 헤롯이 지은 성전의 표면은 거대한 황금 판으로 덮여 있어 해가 뜰 때 눈이 부시게 빛났고 사람들이 눈을 보호하려고 성전을 직접 보지 않고 머리를 돌렸다고 한다. 성전의 바깥 벽, 내부 벽, 바닥, 문들은 얇은 금박이 (gold foil)이 아니라 두꺼운 금판 (massive gold plates)으로 장식했다고 한다.

General Titus specifically ordered his troops to preserve the Temple, but a Roman soldier threw a firebrand through a window into the inner chambers.

성전 내부와 제사용 그릇을 장식했던 금붙이: Gold menorah (금촛대), Table of Shewbread (하나님 얼굴 앞에 드리는 떡을 담은 상), 지성소를 가리는 벽과 문 표면을 금판으로 장식했던 듯.

전투가 끝난 뒤에,

(a) Initial Looting (Direptio) 로마 군인들은 손쉽게 약탈한 것을 가지라고 버려두었고,

(b) Imperial Share: 덩치가 큰 것들은 지휘관과 국가의 몫 (건축비 등),

(c) 나머지는 군인들이 나누어 가졌다고 한다 + 약탈 권한.

이보다 더 큰 것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가 콜로세움을 건축한 것이다. (최소 60,000명)

Roman Forum 입구에 Titus 의 개선문이 돌로 새겨져 있는데, 약탈한 금촛대를 새겨 놓았다.

이때 로마 군대가 약탈한 금괴와 은의 양이 50톤이었다고 한다. ($200 million)

Titus 장군은 이 금괴를 로마에 있는 Coloseum 건축비에 썼다고 한다. Titus died in 81 AD.

길 건너에는 Trajan’s market 가 있고, 이것은 세계 최초의 shopping mall이었다고 한다. (Nerva succeeded Domitian.)

Trajan’s Market with over 150 shops.

팔라틴 언덕은 포럼 남쪽에 있고, 여기에는 황제의 저택, 아폴로 신전, 그리스 도서관, 라틴 도서관이 있었다.

(ix) 로마 세계를 여행한 이유: 이때 로마 제국은 유럽 남부ㆍ소 아시아ㆍ시리아ㆍ에집트ㆍ북서 아프리카를 포함했다. 이것은 세계적 문명이었고, 여러 지방에서 온 다양한 문화와 인간 무리들을 만나보고 싶은 소망이 예수가 이 여행에 찬성한 주요 이유였다.

이 여행은 수여 생애 동안의 가르침을 제자들이 어떻게 온 세상에 퍼뜨리게 만들 것인가를 예상하고 이 목적에 맞게 여생을 계획하는 포석이었다.

 

3. 기독교는 왜 성공했는가

– 그리스인과 로마인의 공헌

그리스인의 공헌

카토릭 교회에 잘못이 없지 않지만, 처음 3세기 동안에 서양 교회는 유럽의 지중해 세계 끝까지 주의 가르침을 전한 공로를 인정받아야 한다.

앞으로 천년 동안의 세계가 영적으로 어떻게 발전될 것인가 예상하려면, 지난 2000년 동안에 왜 기독교가 성공했는가 살펴 보아야 한다.

(i)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비롯하여 지중해의 여러 나라를 정복함으로 지중해 세계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단일 문화 지역이 되었다. 교육 받은 로마인들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ii) 신약을 그리스어로 기록한 것은 "최다수의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홍익 인간의 정신으로) 예수의 말씀을 전파하는 데 기여했다.

"Greatest good for the greatest number." (John Stewart Mill, English philosopher)

로마인의 공헌

로마는 정복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폭동들을 빨리 진압해야 했다.

(i) 폭동이 일어날 것을 미리 예상하고 급히 진압하려는 군사적 목적으로, 로마인들은 세계의 주요 도시를 로마와 연결하는 도로들을 건설하였다. (All roads lead to Rome.)

Roman highways = 300,000 km.

Eisenhower’s interstate highways = 45,000 miles

(ii) 이 길을 따라서, 무역하는 사람들의 뒤를 쫓아 기독교의 전도사들이 지중해 세계의 끝까지 가서 예수의 말씀을 전하였다.

Edict of Milan (313년), 밀라노 칙령)은 기독교를 허용하였다. 3백년 안에 예수의 제자들이 로마 세계를 바꾼 것은 로마인이 특별 보호를 받은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Edict of Thesalonika (380년), 기독교가 로마의 공식 종교가 되었다.

382년에 교황 Damasus 1는 St Jerome에게 신약을 라틴어로 번역해 달라고 요청했다.

오늘날 국제 언어가 된 영어도 60% 이상의 낱말이 그리스 및 라틴어에 뿌리를 둔다. (170,000 words)

 

멜기세덱의 준비 작업

멜기세덱의 준비 작업

(i) 아담의 실패, 기원전 35,000년

이 소식을 듣고서 얼마 있다가, 미가엘은 유란시아를 수여 행성으로 선택하였다.

수여의 뜻: 행성의 사람들이 보고 배우라고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화하여, 태어날 때부터 죽기까지의 일생을 선물로 준다는 의미. 훈장이나 상장은 일이 끝났을 때 수여하지만, 일생의 수여는 앞으로 사람들이 보고 배우라는 의미로 주는 선물이다.

12 멜기세덱 관리자들이 이제나 저제나 미가엘이 오시기를 기다렸으나, 3만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ii) 멜기세덱들은 에덴시아 최고자들에게 진리의 빛을 보존하려면 무언가 조치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탄원했다.

유란시아의 행정 사무는 오직 12 멜기세덱 관리자의 관할이라는 이유로 이 탄원은 기각되었다.

(iii) 아버지 멜기세덱에게 상소했으나, 미가엘이 나타나기까지, 관리자들이 알아서 하라는 말씀만 받았다.

(iv) 기원전 1900년경

미가엘의 강림을 준비하기 위하여, 관리자들 중에서 마키벤타 멜기세덱이 선택되어 살렘 지역으로 파견되었다.

  멜기세덱 관리자들의 환경 조성
 

관리자의 의미: 공식 통치자가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에 임명되는 임시 통치자를 뜻한다. 이 경우에는 아담과 이브가 실수하는 바람에 12 멜기세덱이 다시 관리를 맡은 것을 말한다.

(i) 가브리엘과 의논한 뒤에, 미가엘은 유란시아를 수여 행성으로 선택하였다. (122편)

(ii) 예수의 할 일은 진실을 가르치는 선생 역할이었다. (이마누엘의 당부)

(iii) 예수가 팔레스타인을 선택한 것은 잘못이었는가?

아니다, 당시에 유대인 사이에서 하나님 개념이 제일 발달되었다. (아마도 아케나톤이 이전에 씨를 뿌렸기 때문이다.)

 

 

예수 강림의 3가지 필수 조건
언어와 도로

(i) 예수의 강림(초림)이 헛되지 않으려면 먼저 그의 가르침을 알아듣는 종족이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는 유대인이 제일 장점을 가졌던 듯. not a random choice (주먹구구로 정한 것이 아니다. 많은 유대인이 유일신 개념을 이해했다.)

(a) 아마도 유대인이 예수의 가르침을 거부하리라는 것을 미리 짐작했지만, 그래도 다른 민족보다, 유대인 사이에서 성장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예수가 이전에 결정했다.

(b) 마키벤타 멜기세덱이 진실의 빛을 살려 두려고 기원전 1900년 경에 살렘으로 가서 아브라함에게 투자한 경력이 있다.

(ii) 지중해 세계와 같이, 한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상당히 넓은 지역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기원전 334년에 알렉산더 대왕이 지중해 세계의 대부분을 정복함으로 충족되었다.

알렉산더는 Persia를 정복하고, Ecbatana, Susa, Persepolis 등에서 황실의 금고를 털고 대략 200,000 talent 의 금은을 그리스로 가져가서 silver tetradrakma (4 데나리온 가치)을 찍어냈다. 이것으로 에집트에서 밀을 수입할 수 있었다. 뒤이어 로마인은 데나리온 은전을 찍었다. 알렉산드리아는 헬라 문화, 경제,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iii) 전도사들이 여행하도록 세계 각 곳을 연결하는 도로가 발달되어야 한다. 이것은 로마인들의 공헌이다.

(via Appia, Rome 과 Greece 지역을 연결

via Aurelia, Rome 과 France 지역을 연결

via Egnatia, Rome 과 Constantinople을 연결, etc.

 

이 조건은 로마가 지중해 지역의 여러 도시들을 연결하는 도로를 건설함으로 충족되었다.

(a) 기원전 312년에 군수 물자를 수송하기 위하여,Via Appia (Appian Way)를 만들었고, 이 도로는 로마에서 시작하여 남동쪽으로 Tarentum (지금은 Tarento)까지 260km나 되는 대로였다. 그후에 필요에 따라 로마와 연결하는 도로를 더 건설하였다.

(b) Spartacus 반란이 기원전 73년에 일어났고 내란이나 폭동이 끊임없었기 때문에 로마의 군대를 신속히 움직이도록 도로가 발달시켜야 했다.

(c) All roads lead to Rome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제국의 여러 대로는 로마를 중심으로 방사된다. 로마인이 건설한 길의 총 길이는 400,000km (250,000 mile)나 되었고, 이와 비교하여,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시작한 미국 도로의 총 길이는 45,000mile (= 72,000 km)이었다.

(d) 95편 5장 3절. 에집트가 유일신을 믿는 국가가 되었더라면, 예수가 에집트에서 몇 년을 더 살았을 것이다.

→ 에집트의 종교적 진화가 미미했기 때문에, 실제로 일어난 바와 같이, 예수의 아버지 요셉은 에집트를 일찍 버리고 유대 땅의 나사렛에서 시간을 더 보냈다.

134편: 0장 1절: 예수의 일생을 설계한 자 (가브리엘, 멜기세덱들, 중도자 등)의 계획 (예수가 유대인 가정에 태어나고 진리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는 계획)을 지중해 여행 동안에 예수가 마침내 승인했다.

그전까지는 이 계획을 수정할 수도 있었다는 말씀. (충분한 이유가 있다면, 에집트나 로마나 그리스에서 몇 년을 더 지낼 수도 있었다.)

  4. 유대인 폭동의 결과

(i) 예수의 동생은 (James the Just) 예루살렘에 세웠던 첫 교회의 우두머리였다 ( 서기 62년에 순교). 처음에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리고 마가의 2층 방이나 개인 집에서 모였다 (사도행전 2:46)

66년에 유대인의 폭동(즉 독립 운동)이 일어나자 교회가 68년에 펠라로 옮겼다가 시온 산으로, 마지막 만찬을 들던 곳, 마가의 2층 방으로 돌아왔다.

(ii) 그러나 서기 132년에 두번째 반란, 바르 콕바(Bar Kokhba) 폭동이 일어났고, Hadrian 황제가 유대인 군대의 2/3를 (580,000명) 몰살했다.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유랑 생활을 시작하였다. 유대교는 불법이 되었고, 유대인은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것이 금지되었다.

♦ 그리스인의 공로

그리스인 제자들이 진리의 횃불을 이어받지 않았더라면, 예수의 가르침은 1세기 안에 파묻혀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곧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i) 다행히 신약은 그리스어로 기록되었고, 로마인들이 길을 잘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예수의 가르침은 300년 안에 로마 세계에 널리 퍼졌다. 베드로는 마가가 그리스어를 잘 했기 때문에 첫 복음서를 기록하는 책임을 맡겼다.

(ii) Constantine 대제는 서기 330년에 수도를 로마에서 Constantinople로 옮겼고 그가 세운 Byzantine 제국은 로마 제국이 망한 뒤에도 (서기 476년) 1453년까지 1천 년을 더 버티었다. 서양 세계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보론다덱들의 간섭 (?)

로마 사람들이 도로 닦는 것을 보장하기 위하여, 멜기세덱들이 로마와 카르타고가 벌인 둘째 전쟁에서 (punic war, 포에니 전쟁) 로마가 이기도록 간섭했는지도 모른다.

멜기세덱들처럼 육신화하지는 않지만, 관찰하는 최고자 한 분이 지구에 주재하며 사람들의 나라를 다스린다. 다시 말해서. 거주하는 보론다덱은 결정적인 순간에, 인간의 역사가 만족스러운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환경을 조성하거나 바꾼다.

이 전쟁에서 카르타고가 이겼더라면, 페니키아인은 본질적으로 해적이었으니까 유럽에서 로마인처럼 제국을 세울 생각이 없었다. 이들은 얼마큼 도로를 만들었다 하더라고 비잔틴 제국의 경계선까지, 로마인만큼 광범위한 도로망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페니키아인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을 터이고, 예수의 가르침은 유대 지방에 국한되고 잊히게 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본질적으로 다신교 신봉자였기 때문에 기독교의 전파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내륙 지방까지 도로를 만들지 않고 백향목으로 배를 만들어 해안 도시들을 세우고 해상 무역로를 개발하였다. 썩지 않는 백향목으로 솔로몬의 성전을 짓기도 했다.

주가 승천하신 뒤, 기독교인들은 300년 안에 서양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유란시아서)

  가브리엘의 준비 작업
 

(a) 가브리엘이 유란시아를 방문하고서, 지적, 유전적 요인(아담의 피가 많은 점)들을 고려하건대, 히브리 종족이 최선이라고 결정하였다.

(b) 이 결정을 미가엘이 확인하였고 (아마도 기원전 8년), 유대인의 가족 생활을 조사하라고 12자 가족 위원회가 임명되었다.

이 위원회가 3쌍을 추천했고,

(c) 가브리엘이 마리아와 요셉의 가정을 선택하였다. 요셉이 그리스어를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이 선택 요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세계 여행 준비)

(d) 당시에 부유한 가정에서는 자식들에게 그리스어를 가르쳤다.

   
 

 

5. 예루살렘 교회는 어찌 되었는가 (건물이 아니라 공동체)

 

예루살렘이 파괴되자 (70 AD) 예수의 동생 야고보와 다른 제자들은 (독립 운동에 참여하지 않고) 펠라로 도망가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었는데 (이들에게 Nazarene 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독립 운동에 불참한 이력 때문에, 이들과 정통 유대교의 관계가 자연히 단절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거기에는 이제 더 성전이 없었다.

Domine, quo vadis?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초대 기독교인들은 생각 끝에 시온 산으로 돌아갔다. 바로 올리브 산에서 예수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였고. 바로 올리브 산에서 승천하셨다. (30 AD) 사도들은 예수가 다시 돌아오리라 기대하였고,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권능과 영화로움에 싸여 예수가 올리브 산으로 다시 오실 것이라 제자들이 기대한 것은 당연하다.

유대인 기독교 신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거기에 작은 기독교 회당을 짓고 싶어했다. 이들은 처음에 유대인 기독교 집단으로서 살아남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올리브 산에는 그런 회당을 지을 수 없었다. 로마 군대가 유대인의 반란이 다시 일어날까 저어하여, 계속 유대인들의 모임을 감시하고 있었고, 예루살렘 안이나 근방에 군중이 모일 만한 대형 건물 짓는 것을 금지했다.

그래서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로마 군대의 눈을 끌지 않을 곳,시온 산에, 마지막 만찬을 가졌던 마가의 2층 방이 있던 곳에 작은 회당을 짓고 서기 135년까지 남아 있었다.

서기 44년부터 4년 동안 유대 지방에 기근이 퍼졌고, 사도 바울은 이방인 신자들로부터 (마케도니아, 아카이아, 갈라디아), 기부금을 걷어 예루살렘 신도들에게 보냈다. 이 이방인 신도들이 아니었더라면 예수의 가르침은 세상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겨우 이들을 통해서 예수의 가르침과 신도들이 로마 세계에 퍼졌다.

비잔틴 시대에 이르러서야 (Emperor Constantine) 올리브 산에 승천 교회를 지을 허가가 내렸다.

서기 135년에 로마에 항거하여 두 번째 반란, 바르 콕바 반란이 일어나자 반란군은 기독교 신자들이 독립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감옥에 가두고, 박해하고 처형했다고 한다.

2세기가 되자, 예루살렘에 지었던 첫 교회는 사라지고 바울이 로마 제국의 대도시에 세웠던 그리스인 교회 공동체들 (고린도, 로마, 에베소 등)은 살아남았다.

두 번째 폭동에 동원된 유대인 반란군 인구는 100,000명이 넘었다는 주장이 있으나 실제는 그 절반, 50,000명이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드리안 황제는 Britain을 지키던 Sextus Julius Severus 장군과 60,000명의 로마 군대를 반란 진압에 투입했고, 이것은 로마 군대의 1/3 수준이었다고 한다.

역사가 Cassius Dio에 따르면 이 폭동에 말려들어 죽은 유대인 전투병과 시민은 580,000 명이었다고 한다. 첫째 폭동에 죽은 유대인 병사의 수도 비슷하다. (300,000- 600,000 명)

135 AD, 하드리안 황제가 두번째 폭동을 진압하고 예루살렘은 유대인에게 금지 구역이 되었고, 이때부터 유대인의 diaspora (타향살이)가 시작되었다.

   
  6. 제5 계시가 책으로 전해진 이유
 

(i) 1347년에 흑사병이 유럽에 퍼지고, 유럽의 인구가 1/3 이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서 50년 안에 유럽의 임금이 2배 이상 오르고 匠人과 중산층이 확대되었다. 경제 사정이 개선됨에 따라 학문과 예술의 부흥, 르네상스가 시작되고 종교 개혁이 뒤따른다. (또한편 비싼 임금을 아끼기 위한 기계의 발명으로 산업 혁명이 유럽에서 시작된다.)

15세기 이후에 부의 축적을 보여주고 싶은 중산층의 욕구는 르네상스에 박차를 가하였다.

Cappella Brancacci (Florence)의 벽화 (Massolino 작품). 자랑하고 싶어서, 르네상스 시대의 사도와 상인들이 중국에서 수입된 비싼 비단 옷 걸친 것을 보아란 듯 자랑하고 있다.

(ii) 공자나 노자나 (둘째) 이사야 같은 선생들은 인류를 깨우치는 데 필수였기는 하지만, 그런 선생의 가르침은 한 세대에 국한되어 후세에 잊힐 위험이 크다. 신구약을 비롯하여 유란시아서는 in-person 가르침의 한계를 (가성비가 낮은 것을) 보강한다.

학자들에 따르면,

 

첫째 이사야 (proto-Isaiah, Isaiah 1-39). (성전이 파괴되기 전에 쓰인 두루마리, 700 BC)

둘째 이사야 (deutero-Isaiah, Isaiah 40 – 55).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 쓰인 두루마리. (after 538 BC when Cyrus defeats Babylon.)

셋째 이사야는 (trito-Isaiah, Isaiah 56-66)는 바빌론에서 포로 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후에 (post-exilic period) 쓰인 듯.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고 (Isaiah 64:8) 가르쳤다.

"You Lord are our Father. We are the clay, you are the potter; we are all the work of your hand."

이사야서는 두루마리로 남아 있다.

 

(iii) 경전이 없는 종교는 오래 갈 수 없다.

(a) 유대인에게는 구약이 있었다. 바빌론에서 48년의 포로 생활을 끝난 뒤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유대인의 단결을 위하여, Ezra가 모세 5경을 수집하였다.

(b) 기독교에는 신약이 있었다. 처음에는 유대교 속에 한 종파로 자리를 지키려고 했으나, 예수의 승천 후 (30 AD)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예루살렘에 첫 교회를 세우고 그 우두머리가 되었고, 이방인 신자들에게 할례 의무를 면제해 주었다.

 

누가 복음과 바울의 편지들을 비롯하여 Marcion이 처음으로 신약을 수집했지만 교회의 지지를 못 받았다. Athanasius가 (367 AD) 처음으로 4복음을 포함하여, 신약 경전이라 인정할 책 27권 의 목록을 발표했고, 이것은 Council of Carthage (397 AD) 에서 인가를 받았다.

(c) 도교에는 도덕경을 비롯하여 道藏이 있고, 불교에는 대장경이 있지만, 일본의 신도(神道)는 그 내용을 신도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경전을 마련하지 못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예식으로만 남아 있다.

(iv) 인쇄술이 보급되기 전에는 선생이 직접 학생들 앞에서 가르쳐야 했고, 후일에 여러 선생들의 손을 거치면서 가르침의 내용이 변질되거나 와전되는 경향이 있었다.

(v) 유란시아서는 처음부터 책으로 나와서 진화 종교의 단점을 보강하고 천년이 지나도 내용이 변질될 우려가 없다.

(a) 지난 2000년 동안에, 기독교는 대체로 서양 세계에만 전해졌다.

(b) 영어로 말씀을 전하여 제5 계시는 동양 세계에도 전파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한글이 세계 언어가 될 가능성도 있다.

(c) 유란시아서는 다음 1천년이나 2천년에 빛과 생명의 시대가 올 것을 겨냥한 듯.

 

 

7. 여러분은 예수의 제자 (You are his disciples)

예수가 제자(G: Mathitis)들에게 당부하신 말씀

5번째 상물질 모습

첫 열두 제자는 apostolos(심부름을 받은자, 파견된 자, 사도라고) 부르고 나머지는 제자라 부를 수 있다. (신교와 구교의 여러 지위와 등급 포함)

Go to all the world proclaiming this gospel

"(너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온 세상으로 가서 이 복음을 선포하라."

6번째 상물질 모습, 그리스인들 앞에

 

Go you therefore to all the world.

"그런즉 (이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온 세상으로 가라"

10번째 출현

Go into all the world proclaiming this gospel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men to all nations.

"하나님이 아버지이고 사람은 형제임을 온 세상에, 모든 나라에 전하라."

알렉산드리아 신자들

Go you therefore into all the world preaching this gospel

"이 복음을 온 세상으로 가지고 가서 전하라."

사도들에게 두 번째

go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is gospel of the kingdom.

온 세상으로 가서 이 하늘나라 복음을 전파하라.

갈릴리에서 사도들에게 이 세상에서 일이 끝나면 너희는 다음 세상에서 나를 위하여 일하리라.
마가의 2층 방

예수가 온 세계에 전파하라는 옛 복음이

"예수가 부활하셨다"는 새 복음으로 바뀌었다

 

승천 시 (올리브 산에서)

먼저 예루살렘에서 전하고,

"(주가 권능과 영화로움 속에 주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느라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지 말고)

다음에 세상 끝까지 가서 이 하늘나라 복음을 전하라."

 

예루살렘 교회에 있던 예수의 제자들은 그의 말씀을 따랐는가?

(a)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서기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자 펠라로 도망 갔다가 시온 산, 마가의 2층 방으로 돌아가서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기 135년 이후에, 예루살렘 교회는 없어졌다.

(b) 이방인의 교회 즉 바울이 로마 세계에 세웠던 교회/공동체들이 (알렉산드리아, 코린토, 테살로니까, 에베소, 안티옥, 로마 등) 땅끝까지 부활하신 예수를 전했지만, 그것은 예수가 가르친 복음이 아니었다.

(c) 바울과 베드로가 로마의 Mamertine 감옥에서 순교된 후 (67 AD) 5세기부터 교황 Leo I 세 때부터 카톨릭 교회가 최고임을 주장했다. (Papal supremacy)

(d) Vatican (교황청)이 카톨릭 교회를 중앙 집권 체제로 만들었고 로마 카톨릭과 동방 정교회의 대분열이 일어났다, (Great Schism, 1054 AD)

(e) 4차 십자군 전쟁에서는 Venice 의 카톨릭 교도들이 동방 정교회의 도시 Constantinople 을 약탈했고 (1204 AD), 이것은 결국 Byzantine 제국의 종말을 가져 왔다. (1453 AD)

(f) Martin Luther의 종교 개혁 이후에 (1517 AD) 신교의 여러 종파도 중앙 집권 체제를 따랐다.

 

8. 계시자들이 제자들에게 부탁한 것

(여러분은 예수의 제자)

 

(a) Possess your souls in patience (Luke 21:19)

→Stay calm, maintain self-control and survive during hard timesㄴ.

(인내함으로 영혼을 얻으라, 즉 침착을 잃지 말고 어려운 시절을 견디라)

(b) Create thousands of study groups

(중앙 집권 체제, 새 교회가 아니라) 공부하는 집단을 많이 만들라

(c) Translate into many languages

여러 언어로 번역할 것.

   
   
   
 

 

 

 

로마에서 만난 사람들 (132편)

Outline

1. 참된 가치 (앙가몬)

2. 선과 악 (마르두스)

3. 진실과 믿음

4. 나본

5. 개인적 봉사

6. 부자에게 조언 (돈을 어떻게 벌까, 쓸까)

7. 사회 봉사

예수의 가르치는 방법

6개월 로마에서 머무르는 동안에, 예수는 견유학파ㆍ금욕주의파ㆍ신비 종파의 지도자들을 수소문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i) 예수는 기독교 전도사들이 곧 로마로 올 것을 내다보았다.

(ii) 한 번도 그들의 잘못을 공격하거나 가르침에 있는 결점을 언급하지도 않았다.

  신의 한 수

예수의

개인적인 조치

예수가 만난 종교 지도자 32명 중에서 30명이 기독교를 세우는 주축이 되었다.

기독교가 급속히 전파되게 만든 예수의 3가지 조치:

1. 시몬 베드로를 사도로 선택하고 붙들어 둔 것.

2. 예루살렘에서 스테반과 이야기한 것.

3. 로마에서 후일에 기독교를 주도할 로마인 30명을 미리 예비한 것.

예수는 한 번에 3명을 만나지 않았고, 두 명을 넘게 만나는 일이 드물었고, 하나씩 가르친 적이 가장 많았다.

베드로는 다마스커스 서기관이 예수였을지 모른다고 추측했지만, 그 생각을 떨쳐버렸다.

 

  1. 참된 가치

앙가몬

금욕주의파 (Stoics) 지도자 앙가몬을 가르쳤다.
앙가몬은 나중에 바울과 친구가 되었다. (예수의 가르침)

(i) 참된 가치의 기준은 (물질이 아니라) 영적 세계에서 찾아야 한다.

(ii) 물질적 기준은 (권력과 재산 따위) 모두 일시적ㆍ부분적이며 열등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과학자는 자기가 유물론자나 이상주의자라고 주장할 권리가 없다. 그러한 태도는 과학이 아니라 철학의 핵심이다.

(iii) 높은 도덕적 가치관과 영적 기준을 가진 과학자와 이상주의자는 서로 다툴 수 없다. (각자가 사용하는 연장이 다르다)

(iv) 어느 시대에도 이른바 과학이나 종교가 거짓되다면, 그들은 활동을 정화(淨化)하든지, 아니면 사라져야 한다

(Shape up or ship out)

현대인의 종교도 살아남으려면 정화해야 한다.

  2. 선과 악

마르두스

마르두스는 견유학파에서 인정받은 지도자였다. 예수는 선과 악에 대한 마르두스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선과 악은 조절자의 영적 기준에 따라서 결정된다.

(i) 과학의 명령, 사회의 관습, 종교의 독단을 논리적으로 따르는, 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은 지적 앵무새요, 사회에서 자동 인형, 종교적 권한에 종이 된다.

(ii) 인간이 성장하면서, 선이 커지고 악이 줄어드는 것을 발견한다. 혼이 마지막 영 수준에 이르기까지, 악한 것을 체험하는 능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iii) 파라다이스에 이를 때까지, 선은 언제나 하나의 목표일 것이다.

파라다이스에 이를 때가 되면, 하늘 가는 필사자는 생명의 빛을 완전히 소유하게 된다.

(iv) 악의 가능성은 도덕적 선택에 필요하지만, 악이 현실화될 필요는 없다.

  3. 진실과 믿음

나본에게 하신 말씀

나본은 그리스계 유대인이요, 미트라(Mithras) 교에서 으뜸가는 지도자였다. 예수는 나본과 함께 진실과 믿음에 대하여 토론을 가졌다.

12월 25일은 미트라스의 생일.

(i) 진실은 말이 아니라, 오직 실천함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지식은 과학에서, 지혜는 참된 철학에서, 진실은 영적 생활의 종교적 체험에서 비롯한다.

(ii) 믿음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결코 인품에서 진실성이 솟아나지 않는다.

(iii) (조절자 언급) 믿음은 신성한 불꽃, 곧 불멸의 씨눈이 활동하도록 해방하고, 그 씨눈은 사람의 지성 속에서 사는데, 이것이 영생의 잠재성이다.

 

(iv) 사람의 혼(인격)은 깃드는 이 신성의 불꽃과 연합함으로 살아남는다.

(v) 인간의 생명은 이어진다―살아남는다. 그 생명이 하나님을 찾아내는 과제를 가졌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활기를 얻은 사람의 혼은 이 운명의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멈출 수 없다.

 

4. 개인적 봉사

말씀의 요점

예수는 로마에 있는 동안, 앞날에 제자가 될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일에만 여가를 쓰지는 않았다.

예수가 인간과 접촉하는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i) 예수는 사람들이 인생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는가 알고 싶어했고, 그들의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 무엇을 말씀하거나 행할 생각을 하였다.

(ii) 예수가 전한 말씀의 요점은,

하늘 아버지의 사랑이 사실이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이었다.

로마에서 예수가 만난 사람들

로마의 어느 상원 의원과 정치 정신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사람은 사람들이 정부를 지원하는 관념을 받아들이도록 동료들을 설득하려고 헛되이 애썼다.

(i) 어느 부유한 노예 소유자에게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가르쳤다. 이튿날 클라우디우스는 노예 117명에게 자유를 주었다.

1세기에 노예의 값은 대체로 500 denarii (약 4400 USD). 노예를 해방할 권한은 소유자에게 있었으나 5% 해방세를 물어야 했다.

Edict of Diocletian on Maximum Prices (301 AD),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느라고 1000개 이상의 생필품의 가격을 고시하였다. 종의 값은 400 데나리온 (은전), 가룟 유다가 받은 돈 (은전 30 데나리온이 종의 값이었으니, 300년 동안에 물가가 10배 넘게 올라서 황제가 물가를 잡으려고 애쓴 것이다.

군인 봉급 (마리우스는 112 데나리온을 지불했고, 케자는 225 데나리온으로 군인의 연봉을 두배로 올려서 인기가 좋았다, 55 BC) 50 denarii was deducted for food (1년 식비), and 60 for arms. 봉급의 절반이 식비와 무기비에 들어갔다.

억울하게 고발당한 어느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예수는 판사 앞에서 변론하였다:

(ii) 정의(正義)는 나라를 위대하게 만들며, 나라가 위대할수록 가장 비천한 시민도 부당한 판결을 받지 않도록 처리하려고 더욱 애쓸 것이라.

증거를 샅샅이 조사한 뒤에, 판사는 그 죄수를 플어주었다.

  5. 부자에게 조언을 주다
10가지 재산의 근원

어느 부자가 재산으로 무엇을 하겠는가 물었다.

예수는 어디에 돈을 쓰라는 말씀은 하지 않았고, 돈을 정당하게 벌었는가 묻고, 부당하게 벌었다면 보상하라고 말씀했다.

부자가 다시 물었다. 재산을 어떻게 써야 하리이까?

네가 물었으니 조언을 주지만, 이는 너를 위한 것이요, 남에게서 그런 행동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재산의 10가지 근원을 파악하라.

“1. 물려받은 재산.

“2. 발견한 재산―대지(大地)의 개발되지 않은 자원으로부터 얻은 재산.

“3. 상업 재산―물질 상품의 교환과 물물 교역에서 정당한 이익으로 얻은 재산.

“4. 부당하게 착취한 재산―사람의 동료들을 부당하게 착취한 재산.

“5. 이자(利子)로 얻은 재산―투자한 자본으로부터 공평하고 정당하게 버는 가능성에서 생기는 소득.

“6. 천재(天才)로 얻은 재산―발명하는 자질로부터 얻은 재산.

“7. 우연히 얻은 재산.

“8. 훔친 재산―불공평ㆍ부정직ㆍ도둑질 또는 사기(詐欺)로 확보한 재산.

“9. 신탁(信託) 기금―어떤 특정한 용도를 위하여, 동료들이 네 손에 맡긴 재산.

“10. 벌어들인 재산―스스로 몸소 수고하여 직접 얻은 재산, 바로 너의 정신과 몸이 나날이 노력하여 얻는 공평하고 마땅한 보상.

  어떻게 재산을 처리할 것인가

어떻게 재산을 처리하는가

정의ㆍ공평ㆍ공정ㆍ효율성의 정신에 따라 재산을 처리하라.

의심이 들 때, 곤궁한 자에게 유리하게 결정을 내리라.

1. 물려받은 재산의 경우, 부당한 재산은 배상하라. 나머지는 잘 관리하여 후세에 전달하라.

2. 발견한 재산은 가능한 최다수의 인간을 위하여 써라.

(John Stewart Mill: Greatest good for the greatest number)

3. 상업에서 얻는 재산 중에 정당한 이익을 주장해도 좋으나, 나머지는 소견대로 써라.

4. 부당한 재산은 빼앗긴 자에게, 또는 그 자손에게 돌려주라.

5. 정직하게 얻은 재산은 이자를 받아 마땅하니라.

6. 천재로부터 재산을 확보해도, 그 사람은 사회에 빚을 졌느니라. 재산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원칙을 정할 수 없느니라. 사람이 형제임을 깨달으면, 공평하게 재산을 처리하도록 인도하리라.

7. 우연히 굴러들어온 재산은 개인 재산이 아니라, 신탁(信託) 재산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처분해야 하느니라.

8. 부당한 방법으로 번 돈은 주인에게 돌려주고, 재산을 깨끗이 하라.

9. 신탁 재산을 위태롭게 하지 말라.

10. 정신과 육체의 노동에서 얻은 재산은 동료를 해치지 않는 방법으로 사용하라.

  6. 사회 봉사

길 잃은 아이

예수와 가니드는 어느 길 잃은 아이를 어머니에게 돌려주었다.

"너도 알다시피, 가니드야, 대부분의 인간은 길을 잃은 아이와 같으니라."

다섯 아이를 가진 과부를 여러 번 위로하러 갔고, 맏아들에게 일자리를 찾아주었다.

고노드가 말했다: "당신은 미래 세대를 위하여 책을 써야 하오."

예수는 대답했다: “책이 아니라―내 사명은 이 세대에, 그리고 모든 세대를 위하여 일생을 사는 것이외다."

  7. 로마 근처에서 한 여행
말씀을 전하지 않은 경우

북부 이탈리아의 호수들을 찾아보았다.

어떤 사람에게 왜 진실의 말씀을 전하지 않았는가 가니드가 물었다:

 

"가니드야, 그 사람은 진실에 갈급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불만이 없었느니라. 도움을 요청할 준비가 되지 않았고, 마음의 눈은 혼을 위하여 빛을 받으려고 열려 있지 않았는지라"

  부다에 관한 의견

부다에 관한 의견

스위스를 방문하는 길에 고노드는 물었다. “나는 당신이 부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말로 알고 싶소이다.” 예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부다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살고 가르치려고 애썼지만, 하나님 없이 그렇게 하였소이다. 부다는 안전한 항구 바로 앞까지, 사람을 구원하는 피난처 입구(入口) 바로 앞까지 구원의 배를 안내하였고 거기서 잘못된 해도(海圖) 때문에, 좋은 배가 땅으로 올라가 버렸소이다.

"오늘날, 불교도는 하나님 없는 철학 속에서 발버둥치고, 한편 내 민족은 생명과 자유의 철학, 유익한 철학(哲學)이 없이, 불쌍하게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종이 되었소이다."

불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와 유대교의 장단점 비교.

그때 가니드가 외쳤다: “선생이여, 당신과

내가 새 종교를, 인도를 위해서 충분히 좋고 로마를 위해서 충분히 큰 종교를 만듭시다."

가니드는 말했다: “아세요, 아버지, 나는 때때로 요수아가 선지자라고 생각하나이다.” 아버지는 잠이 오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아들아, 다른 이도 있느니라―”